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티고지 전투 (1953.7.15~1953.7.16)
베티 고지는 6.25전쟁 당시 서부전선의 요충지로 북쪽으로는 육로뿐이라
중공군과 인민군은 손쉽게 병력을 투입할수있었지만 국군은
임진강을 도하해야하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라 베티고지는 반드시 사수해야하는 고지였습니다.
<베티고지 전투를 지휘했던 소대장 김만술 소위>
김만술 소위가 이끄는 국군 1사단 11연대 2대대 6중대 2소대는 베티고지 사수임무를 부여받고
35명의 소대원과 함께 베티고지로 투입됩니다.
김만술 소위의 소대가 투입될 당시 베티고지의 동봉과 중앙봉은 국군이 점령한 상태였으나
서봉은 아직 중공군이 점령한 상태였습니다.
김만술 소위는 전투에 앞서 소대원에게 이런말을 했다고합니다.
"비겁한 자는 평생에 여러번 죽지만 용감한 자는 오직 한번만 죽는다고했다. 군인이 용기를 갖지못하고
비굴하게 살아남는다면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두고 두고 남기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산다."
<베티고지를 묘사한 삽화>
김만술 소위는 서봉을 공격하였으나 국군의 병력은 36명 1개소대에 불과했고
중공군은 800여명 2개대대의 병력으로 이내 국군을 포위합니다.
하지만 김만술 소위는 포기하지않고 포위망을 탈출해 중앙봉으로 후퇴, 방어전을 실시합니다.
이후 18시간동안 고지를 9번 뺏고 빼앗기는 사투를 벌였고 다음 소대와 진지교대를 하는순간까지
고지를 사수하였습니다.
전투가 끝난후 소대의 생존자는 김만술 소위를 포함해 12명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공군은 314명이 전사하고 8명이 포로로 잡히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김만술 소위는 베티고지 전투의 공로로 2계급 특진과 함께 태극무공훈장,미군 십자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이건 사병 모두에게 훈장을 줘야지...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건 사병 모두에게 훈장을 줘야지...
일반 사병 즉 징집병에게도 훈장및 대우를 해줬는지 저도 궁급합니다
전역한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사단가가 기억나네~~
사병은 막걸리한잔..
미24사단을 인민군에 밀고하는 바람에 24사단이 와해되면서 24사단장인 딘소장이 포로로 잡힘
딘소장 구출작전에 미특수부대와 우리나라 기관사들이 투입되었지만 인민군 매복에 걸려 전원 전사
결국 인민군 6사단은 전라도 지역 무혈입성....후에 즌라디언 한규수는 체포되어 처벌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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