대구 열차추돌 왜 났나…신호기는 꺼지고 교신까지 혼선
규정과 원칙이 ‘탈선’하면서 또다시 빚어진 안타까운 참사였다.
8일 아침 대구 고모∼경산 구간에서 발생한 무궁화호 열차의 화물열차 추돌사고는 비록 사망자가 2명에 불과했지만 철도 안전의 총체적 문제점을 드러낸 부실 그 자체였다.
▽철로를 가로막은 화물열차=경부고속철 공사로 인해 이날 사고 구간은 자동신호기가 꺼져 있었다. 역 사령실과 기관사들은 이에 따라 무선 교신을 통해 상황을 주고받으며 ‘통신식’으로 운행했다.
그러나 자동신호기가 시험작동 중이어서 꺼졌다 켜졌다 하는 사실을 화물열차 기관사 최모씨(50)는 모르고 있었다. 그는 “고모역에서 출발한 뒤 신호기가 자주 바뀌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시험 중 들어온 자동신호기를 정상신호를 혼동했다는 것. 최씨는 “고모역에서 그대로 가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화물열차는 철로에 거대한 장애물(화물열차)처럼 버티고 서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은 뒤따라오던 무궁화호에 연락되지 않았다. 무궁화호 열차 기관사 김모씨(36·김천기관사 사무소)는 “고모역을 지나칠 때 사령실로부터 화물열차가 정차해 있다는 내용을 통보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사령실이 열차운행상황을 제대로 전달했는지, 무선 연락을 받고서도 기관사가 계속 열차운행을 강행했는지 조사 중이다.
▽나사 풀린 시스템=만약 부산 사령실과 역 사령실의 교신이 정확했고, 이를 기관사가 제대로 받았다면 무궁화호열차는 고모역을 출발하지 않았어야 했다.
부산 사령실측은 “통신식으로 운행할 경우에는 역장 책임에 따라 운행 지시를 해야 한다”며 “무궁화호를 주의해서 통과시키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산역과 고모역측은 “부산 사령실의 지시에 따라 무궁화호를 통과시켰다”고 반박했다. 역 관계자들은 “모니터를 볼 수 있는 부산 사령실이 철로 상황을 더 잘 알 수 있다”며 지령실과 기관사들의 상황 파악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이날 열차에 장착된 자동정지시스템도 가동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자동정지시스템은 전방에 방해물이 나타날 경우 자동으로 열차를 서게 하는 장치다.
경찰은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안개가 낀 것은 아닌 것 같다”며 “기관사들이 전방 주시를 소홀히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출근길 날벼락=사고 열차 승객(172명) 가운데 발전차량과 연결된 6호 객차의 피해가 컸다. 열차가 화물열차를 추돌하는 충격으로 6호 객차 연결 부분이 530cm가량 푹 찌그러들었다. 사망자는 6호 객차 입구 쪽에 탔던 승객들이다.
이 중 어머니 정모씨(29·여·경북 성주군 성주읍), 누나(8)와 함께 여행하던 이모군(4)이 숨져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정씨 가족은 이날 새벽 왜관을 출발해 부산 해운대의 수족관으로 체험학습을 가던 길이었다. 다리를 크게 다친 정씨는 “아들이 크게 다쳐 수술을 받고 있다”는 친척들의 거짓말에 “수술 중 피가 부족할 텐데…”라고 걱정하며 연방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고 발생 3시간 뒤 아들은 카메라를 목에 걸고 숨진 채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