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새벽녘, 스산하던 초겨울 설악산에 기습처럼 눈이 내렸습니다. 설악산 대청봉에 최고 6cm, 대관령과 한계령의 산간 고지대에는 2~3cm의 눈이 쌓였습니다. 올 겨울 들어 내린 눈으로는 두 번째이지만 수북히 쌓인 것으로 치자면 사실상 첫눈이나 다름없습니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으니 머지않아 얼음이 얼기 시작할 것입니다.
얼음이 얼 때는 차가운 물이 빨리 얼까요? 뜨거운 물이 빨리 얼까요? 당연히 차가운 물이 먼저 얼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실제로는 뜨거운 물이 빨리 얼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추운 겨울에 자동차 세차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세차를 하러 나갈 때 뜨거운 물보다는 미지근한 물을 준비합니다. 뜨거운 물을 한바가지 쭉 뿌리고 걸레로 닦아내려 하면 자동차표면이 금새 얇은 얼음으로 얼어붙어 닦아낼 수가 없습니다. 뜨거운 물을 더 부어서 녹이려고 해도 금방 얇은 얼음이 생겨버립니다. 이럴 때는 뜨거운 물보다는 미지근한 물을 사용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뜨거운 물에 비해서 미지근한 물이 더 늦게 얼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생각하면 뜨거운 물이 식어서 미지근해질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시간만큼 미지근한 물이 빨리 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물에서는 증발이 매우 활발히 일어나기 때문에 미지근한 물보다 빨리 식어서 먼저 얼게 됩니다. 물이 식을 때는 주위로 직접 열이 전달되는 전도현상과 증발현상이 함께 일어나는데 전도에 비해 증발이 더 활발하게 일어날 때 더 많은 열을 소비하게 됩니다. 대체로 물의 온도가 80℃ 이상일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뜨거운 국을 먹을 때 ‘후후’ 부는 것도 증발이 활발히 일어나도록 도와 보다 빨리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입니다. 뜨거운 물일수록 증발현상은 더 많이 일어나는데 온도가 100℃에서 0℃로 떨어지는 동안 질량은 16%가 증발됩니다.
0℃의 물 1g을 100℃까지 데우는데 100cal가 필요합니다. 반면 100℃의 물 1g이 수증기가 되기 위해선 540cal가 필요합니다. 5.4배나 많은 열이 쓰이게 되는 거죠. 또한 물 1g을 얼리기 위해선 80cal가 필요합니다. 즉 100℃의 물 1g이 증발하면 주변에 있던 3g의 물을 얼게 할 수 있습니다. 계산해보면 g당 100cal씩 300cal는 물의 온도를 100℃에서 0℃까지 내리게 하고, 나머지 240cal는 g당 80cal씩 물을 얼음으로 변하게 하는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즉 뜨거운 물은 그보다 낮은 온도의 물보다 증발량이 많게 되고 이때 주위의 열을 많이 빼앗게 되므로 그만큼 빨리 어는점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열에너지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는 공간에 놔두면 찬물보다 더 빨리 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