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 윙''24''커맨더 인 치프'
미국 드라마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CSI','24','커맨더 인 치프' 등의 외화 시리즈가 국내 시청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그러나 한국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미국 드라마도 모자라고 아쉬운 면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분법적인 미국중심의 세계관. 미국 드라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을 통해 이들이 전파하는 세계관을 확인해 보자.KBS 2TV에서 방송되고 있는 미국 정치드라마 '커맨더 인 치프'는 최근 2주간 북한 관련 내용을 다뤄 주목받았다. 비밀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미국의 잠수함이 북한의 영해에서 해구에 부딪혀 좌초된다는 설정. 지난 68년 발생한 미국 첩보함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을 연상시킨다.
드라마는 처음부터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암시한다.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민들의 인식을 간단하게 고정시킬 수 있는 내용. 여자대통령인 주인공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위급 상황에서 한국 정부관련 내용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미국인들에게 좀더 친숙한 일본과 중국 정부가 중심 역할을 한다.
올해 에미상 3관왕을 차지한 최고 인기 드라마 '24'에서도 한국이 등장한다. MBC에서도 방송된 바 있는 이 액션드라마는 미국 첩보기관이 서울에서 한국계 인물을 고문해 테러 관련 첩보를 받아내는 장면을 내보냈다. 드라마 곳곳에서 미국의 안보를 위해서라면 고문쯤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시각을 보여주는 '24'는 서울을 무자비한 고문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곳으로 그리고 있다.
'커맨더 인 치프'의 원조격이라고 볼 수 있는 '웨스트 윙'도 북한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에미상을 수차례 수상한 작품답게 그나마 깊이가 있는 접근. 북한의 천재 피아니스트가 백악관을 방문해 공연하던 중 망명을 요청하지만 중요한 회담을 앞두고 있는 미국측이 이를 거부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망명이 좌절된 피아니스트의 슬픈 연주가 인상적인 이 에피소드의 제목은 우리말인 '한'(Han). 극중 미국 대통령은 한을 너무도 슬퍼서 눈물도 나오지 않지만 희망을 간직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이 밖에 국내에도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시트콤 '프렌즈'에도 'Korea'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극중 인물들이 6·25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국이 '아름다운 자연과 슬픈 역사를 가진 나라'라고 말하는 것. 김씨가 너무 많다며 농담을 하기도 한다.
미국 만화 '심슨가족'의 초창기 에피소드에도 한국 관련 내용이 나온다. 심술쟁이 교장이 일제 자동차인 혼다를 새로 구입했다가 H 모양의 엠블럼이 사라지자 현대차에서 떼내려고 하는 것. 한국차가 일제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진다고 여겼던 미국인들의 당시 인식을 잘 드러낸다.
미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국 관련 내용은 다분히 미국 중심적이고 과장돼 있다. 가볍게 본다면 '허구인 드라마의 내용일 뿐'이라고 넘길 수도 있는 것들. 그러나 지난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당시 NBC 뉴스의 한국 특파원이 미국 현지의 간판뉴스프로그램에 나와 "한국인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고 있으며 그 이유는 한국이 미국의 보호아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을 고려한다면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미국중심적인 현실인식은 드라마에 국한된 것은 아닐수도 있다.
김종우기자 kjongwoo@busanilbo.com
부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