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전쟁 당시의 '시모하이하.>
영하 20도에서 40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추위 탓에
두터운 캐모플라쥬 위장 방한복을 착용중
왜소한 체구 탓에 더욱 어려보인다.
<전쟁 당시 그가 사용했다는 SMG와, 개조된 모신나강 소총.>
겨울의 악령 '시모 하이하'
(White Devil'Simo Hayha)
1906년 12월 17일생, 2002년 4월 1일 사망
출생지: Rautajarvi
(러시아 국경 근처 핀란드의 작은 마을)
신장/체중: 161cm, 51kg
계급: 상병 (Corporal) -> 중위 (1st Lieutenant)
사살수: 542명
<통계 자료는 최소로 510명에서 602명까지 가설이 빗발치지만,
현재로써 가장 신뢰를 얻고 있는 범위가 520-580 정도이므로
핀란드 측에서 제시한 가설을 채택했다>
시모 하이하는 '겨울 전쟁'이라고도 불리우는,
핀란드가 러시아를 상대로 1939년부터 1940년까지 항전했던 이 전쟁에
복무한 핀란드의 영웅이다.
본래 작은 시골 마을의 평범한 농부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당시 소련의 영향력이 핀란드 전체에 짙게
드리워졌기에 마냥 평화로운 삶을 살 수는 없었다.
하이하 일가는 농부인 동시에 사냥꾼이었었다.
그래서 시모 하이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사냥용 소총을 쓰는 방법을 배웠다. 혹독한 자연 환경에서
자라난 야생 생물을 추적하고, 사냥했던
당시의 경험이
이후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전대미문의 저격수를
만든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25년, 시모 하이하는 1년간 수행해야 하는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핀란드 군에 입대한다. 도시 문화를 접한 적이 없었음에도
희한하게 군대가 체질에 맞았는지, 1년 뒤 제대 당시 직급이 상병까지 올라 있었다.
제대 이후 시모 하이하는 자신의 고향 지역에서
Suojelskunta 즉 핀란드 방위군으로 다시 복무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방위군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정규군인과 마찬가지로 상비군의 성격이 더 짙었다고 한다.
복무 중 겨울 전쟁이 발발했고, 시모 하이하는 콜라 강 (Kollaa River)
근처 JR34 제 6중대에 배치되었다.
흔히들 "콜라의 기적"이라 부르는 이 콜라강은
핀란드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최고의 전과를 올리게 된 지역으로,
당시 그들은 무려 16만 명의 소련군을 상대로 대치한 상태였으며
시모 하이하 본인도 당시에 4천 명의 병사들을
상대로 31명의 동료들과 게릴라 전을 벌였었다.
그리고 필사의 혈투 끝에 핀란드는 1940년 3월 종전까지도
콜라 강변을 자국 점령지로 유지하게 되었다.
500명 이상의 저격 기록은 이 당시에 수립된 것으로,
시모 하이하는 소련군들 사이에서
겨울의 악령이라는 (White Devil) 별칭으로
널리 알려졌다.
불과 3-4개월 남짓의 복무 기간에도 불구하고
시모 하이하는 이 기간 내내 최소 500명 이상의 적병을 저격했으며,
그의 애총이었던 모신나강 M28 (Mosin-Nagant M1891/30의 핀란드 버전)
이외에도 서브머신건인 Suomi K31로도 200명 가량을 사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맹활약을 했던 시모 하이하는
1940년 3월 6일 소련병의 총탄이 턱에 박혀서 폭발했고,
코마 상태에 빠졌다. (혼수상태)
그러나 그가 죽었다는 뜬 소문과는 달리 정확히 1주일 뒤인 3월 13일,
소련의 패배로 종전과 함께 그는 병상에서 깨어나 승전보를 듣게 되었다.
전후 한달 뒤 시모 하이하는 핀란드 육군의 매너하임 원수로부터
표창과 함께 중위로 특진하게 되었으나,
중태로 인한 코마 상태에서 깨어난 이후
신경계에 무리가 와 더 이상의 참전은 불가능했다..
그는 국민들의 환호와 영예 속에서 전역했고,
이후 2002년 4월 1일의 아침에 97세를 일기로
평온히 숨을 거둘 때까지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았다.
.
.
시모 하이하의 생애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압도적인 저격 기록 외에도
열악한 여건과 극단적인 상황에 있다. 엄밀히 말한다면
애총의 성능과 일반적으로는 단점이라
여겨지는 신장 161cm의 단구 이외에는 어떠한 장점도 갖추지 못한,
숫적 열세와 보급 미비 속에서 악전 고투를 벌인 상황이었다.
그의 애총인 모신나강 M28은 러시아에서 제작한 Mosin-Nagant M1891/30의
인위적으로 개조한, 고성능을 자랑하는 볼트액션 소총이기는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시모 하이하는 이 총에 스코프를 얹어서 사용한 적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육안과 애총의 가늠쇠만으로 저격에 임했다고 한다.
.
짧은 신장과 몸집 덕분에 참호나 매복 장소에서 얼굴을 내밀지 않고도
상대를 저격할 수 있었던 그는,
평소에도 동료 병사들에게 스코프를 쓰지 않기를 권했다고 한다.
스코프 렌즈의 반사광 때문에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기 십상이며,
또한 스코프를 사용할 경우 반드시 머리를 내밀어 눈을 대야 하기
때문에 적에게 포착되기 용이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그런 무리한 충고를
받아들인 동료들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영하 20도에서 40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추위 탓에
언제나 두꺼운 흰색의 캐모플라쥬 위장복을 입고 있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모 하이하는 역사상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전과를 수립했다.
.
.
아래는 1998년 핀란드 한 잡지와의 인터뷰 내용
Q: 어떻게 그런 명사수가 되셨습니까? (How did you become such a good shot?)
A: 연습했지요. (Practice.)
Q: 그런 놀라운 기록은 그럼 어떻게 달성하셨죠? (And about your morbid records?)
A: 쏴라 해서 쐈지요. (I did what I was told to as well as I could)
..
이외에도 시모 하이하가 당시 전쟁에서
전차 사이의 전-측면 장갑사이의 틈으로
총을 쏴서 전차병을 맞췄다는 일화도 있었다죠.
이외에도 러시아의 '바실리자이체프' 라는 유명한 독일의
장교들만 200여명을 암살한 저격수가 있지요.
암살의 대다수의 타켓이 장교였다는 점에서
공은 훨씬 컸겠지만
시모하이하가 있었던 당시
콜라강 유역은, 광대한 설원덕에 적에게 노출되기 쉬웠고
엄폐물이 곳곳에서 넘쳐나는 불타는 스탈린그라드와는 달리
참호를 제외할때 저격병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인 엄폐물이 전혀 없었기에
사상 최강의 저격수로는 바실리자이체프보다
시모하이하를 더 높이 평하고 있지요.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