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대기업 손들어준 국토부…사법부 '급발진' 판결도 무시
기사입력 2013-04-09 11:55 최종수정 2013-04-09 13:56
조사결과 발표때 마다 논란만 가중시킨 국토교통부가 이번에도 자동차에는 결함이 없다는 일방적인 결론을 내놨다. 급발진 추정 사고의 원인이 사실상 운전자의 과실 탓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번 발표는 급발진 사고에 대해 자동차 결함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는 최근 사법부 판단과도 정면 배치된다. 국토부가 대기업인 자동차 회사의 대변인 노릇만 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 조사반 “급발진, 자동차 결함 아니다”
국토부는 합동조사반은 9일 BMW 528i(2011년 11월 5일 서해안고속도로)와 현대자동차## YF쏘나타(2012년 5월 6일 대구 효명동 앞산순환도로) 급발진 추정사고 원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실시된 1·2차에 이은 3차 발표다.
조사반은 YF쏘나타의 사고기록장치(EDR)을 분석한 결과, 사고발생 5초간 차량 속도는 시속 96km에서 126km로 급격히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또 사고 당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EDR은 비행기 블랙박스처럼 자동차 사고 당시 차량의 상황을 기록하는 장치다.
BMW528i 차량 역시 자동차 내 결함을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BMW 차량은 엔진제어장치(ECU)에 사고 당시 자동차 뒷면의 브레이크등이 켜져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음에도 급발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BMW측은 그러나 자동차가 충돌하면 앞으로 나아가는 힘에 의해 브레이크 페달이 앞으로 약간 밀리고, 이 때문에 사람이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브레이크등이 켜질 수 있다고 반박했다.
◆ “EDR 만능장치 아니다”
그러나 EDR을 근거로 한 조사반 발표에 대해, 업계서는 한계가 많다고 지적한다.
EDR은 엔진에 연료가 주입되는 통로인 ‘스로틀 밸브’가 얼마나 열려 있는지 등을 기록할 뿐, 가속기(엑셀러레이터)에 힘이 가해졌는지 여부는 기록돼 있지 않다. 급발진 사고가 자동차 결함이 아닌 운전자 과실이라고 결론내려면 운전자가 가속기를 브레이크로 착각하고 밟았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만약 전자적 오류 탓에 가속기를 밟지 않았는데도 스로틀 밸브가 열린다면 엔진 분당회전수(RPM)가 급격히 높아지고 급발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EDR은 사고시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담는 만능장치가 아니다”며 “불충분한 정보를 통해 결론을 내리는 조사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 사법부 판단과 정면 배치
이번 조사반의 결론은 자동차 결함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법원 판단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대구지법 제3형사부는 교통사고로 70대 노인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최모(68)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지난해 11월 1심과 같이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최씨는 2011년 10월 31일 경북 안동시에서 그랜저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갑자기 차가 돌진하는 바람에 맞은편 도로에서 걸어가던 70대 노인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매우 강한 충돌이 있었는데도 가해 차량의 에어백이 작동되지 않은 점, 최씨가 40여년의 운전경력이 있는 점 등 여러 정황을 보면 이 사고는 최씨의 과실로 발생했다기보다는 최씨가 통제할 수 없는 급발진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실상 차량 급발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법원이 급발진 사고에 대해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2008년과 이번 판결의 1심에 이어 세번째다.
◆ 조사반 물갈이, 스스로 신뢰도 저하
1·2차 조사와 달리 3차 조사부터 민·관 조사위원 구성이 변경되는 등 국토부의 부실한 운영도 조사 결과 신뢰성을 저하시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당초 1·2차 조사에 참여한 인원은 교통안전공단(자동차안전연구원) 소속 16명과 외부 자문위원 5명(급발진전문가 2명, 시민단체 1명, 학계 2명 등)으로 총 21명으로 구성됐다.
이에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는 조사 위원 중 다수인 16명이 공단 소속이고, 그 중 7명은 1999년 실시한 급발진 조사연구에 참여했던 인사라는 점이 지적됐다. 이 7명은 당시 급발진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어 조사 결과에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국토부는 작년 11월 16명이던 공단 소속 위원을 2명으로 줄이고, 기존 외부 자문위원 5명을 더해 7명 규모의 조사반을 재구성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조사반 구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된 뒤 공단 출신 위원을 대부분 뺐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위원 구성에서부터 오락가락하는 아마추어리즘을 노출하는 국토부가 급발진 원인을 조사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말했다.
[안석현 기자 ahngij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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