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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 군사/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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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벨 대령 3 수투카 19.03.18 21:43 답글 신고
    일본은 저 당시 해전을 저리 많이 할지도 몰랐고 설사 해전이 있다고 한들 저리 당하리라고 생각도 못해서 배에

    화포를 배치하지 않았음..

    저 당시 일본 함선의 주목적은 해전이 아니라 더 많은 병력들을 실어 조선내륙에 상륙시키는 거임..

    그래서 그 많은 병력들을 수송하기 위해 배들도 급조했을 뿐 아니라 함선이 아닌 수송선의 개념으로 만들어서

    해전에 취약했음..일본전국시대만 봐도 해전은 거의 없었고 거의 다 육상전이라 해전에 대한 대비 및 중요성에

    대해 일본은 너무나 무지했고 잘 알고있는 장수도 거의 없엇음.. 오죽하면 히데요시가 해적인 구루시마를

    보냈을까... 그나마 도도 다카도라가 좀 나았다고 하나 이순신앞에선 그저 귀여운 고양이일뿐

    암튼 일본의 주목적은 조선이 아니라 명이였기에 조선은 그저 지나가는 길이고 조선수군은 그리

    심각하게 상대할 적군으로 생각지도 않은차에 이순신을 만나거임.. 거기다 판옥선에 배치되어 있는 화포까지..

    조선의 화포에 이순신이란 명장이 만나니 왜선들은 그저 침몰할수밖에 없는게 일본 배는 고작 조총사격후에

    근접해서 배에 올라타 육탄전으로 승부를 보는건데 조총사거리 밖에서 화포만 쏘고 가까이 오지 않으니

    일본입장에선 지옥이었을거임..

    하지만 이런이점도 이순신같은 장수가 잘 지휘를 해야 빛을 발하는 거고 같은 조건이라도 원균같은 졸장을 만나면

    다 무용지물이긴 마찬가지..
    답글 0
  • 레벨 원사 3 탬파 19.03.18 20:23 답글 신고
    추천요..
  • 레벨 대령 3 수투카 19.03.18 21:43 답글 신고
    일본은 저 당시 해전을 저리 많이 할지도 몰랐고 설사 해전이 있다고 한들 저리 당하리라고 생각도 못해서 배에

    화포를 배치하지 않았음..

    저 당시 일본 함선의 주목적은 해전이 아니라 더 많은 병력들을 실어 조선내륙에 상륙시키는 거임..

    그래서 그 많은 병력들을 수송하기 위해 배들도 급조했을 뿐 아니라 함선이 아닌 수송선의 개념으로 만들어서

    해전에 취약했음..일본전국시대만 봐도 해전은 거의 없었고 거의 다 육상전이라 해전에 대한 대비 및 중요성에

    대해 일본은 너무나 무지했고 잘 알고있는 장수도 거의 없엇음.. 오죽하면 히데요시가 해적인 구루시마를

    보냈을까... 그나마 도도 다카도라가 좀 나았다고 하나 이순신앞에선 그저 귀여운 고양이일뿐

    암튼 일본의 주목적은 조선이 아니라 명이였기에 조선은 그저 지나가는 길이고 조선수군은 그리

    심각하게 상대할 적군으로 생각지도 않은차에 이순신을 만나거임.. 거기다 판옥선에 배치되어 있는 화포까지..

    조선의 화포에 이순신이란 명장이 만나니 왜선들은 그저 침몰할수밖에 없는게 일본 배는 고작 조총사격후에

    근접해서 배에 올라타 육탄전으로 승부를 보는건데 조총사거리 밖에서 화포만 쏘고 가까이 오지 않으니

    일본입장에선 지옥이었을거임..

    하지만 이런이점도 이순신같은 장수가 잘 지휘를 해야 빛을 발하는 거고 같은 조건이라도 원균같은 졸장을 만나면

    다 무용지물이긴 마찬가지..
  • 레벨 훈련병 이슈타르 19.03.18 23:24 답글 신고
    판옥선의 유래는 명나라 병선으로 조선초기에 표류해온것을 모방하기 시작해서 여기에 화포를 달아 오리지널보다 훨 강한 전투력 발휘에 성공...최초 화력형 병선로서 임진왜란에서 대단한 전과를 내며 조선수준 주력함이 된게지요
    왜군은 수전양상이 조선하고 달랏습니다...자기 병선 세네부케를 현측에 댄후 상대 병선에 올라가서 백병전으로 제압하기 인데.. 그래서 판옥선이 왜병들에게 쥐약 같았죠
  • 레벨 대위 1 K한량 19.03.19 06:09 답글 신고
    어~ 전 처음 듣는 이야기 인데요 출처를 여쭤봐도 될까요? 정말 처음 들어서 그래요...
    평저선의 형태는 고려 아니 그 전부터 한선에 찾아 볼 수 있고, 판옥선 전의 군선은 맹선으로 세종조때 새로운 군선에 대한 연구의 결과로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관련 기록을 보면 세종조에 새로운 병선의 필요성을 인식 해외의 선박유형 도입을 고려하였으나, 중국 전통의 당선, 명과 유구에서 사용된 동자갑선, 왜선 등이 고려되었으나 조선의 지형에 맞지 않거나 빨라도 선박이 약하거나, 내구성이 취약한 등의 문제점으로 인해 수리가 쉽고 튼튼하며, 조선 근해의 특성에 적합한 한선의 형태를 기반으로 개발 세종조에는 병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되어 세조때 맹선이라는 명칭과 형태로 확립됩니다.
    판옥선은 이 맹선이 그래도 등선육박전을 즐기는 왜군에 취약하다 판단 명종조에 보완 개발을 시작해 높이를 더 높이고, 누각을 만들어 마치 해상에서도 성위에서 공격하듯, 설령 등선육박전이 이뤄져도 누각에서 원호 할 수 있는 형태의 선박이 된 것입니다.
    맹선이 그렇다고 왜군에 아주 취약한 선박은 아니었으나 피해를 더 줄이고 전투를 더 유리하게 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죠.
    그래서 제가 알기론 중국 당선 형태의 선박과는 아주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것이 조선수군에 판옥선 맹선과 같은 대형선 또는 평저선만 있다 오해하기 쉬우나
    실제로 백골선이나 창선 등 다양한 소형선, 침저선도 함께 운용되었습니다.

    맹선 개발때 이미 맹선의 취약점인 왜구에 비해 느린 속도 등을 파악하고 있었고, 빠른 소형 선박과 함께 작전했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명청기의 해금 정책으로 인해 조선도 해상 대외무역 및 원양 항해를 제한했고 결과적으로 대형 침저선 등은 발전하지 못한 것이죠

    덧붙여 병선 도입 연구의 담당자는 신숙주 였다고 합니다.
  • 레벨 대위 1 K한량 19.03.19 06:37 답글 신고
    한가지 더 판옥선의 독특함을 몇가지 아는데로 끄적여 보겠습니다.

    1. 제작의 독특함
    평저선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한옥집을 짓는것처럼 나무로 짜맞추고 못이 필요한 경우 나무못을 사용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죠. 덕분에 튼튼함에도 마치 조립블럭 같이 분해도 가능해 파손된 부분만 교체 수리가 가능했습니다.
    또한 석회를 이용한 방수 기술을 사용했죠 이러한 기술은 모두 한국의 전통 선박인 한선에서 비롯됩니다.

    2. 구조의 독특함
    맹선때부터 이미 동아시아 어떤 전선보다 높은 높이를 자랑합니다. 왜구의 등선육박전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한 결과였는데요 세종때 병선 도입 연구때 이미 명과 유구국 선박의 도입 제외 요인중 하나로 작용합니다.
    판옥선은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 압도적 전투를 가능케 하기 위해 더 높이를 높입니다. (맹선도 대맹선의 경우 세키부네 보단 훨씬 큽니다. ) 물론 안정성을 위해 맹선보다 크기를 키웠으나 높아진 선박의 높이와 누각의 높이, 평저선이라는 본래의 취약성으로 인해 파도에 더욱 취약해 졌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판옥선의 바닥에는 돌을 깔아 무게 중심을 아래로 낮춥니다.

    또한 노의 경우도 독특함을 보여줍니다. 대부분 복원선박들이 실수하는 부분인데... 조선 병선의 노는 일반적으로 옆으로 뻗는 타국의 노와 달리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겉에서 보면 마치 흔들듯 노를 젓습니다.
    제대로 복원된 판옥선의 구조를 보시면 노가 아래로 뻗을 수 있는 구조임을 확인 하실수 있습니다. 기울기가 타국 선박에 비해 훨씬 극단적이죠.

    3. 당시 기준 무장의 독특함
    판옥선의 경우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다수의 화포가 사용되었습니다. 왜선의 경우 전국시대 1~2차례 있던 해전을 봐도 척당 소량 운용 했음을 확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쟁 자체에서 화포의 사용을 외면했던 당시의 왜군의 문화도 있었으나 판옥선 및 누적된 조선 수군의 해상 포격전 기술과의 차이로 인한것이 더 큽니다.

    우리는 단순히 판옥선이 튽튼헤서 화포를 다수 운용했다고 알고 잇으나 튼튼합만으로 다양한 24문 이상의 화포를 운용하진 못하죠 어차피 목선인데....여기엔 4바퀴의 튼튼한 포가의 활용, 밧줄을 이용한 완충작용의 이용 등이 결합된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무조건 대구경 화포를 사용한 것이 아닌 보급과 운용 효율을 고려한 다양한 화포와 포탄의 활용도 한몫 했죠.
  • 레벨 대위 1 K한량 19.03.19 06:47 신고
    @K한량 추가 합니다.

    2번의 노의 극단적 기울기는 근접전이나 협소한 수로를 통과 할 경우 노의 파손을 최고화 하여 선박의 생존성을 높여 줍니다. 그리스 로마의 해전사를 보면 상대 선박 곁을 빠르게 치고 나가 노들을 파손시켜 항해불능 상태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판옥선에는 어려운 전술이죠. 아울러 크기에 비해 협소한 수로를 통과하기 용이 합니다.

    3번의 포가와 밧줄을 이용한 완충작용 기술은 유럽에서도 전선에 보편화 된것은 17C 전열합의 시대 부터였습니다. 오스만투르크와 유럽연합해군의 전투에서도 나오고, 무적함대와 영국해군과의 전투에서도 나오지만 당시까지 유럽의 수전에서 화포의 정확도란 파도가 치지않고 조류가 없어도 형편없었습니다. 오히려 화포가 근접전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대부분의 피해가 등선육박전이었으니......
    뭐 그때 부턴 급격하게 발전 오히려 역전 되지만 당시 기준으로 연안에서 붙는 다면 유럽의 전선들과도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전선 판옥선이죠.
  • 레벨 대령 3 미투고고 19.03.19 02:08 답글 신고
    판옥선을 너무 과대 평가 하는데 막말로 원균이 이끌던 주력함대가 왜구 에 모두 소실된거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보다 도 판옥선은 과대 평가 되엇다 봄
    팀을 이끄는 리더가 중요한 이유 이기도 함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레벨 대위 1 K한량 19.03.19 05:45 신고
    @MIRAGE21 몇가지만 정정합니다.
    우선 판옥선이 위는 뚤렸지만 백병전이 쉬운 전선은 아니었습니다.
    안택선을 제외(그러나 안택선은 대장선 및 소수 뿐이었죠)하면 대부분의 왜선보다 훨씬 높아 오르기 쉽지 않았고, 고려후기부터 조선시대까지 왜구를 근접전에서 상대할때는 특정도구(이름을 잊었습니다.)를 이용 밀고 당김을 동시에 해 거리를 벌려 등선육박이 어렵게 만드는 기술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원균은 왜군과 해상에서 전면전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했죠.
    칠천량 해전은 말이 해전이지 노군이 지쳐 쉰며 보급한다는 명목으로 상륙했다가 매복한 왜군의 육군과 정박한 함대를 노린 왜의 수군의 기습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뭐 원균이 무능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양이나 깊고 빠른 조류에서 전투가 이뤄진다면 판옥선이 더 취약할수도 있습니다.
    그런상황을 절대 만들지 않은 이순신 장군이 그래서 더 대단한 것일테구요

    덧붙여 님이 생각하는 원균의 성격도 틀리지 않다 생각합니다.
    마치 해전을 육전 하듯이 했죠.
    실제 기록을 보면 함대의 극소수에 불과한 원균의 함대 전과(조선시대 기준)가 더 크죠 이는 수급을 전공의 기준으로 삼는 조선조와 육군의 관행에서 비롯되었다 생각합니다. 원균은 그 성격대로 오히려 역으로 왜군 선박에 뛰어들어 수급을 베었고, 덕분에 휘하의 인명 피해도 이순신/이억기 장군들의 연합함대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죠....

    반대로 이순신 장군은 불필요하게 목을 베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운좋게 조선함선에 뛰어들거나 전투후 건져내진 적 시신의 수급 몇구 뿐이었죠.
  • 레벨 대위 1 K한량 19.03.19 05:35 답글 신고
    글세요 경우에 따라 다르다 봅니다.
    판옥선은 조류가 약하거나 수심이 얕은 근해에 최적화된 선박입니다. 느리고 파도에 취약하며, 노군의 심각한 피로도가 급격히 누적된다는 약점 대신 선회력이 좋고 튼튼하죠
    그 튼튼함이 다수의 화포를 장착할 수 있게 하여 원거리 전투가 가능케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투 전적은 대부분 이러한 사실을 확실히 파악하고 최대한 활용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원균의 경우 좀 다르죠.

    근거리 전투 뭐 그런 문제가 아니라 부산 앞바다로 나가 왜군의 의도대로 끌려 다녔고 부산앞바다의 깊은바다 빠른 조류에 휩쓸려 노군의 피로도가 급격히 높아져 철군 중 안전지대로 빠지지 못하고 칠천량에서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겁니다.

    이순신 장군도 부산 앞바다로 진출 왜군을 견제한적이 있으나, 빠른조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노력했고, 장기적인 체류와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것이 힘들다 판단되자 정박된 선박들만 파괴하고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류에 영향을 덜 받았기에 빠른 철군이 가능했던 것이고, 분명한 목적과 전략이 있었기에 일본군의 견제에서 그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겠죠

    단! 여기서 분명히 할 내용은 칠전량 해전의 인명피해는 해전이 아닌 육전에서 발생했습니다. 쉰다는 목적으로 안전지대도 아닌곳에 상륙했고 매복한 일본 육군과 배후를 친 일본 수군에 의해 인명피해와 선박피해가 동시에 발생한 것이죠.
    또한 여기서 생각(전멸에 가까운)보다 피해가 크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군이 와해된것은 사실이고 그 의견대로라 해도 흩어져 도망갔던 수군은 이순신장군의 복권 및 승전 후 차차 복귀했다고 볼수 있는 거죠.
    분명 판옥선은 무적은 아니지만 상황과 전략에 따라 최상의 선박입니다.
    반대로 왜선들도 전장환경과 전략이 뒷바침되었다면 상황에 따라 판옥선보다 뛰어난 선박입니다.
  • 레벨 소장 MIRAGE21 19.03.19 10:54 신고
    @K한량

    안전지대는 말씀하신게 맞고,

    원균이 가장 욕 먹는 부분은 가장 기초적인 부분을 무시하고 작전을 뛰었기 때문입니다.

    그 기초적인 부분이 무시되었을 때, 아무리 강력한 함대라도 적의 함정에 지 발로

    걸어들어가는 거고, 그렇게 거북선을 뺀 순수 판옥선만 120척 넘던 수군이

    거북선까지 전량 대파 당하고 달랑 12척만 남긴 것도 결국 그 기초적인 것을 안 해서 였거든요.


    판옥선만 120척 넘은 거고, 실제 모든 전체 함선을 다 포함하면 조선수군 함선은

    이순신의 통제사 리즈 시절 때 300척 이상이라 보는게 타당하다 봅니다.

    판옥선을 제외한 그 170척에 달하는 배가 이순신의 백전백승의 기초가 된 배들 입니다.


    모든 전투에서 자세하게 기재되어 있지 않은 건 이순신은 이 함들조차 똑같은 전투함으로

    취급을 했기 때문인데, 막상 후대 사료가나 해전전문가들 중에 이 배들을 눈여겨 본 사람이

    많지 않더라구요. 그냥 판옥선 킹왕짱 으로 묘사해서 과대평가 라는 오해를 받게 만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 레벨 소장 MIRAGE21 19.03.19 10:46 답글 신고
    글이 왜 삭제가 됐나요?

    판옥선이 과대평가된 배라면

    현대 이지스함도 과대평가된 함이란 소린데.....


    이순신의 화포전술은 수군의 백병전 능력이 바닥이니 근접전 보단

    원거리에서 연타공격 하는 방식으로 약점을 강점으로 극대화 한 거고

    재수없게 왜선하고 측면이 맞 닿아 왜병이 뛰어올라오면 일단 그 판옥선은

    다른 배 공격 못 하고 아수라장이 되는 건데, 이런 상황은 현대 군함이라도,

    이지스함이라도 적 함에서 보병 병력이 올라오면 그 배는 일단 이지스 본연의

    전투를 할 수가 없으니, 님 기준대로라면, 과대평가 된게 맞죠.

    항모조차도 적 보병 1개 소대만 쏟아져도 30분 전후로 배가 마비되는 판에....


    함에 있는 사람들을 다 죽여서요? 아니요. 1개 소대 병력 가지고 무슨 수로

    항모같이 복잡한 배 안에 사람들을 다 죽여요? 근데....함상 위에 비행기에 수류탄 던지고

    배 곳곳에 C4 같은 걸로 손상 또는 구멍내고, 아일랜드 아수라장 만들고,

    얘네들 잡으로 오는 함상 내 경비병력만 30분 간 잡아 놓을 수 있으면

    항모가 작전불능이 되는지라, 사람 죽일 필요도 없고.....항모도 과대평가 됐네요. 그쵸?
  • 레벨 대위 1 K한량 19.03.19 18:49 신고
    @MIRAGE21 님의 말씀대로 절대적인 병기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 장단이 있죠.
    판옥선의 뛰어남보다 조선수군의 우수함과 지휘관의 우수함이 승리에 더 크게 기여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원균의 경우 무능함을 두둔하는건 아니지만 불쌍한 부분도 있습니다.
    비록 이순신장군의 실각후 통제사가 되었으나, 되고나니 부산진 공격이 어렵다는 것을 본인도 자각했다 볼수 있죠...
    유능한 이순신장군의 수하들도 극렬 반대 했을 것이구요... 권율까지 보낸 조정의 강압에 출진은 했는데

    님의 말씀대로 제대로 초계와 정보 분석이 이뤄지지 않아 왜 육군의 매복도 몰랐고, 왜 수군에 이끌려 전투 없이 전투 불가 상황까지 몰립니다.

    칠천량에 정박했을 때도 님의 말씀대로 기본중의 기본인 초계와 척후를 제대로 운용했다면 피해가 훨씬 적었겠죠....그러나 지친 수군은 보급과 휴식을 위해 무작정 상륙했고, 척후도 너무 지쳐 왜 수군의 기습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죠....

    결국 무능과 방기의 앙상블이 조선수군 와해라는 역대급 병크를 가져오죠

    - 칠천량 해전에서 전멸이라는 표현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통상 전쟁에서 30~40%의 피해는 전멸로 간주됩니다.
    칠천량해전에서 그정도 이상(수군, 선박, 지휘관 등의 고려) 피해는 입었다 생각합니다. 거기에 실질적으로 조선 수군의 와해라는 점에서 전멸이라는 표현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후 기록에서도 칠천량 해전 후 흩어졌던 폐잔병과 전선들이 다시 모여들었다는 표현이 있는것과 명량해전에서 불과 10개월 후 절이도해전에서 전선 60척이상 수군 7000명 이상으로 5배 가량으로 재건된 상황을 고려해봐도 우리가 통상 이해하는 괴멸에 가까운 전멸은 아니었음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왜란 초기 이순신 이억기 원균의 연합함대 70척 내외가 칠천량해전의 전선 150척 까지 증가하는데 수년이 소요되었음을 고려할때 제작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 레벨 대위 1 K한량 19.03.19 19:10 신고
    @MIRAGE21
    이건 함선에 관한 댓글입니다.

    옳으신 말끔입니다. 판옥선이 뛰어나고 근해에서 당시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해도 단점이 존재하고 주력선일 뿐 기타 전선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그 전과는 형편없었을 겁니다.

    말마따나 아무리 회전력이 좋아도 왜전선이 고속기동하여, 사방에서 공격하면 답이 없죠...
    맹선의 개발단계부터 이미 이러한 선박이 느리무로 기타 속도가 빠른 선박과 함께 운용해야함을 밝히고 있죠.

    님 말씀대로 현대전에서도 절대적인 무기는 없습니다.
    천조국이라는 미군도 소형선박을 이용한 테러 소형기, 무인기 등을 이용한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물대포부터 음향무기, 레이저 까지 별짓을 다하는 거겠죠.

    역사 이래로 절대라는 무기는 존재하기 않앗죠....
    무적이었다는 몽골군조차 전략거점과 기동군의 유기적 운용을 통한 전투에선 패전한 기록이 존재하죠
  • 레벨 소장 MIRAGE21 19.03.19 20:11 신고
    @K한량

    네 맞습니다.

    이야기 하고 싶었던 부분이 척후와 초계 입니다.

    이순신은, 물론 임란과 정란 중이라 당연했지만서도, 좌수영 본진에 복귀해서도

    늘 초계와 척후선들은 내보냈습니다.

    해전에 들어가기 전 부터도 이미 인근 해상과 약간 멀리에도 척후선들 쫙 뿌려놓고

    섬에도 병사들을 배치해서 교대로 바다에 적의 접근이나 매복이 있는지 없는지

    늘 감시하게 했습니다. 지나가던 어부의 정보조차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어부의 정보와 척후조의 정보가 다르면 바로 보내서 확인하게 했습니다.

    특히 평시에 해류의 흐름까지도, 자기에게 해류 자료가 있음에도, 같이 파악하게 했죠.


    전투가 벌어지면 척후선들은 전투에 참가 시키기 보단 전부 후방과 좌우로 보내서

    전투 후 이동할 수로를 확보하고 적의 지원함대나 육상지원이 우회로 오는 지를 감시하게 했습니다.


    인근 바다와 섬 주변에 대한 정찰이 뻥 좀 더해서 AWACS 급으로 파악하고 있으니

    피해가 있을 만한 전투는 사전에 피하고, 이길 수 있는 전투만 만들어서 싸웠습니다.


    당항포 해전이나 사천선창 해전 같은 경우를 보면,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 있는 만이라

    그 안에 들어갔다가 적이 만 입구를 막으면 함대가 전멸 당할 수 있는 곳임에도

    치고 들어갈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척후선들과 인근 섬마다 배치된 척후조들이

    신속하게 정보를 보내와서 적 매복이나 지원함대가 없다고 판단할 자료를 줬기 때문이죠.


    상황이 아주 급박하게 밀려서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전투상황이 아니라면,

    이순신은 척후선들을 전투에 참가시키지 않고 전투 중에도 주변 해역과 만과 바다를

    감시하게 했죠.


    그게 일본 애들이.....자기들 함대 앞에 조용히 귀신같이 조선 수군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바다 안개 속에 숨어 버리고, 안개가 걷혔을 땐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라는 기록의 항해술은

    바다에 해무와 해류가 흐르고 변하는 시점까지 꿰뚫고 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이러한 이순신의 척후조 활용, 대장기 운용, 연을 통한 연락, 해류의 파악 같은

    정보수집 운용능력 때문에 동 시기의 서양 스페인 함대나 영국의 함대와

    유럽 현지에서 싸움이 붙어도 이순신이 밀리지 않을거라 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레벨 소장 MIRAGE21 19.03.19 20:14 답글 신고
    저는 이순신 장군의 전투사료를 볼 때마다 판옥선의 전투능력이나 함대전술 보다

    이러한 정보자산 운용능력과 전투에 적용하는 응용력에서 더 많이 놀랍니다.

    이길 수 있는 해전만을 가능하게 만든 건 판옥선 이전에 이미 그 주변을 꿰고있는 정보력에서

    우위를 가졌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아무 것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바다 위에 사람 침이나 가래가 있어도 발견이 될 수 있는 좁은 연안이기에

    조선수군이 움직인 흔적을 볼 수 없다는 말은, 바다에 뭘 버리는 것 조차도 못하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명량해전에서도 판옥선만 12척이었지, 그 뒷 쪽으로 척후선과 어선 같은 중소형 선박들이 100여척

    포진하고 있었다는 건 난중일기나 다른 장수들의 사료를 자세히 읽어봐야 알 수 있는 부분 입니다.
  • 레벨 대위 1 K한량 19.03.20 11:17 답글 신고
    역사학자 임용한 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요지는
    이순신 장군은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했고 단순히 정보 수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보들을 취합 분석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이러한 정보의 분석을 통해 의혹을 배제하여 명확한 상황판단과 예측을 하고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며 잘못된 정보의 출처와 원인에 대한 파악을 통해 적군의 의도조차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으리라 봅니다.
    정말 대단한 것이죠....

    또한 칠천량 해전 전후 조정의 반응을 이렇게 설명하셨죠

    해전 전 : 해상은 조선이 강하고 육상은 일본이 강하다...
    해전 후 : 조선 수군이 강한것이 아니라 이순신이 뛰어난 지휘관이었구나....


    아! 명량해전은 임진/정유 왜란의 해전 중 가장 전략 전술이 불분명한 해전이죠. 말씀대로 매우 다수의 어선 및 소선들이 동원되었다는 것은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또한가지 확인이 가능한 것이 전투 중반 이후 반전이 이뤄지기 전까지 대장선 즉 이순신장군의 함선만이 홀로 전투를 했다는 것이지요.....
    주력함들은 말을 않들은 것이고, 소선들은 방어전에 전면에는 세울수 없는 상황이죠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명량의 환경적 특성과 판옥선의 장점, 상황적 요인 등을 극단적으로 활용한 전술이라 생각합니다.
    좁은 수로와 급류로 인해 다수가 정상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길목에서 요충지에 해당하는 지점에서 요새처럼 판옥선을 활용했죠. 왜군의 조총과 함포는 판옥선을 침몰시키기 어렵죠.
    따라서 원거리 공격에 이어지는 근접전에서 수성하듯 버티다 보면 조류가 바뀌고 전투가 불가능한 상황이 온다는 거죠.
    대장선이 버티니 지나치기도 어렵고 지나치더라도 축차소모될 수 있다는 리스크....

    명량의 환경적 요인, 원거리 전투와 근거리 수성전 형태의 전투에 장점을 지닌 판옥선, 왜군의 심리적 측면, 아군의 심리적 측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전장에서 불리한 상황 마저도 최대한 활용했다고 밖에는 볼수 없는 천재적인 지휘였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대로 이순신 장군의 대단한 점은 이길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전투한다는 것인데 그렇지 않았던 유일한 상황인 명량해전 마저도 준비와 분석, 상황에 따른 현명한 대응으로 승리를 만들었다는 것이죠.

    저 역시 당시 기준으로 세계 어떤 수군과 붙어도 이순신 장군의 함대가 절대 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
  • 레벨 소장 MIRAGE21 19.03.20 17:23 신고
    @K한량

    존버의 괄약근 찔끔하는 전율의 좋은 예가 명량이죠. ^^


    명량의 상황에서 맨붕에 안 빠지고,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12척으로 100척 이상을 상대할 수 있는 해역들을 계속 시뮬 돌려 보다가

    딱 한군데,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해역을 발견 했을 때....

    뻥 좀 보태서....This is end game... 하면서, 신에게 아직 12척......상소

    쓰는걸 상상하면 소름 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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