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평택] 어버이날 새벽 대추리 할아버지를 따라 나서다
정태화할아버지는 왜 보상을 거부할까..
미군기지 확장이전 예정지인 경기 평택 대추리 마을. 전쟁터처럼 변한 이곳엔 아직도 60여 가구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추리 성당 앞 평화동산에 오르면 황새울 들녘에 시원스레 펼쳐진 논밭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러나 5월 농부들 손길이 한창 바쁠 시기에, 그곳엔 농부가 없다. 조상 대대로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온 정태화 할아버지(71). 눈 앞에 자신 소유의 논 1만평을 두고도 정 할아버지는 할 일 없이 지내고 있다. 5월 8일 어버이날, 정 할아버지의 일과를 따라가봤다.
# 새벽 5시 : 물꼬 트러 논에 가다
황새울 들녘으로 퍼렇게 여명이 밝아왔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난 정 할아버지는 대삽을 어깨에 들쳐맨 채 평화동산 아래 자신의 논으로 내려갔다. 비가 온 다음날인 7일 물꼬를 텄어야 하는데, 경찰들이 막아 세우는 통에 손을 못 봤다.
"전날 물꼬를 텄어야 하는데…. 저 놈들 때문에 들어가지도 못했잖어. 원래는 비가 올 때 우비 입고 삽 쳐들고 나가서 터야 하는데, 비 온 지 이틀이나 됐으니 지금 가봐야 뭐가 되겠어."
논두렁에 걸터 서서 부지런히 삽질을 해보지만 흥이 나질 않는다. 이렇게 해봐야 가을 추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한두번 흙을 일구다 허리를 펴고 서서 멍하니 들녘만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다.
정 할아버지는 황새울 들녘에 1만평 규모의 논을 소유하고 있다. 이주를 거부하고 아직까지 대추리에 남아 있는 주민들 가운데는 꽤 큰 규모다. 하지만 이 가운데 8000평은 군이 쳐 놓은 철조망 때문에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나마 2000평 정도는 드나들 수 있지만 군과 경찰이 농사를 짓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지금 시기를 놓치면 일년 농사도 꽝이야. 저걸 어떡하면 좋아. 4월부터 볍씨 뿌리고 공들여 왔는데, 이렇게 손도 못되게 됐으니 말야."
정 할아버지는 내일부터는 이곳에 나오지 않을 참이다. 보면 볼수록 억장만 더 무너지기 때문이다.
군은 지난 4일 대추분교 강제퇴거를 위해 군경 1만4000명을 투입한 작전에 '여명의 황새울'이라는 낭만적인 작전명을 붙였다. 그러나 낭만적인 작전명과 달리 당시 이곳에서 진행된 군·경의 작전은 유혈사태로 번질 만큼 폭력적이었다. 그날 이후 황새울의 새벽은 정태화 할아버지에게도 '폭력'으로만 남아 있게 됐다.
# 오후 2시 : 우두커니 들녘만 바라보다
대추리 성당 앞 평화동산에 정 할아버지 등 마을 주민 대여섯 명이 둘러앉았다. 모두들 볍씨를 뿌려놓고도 더이상 손을 못 봐 속이 타들어갔다. 우두커니 앉아 서서 들판만 내려다볼 뿐이다. 가끔 한두 마디 욕설 섞인 말들이 튀어 나왔다.
"내일모레면 싹이 많이 나올 텐데. 식전에 돌아다니지를 못하니까 그렇게 불안할 수 없어. 내땅에 내가 농사 짓고 살겠다는데 그게 불법이고 억지야? 억만금을 벌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여기서 농사 붙여먹고 살겠다는 건데 말야."
국방부는 이들에게 6월 30일까지 이주할 것을 통보한 상태다. 이곳이 군 소유로 넘어갔기 때문에 강제로라도 이들을 몰아낸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들은 단 한 번도 자신들의 땅을 군에 넘겨준 적이 없다. 어느날 갑자기 국방부에서 날아든 토지 수용 통보장 하나가 전부였다.
"보상 받고 나간 사람들이야 그렇다 쳐도, 땅값을 안 찾아간 사람들 논은 그냥 놔둬야 되잖여. 난 내땅 내주겠다고 도장 한 번 찍어 준 일이 없어. 근데도 내 땅이 남의 땅이 돼버렸으니 이게 글쎄 무슨 조화여. 등기까지 싹 다 국방부로 넘어갔더라고."
밖에서 보상 운운하는 것도 정 할아버지에겐 못마땅하다. 정부와 협상을 하고 이 땅을 떠난다면 보상얘기가 나오겠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은 보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돈을 얼마를 갖다줘도 떠나지 않는다는데, 왜 보상 문제를 그렇게 들먹이는지. 요 며칠전 국방장관이 가구당 6억원씩 줬다고 하는데, 그건 돈 받고 나간 사람들한테만 해당되는 얘기여. 우린 6억원이 아니라 60억원을 줘도 못나가겠다는 거라고."
# 저녁 6시 : 솟아오른 싹을 보다
오후 내내 우두커니 들녘만 바라보던 정 할아버지가 해가 기울 무렵 다시 삽을 들었다. 새벽에 잠깐 들렀던 곳으로 정 할아버지는 다시 내려갔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려니 가슴이 벌렁벌렁 하는 게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논에 도착한 뒤 가지고 온 삽을 옆에 놔두고 손으로 연신 흙을 파냈다. 정 할아버지가 한 옴큼씩 흙을 파낼 때 마다 군데군데 솟아오른 벼싹이 눈에 들어왔다.
"농사일은 젖먹이 애를 키우는 것과 똑같어. 자꾸 달래주고 어루만져줘야 애가 잘 크듯이 농사일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이렇게 놔둬야만 하니 잘 자랄 턱이 있겠어. 저 싹들도 나를 많이 원망할 거여."
지난 5일 이후 군은 정 할아버지 논에 철조망을 이중으로 치고 도랑까지 팠다. 작전을 수행하는 군인들은 아무렇게나 논을 밟고 다녔다. 정 할아버지가 철조망 건너 자신의 논을 향해 또 소리를 쳤다.
"국방장관, 국무총리, 대통령은 대체 뭐하는 거여. 여기 와서 이 꼴을 한번 보라고 해. 멀쩡한 논이 저렇게 파헤쳐지고 있는 꼴을. 지들은 밥 안먹고, 쌀 안먹고 사나?"
9일 오후 국방부장관이 이곳을 방문했지만 그는 결국 주민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떠났다.
정 할아버지를 따라 들녘을 빠져나오는 사이 황새울 너머로 빨갛게 노을이 내려앉았다. 황새울은 동요 '노을'의 실제 가사 배경이기도 하다. 이곳 출신의 교사가 황새울 들녘의 노을에 매료 돼, 이를 노래로 만들었다고 한다.
해는 매일 뜨고 지지만 이곳에 미군기지가 들어서게 되면, 정 할아버지는 더이상 황새울의 저녁 노을을 못 보게 된다.
# 밤 8시 :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다
사위가 어둑해질 무렵 이곳 평화동산에서는 어김없이 촛불집회가 열렸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두 가슴에 카네이션 한 송이를 달았다는 것.
정 할아버지도 이곳을 찾은 '청년21' 회원들의 손에 의해 가슴에 꽃을 달았다. 가수 정태춘·박은옥씨는 이날 촛불집회를 찾아 주민들에게 꽃을 달아 주고, 힘도 불어넣어 주었다.
"어버이 날이면 해마다 대추분교 운동장에서 마을잔치를 열었지. 올해는 학교가 저 지경이 됐으니 잔치도 못하지."
경찰은 대추분교 운동장 곳곳에 구덩이를 파놓았다. 주민들 여럿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날 촛불집회는 평소보다 많이 늦어 밤 9시가 다 돼 끝이 났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도 마땅히 할 일이 없지만 그래도 정 할아버지는 이 시간이면 눈을 붙인다.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정 할아버지가 또 한숨 쉬듯 말했다.
"아무리 국방부에 강제 수용 된 땅이라고 해도 난 절대 이 땅을 못 내줘. 정부 정책도 정책이지만 이 놈들 하는 짓이 영 틀려먹었어. 힘만 내세워 밀어붙이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나베. 그렇겐 절대 안될 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