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군번입니다.
전역했을때 즈음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개봉했죠.
나름 밀리터리 마니아라서 극장에서 3번 봤고 컴으로도 두세번 봤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전투 도중 업햄(행정병)이 벽 옆에서 죽어가는 동료를 구해주지 못하고 결국 동료는 대검에 찔려 죽게 됩니다.
동료를 살해한 독일군은 나오다가 포로로 잡혔을때 친근하게 대한 업햄을 보고는 죽이지 않고 그냥 지나칩니다.
이 장면에서 업햄은 엄청난 전장공포를 느껴 온 몸이 마비되는 장면이 연출되죠.
그 장면을 보면서 군시절을 떠올렸습니다.
96년 10월 즈음 오대산에서 매복을 하고 있는데 10 시 즈음부터 신원미상의 두명이 2시 방향 100 여 미터 전방에서 부터 저희에게 걸어오기 시작합니다. (밤에는 소리가 더 가깝게 들려서 좀 더 먼거리 일 수 있었습니다.)
이 두명은 한명이 한발에 1분 정도 속도로 발을 내딛고 30분을 걸어가면 다시 20분 에서 30분을 멈춥니다.
그 다음 다시 뒷놈이 그 앞사람까지 걸어갑니다. 역시 한발에 1분 정도로 신중하게
이런식으로 두세시간을 진행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장전을 합니다.
절대 소리가 나면 안되기에...
그리고 총을 겨눕니다.
그러나 소리가 멈추고 진행이 되지 않습니다.
30분이 넘어가도 1시간이 더이상의 움직임이 없습니다.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깜빡 졸았던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눈을 떴는데 아 띠바 소리로 봐서는 40미터 정도 인듯 했습니다.
잘 버티던 제 심장이 그때부터 요동을 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1초에 5번 정도 뛴듯합니다. 둥둥둥둥둥
숨을 크게 쉴 수 없습니다.
숨소리가 조금 크면 들킬거 같습니다.
가까스로 숨을 작게 쉬는데 너무 괴롭습니다. 하아아악..............하아아악..........
우리는 세명 상대는 두명 이제 붙어야 할 시간이 되어가는것 같습니다.
야간 투시경이 간절합니다. ㅜㅜ
조느라 놓았던 소총을 들어야 합니다.
근데.....
총이 안들립니다.
3.26 kg 거기에 24 발 탄창하나
기껏해야 4키로 남짓 하는 총을 들 수 없습니다.
숨을 참으며 다시한번 총을 드는데 아~~~ 제 자신이 원망 스럽습니다.
역시 들지 못합니다.
이번 작전에서 그 전까지 힘들고 어려운 일은 제가 많이 했습니다.
일병이었거든요.
엄청 떨렸지만 동굴도 앞장서서 들어가고 엄청난 산속에 민가 수색도 앞장서서 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겁쟁이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시점에 4키로 짜리 총 하나를 못듭니다.
가까스로 총을 들었습니다.
이 정도 거리라면 곧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총을 연발 모드로 놓고 소리나는 방향으로 겨냥을 했습니다.
떨리는 가슴을 최대한 진정하며 어둠속의 물체를 인식하기 위해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이놈들이 또 안움직입니다.
30분 넘게 움직이지 않던 놈들이 다시 움직이는데 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작아졌습니다.
그렇게 계속 놈들의 발자국 소리는 조금씩 조금씩 작아져 갑니다.
매복호에서 나와서 따라가고 싶지만 아군총에 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날따라 달도 전혀 없습니다.
총을 겨누고 소리에 신경을 쓰다보니 동이 트기 시작합니다.
소리는 이제 사라져 버렸습니다.
10 시부터 5시 정도까지 놈들의 소리와 씨름했습니다.
하룻밤 동안 3년은 늙은거 같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매복을 40 미터 정도 앞에서 했더라면...
안 보이더라도 아까 그냥 갈겼더라면...
나는 왜 이리 용감하지 못했을까?
저희 쪽을 스쳐간 놈들은 몇일 후 결국 더 북쪽 섹터에서 사살되었고 그 놈들이 적어놓은 일지에 오대산을 거쳐간 기록이 있었습니다.
제 인생을 살아 오면서 가장 긴장했던 하룻밤이었죠.
전역하고 영화속 업햄의 행동을 보니까 그 공포가 이해가 되어서 안쓰러웠습니다.
그런데 우리군은 전장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어떤 훈련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몇년전 UDT/SEAL 대원들이 해적들을 죽이고 아덴만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죠.
배에 있는 그 많은 문 하나 하나를 열때마다 얼마나 긴장을 했을까요?
통문을 따고 북한으로 넘어가는 HID 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나라를 위해 실전을 겪고 엄청난 전장공포를 이겨낸 많은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저는 그때 철원에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내용 공감합니다.
엄햄의 경우도 있는것 같고, 한국전쟁 참전하신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반대도 있는것 같구요...
그분들 말씀들어보면 별로 친하진 않더래도 한솥밥 먹는 전우들이 쓰러지면 눈돌아 간다고 하시던데.
진짜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명랑에서 이순신 장군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수 있다면..."라는 대사가 생각 나네요.
저도 그때 당시 철책에서 있었던 일이 있긴한데 써도 될런지 모르겠네요. 대외비 같아서...ㅎㅎ
그 당시의 노고는 저도 현역이었기에 잘 알고 또한 감사드립니다.
두번다시 그런일은 없겠지만...만일 다음에 다른 형태의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반드시 극복하시고 쟁취하시길 빕니다..
그러나.
임무가 먼저임을 머리속에 각인시키는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어떤 상황이 떨어지든 무조건반사가
작용되는거죠.
특히나 수색병과나 특공병과는 이런 훈련을 항상 불시에 반복적으로 해야 하구요.
저희때는 워낙 휴가가 귀해서 상황걸리면 하나 잡고 포상금 받고 휴가가자 가 팽배했었습니다.
사람마다 적응기간이 다르기는 하지만.
군인은 그러면 안되죠.
그건 곧 작전실패를 뜻하게 되는거고. 작전실패는 대량인명살상으로 이어지니까요.
사실은 나 하나 안죽겠다는 이기심 입니다.
나만 살면 돼.
심한 얘기로 군인은 국민을 위해 죽으라고 있는겁니다.
85년 군번 이지만..
지저분한 훈련 받아봤고.. 특히 충정훈련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받았습니다.
부소대장 이나 중대장은 공방훈련 하면서 충정봉사용시 병사들이 피멍이 안들면
피멍이 들때 까지 훈련시키기도 했구요.
정말 무식한 시절 이었지만.
오히려 사고는 별로 없었습니다.
사람은 독기가 오르면 못하는 게 없습니다.
비무장한 민간인을 상대할 목적의 훈련하고 총 든 사람하고 마주치는거 하고 같다고 생각하쇼??
설마 짱돌하고 쇠파이프를 총하고 같은 수준의 무장이라고 하지는 않을거고.
혹시 칼 든 사람 면전에서 본 적 있수?
그 칼이 나를 향한게 아니어도 다리가 굳는데 총들고 오는 놈 보고 겁에 질려 대응하지 못한게 이기심이다??
위험 회피는 유전자에 박힌거요.
그걸 이겨내는게 대단한거요. 하지 못하는게 이기적인게 아니라.
간첩얘기 하는데 충정훈련 얘기하는거 보니 비슷한 상황은 직접 겪어보지도 않은 것 같고만.
이러쿵저러쿵 말은 누가 못해.
저도 먹을 만큼 먹었지만 어디서 그런말하면 주변젊은이들이 전부 조용해지지 않던가요?
'군이 너무 심하게 위축된것이 잘못이다' 정도면 될것같습니다.
훈련도 열심히 했다잖아요....
님의 말은 꼭 군인을 개돼지로 보는 시선같아 불편하군요
공포를 이겨내는건 반복된 훈련이
랍니다
인정하냐. 공익이나가지..
군대를 갔다와도 인간이 안되는구나..
저는 그때 철원에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내용 공감합니다.
엄햄의 경우도 있는것 같고, 한국전쟁 참전하신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반대도 있는것 같구요...
그분들 말씀들어보면 별로 친하진 않더래도 한솥밥 먹는 전우들이 쓰러지면 눈돌아 간다고 하시던데.
진짜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명랑에서 이순신 장군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수 있다면..."라는 대사가 생각 나네요.
저도 그때 당시 철책에서 있었던 일이 있긴한데 써도 될런지 모르겠네요. 대외비 같아서...ㅎㅎ
그 당시의 노고는 저도 현역이었기에 잘 알고 또한 감사드립니다.
두번다시 그런일은 없겠지만...만일 다음에 다른 형태의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반드시 극복하시고 쟁취하시길 빕니다..
당연히 작전에 참가 했구요.
별별 사건이 많았지만 가장 두려웠던건 혹시나 마주칠까 하는거였죠.
참고로 저희는 실탄도 쏴봤습니다. (교전은 아님)
야간 매복 시
고진동 적 gp쪽에서 군사분계선 쪽으로 후레시 불빛과 사람목소리가 들리며 아측으로 넘어오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계곡으로 내려가는 능선에서 매복 중이었는데 바로 앞 계곡 아래쪽에서 부터 저희쪽으로 올라오는 소리(돌소리, 쇳소리 등)를 듣곤 그당시 통신병이어서 소대장과 같이 있던 저는 바로 저의 맞은편 아래쪽 계곡까지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는 수류탄 까자고 말했다가 담날 고참한테 개까이고..
새벽3시경에 저희 소리를 들은 애들이 갑자기 아래로 내려가더니 저의 뒤쪽계곡쪽으로 올라오는 소리에 저도 조정간 연사로 해놓고 아주 초 긴장상태를 유지 했더랬죠..
글쓴님의 그 때 그 느낌 저도 비슷하게나마 겪어 봤었네요.
그러나.
임무가 먼저임을 머리속에 각인시키는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어떤 상황이 떨어지든 무조건반사가
작용되는거죠.
특히나 수색병과나 특공병과는 이런 훈련을 항상 불시에 반복적으로 해야 하구요.
저희때는 워낙 휴가가 귀해서 상황걸리면 하나 잡고 포상금 받고 휴가가자 가 팽배했었습니다.
사람마다 적응기간이 다르기는 하지만.
군인은 그러면 안되죠.
그건 곧 작전실패를 뜻하게 되는거고. 작전실패는 대량인명살상으로 이어지니까요.
죽음앞에 공포를 느끼지않는 생명체는 없습니다.
그 팽배했다는 건 "설마 나한테 그런일이 다가오겠어?"라는
확신에서 오는 허세일껄요...
그래도 엄연히 훈련과 실전은 엄청난 차이가 있죠.
글쓴분은 무장공비 작전에 투입되셨는데 실패다 이기심이다로 치부하는건 섣부른 판단인 것 같습니다.
물론 선배님같은 분들의 노고와 훈련 덕분에 안전하게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부분에는 감사를 드립니다.
하물며 사람이야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두운 길에서 사람만 마주쳐도 무서운데
전장에서 적과 마주한다는것 자체가 공포 그 자체겠죠
전 사건직후 부대에 들어가서, 야전선 걷으로 다녔네요....
제위로 고참들은 다 실전경험 자들이네요....ㅠ.ㅠ
그떄 얘기들으면, 장난아닙니다...
적군이 사격가능한 상태로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무조건 총을 쏠수는 없으니까요
무리하게 교전을 시도했다면 아군사상자가 발생했을 겁니다. 적군을 사살하지 못한 책임감은 높이 삽니다. 하지만 님의 지휘관도 질지도 모르는 전장에 부하를 끌어들이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무경험자들은 모를테지만 수풀우거진 산속 무월광상태에서는 10미터는 커녕 5미터앞도 분간 안될때도 있습니다.
섣불리 행동안하고 적군이동여부를 보고한 것만으로도 할일을 하신겁니다.
22년전 어제가 입대일이었네요. 이제 아련한 추억이네요. 건강하고 돈 많이 버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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