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임진왜란 직후 그려진것으로 추정되기에
고증이 상당히 기대가 되고 또 한,일 기록에
묘사된 전투장면이 실제로도 고증이 잘되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선을 애워싼 왜선들의 모습
왜선들에게는 장군선이 0순위 타겟이였겠죠
차츰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본군의 각 계급에 맞는
전투시
위치나 갑옷 종류는 물론 고증이 잘 되어있을터이고
우리또한 마찬가지로 고증을 잘 해내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물론 가치가 있는 그림일 것입니다.
왜선들에게서 유난히 갈고리가 많이 보이네요~
당시 왜구들로서는 포를 못쏘게끔 붙어서 갈고리 걸고
넘어가는게 승산이 높았을거라
추정됩니다.
그에 맞써는 조선해군의 배는 층을 하나
더 올린 판옥선이라서
기어오르는 적에게는 힘든 구조의 배입니다.
화살에 화약이 달렸군요;; 지금으로 치면
하사관급에 해당하는 군인이라고 합니다.
일반 군졸의 모습을 한번 볼까요? 포수등의
일반 군졸도 전원 갑옷을 착용했군요 ~
저위 군졸이 쓴 가죽모자같은것은 엄연히 군모로서
가죽이긴 하나 돌댕이 같이 딱딱한 군모입니다!
포졸모자 우습게 보지 않아야하는게
겉이 엄청나게 딱딱하고 마치 갑옷같은
느낌이 듭니다.
때는 임진왜란 전쟁 말기
왜구에 맞선지도 어인 7년
판옥선도 진화하여
고정발사대도 있던거 같습니다.
방패수의 보호하에 뭔가 화약무기를
투척하려는 것 같습니다.
일본군 이시가루들(왜군 말단 하급무사)은
조총을 쏩니다.
눈치챈 분도 있으시겠지만
우리의 활은 3자형태인데 비해
왜군의 활은 D자 모양입니다.
예전 역사스페셜에서 실험해봤지만
사정거리,관통력에서 우리 활에게
게임이 안됩니다!
조일 해군의 싸움 양식이
육상을 옮겨놓은듯한 전투였습니다.
판옥선은 성채이고 왜군은 함락시키러
들이받는것 이였다고 추정합니다.
일부 왜군이 특공대를 조직하여
눈에 안띄는 작은 배를 타고 판옥선에
갈고리 걸러 가는 모습입니다.
같은 칼이지만 우리 환도와 일본도의
다름까지 잘 묘사되어있습니다!
절때로 삼지창은 없습니다!
삼지창은 조선 후기에나 등장합니다!
(이시가루 한마리가 뛰어드는 모습)
현장감과 생동감이 마치 500년전에 찍은
사진같습니다!
조선군 또한 전원 갑주를 착용하고
완전무장 하고 있습니다.
또한 방패에는 도깨비문양이
그려져서 적을 위압합니다.
왜구들이 화포를 노획한 장면이 있군요
순국선혈께 묵념~
결론은 확신한것은 결코
이런 한심한 모습은 아녔을겁니다.
중세시대에
칼과 창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갑옷없이 전투한다는것은
썰어놓은 고깃덩이 나 다름없으니까요
우리나라 드라마들의 고증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알게 해주죠...
우리나라 드라마들의 고증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알게 해주죠...
우선 화약을 이용한 화살인 화전이 보입니다. 화전은 중국식 표현이고 주화 또는 신기전이 맞다고 합니다. 신기전 분류에서 소신기전이 활로 쏘는 형태입니다.
수군이 안고 있는 통은 화통으로 보입니다. 화약이 담긴 통에 불을 붙여 상대 배에 던지는 무기로 고려시대 최무선 때부터 사용되었던 무기입니다. 화약에 불을? 왜그리 위험한....이라 생각해볼수 있지만 당시 대포를 생각해 보면 폭발성이 아니라 탄의 물리 에너지만 사용하던 형태였습니다. 획기적 발명품이자 적군이 두려워한 비격진천뢰를 제외하면 폭발성 무기는 거의 전무하다 시피하죠. 그런데 수상전에서 위험성만 감내 한다면 화통은 매우 효과적인 무기 입니다. 불붙은 화약(흑색 화약)은 폭발이 아니라 좀 빠르게 타들어가는 방식이죠....저상태로 던지면 불붙은 화약이 터지면서 불길이 흩어져 목재로 이뤄진 선박에, 상대 병력에 매우 큰 피해를 입힐수 있는 무기입니다.
석궁형태의 활 그림은 노 입니다. 이미 삼국시대에도 사용되었고 중국에서도 유명했던것이 신라의 노였다는 사실은 이미 잘알려진 사실입니다. 노의 특성은 성에서 이뤄지는 전쟁에 효과적이라 합니다. 왜구와의 전투를 판옥선이라는 거대 전투선으로 조선군이 익숙한 수성전을 해상으로 가져온 것이죠
아! 덧붙여 왜군의 대포 그림은 맞는 고증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당시 포에 대한 관심이 없었고, 큰 조총의 개념으로 포와 유사한 무기를 활용했습니다.
단지 왜구가 대포를 가장 많이 획득한 곳은 부산진성으로 노획한 것이었답니다.
그 중 하나는 일본이 자기들의 패전을 합리화...즉,
우리가 이정도로 무장된 조선수군이랑 싸웠으니
진게 당연하다...라는 면피를 하려고 만들었다는 썰도 있습니다.
만약 맨 밑에의 복장을 한 조선수군에게 깨졌다면
그게 더 치욕인거잖아요.
나머지는....휴우....거론 가치가 별로 없어서 패스.
당시 패전한 일본이 저 정도의 고증적 기록을 남기고자 애썼다면 그것은 사실 앞의 변명이라고 봅니다.
그만큼 자신들의 당위성(승전, 성과 등)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칼이나 싸움에선 베여서 죽거나 다치는게 가장 흔한일이죠..
이떄 갑옷을 하나 입었난 안입었냐의 차이는 큽니다...
활의 경우도 근거리읙 경우는 뚫리겠으나 원거리에서 오는 화살은 최소한 몸속으로 덜들어가게 할뿐더러
때로는 튕겨내기도 합니다.. 이게 실전에선 엄청난 차이죠...
옛날사람들도 바보가 아닌이상 일불러 불편하게 그런 갑옷들을 입었던게 아니죠..
물론 기동전을 목표로 한 별동대 같은경우는 장거리 전투를 위해 경갑옷이나 갑옷없이 전투를 하기도 했습니
다 만 주력은 아니죠...
물론 비단이라는 고가의 물품상 정예 혹은 장수급이 착용했죠.
비단은 활을 막는 목적보다 후에 처치가 용이하게 해줍니다. 비단이 화살촉과 함께 말려들어가 후에 화살촉을 제거하기가 용이하죠.
영화나 드라마에 잘 등장하지 않지만 화살을 맞은 후 처치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비단은 그 처치를 돕는 효과가 있죠.
갑주는 그 형태나 재질 유형에 따라 찌르는 것과 베는 것에대한 방호력이 다릅니다.
양쪽에 모두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두깨를 늘리는 수밖에 없고 유럽의 풀플레이트 아머 같은 타입이 되죠.....
옛날 방패의 경우도 보편적인 형태의 방패들은 화살을 정면에서 막기보다 비스듬하게 하여 흘리는 방식으로 훈련됩니다. 궁수와 거리가 가까울수록 관통될 확률도 높고 착용부위나 들고 있는 손에 피해를 입을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고증해서 리얼하고도 감동적인 영화나 드라마가 다시 나오면 하는 바램이네요..
기본적으로 판옥선의 경우 저토록 갑판을 뒤덮을 병력이 없습니다.
200명 기준에서 30%~40%가량을 제외하면 모두 노꾼입니다.
즉 60~80명을 제외하면 노젓는 사람들이고 60~80명 중에도 태반은 화포관련 병력입니다.
실제 포수를 제외한 전문 전투원은 30~40명이 될까말까한게 현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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