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의 관심과 위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일은 어언 10년전 2008년 11월, 저는 2008년 7월 8일에 친구와 같이 306보충대에 입소하고 친구는 6사단으로 빠지고 저는 군단에서 나와 1군단 특공, 701특공으로 갔습니다.
그 후 친구는 조교를 하려다 수색으로 빠졌다는 얘길 들었죠. 6사단 2연대 수색중대.
자대 편입 받고 제 100일 휴가 나오기 전에 GP에 들어간다며 미리 백일휴가를 나와서 부대에서 전화를 하게 됐습니다.
특공은 기만작전으로 약 6개월에 한 번 한 개 지역대만 돌려가며 투입되기 때문에 당시 지피에 간다는 친구에게 부럽다고 했었어요. 위험하지만 군인 중에서도 일부만 가는 곳이니 한 번 가고 싶기도 했었고.. 여튼. 그런 마지막 통화를 마치고 그 친구는 지피에 들어갔겠죠.
그러고 1-2주 흘렀나.
여느때와 같이 막내라.. 암구호를 따러 연대지통실에 갔는데 그날따라 사건사고를 기록한 a4용지가 눈에 엄청 띄더라고요.
군필자면 아실겁니다. 지금은 언론에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그당시는 언론에 그닥 많이 안 나왔습니다. 정말 하루걸러 한 명은 꼭 죽었던 거 같습니다. 자살 아니면 총기사고 아니면 두돈반 주차 안내하다가 깔려죽음, 탱크에 깔려죽음 등등.... 많았습니다.
다른때도 힐끗힐끗 보긴 했지만 그날은 뭔가 "GP" 가 눈에 띄어서 그랬을까요 .... 유심히 봤습니다.
다른 건 안 보이고. "이 모 이병 중상"만 보이더라고요 ㅎ 친구가 2연대 수색중대인 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6사단 181gp 수류탄사고"를 보니 신기하게도 직감적으로 친구가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록에 2연대 수색중대라고 나오길래..
그대로 행정반가서 통신대? 통해서 6사단 2연대 수색중대 연결을 탔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통신대 타고타고 가면 연결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돼서 연결이 됐습니다. 소속밝히고 사고소식 보니 제 친구인 것 같아서 전화했다고 밝히고 제 친구 중에 이승현이라고 있는데 혹시 이 모 이병이 제 친구인 지... 확인 차 전화걸었다고 했습니다. 혹시 이승현 이병과 통화 가능하겠냐고 물어보니 한 5초간 답이 없었습니다.
"........... 미안한데, 승현이 지금 헬기 이송중이다. 미안하다."
청천벽력과 같았습니다. 그 이 모 이병이 제 친구더군요... 중대장에게 사정사정해서 그렇게 다음날 백일휴가 땡겨 나가서 친구를 보러갔습니다.
중상 1명, 경상 4명. 경상인 분들도 뇌와 폐에 수류탄파편이 박혀서 빼지도 못하고 평생 장애로 살아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승현이는.. 외상은 멀쩡하나.. 두부와 척추에 관통상을 입고 하체 완전 마비와 의식불명으로 제 앞에 누워있었습니다.
어머님과 참 많이 울었습니다. 군복도 그대로 입고 가서..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 갔더니 중환자실이라 면회가 오후 7시 인가에 된다고 합니다. 아침에 휴가나가서 병원 대기실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드디어 저녁 7시에 승현이를 봤죠. 참담했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죠.
11년도에도 수류탄 사고나서 6사단 부사관 한 명 사망사건 있는 걸로 압니다.
또 지금... 도비탄 아닌 직격탄으로 두부 맞아 사망..
안타깝습니다. 나라를 지키다 사망한 장병들께 조의를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제 친구.. 2008년 11월에 사고난 제 친구도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당시 자세한 내막은 모르나.. 군에서 월 최대 100만원만 지급된다고 하더군요. 하하.. 첨에는 제 친구 탄통에 있던 수류탄이 없어져서 자살로 기사가 났었습니다. 참 기가 막히더라고요. 2차,.. 3차.. 기사가 나면서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당시 7월동기인 황모이병이 비교갈굼을 당해 제 친구에게 앙심을 품고 밤 10시에 탄통에서 수류탄 빼와 새벽 2시에 자다가 던져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소름 돋는 건 사고 다음날 어머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어제 저녁 10시쯤 선임과도 잘 지내고 이제 걸레질도 마스터했다고 전화를 했었다. 잘지낸다고 걱정말라고 했는데.."라고 하신 게 생각이 났습니다. 황모이병 개새끼는 친구가 어머님께 안부전화를 드리러 갔을 때 탄통에서 수류탄을 빼간 겁니다..
그때 재판에서 황모이병은 징역 10년을 받은 걸로 알고,, 육군교도소 어딘가에서 이제 1-2년도 남지않은 출소를 기다리겠네요.
당시 소대장 부소대장 등 징계 받아 보직해임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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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 승현이는. 올해 4월.. 4월 20일 생일이 며칠 지난 뒤.. 천사가 되었습니다.
약 9년간 식물인간으로 생활하다가. 올해 봄. 눈을 감았네요.
참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나라를 지키다가 9년간 식물인간 생활하고 끝끝내 눈을 감았는데..
장례식장 화환은 어느 이름모르는 국회의원의 화환이 전부더군요.. 휑한 장례식장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이 나라는 참... 씁쓸하네요.. 여러 기자한테 기사좀 내달라고 이메일을 보내도.. 묵묵부답입니다.
그때 포기했던 마음.. 그래도 보배라도 통해서 여러 사람분들이 우리 승현이의 명복이라도 빌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남깁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112400800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14&aid=000205796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2419163
기사 링크 남깁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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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4일, 우리 전역날 같이 군복에 전역모 쓰고 삼겹살에 소주 먹자고 한 약속. 꼭 같이 하고 싶었는데. 아직도 가슴에 한이 남는다. 전역날 너무 헛헛해서 미칠 것 같았다. 전역 후 병원에 갔을 때 나를 알아보는 건지 .. 맥박이 130 가까이 뛰고 이를 벅벅갈던 네가 생각난다. 아는 척하고 싶었던 것도 안다. 앞에서 울면 네가 슬퍼할까봐 웃으며 얼른 일어나서 삼겹살에 소주 먹으러 가자고 했지만 속에서는 열번이고 백번이고 더 울었다. 너는 얼마나 답답했겠니. 이제.. 그간 답답했던 것 풀고 하늘에서 곁에서 잘 보고 있어줘. 오랜 나중에, 그때 서로 만나면 꼭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 친구야.
부디 좋은곳으로 가셨으면 합니다.
제 후임도 하루 아침에 비명횡사했습니다. 전입온지 이제 2주쯤 되었겠네요.
그 친구도 이병이었는데.. 그때 당시 느낀 감정은 황당하고 무서웠습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gop심정 작업하기로 잡혀있던 상황에 갓 전입온 제 후임과 함께 작업 나가기로 했었죠. 그런데 이 친구가 열이나고 기침을 하길래 그럼 의무대가서 약받고 쉬어라고 하고 저 혼자 심정 작업 하러 갔었습니다.
겨우겨우 작업하고 남은 짬밥 먹을 생각에 중대 도착하니 어느덧 밤 11시가 넘었었죠. 중대 전체 막사 불이 들어와 있고 연병장에는 신형짚이 여러대 있었습니다. 머지 머지 하며 행정실에 복귀 신청하러갔는데.. 난리가 났더군요..
소대 내무반은 다들 각 잡고 앉아있고 먼가 일이 있구나 싶어 현황판을 보니 제 후임 이름이 사단 의무대 수송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직하사한테 범일이 어디갔습니까? 라고 하니 일직하사 왈 죽었다. 순간 장난하나 싶었습니다. 정말 그때 장난인가 싶어 일직하사 눈을 다시보니 아 하고 탄식이 나오더군요.그때 그 눈빛 아직도 기억나네요.
그때부터 시작된 헌병대 조사, 진술서등등 자기는 아무 잘못 없다는 소대장의 책임회피 그리고 우리소대원 협박과 폭언 폭력 결국 병사로 밝혀지고 사건은 종결이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참 어렸네요. 그 친구
부모님은 절 안아 주시면서 괜찮다 범일이 좋은데 갔을꺼야 하며 대신 절 위로 해주셨는데 저는 속으로 나는 괜찮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그 친구가 있는 대전 국립묘지를 갔는데 미친듯이 울었습니다. 그 당시 나오지 않던 눈물이 정말 미친듯이 나오더군요. 왜그리 미안하고 죄스럽던지요.
가끔 생각나네요. 그 친구가.. 범일아 자대배치 받은지 얼마안되서 그 흔한 내무반 사진하나 없더라. 이맘때 쯤이네 화천 공기가 차가울 무렵.
대전 한번가마. 너 그렇게 병에 걸려 아픈줄도 모르고 미안하다. 선임이 되어서.. 정말로 미안해.
27사단 조교..그동기 저보다 6살이나 나이 많은 형이였고 훈련소 같은 내무반생활을 하면서 형동생하머 나중에 외박이나 휴가때 만나자하고 이야기하고 즐겁게 훈련소 생활했는데...
조교가 하고싶다고 열심히해서 사단장 우수상까지 같이받고 조교생활중 훈련병이 류탄을 잘못던저 온몸으로 훈련병 감싸고 본인은 파편이 온몸에 밖혀 비명횡사하고 감싸준 훈련병은 오른다리 발목이 날라가...휴... 같은 연대...대대만다른 곳...하... 준일이형 귀중한 누군가의 자식이고 국민을 한몸바쳐 지켜낸 일을 했으니 분명 좋은곳 같을거야. 우리 자대배치 받고 휴가맞춰서 하루 사창리로터스모텔잡고 술마시고 다음날 출발했을때 형 전역해서 대학원 준비할거라 했잖아...좋은곳에서 이런 나라지켜보지 말고 형하고싶은거 영원히 히면서 편히 쉬길 바래. 그리고 우리와이프..요즘 몸이 안좋아서 걱정인데 기도좀 해줘. 건강해질수있게..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었네.. 형 보고싶다.
이런글을 보면서 형생각이나서 몇자 끄적여 봤어.
나중에 이승에서의 생이 끝나고 훗날에 보도록하자
제2땅굴인근이 섹터였는데 관심병사하나가 크레모어 작업중이던 소대장이 잠시 들고있으라고 했던 K1소총으로 턱밑에 대고 쏘는 일이 있었죠.
물론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gop 투입전 총기 검사에서
턱맡에 쏜 애가 있었는데
비슷한 일이 또 있었네요
사망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각종언론매체 인터넷이많이발달되어 전파되었지 예전에는 폐쇠적인군부대였죠 밖에서 사고사례말하면 일반인들은 안믿었죠 그런일있음 뉴스에나왔겠지하며 다들안믿었죠
부디 힘내시고 친구분은 좋은곳가셨을겁니다.
글읽는 내내 가슴이먹먹하고 눈물이나네요 ...ㅠ
9급이 군견
10급이 병들..
제가 있던 부대에서 총들고 탈영하고, 탈영하다가 걸리고....도하대대 있던 말년병장 팔 짤리고...등등...
뭐 언론에는 안올라가지만.....뉴스에 나오는건 정말 극 일부죠...
저랑같이 동반입대로 화천에서 같이군생활하면서 그친구가 왜 그런마음을 먹고있는지 충분히 이해되더군요..
그 2년2개월 군생활하면서 우리 대대에만 사망이 2, 중상(최소 발목절단,하반신 마비 등)3, 경상은 수두룩....
에혀... 말하면 입아퍼... 까리하게 군생활한 친구새끼들 이리 말해도 믿지도 않어...
그냥 난 내아들 절대 군대 안보내는걸로 내 의지를 보일거임....
96~98년까지도 사고사례 정말 많았는데..다 말할수가 없네요..
기사도 안나오더만요... 근데 그 군의관은 보직해임이나 처벌같은것도 안받고 저 제대할때까지도 근무 잘 서더만요...
지금도 아마 잘 살고있을듯합니다.
제 자식낳아서 군대갈때쯤되면 안갈수있다면 최대한 안보내는게 답인것같습니다
인트라넷으로 인사장교아이디비번으로
들어가면.18맨날.사고사례 존나뜸
삼가의 고인의 명복을빕니다.
제가 기억나는 2가지 사건
1. 대위인가 중위인가 총기 자살(이유는 카드빚)
2. 포천농협 털이범(준위였나? 암튼 카드빛;;;) 4부합동조사 떴다고 들음.
그리고 흔한 탈영범이나 휴가 미귀가자 있었음.
ㅡ.ㅡ 시대가 어느시대인가
은폐 사건축소질은 작작해라 망할놈들
사고사례? 신문에 나오는건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
안나온 날이 없더라 최소 탈영 이건 뭐 어느부대나 1명씩...
계급별로 다 있고... 심지어 원사 군무원도 있더라
도박 횡령 폭행 음주운전 자살 살인
경철서 사고 목록인지 헌병 인트라넷인지 모르겠더라
전 08년이면 전 한창 상병이였을 무렵
저도 강원도 전방에 있다보니 사고소식 많이 보는데
그날도 보다가 수류탄 사고소식도 기억합니다
너무 슬프네요 비오는데 ㅠㅠ
좋은곳으로 갔을껍니다
의가사전역 1달앞두고
제 군생활 할때도 사망사고 엄청
많았는데 뉴스에 일절 안나옴
지금이랑 시대가 많이 바뀐걸 느낌
나때도 옆중대에서 한명 죽었는데
자살이라고만 들음.
그다음날 가족들찾아와서 울고불고하며
진실밝혀내라 엄청 따졌었는데...
트럭이나 탱크에 치이는건 일도아님
훈련나가서 트럭에서 뛰어 내리다가 죽는사람도 있었음 ㄷㄷ
보배회원님들 추천 눌러주세요.
故이승현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때도 차량 전복되어서 4명사망
동성애 강간
총기 자살미수 등등이 있었죠
안타깝네요 이런거보면 앞으로 후손들이 군대에 갈려고할때
어찌보내야한단말인가여... ㅡㅡ; 너무나 가슴아프네요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제 옆옆 초소에서 소총으로 자살한 사건이 있었드랬죠
25사
그때가 96년 여름이 막 지나갈때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8사단 복무했고, 제대 2주정도 남기고 당직근무 스던날
총기난사 사고가 났었죠, 여러명이 안타까운 일을 당했어요.
행보관이 뒷처리 해야한다고 저희부대원 저포함 4명정도 가까운 병원까지 따라가서
대기하다 국군수도 통합병원까지 가고,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무섭다는 마음이 컸었는데, 유가족 한분이 저희한테 너네가 무슨 고생이냐며
오히려 저희를 생각해 주시던게 생각이 나네요.
일부에선 조작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런건 아니고 사고후 후속 조치가 너무 오래 걸렸던것 같아요.
사건 현장에 있었던건 아니지만 처음 상황 전파부터 후까지 다른사람보다 많은걸 알기에
이런 글을 볼때면 그때 생각이 나네요...
이 쓰레기장속에서 노예노릇하다가 나왔는데도 이 쓰레기장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는건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군대는 세계 어느나라 군대와도 다른 특이한 차이점이 있다
군대를 만든 뿌리가 자국국민들을 학살하고 탄압하던 적국의 군대 출신이라는것이다
육군의 경우 참모총장 1대부터 21대까지 전부 일제 쪽바리군대 출신들이다
일제 쪽바리군대에서 조선인들 끌고가서 가둬놓고 폭력으로 찍소리 못하고 벌벌 떨다가
먹을거나 주면 좋아하고, 총알받이로 튀어나가라면 튀어나가는 가축수준의 의식상태의 노예로
길들여지던 방식 그대로 지금도 병사들을 길들여지고 있는것이다..그걸 군기라고 세뇌되면서
그렇게 길들여진 징병자들 역할은 사회에서 오갈데 없는 직업군바리 자리유지를 위해
산술적 근거가 되는 머리수 채워주기와 24시간 갇혀서 폭력과 억압속에 인격모독이나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찍소리 못하고 순종하는 직업군바리들이 부려먹는 노예역할이었다
문제는...이런 군대를 경험하고 나온 병사출신들이 전역후에도 여전히 군대에서
길들여진 식민지 노예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채..군쓰레기들을 비판하는게 아니라 서로 더 가혹한
노예생활을 했다고 자랑인듯 떠벌리고나 있다
마치 예전 노예들이 노예생활에 익숙해지면 서로 자기발에 달린 쇠사슬이 더 무겁다고 자랑하는것처럼
이렇듯 병사출신들이 아직 군대를 경험하지못한 사람들에겐 병사들의 군노예생활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기도록 하고, 일반인들에겐 우리나라 군대는 전부 병사들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생활하는것처럼 쇼윈도 역할을 하면서 국방비 타오는 앵벌이 노릇이나 해주고 있는것이다.
이러니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도 병사들은 노예역할, 직업군바리는 주인노릇(그중 대가리는 왕노릇)
하고있고, 사회도 이런 쓰레기장을 아직도 군대라고 부르면서 계속 방치하고 있는것이다
전공이 자동차라 저랑 친구들은 거의 차량 정비병으로 복무했는데
매일 듣는 흔하디 흔한 사고사례 전파중....이상하리만큼 느낌이 쐬~~~~한 사례가 있더군요.......
나중에 친구들 다 전역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중 이런일이 있었다....하니....그때가 몇년도고 대략 몇월이면
맞다고....그러면서 위 사진처럼....국립묘지에 묘 사진 보여주더군요.......
군대에서 사람이 진짜 많이 죽는데....외부엔 안 알려지죠.....
제대 2주남은 말년병장이 사단장이 온다고 일요일에 구보 시켰다가 심장마비로 사망.......강원도 전방 겨울에....알통구보로.....
행보관 잣 따다가 감전사.....등등....
금학산 진지공사 갔었는데 안타깝네요
6사단장도 보직 해임 당했습니다. 당시 6사단장인
조병오 소장이 예하 모든 부대에 인트라넷 메일로 글을 남겼더군요. 자기불찰, 미안한 감정을 담은....
지휘관들은 당시 사단장이 학군단 출신이 아닌 육사 출신이었다면 사단장까지 보직해임 당하진 않았을 거라고 한결같은 소릴 하더군요
사고로 너무 갑자기 가버렸네.. 진짜 고마웠는데 세월가는게 무섭다 벌써 5년이 넘었네.. 보고싶다 형
이름이 같아서 큰 승현, 작은 승현으로 불렸었는데...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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