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 댓글들을 보며 마음이 착잡해져서 씁니다.
저는 가난하지만 자상하고 사랑을 듬뿍 주신 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그야말로 길거리에 나앉아
하룻밤은 파출소에서 보내고 (당시 12시 통금이 있었어요)
엄마 지인을 통해 안 어떤 아줌마 집의 지하실에서 살았어요.
쌀이 없어 미수가루로 연명했고 설탕이 없어 사카린?을 타먹었어요.
가끔 엄마가 어디선가 밥을 얻어오면 물을 많이 넣어 끓여서
네 식구가 나눠먹었어요.
당시 초등 저학년이었던 남동생이 한그릇 먹고는 나 국물만 좀 더 달라고 해서
우리끼리 막 웃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부모님 마음이 어땠을까 싶어요.
그런데 정말 희한하죠?
그때 그런 상황이었는데 저는 그렇게 비참하고 슬프지 않았어요.
왜였을까?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늘 따뜻하고 든든하게 지켜준다는 느낌이었어요.
하루는 엄마가 지방에 있는 이모한테 가서 돈을 빌려오겠다고 이틀 자고 오겠다고 나갔어요.
밖에서 놀고 있는데 동네 언니가 너네 엄마 집 나간거라고.
그러고 나간 엄마들 돌아오지 않는다고. 가난이 너무 힘들어서 혼자 먹고 살려고 도망 간거라고.
저는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지만 내심 불안했어요.
당시 집에 전화도 없었고 이모집 전화번호도 모르고 연락할 길이 없었죠.
그런데 엄마가 이틀 후 참외 한 봉지를 사들고 이모한테 얻은 옷을 한 벌 쫙 빼입고 돌아왔어요.
저는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 몰라요.
그 날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Top 5 안에 듭니다. ㅎㅎㅎㅎ
사춘기 되면서부턴 좀 많이 힘들었어요.
왜 우리집은 이럴까...고민이 많았죠.
가끔은 차라리 엄마,아빠가 나쁜 사람들이라서 그냥 내가 깨끗하게 이 세상을 떠나버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온갖 고생을 다 해서라도 우리를 먹여 살리겠다는
부모님을 두고 차마 그럴 수는 없었죠.
천만다행스럽게도 공부머리가 좀 있어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불같이 공부해서
학력고사 대박이 터져 명문대에 입학했어요.
아마 신께서 제가 너무 안쓰러웠는지 한 번의 대운을 주신듯 했어요.
그때부턴 많이 달라졌어요.
당시 금지였던 과외 알바를 (몰래바이트라고 불렀어요) 하면서 꽤나 목돈을 쥘 수가 있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서 완전히 다른 인생의 길로 접어들었어요.
조그만 아파트도 사고 우리 식구는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됐어요.
그후 직장생활 꾸준히 하고 결혼도 하고 재미나게 살았습니다.
가끔은 부자 친정을 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죠.
하지만 또다시 태어나도 저는 제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날 겁니다.
무능했지만 저희를 정말 아껴주셨던 아빠와 보낸 유년시절의 기억이 참 아름답게 저장되어 있어요.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는 생각으로 사셨던 엄마는 제 인생에 가장 큰 축복이었어요.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여러분이 만약 가난한 집 자식이라면 열심히 사셔서 인생을 바꿔 보세요.
알아요. 많이 어렵다는 거. 그 시절과 지금은 또 다르다는 거.
하지만 부귀영화는 아니라도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건 가능해요.
여러분이 만약 가난한 부모라면, 열심히 노력하면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그 사랑을 보여 주세요.
아이들에게 부모는 우주예요. 아이들은 비싼 음식 먹고 자라는 게 아니라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오늘 미국 국경을 불법으로 넘다가 적발되어 격리수용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정말 울컥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넋두리 좀 했어요.
이른 새벽 처음 으로 끓여 먹은 짜파게티 지금도 잊을수가 없네요. 돌아 가신 할머니 께서 라면처럼 끓여 주셔서 제가 엄청 울었답니다. 짜파게티가 뭔지 몰랐던 할머니 그리고 작디 작은 그때의 누이 비릿한 곤로의 기름냄새. 기억의 한편 아릿하고 따스한 추억이 자리 잡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할머니.
고딩때는 천막집.....졸업하고는 컨테이너에 살았었죠.
근데 그 시절은 그렇게 살아도 뭐 다같이 가난하다보니
그닥 불편하다는 것 말고는 자존심 그런거 따지고 사는 시대는
아니었어요.
그리고 고졸자들이 코오롱이나 엘지(당시 금성)에 들어가던 시절입니다.
하이닉스(당시 현대전자) 같은데 들어가라고 하면
'내가 공돌이나 할 사람으로 보이냐'며 따귀를 날리던 시절이에요.
그때 고생해서 지금 살만한 것 역시 대부분 그렇게 살아 가는 겁니다.
지금은 세상이 달라요.
하이닉스 협력업체 자리조차도 없어서 못들어 가는 시절입니다.
나가 살던 시절만 생각하고 젊은 이들에게 충고하는 것을
꼰대라고 하죠.
지금 고등학생들은 분명 제가 고딩때 보다 공부를 더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대학가기는 더 어렵고 등록금은 더 비싸고
취업은 더 어렵죠.
우리가 젊은 사람들이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나이때문 만은 아니에요.
우리보다 많이 배우고 똑똑하고 더 노력해본 사람들입니다.
(물론 답 안나오는 애들은 우리때도 있었어요)
세상이......
정확히 말해서
우리가 세상 좋다고 투표안하고 보낸 세월이 20년 흘러서
지금 젊은이들에게 헬조선의 문을 열어 주었던 겁니다.
그래놓고 지금도 젊은이들이 투표 안한다고 욕을 하고 있죠.
달래 꼰대겠어요?
지능이 낮으니 꼰대지......
일단 여러분들이 기대하시는 그런 전개는 전혀 없으므로 기대를 접으시기 바랍니다.
가끔 담임선생님과 면담이 있기도 한데, 선생님말씀이 애들이 사랑을 듬뿍받고 있다는게 표가 난다고 하더군요
참 그한마디가 그렇게 기쁠수 없더군요
유년시절 집에갈때 오늘도무사히를 되네이며갔습니다
가난으로도 살수 없다...
이른 새벽 처음 으로 끓여 먹은 짜파게티 지금도 잊을수가 없네요. 돌아 가신 할머니 께서 라면처럼 끓여 주셔서 제가 엄청 울었답니다. 짜파게티가 뭔지 몰랐던 할머니 그리고 작디 작은 그때의 누이 비릿한 곤로의 기름냄새. 기억의 한편 아릿하고 따스한 추억이 자리 잡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할머니.
저도 어릴 적 할머니가 짜파게티를 라면처럼 끓여주셨었는데 .. 로드미컬님과 반대로 전 철 없이 맛 없다며 안먹었었죠 . 철이 들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엔 짜파게티 눈물나서 못먹습니다 .. 지금까지도 너무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
본문 보면 친정운운하는 걸로 봐서는 여성인데 썸네일은 여자빤쓰고.....
어쨌든 주작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이건 글쓴이의 공부머리가 있기에 해피엔딩인 겁니다.
물론 부모로서 자식에게 사랑 많이 주는 것은 당연히 좋은 거죠.
뭐든 해스줄수 없다는 아버지는요..
저는 지금 그래서 술먹는데...
마음이 너무 아파서..
맞습니다. 가난해도 부모님의 가르침과 사랑이 있으면 서서히 일어날수있어요.
진짜 쌀없어서 수제비먹고 유통기한갓넘긴 빵먹고...어린맘에 그저 좋기만했는데 어릴때 보약한첩못해먹인게 그렇게 가슴에 사무친다던 어머니...ㅎㅎㅎ 지금이야 추억으로 웃으며이야기하지만 그런가난이 없었다면 지금의 악바리근성도 없었겠죠. 나도 다시태어난다면 가난하지만 부부싸움한번안하시고 잘 가르치신 우리부모님자식이 될겁니다.
엄마 생각도 나고.ㅠ.
멋진형님 이시군요. 행복하세요
머리좋다고 공부잘하는건 아닙디다 공부는 운동처럼 재능임....
지독히도 추웠던 겨울...연탄30장에 한달을 지냈던 그겨울...이른새벽 연탄불이 꺼져버려 싸늘해진 방안에선 입김이 하얗게 나고 우리가족은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겼네요... 그래도 항상 웃음은 끊이지않았네요...
가정교육과 삶에서 보여주는 부분이 아이의 교육에 훨씬 좋은 영향을 준거고 저런 부모라면 부자였어도 바른 아이들을 키
웠을거라 보임.
보통 대비되는 두 가족이 나오죠.
한가족은 정말 돈이 많고 잘사는 집안인데 지식들이 다 개망나니고 남자는 바람핍니다.
한가족은 정말 없어서 온가족이 좁은 방안에 다 모여서 살지만 늘 웃음이 끊이지 않고 행복합니다.
그러면서 돈이 많으면 불행하다 없어도 가족이 화목한게 행복한거다 이런식의 드라마 정말 많았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믿고 살아왔지요.
그런데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한 걸보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가족이 훨씬 더 행복해요.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고 생각하는것도 늘 여유있고 가족끼리도 서로 아끼고 배려합니다.
만약 글쓴이도 경제적인 여유있는 상황이엿으면 더 많은 사랑 받고 더 성공했을거에요.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따뜻한 말이 필요한 순간에는 그냥 따뜻한말만 해주면 되요.
미국 이야기는 트럼프가 자기 마누라도 설득시키지 못한 갓난아이와 그 엄마 마저도 갈라놓는 가혹한 정책을 말하는거에요.
고딩때는 천막집.....졸업하고는 컨테이너에 살았었죠.
근데 그 시절은 그렇게 살아도 뭐 다같이 가난하다보니
그닥 불편하다는 것 말고는 자존심 그런거 따지고 사는 시대는
아니었어요.
그리고 고졸자들이 코오롱이나 엘지(당시 금성)에 들어가던 시절입니다.
하이닉스(당시 현대전자) 같은데 들어가라고 하면
'내가 공돌이나 할 사람으로 보이냐'며 따귀를 날리던 시절이에요.
그때 고생해서 지금 살만한 것 역시 대부분 그렇게 살아 가는 겁니다.
지금은 세상이 달라요.
하이닉스 협력업체 자리조차도 없어서 못들어 가는 시절입니다.
나가 살던 시절만 생각하고 젊은 이들에게 충고하는 것을
꼰대라고 하죠.
지금 고등학생들은 분명 제가 고딩때 보다 공부를 더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대학가기는 더 어렵고 등록금은 더 비싸고
취업은 더 어렵죠.
우리가 젊은 사람들이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나이때문 만은 아니에요.
우리보다 많이 배우고 똑똑하고 더 노력해본 사람들입니다.
(물론 답 안나오는 애들은 우리때도 있었어요)
세상이......
정확히 말해서
우리가 세상 좋다고 투표안하고 보낸 세월이 20년 흘러서
지금 젊은이들에게 헬조선의 문을 열어 주었던 겁니다.
그래놓고 지금도 젊은이들이 투표 안한다고 욕을 하고 있죠.
달래 꼰대겠어요?
지능이 낮으니 꼰대지......
저 원글쓴 분도 대단하신간 맞는데
그래도 그땐 못살아도 시험 잘쳐서 좋은 대학갈수도 있고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급여차이도 지금만큼 크지 않고
못살고 집없어도 어떻게 결혼해서 애도 낳고 살아갔지만
요즘 세대들은 어릴땐 부모세대의 도움으로 풍요롭게 살다가
막상 자기들이 독립할 나이가 되니 부모세대보다 더 좋은 스펙, 학벌을 가지고도
더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많죠.
마냥 열심히 살아라고만 하기엔 어찌하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사실 그때는 회사다니는거 보다도 장사하는게 더 벌던 때였지요. 왠만한 한 달 월급을 하루만에도 버는게 가능했던 시절이니, 당시 울산에도 현대자동차는 구르마라고 무시받던 시절이고 SK(당시 유공)이나 다른 직장들도 전부다는 아니지만 의외로 거기 가느니 다른거(장사나 자영업같은거)한다는 사람이 많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년을 앞둔 세대들이 이제 취업시장에 나오는 젊은 친구들에게 '열심히 안해서 그런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는걸 볼 때는 좀 그렇더군요. 물론, 옆에서 듣다가 한 소리 하면 억지부리거나 괜한 반박까지는 안하지만 그 생각은 실제로는 안바뀌는거 같더군요.
그 시절엔 공장안에서 청소하고 잡일하고 경비하더라도 다른 직원들과 비슷한 임금에 또 딱히 무시하거나 경시하는게 덜했는데, 그렇게 경비하다가 지게차 기사하다가 시대가 바뀌면서 직접고용되어서 지금은 억대 연봉 받는답시고 대졸에 협력업체 다니는 친구들 속 긁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꼰대들이 있어요.
사회의 책임이라는게 꼭 뭘 잘하거나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알게 모르게 작금의 현실에는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는데 아무 생각없이 사는게 자랑인 사람들이 있어요.
미국 부자들은 사회환원에 적극적인게,자기들이 좋은 아이템으로 갑부가 되었어도 그 사회가 자기들을 만들어냈다는 인식에 받은걸 돌려주려는 생각을 가지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부자들은 오롯이 자기 능력덕이고 타인은 무능력탓이라는 이가 많은거 같아요.
안타까워서 진심으로 충고하는 아버지들도 많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국민학교시절의 모든 웃어른들이 꼰대였죠. 그때는 무릎꿇고 듣던 때였잖아요. 반문만해도
바로 꿀밤이였어요. 지금의 대기업은 그 시절 동네 중소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입니다. 그 당시 고졸들이
할수있었던일이 지금은 그럴수가 없죠. 지나온 과거고 님이 그 가난했던 시절을 긍정적으로 헤쳐나오신건
님의 긍정마인드가 플러스 알파인경우도 있겠죠. 너무 어려웠던 시절이라 힘들고 적은 임금과 인간대접 못받은
시절이었습니다. 전태일이 왜 있었겠나요? 그때는 정권이 무서웠고 시키면 시키는대로 억압하면 억압받는대로
살았기때문에 시간이 흘러 그려러니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요즘 젊은이들 맞아요.. 어떻게 보면 불쌍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안쓰럽기도 합니다.
취직 연애등....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역사이래 가장 발전된 나라에서 예전에는 누릴수 없던 경제적혜택과 문화를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자신만 잘하면 어느정도 부를 축적할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고작이었던 공무원이
지금은 연금걱정없는 안정적인 직장이 된것처럼 말이에요. 예전에는 님 말씀처럼 모든 직장의 근무조건이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중소기업만도 못한곳이 수두룩했고 인간대접도 못받는곳이 수두룩했죠.
님이 꼰대라 치부하는 그분들이 바로 그런곳에 근무하면서 아껴가며 돈도모으고 집도 사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러라고 충고하는것 같습니다. 자신들도 그렇게 조금씩 아껴가며 돈도 모으고 했으니 너희 후배들도
너무 대기업만 고집하지말고 그런길도 있다고 말할수밖에 없겠죠...
욕해대며 무조건 그리하라는 무뇌충의 꼰대들말을 대변하는게 아닙니다.
예전에는 캥거루족이란말이 없었습니다. 무조건적으로 젊은애들을 비판만하려는게 아닙니다.
자기 노력은 뒤로한채 변명하고 뒤로숨고 부모들 등골이나 빼쳐먹는 나라탓 남탓 사회탓하는 젊은애들에게
하는 충고인거죠.
제대로 노력한 젊은이들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제대로 노력해서 정당한 댓가를 받는 젊은이들은 불평불만도
없습니다.
제가 너무 배고파서 그집 부엌에 갔는데 오뎅 볶아놓은게 너무 맛있어 보여서 몇개 집어먹었다가
집주인한테 거지같은놈이 더럽게 집어먹는다는 소리 듣고 ..
엄마가 밤에 저 부여잡고 얼마나 우시던지 ㅜㅜ
그날 바로 짐싸고 나와서 뚝밑에서 천막치고 판자집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 사우디 5년 다녀오셨는데 엄마는 아버지가 보내주는돈 한푼도 안쓰시고 부업해서 저희 4식구 살았는데
어머니랑 아주 친한 동창친구분이 몇일만 쓴다고 돈 빌려달래서 아버지가 보내온돈 거진다 빌려주고..
결국 도망가서 받지도 못하고..
아버지는 사우디 갔다오셔서 그소식 듣고 술만 드시고..
말로는 다 설명할 수가 없네요.
그래도 지금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자식이있어서 부모님께서도
고마우실껍니다.
사람은 원래 알아주기가 힘든거지요.
모든 인간들은 이기적이니까요
정말이더군요
깨닫을땐 늦는다던데 그것또한 맞더군요
총맞아 뒈진 박정희가 빨갱이 입니다..
참고 하세요.
나라팔아먹은 장본인들
보배나 인터넷에서 남탓,남욕하는 인간, 지라 ㄹ하는것들은 자기 얼굴에 침뱉는 꼴.
글 잘 봤습니다~
부모님들도 열심히 일해서 내집장만하고 그런 희망이라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흔히들말하는 숫가락으로 다 정해져버린 시대가 되버려서 어린친구들이나 젊은세대들은 무슨희망으로 살아갈까 걱정이됩니다
지금살만하다고 힘들던 시절을 추억삼아 이야기하는것도 좋지만 기성세대들이 조금더 양보해서 젊은친구들이 열심히 일하고 더나은 삶을살수있다는 희망을 가질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지금 40대들 30대들만 하더라도 꽤 이기적이고 지만알고 애정결핍에 피해의식 심한 인간들 제법 보이던데
일부 빼고는 무슨 큰 고생들을 했다고
당시 국민학교때 이혼한 부모님이 한 반에 1명2명 될까말까 였는데 그게 저희 집 상황이더군요....
이혼직후 얼마안되어 어머니 저 동생 이렇게 3명이서 살아가는데 당시 어머니가 직업이없으셨어요.
겨울이었네요.
집에반찬과 쌀이 없어 라면이라도 사시러간다고 나가셨는데 한참을 집에오지않으시더군요.
나중에 빈손으로오시는데 흰색조끼 안주머니에 백원짜리 몇개가 전재산이라는게.....라면 한 봉지조차 살수없다는게 그 어린나이에 ....어머니가 우시는거보고 같이 3명이서 펑펑 운 기억이납니다....
어렵사리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할때까지 학기중 말고는 아르바이트를 쉬어본적이 없는거같네요.
물론 아르바이트로 번 수입도 대부분 생활비로 보탰구요.
이리저리 닥치는데로 앞만보고 살다보니
아르바이트할때 제일 부러웠던 와이셔츠에 넥타이도 메어보게 되구요....
지금도 넉넉하진 않지만 어머니 고기사드릴수있는 형편은 되네요.
너무기쁩니다.
보배에서 이런글을 볼때마다 미묘한 감정이드네요.
나보다 더힘들게 겪어오신분도 있구나 라고요.
힘도납니다.
어릴땐 그런 가정환경이 어쩔땐 참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키워주신 어머니께 감사하다고말씀드리고 싶거니와 혼자서 두 아들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사회생활 해보니 어머니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게되는거같습니다.
조금더 열심히 살아서 더 효도하고싶네요.
형님동생님들 다같이 힘냅시다^^
엄마 사랑해요♥
전 그 판단은 죽는 순간이라 생각합니다....님이 마지막 순간 뒤를 돌아봤을때 좋은 결말이라면
금인거고 그런거 아닐까요???부모님 장수하시고 부부간에 잘지내고 자식이 올곳께 자란다면
그 삶이 바로 금수저겠죠...지금 젊은세대들은 너무 앞서가는 경향이...
제가 imf는 겪어봤는데요 또 그들 부모나이는 아니다 보니 좀더 객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흙수저니 힘드니 하는 현 20대 30대초반들 보면 웬지 그렇게 고생하는 집 자제 같지는 않아보였습니다.저는 좀 그런 느낌이 드네요
특히 어버이날 같은 날은 왜 이렇게 부담스럽고, 오글거리는지... 때로는 얘들이 진심으로 이러나 싶기도 하고
나를 닮았다면, 아마도 내심 왜 고마워해야 되는지 의심을 해볼듯
이글이 글쓰신분 진심인지, 진짜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요
하도 피해의식이나 애정결핍 가진 인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언젠가부터는 남의 집안사정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고 안듣게 됩니다. 그런 얘기가 나오면 되도록 자리를 피한다던지...
지금 40대 30대 그리고 86세대들만 해도 은근히 피해의식이나 애정걸핍 속꼬인게 좀 장난이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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