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갑질횡포를 죽어가는 협력업체를 위해
사회 공론화를 시켜 법안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상생협력법, 공생협력법, 갑질방지법등을 입법 발의할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보배님들의 많은 추천과 댓글 부탁 드립니다.
현대중공업에 협력업체를 운영하는 대한기업 대표 입니다.
6월 임금이 5억6천만원 발생했는데도 현대중공업은 기성금을 3억3천만원 밖에
주질 않아 7월5일 국민청원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국민청원을 올렸다는
이유로 업체 전산통제및 출입증 통제를 실시해 170명이 넘는 근로자들은 뿔뿔히 헡어지게
했으며, 현재까지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기업 산재사망 사고 합의서 입니다.
원청의 잘못으로 사망 사고가 발생 했지만
합의는 대한기업이 봐야 한다고 해서 명의만 빌려줬습니다.
현대중공업은 대한기업이 잘못이고 대한기업이 합의를 봤다고 하지만
합의서를보면 부친의 현대중공업 복직과 미망인의 계열사 취업을
어떻게 일게 협력업체가 할수 있는 일 입니까...
현대중공업은 사망사고를 업체에 떠 넘기고 어떠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중공업 사고즉보 입니다
신호수(원청 근로자)의 잘못이라고
나오있지만 결과는
대한기업 대표만 징역8개월 받았습니다.
공정위 직권조사전 현대중공업은 블랙매직이란 파일삭제 프로그램으로 파일을 삭제한 녹취록 전문입니다.
현대중공업은 공정위 조사를 방해한 정황입니다
현대중공업에서 지급한 기성금 비율입니다
모든 공정별 난이도나 상관없이 50%고 지급했습니다.
같은 호선 같은 공정이지만 현대중공업은 50%도 안되게 지급했습니다.
말이 안되는 지급방식입니다
진짜 ㅈ 같은 새끼들이네요. 멀리서나마 응원합니다.
도와주세요. 더이상 대기업이 갑질을 못할수 있도록 보배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사회 공론화를 시켜 갑질방지법의 법안 마련할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3년 이란 시간이 짧은 시간이지만 나에겐 길고 긴 시간 이었다.
13년의 하청업체 근로자로 지내면서, 수많은 협력업체 대표들의 횡포를 몸으로 느끼며,
나는 다짐했다.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젊음을 밑천 삼아 도전한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이 나에게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13년의 하청업체 근로자 생활을 접고, 협력업체 대표로서 저들의 모습처럼 살지 않으려고 다짐하면 시작했다.
많은 근로자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나의 작은 꿈은 시작 되었다.
요란한 망치소리, 쇠를 녹이는 열기 속에서 그들은 여름을 맞이했다.
그들은 그 뜨거운 여름 한 가운데서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더위와 싸우며 일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어느 날 저녁 난 정신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가 추락을 했다.
정신을 차릴 시간 없이 현장으로 뛰었다. “제발”, “제발”, “하나님 제발”,“부처님 제발”.
현장의 모습은 참혹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구급차에 실려가는 근로자를 보며, 눈물 범벅이 되어 소리쳤다. “누가” “왜 이 사람을 이렇게 했냐” “누구냐”.
요란한 엠블런스 소리와 함께 중환실에 누워있는 그를 보며, 난 두려웠다 “제발 살아달라고”
“제발 떠나지 마라고” 그는 생명의 끊을 놓지 않으려 견디고, 견뎠다.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버티고 버텼다. 나 또한 눈물을 참으며 견디고 있었다.
하지만 생명의 불꽃은 꺼져버렸다. 뱃속의 아이를 보지 못한채 그는 그렇게 곁을 떠나버렸다.
어느 날 저녁 다급한 벨이 울린다. 총무의 자살소식 이었다.
울면서 뛰어 들어간 응급실, 그 곳에는 아무 미동 없이 누워있는 친구의 모습.
숨이 막혔다.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나는 그렇게 앉아 있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그렇게 그들과 작별을 한다. 아무 준비 없이 갑자기 찾아온 작별, 영원히 볼 수 없는 그런 작별을 한다. 2층과 3층, 천장과 바닥을 경계로 그들이 잠들어 있다. 난 그 경계를 넘나들며 그들과 그렇게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끊었던 담배를 피우며 난 그들과 그렇게 작별했다.
그들은 그렇게 불꽃으로,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생명의 값, 죽음의 값, 짧은 생예의 값은 한 장의 종이로, 몇푼의 금액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고통의 시간이 갔다. 그들은 보란 듯이 기성금을 삭감했다.
난 다시 뛰어 다닌다. 여러 은행을 돌며, 국가 기관을 돌며, 임금을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를 뛰어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법원에서 기소장이 배달 되었다. 그렇게 길고 긴 재판이 시작되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재판은 8개월 징역, 2년의 집해유예로 끝났다.
몸도 맘도 지쳐버린 시간, 난 그렇게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목을 조여오는 소리를 들어면서 버티고 버텼다.
그들이 살기위해 버틴시간 만큼 나도 그렇게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버텼다, 믿고 또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날 외면해 버리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어둠속에서 길을 잃은 난 소리쳤다.
뒤늦은 후회를 하며, 울며 소리쳤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일했다.”
“당신들이 시키는 되로 다했다.”, “나는 억울하다.” 이렇게 소리쳤다.
메아리로 돌아올지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메아리는 또 다른 울림으로 돌아왔다.
여기저기서 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다.” “당신은 열심히 일했다.”
“당신의 억울함을 알았다.”. “당신을 응원한다.” 라는 메아리는 울림이 되어 돌아왔다.
내 가슴 깊이 울리는 울림이 되어, 나는 다시 뛰어 다닌다.
저들의 갑질횡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오늘도 거리로 나선다.
현대중공업(주) 사내협력사 대한기업은 협력업체가 아닌, 인력회사 였다.
나는 대표가 아니며, 인력회사 소장에 불과했다.
나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부서에서 관리자가 마음에 안 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을 교체할 수밖에
없는 힘없고 한심한 사람이 였을 뿐, 그들이 하라고 하면 하는, 그저 그들의
꼭두각시이자 개 였다.
3년 동안 단 한번이라도, 대표로서 대우를 받은 적이 없고, 협력업체로서
지위를 받은 적이 없다.
시간이 갈수록 기성금은 삭감되었고, 부채는 늘어났다. 그나마 대출을 받을수 있어 다행이었다. 대출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받아, 근로자의 임금을 줬다.
대출이 막히자, 근로자에게 공제한 4대 보험료로 근로자의 임금으로 돌려
막았다. 다음 달은 나아지겠지, 다음 달은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부서에서 말한다. “다음 달에 챙겨 드릴게요.”, “다음 달에 챙겨 드릴게요.”, “품의서를 받아 챙겨 드릴게요.” 이 말이 3년째다. 부서는 늘 그러하듯 다음 달로 미룬다. 그러는 동안 부채는 계속 쌓이고, 내가 해결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 나는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처음 본 팀으로 운영 할 거라 다짐 했다.
본 팀 운영으로 4대 보험료 또한 많이 발생했다. 정부의 “조선업 특별고용위기업종지정”으로 “4대 보험 유예정책”이 나오기 이전에는 4대 보험료을 납부 할 수 있었다. 정부 정책시행 이후로 기성금은 임금에 못 미쳤다. 현대중공업(주)는 수주절벽, 업황 부진이라고 하다 보니, 타 협력사 대표들과 근로자 단가를 낮췄다. 그렇게 단가를 낮춰도, 세금 낼 돈은 고사하고 임금을 줄 수 없는 지경이 계속 이어졌다. 짧은 공사 일정 속에서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품질과
안전도 담보 할 수 없었다. 부서는 늘 공사 일정이 빠듯한 주간 스케줄을
내려준다. 나는 모른다 이 블록이 몇 M/H 인지, 계약을 해야 알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마저도 부서는 월 말에 계약을 진행한다. 매월 20일부터 25일까지 나는 25일이 되어야 계약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있다. 턱없이 부족한 기성금, 임금에도 못 미치는 기성금, 나는 25일부터 인원을 빼기 시작한다. 남은 4,5일간 투입 인원을 줄인다. 내가 살수 있는 길, 임금을 줄 수 있는 길을 찾아 움직인다. 하지만 부서에서 연락이 온다. 욕을 한다. 도급계약해지까지 들먹이면서 협박한다.
늘 바쁜 공정 속에서 품질과 안전을 담보 할수 없는 상황의 연속에서 사고가 났다. 사망사고 였다. 원청 근로자의 잘못으로 사고가 났다. 사고이후 내 전화는 알 수 없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새벽에도 온다. 사고 보고, 상태보고, 어디인지 알 수도 없다. 총무 또한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전화벨소리에 노이로제가 왔다. 원청에서는 잘못을 인정했다. 모든 것이 잘 되는 듯 했지만, 총무가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선택했다. 하늘이 무너졌다. 아무것도 보이질 않다. 난 단 한번도 협상에 들어 간 적이 없다. 어떻게 협상을 했는지 모른다. 그저 대한기업 대표 김도협의 이름만 빌려 줬을뿐, 난 단 한번도 협상장에 들어 간 적이 없다. 그런데 모든 책임은 대한기업에 있다고 한다. 협상 또한
대한기업이 했다고 한다. 참으로 말이 안되는 소리다. 협상 내용의 합의 사항중 부친의 현대중공업 복직과 미망인의 현대중공업 입사내용이 있다. 이것이 협력업체가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무슨 권한이 있어 협력업체 대표가 현대중공업에 복직과 입사를 선택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또 굴복한다. 그들의 말을 믿고 따른다. 그런데 갑자기 기소장이 날아왔다. 재판을 받았다. 기나긴 재판이 끝나고 나는 실형을 받았다. 8개월 징역에 2년의 집행유예 그러나 그들은 벌금형으로 끝났다. 또 굴복했다. 회사를 살려야 했다.
망신창이가 된 몸으로 회사를 살려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기성금은 매달 줄어 들었다.
同心協力(동심협력)하여, 잘해보자 業體(업체)등록.
만만하니, 작업중지.
시간지나, 산업재해!
危機一髮(위기일발), 四面楚歌(사면초가) 상황에
어느 순간 합의배재.
有耶無耶(유야무야) 진행되는 산재협상 속도에
莫逆之友(막역지우) 내 곁을 떠나고, 極樂往生(극락왕생) 빌며 울었다.
束手無策(속수무책)으로 터지는 사건사고에
右往左往(우와좌왕)하던 그때,
新規業體(신규업체) 돈 없다며, 甘言利說(감언이설)로
物心兩面(물심양면) 통장입금!
天佑神助(천우신조)라 믿었건만, 轉禍爲福(전화위복)은 전혀없고,
言語道斷(언어도단) 할뿐...
一唾雙皮(일타쌍피)/ 一擧兩得(일거양득)이라 氣勢騰騰(기세등등)
山海珍味(산해진비)와 가라오케로 酒池肉林(주지육림)할 때,
檢察出席(검찰출석)/ 刑事裁判(형사재판)으로,
얻은 것은, 執行猶豫(집행유예), 공황장애, 공황발작!
國民(국민)청원 이후 自暴自棄(자포자기) 자살시도
위치추적으로 실패하니,
結者解之(결자해지) 마음품고, 以卵擊石(이란격석) 준비하여,
푸른기와 방문하고 나니,
坐不安席(좌불안석) 한 듯, 輕擧妄動(경거망동) 자제 요청!
죽은 듯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로 보는지 하는짓이 漸入佳境(점입가경)이다.
기다리다, 風飛雹殺(풍비박살)되기 일보직전.
是非之心(시비지심)으로 不問曲直(불문곡직)하고,
深思熟考(심사숙고)하여,
前代未聞(전대미문)의 기업이 되기를..
난 歡呼雀躍(환호작약) 하고 싶다.
저는 현대중공업 갑질횡포에 견디다 못해 7월5일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고, 청원참가인원이 부족하여 극단적인 생각을 하여, 7월16일 자살시도를 하였습니다. 그후 7월20일 청와대 비서실 제도개선과 서봉만 행정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8월6일 청와대에서 면담을 했고, 현대중공업의 갑질횡포에 관한 자료들을 제출하였습니다. 이후 김종훈 국회의원,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노조와 함께 위장도급철폐대책위원회와 정의당과 함께 현대중공업갑질대책위원을 만들었고, 9월6일 국회회관에서 현대중공업 갑질피해 기자회견을 하였습니다. 이후 대한기업을 중심으로 현대중공업 갑질피해 사내협력업 대책위를 만들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10월1일 국정감사준비를 위해 추혜선 국회의원, 제윤경 국회의원, 송옥주 국회의원, 이용득 국회의원실을 방문하였고, 그날 공정거래위원에서 전격적으로 현대중공업을 직권조사를 시행하였습니다. 10월2일 국회회관에서 공정거래위원회 고발을 위한 기자회견을 가졌고, 세종시 공정거래위원회를 방문하여 자료를 제출하였습니다. 10월4일 국회 정론관에서 현대중공업 갑질 대토론회를 가졌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저는 목숨을 걸고 현대중공업과 싸우고 있습니다.
너무도 억울 합니다.
저는 울산 현대중공업 사내 협력업체 대한기업 대표 김도협입니다.
3년동안 경영을 하면서 20억이 넘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현대중공업의 갑질횡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현대중공업은 저가수주, 조선경기불황을 이유로 저희가 받아야할 기성금을 삭감했고, 박근혜정부의 4대보험 유예정책을 교모하게 이용하여 기성금을 후려쳤습니다.
이렇게 늘어난 빚이 이제는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습니다.
제 집뿐만 아니라 동생 집까지 압류가 되어있는 상황에서 제가 할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현대중공업 협력업체는 도급계약 업체로 위장했지만 실상은 위장도급 업체들입니다.
모든 공정, 인원관리, 경영관리등 현대중공업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 인력회사입니다.
그들이 하라는 되로 하고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는 나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7월5일 국민청원을 올렸고, 이후 청와대 비서실 제도개선과 서봉만 행정관님을 만났습니다. 현대중공업은 갑질의 온상이고, 비리의 온상입니다. 이런 회사가 공공발주까지 했어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서봉만 행정관님이 연락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세상에 없었을 겁니다. 7월16일 자살을 시도 했고, 7월20일 행정관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어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 살람들의 도움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직권조사를 이끌어 냈지만, 현대중공업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직권조사전 블랙매직이란 파일삭제 프로그램을 돌려 파일 및 자료를 삭제 했습니다.
이런 기업이 공공발주를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정부의 일자를 정책또한 비웃는 이런 기업을 엄벌하여 주시고 제 억울함을 들어주세요..
저는 현대중공업 정문앞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자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현대중공업의 갑질은 부당내부거래를 통해 정기선이 대표로 있는 현대글로벌서비스에 바치기위한 이유입니다.
이 자료는 대한기업의 피해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현대중공업의 모든 사내협력업체들의 피해 사례 임을 알려드립니다.
첫 번째 부당한 하도급 대금 결정
두 번째 과도한 경경간섭
세 번째 부당특약 금지
네 번째 정부 정책에 따른 피해 사례입니다.
첫 번째 부당한 하도급 대금 결정입니다.
현대중공업은 하도급계약서상 외주시공의뢰서 견적서 개별계약서작성후 공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현실은 주간공정스케줄에 따라 공사를 먼저진행하며, 계약은 월말에 일괄 진행방식으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공사금액이 얼마인지 모르고 진행한다는 의미가 여기에 있으며, 또한 외주시공의뢰서에는 물량 즉 공사 길이 취부장만 존재합니다.
이 물량을 임률 즉 공수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품셈이 있어야 가능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품셈이 없으므로 견적서를 작성할수 없어, 각 부서에서 월말 일괄 계약시 금액또는 임률을 알려주고, 그것을 업체는 전산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대리격적으로 볼수 있습니다.
대리견적서는 업체 스스로가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부서에서 예산을 쪼개 활용할있고 현대중공업이 주고 싶은 데로 줄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런이유로 업체들을 관리감독하고 있습니다.
임률의 계산방식을 자세히 확인해 보면, 임률(M/H)이란 작업량에 작업 종류별 숙련공이 1시간당 작업량인 “원단위”를 곱하고, 그후 각종요소(Factor) 지수를 곱하는 방식으로 산출합니다.
임률(M/H)=작업량(물량M)*원단위*작업환경지수*선종별지수*생산성향상률로 산정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공개된 것은 작업량 즉 물량 밖에 없으며, 임률은 부서에 불러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 각업체는 견적서를 스스로 작성할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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