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의 가치는 뛰어난 품질인가 절묘한 포장인가?
렉서스는 고급차종인 것은 분명하지만 자주 경험할수록 명차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인간의 요구에 대한 심리학적인 접근을 바탕으로 얄미울 정도로 계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렉서스를 얼핏 보면 고급스럽고 우아하지만 부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전형적인 도요타식의 철저한 원가절감 흔적들이 보인다.
자동차의 명가인 벤츠 BMW 아우디 포르쉐 등이 만든 차들을 들여다보면 과잉의 부분이 항상 존재한다. 주로 주행성능과 관계된 부분인데 서스펜션 구성품을 예를 들자면 초고속 주행을 염두에 두고 두껍고 튼튼하면서도 가볍게 만들었다. BMW 5시리즈의 경우 서스펜션 구성요소의 하나인 컨트롤암과 쇽업소버 케이스, 엔진과 차축을 지탱하는 크로스멤버가 값비싼 알루미늄으로 제작돼 있다.
주행성능 부분에서 그들은 좀처럼 타협을 하지 않는다. 저렇게 서스펜션 부품을 가볍고 튼튼하게 만든다고 해서 보통 운전자들은 그 차이를 알지도 못할 텐데 그들을 그렇게 한다. 그래서 비싼 것이 단점이기는 하다.(독일차를 너무 높이 평가한다고 질타하는 독자님들도 계시겠지만 조금 기다리시면 BMW 7시리즈와 5시리즈를 직접 소유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의 문제점을 낱낱이 해부한 글을 시리즈로 올릴 것이다.)
그러나 렉서스를 리프트에 올려놓고 보면 일반 차종과 비교해 서스펜션 부품의 견고성이 나아보이지 않는다. 세계 시장에서 중저가인 국산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품들의 모양이다. 특히 이번에 시승한 ES350은 사실상 일반 차종인 캄리의 고급 버전으로 내외장만 조금 고급스러울 뿐 기술적인 감동을 주지는 못했고 원가절감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벤츠와 BMW의 태생이 귀족이라면 렉서스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해 이제 막 신분상승을 이룬 케이스다. 그래서 직함에는 판사 검사 의사 같은 타이틀을 붙였지만 속내는 아직 초라하고 열등감도 많다. 그러나 귀족출신들은 까탈스럽고 스타일을 유지하려면 아르마니 양복과 발리구두에 최고급 헬스클럽을 다녀야 한다. 조금만 수틀리면 온갖 불평(에러메시지와 잡소리 잔고장)을 쏟아내고 심하면 아예 움직이려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렉서스는 평민출신이기에 중저가브랜드 옷과 신발을 신고 한강고수부지를 달려도 불만이 없다. 밥(휘발유)만 제대로 먹여주면 잘 아프지도 않고(배경도 없는 녀석이 자주 아팠다가는 출세 못한다) 충직하게 일한다. 조금 못마땅한 것이 있어도 잘 참고 버틴다. 렉서스 중에서도 ES350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디자인과 인테리어 편의장치▼
날카롭고 허풍스러워보이던 바로 앞 세대 ES330의 모습보다 오히려 차분해졌다. BMW가 파격적인 디자인의 5,7시리즈를 잇따라 내놓은 뒤부터는 어지간히 기이해서는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사실 기자는 기존 ES의 디자인을 끔찍하게 생각했다. 왠지 억지스러운 보디라인과 캄리의 차체를 너무 부풀려 어색하게 보였던 휠하우스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후륜 펜더 속으로 푹 들어간 휠의 클리어런스는 최악이었다.
그런 디자인의 결함(?)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신형 ES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이 개선됐다. 구형 ES의 전후륜 윤거는 1545/1535mm였지만 신형은 1575mm/1565mm로 각각 30mm나 넓어졌다. 반면 차폭은 10mm밖에 늘지 않아 휠과 펜더의 측면 라인이 예쁘게 맞아떨어졌다. 휠 사이즈도 16인치에서 17로 커져 차체 크기와 어울린다. 하지만 최근 출시된 GS의 디자인에 비해서는 변화의 폭이 적고 전반적인 실루엣은 이전 세대와 마찬가지로 밋밋하면서도 뚱뚱한 느낌이다.
인테리어는 도요타스럽다. 최대한 원가를 절감하면서도 고급스럽게 보이려고 노력은 했지만 현대 그랜저보다 나아보이지는 않는다. 오디오와 공조장치가 몰려 있는 센터페이시아를 덮고 있는 은색 플라스틱의 느낌이 그저 그렇고 버튼류와 우드그레인도 지극히 평범하다. 계기판의 도색은 약간 조잡하다는 기분마저 들고 디자인이나 완성도 또한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았다. 다만 천장을 뒤덮고 있는 파노라마 글라스루프와 고급스런 통풍시트는 포인트였다.
방향지시등의 소리는 아주 작았고 스위치류는 작동에 손가락 근육이 필요하지 정도로 아주 가볍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렉서스가 특징인 ‘조용함과 부드러움’ 속에 모든 기계장치들이 동조돼 있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터치감이 조금 더 탄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력성능▼
시원하다. 3456cc V6 엔진은 최대출력 277마력(6200rpm)에 35.3kgm(4700rpm)에 이르는 토크의 쏟아낸다. 편안하게 타는 세단으로는 과분한 출력이다. 차 안에서 느껴지는 속도감은 그다지 짜릿하지 않지만 가속력 측정장비로 실측한 0→100km/h는 6.9~7.2초(제원상 7.0초)로 스포츠세단 수준이다. 0→400m 가속시간도 15.0~15.2초로 수준급이다. 0→200km/h는 28.5초. 3단에서 80→120km/h 가속은 4.7~4.9초정도였다.
나란히 달려보지는 않았지만 예전에 실측한 BMW 530i의 기록과 비교할 때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조금 빠른 랩타임이다. 행운인지 테스트를 하던 중 BMW Z4 3.0과 폴크스바겐 4세대 골프 GTI를 만나 고속 주행능력을 비교할 수 있었다. 시속 100km/h쯤에서 Z4와 여러 차례 롤링스타트를 했는데 200km/h까지 거리가 벌어지지 않고 나란히 달릴 수 있었다. GTI와의 비교에서는 모든 속도영역에서 앞섰다. 테스트 주행을 마치고 두 차종의 차주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ES350의 가속력에 적잖이 놀랐다는 반응이었다.
6단 팁트로닉 자동변속기는 과격한 주행에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200km/h 이상의 고속주행과 10여 차례에 이르는 제로백 테스트에도 변속이 느려지거나 변속충격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고 측정이 거듭될수록 오히려 랩타임이 단축됐다. 피부로 느껴지는 변속기의 반응시간은 그랜저(세계에서 가장 반응이 느린 변속기일지도 모른다)의 절반정도로 빨랐고 팁트로닉을 사용한 시프트 업다운에도 적당하게 반응했다.
엔진의 회전한도는 6300rpm으로 2단 115km/h, 3단 155km/h, 4단 213km/h가 나왔고 5단 4900rpm 223km(GPS 측정치) 정도에서 리미트가 걸렸다. 차의 성격에 비해 엔진출력이 강한 편이지만 운전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출력을 표출하는 방식이 부드러웠고 변속기의 기어비와 변속속도 또한 적절하게 세팅이 됐다.
▼주행성능▼
처음부터 렉서스의 핸들링과 코너링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예상대로 평범하고 편안한 핸들링을 보여줬다. 운전대를 좌우로 돌려 급차선 변경을 해보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평범한 패밀리 세단의 모습으로 차가 반응을 한다. 160km/h까지는 차선변경에 큰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차체의 롤(기울어짐)도 충분히 용서할 수 있는 정도였다. 직진성능도 괜찮았다.
그러나 180km/h부터 차선 변경이 조금씩 긴장되기 시작해서 200km/h를 넘어서면 반 박자씩 미리 운전대를 움직여줘야 의도했던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었고 차체의 롤도 상당히 증가했다. 엔진출력은 동급의 독일세단처럼 250km/h를 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지만 부드러운 서스펜션 때문에 220km/h 정도에 속도제한을 걸어 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핸들링은 전반적으로 그랜저와 비슷하거나 약간 나은 수준이다.
과격하게 차를 몰아붙이면 타이어가 너무 쉽게 비명을 질러댄다. 순정으로 장착된 미쉐린 MXV4는 승차감과 경제성 위주의 타이어인데 몇 번 경험해봤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소음이 아주 작은 것도 아니고 접지력이 높지도 않다. 미리미리 비명을 질러대서 흥분한 운전자에게 경고를 주는 능력 하나는 탁월한 것 같다.
다양한 각도의 커브길에서 차가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코너링을 해보면 먼저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고 거기에서 속도를 더 올리면 전륜이 밖으로 벗어나며 눈에 띄게 회전반경이 커지기 시작한다. 확실한 언더스티어 세팅이다. 그러다 속도를 줄이면 전륜 타이어가 접지력을 되찾는 순간 갑자기 앞머리가 코너 안쪽으로 확 말려들어가는 느낌의 약한 오버스티어가 나타난다. 서스펜션의 정교함은 그다지 높지 않았으며 그랜저 L330보다 좋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정숙성과 경제성▼
금요일 오후, 기자는 ES350을 몰고 아스팔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차로 뒤덮여 있는 서울 강남의 거리로 나왔다. 30분 정도 체증에 갇혀 있었지만 짜증스럽지 않았다. 회사에 대휴를 신청해 쉬는 날이어서 여유가 있었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운전으로 인한 피로는 상당히 적었다. 외부소음도 잘 차단됐고 처음 운전대를 잡는 ES350이었지만 전혀 위화감이 없이 편안했다.
굳이 기계장치를 부착하고 실내소음이 몇 데시벨이니 따지지 않아도 이정도면 정숙함과 운전의 편의성은 충분하다는 느낌이 팍 와 닿았다. 불규칙한 노면에도 내장재에서 들려오는 잡소리는 전혀 없다. 오디오를 켜니 고음과 저음이 상쾌하게 분리되는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잔잔한 음악이 깔리는 조용한 카페에 앉아 컴퓨터로 시내운전 연습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이래서 렉서스가 인기일까.
새벽 1시에 다시 차를 몰고 나갔다. 고속주행을 위해서였다. 심야에 들리는 엔진음은 이전 ES330보다 확실히 커졌다. 물론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었고 차가 너무 심심하다는 고객들의 불만을 의식해 일부러 엔진음을 약간 키운 것 같은 느낌이다. 120km/h를 넘어서니 타이어 소음과 바람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다. 180km/h에 달하자 약간 목소리를 높여 동승자와 얘기해야 할 정도로 모든 소리들이 커졌다. 역시 아우토반의 초고속주행을 염두에 둔 차는 아니었다. ES350은 180km/h를 넘어서면 렉서스에서 주는 혜택들을 누리기 힘들었다.
정숙성은 이제 렉서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유럽차들도 렉서스의 영향을 받아 상당히 조용해졌다. 그랜저도 ES350의 90%정도는 달성했고 에쿠스와 오피러스는 오히려 더 정숙한 실내를 제공한다. 그래서 이제는 정숙성을 놓고 벌이는 메이커들의 싸움은 지루해졌다.
차에 내장된 트립컴퓨터를 이용해 측정한 시내주행 연비는 교통상황에 따라 6.5~7.5Km/리터 정도로 3500cc급으로는 아주 만족스런 편이었다. 4단 자동변속기의 2000cc급과 비슷했다. 100~120km/h의 고속도로 주행 연비는 12km/리터 전후였고 속도를 더 높이자 10Km/리터 정도로 떨어졌다. 이 정도 연비도 불만이라면 차라리 지하철을 타는 편이 좋겠다.
▼총평▼
ES350의 운전대를 처음 잡았을 때 전반적으로 그랜저 L330과 상당히 흡사한 주행감각을 느꼈다. 주행거리를 더해가면서 ES350의 장점들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랜저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랜저의 업그레이드 버전쯤 된다는 결론이다. 디자인은 오히려 그랜저가 나아보였고 정숙성과 주행성능은 비슷했다. 변속기의 반응과 변속질감, 동력성능, 오디오시스템 등은 확실히 한 수 위였다.
ES350은 프리미엄과 일반 차종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면서 렉서스라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보다는 브랜드의 덕택을 보는 입장이다. LS가 렉서스를 대표하는 근엄한 가장이라면 SC는 세련된 어머니이다. GS는 아버지의 뜻을 충실히 이어받은 장남이고 IS는 덩치는 작지만 똘똘하고 실속있는 막내이다. 그러나 ES는 듬직한 장남과 만만치 않은 막내 사이에 약간은 밋밋한 둘째 아들 같다.
가격은 옵션에 따라 5900만~6300만원으로 BMW 520i, 벤츠 E200K, 아우디 A6 2.4, 오피러스 3.8, 체어맨 700s 등과 경쟁관계에 있다. 가격대비 만족도는 국산차에 미치지 못하지만 비슷한 가격의 독일차에 비해서는 100마력가까이 높은 월등한 출력을 제공한다. 기자의 입맛에 맞는 차는 아니지만 가격과 출력 연비 등을 감안하면 상당수의 소비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요소가 많고 현재 판매대수만 봐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기자가 세일즈맨이라면 아래와 같이 말하지 않았을까.
당신은 자동차의 엔진음과 짜릿한 운전을 즐기는 자동차 마니아는 아니시죠. 그렇다면 이야기를 시작해봅시다. 먼저 조용한 응접실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은 편안함과 때로는 감미로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고급 오디오시스템이 있으면 좋겠죠. 무지막지한 힘까지는 아니라도 쉽게 다른 차를 추월할 수 있는 출력은 기본입니다.
게다가 배기량에 비해 연비도 좋아야 하고요. 지루할 정도로 긴 무상 애프터서비스 기간을 준다고 해도 잔고장으로 수시로 서비스센터를 들락거리긴 싫으시죠. 간혹 고속도로에서 차가 거의 없을 때 시속 160km까지 속도를 높이기는 하지만 200km를 넘길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고 타이어가 비명소리를 지를 정도로 스포티하게 운전하시지도 않죠.
독일차 만큼 비싸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프리미엄급 자동차를 탄다고 부러움의 시선을 받으면 더욱 좋으실 테고요. 그렇다면 렉서스 ES350이 당신의 입맛을 맞출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