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명령, 1분대 진입!'
최윤례(26)가 애마 '야마하 R1'에 오른다. 거친 굉음과 함께 바이크가 앞으로 튕겨나간다. 총알같다. 시속 270㎞로 질주한다. '바람의 여인'이 된다. 희열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면 가속기에 얹혀진 그의 발에는 더욱 힘이 실리고, 온 정신은 '시간과의 전쟁'에 쏠린다. 단 1초, 2초가 '애마처녀'의 환희와 아쉬움을 가른다.
그의 공식기록은 1분16초. 태백준용서킷 한바퀴를 도는 시간이다. 트랙은 직선과 곡선으로 돼 있다. 커브길 속도가 기록단축의 관건이다. 시속 180㎞ 정도로 곡선주로를 달려야 1분대에 진입할 수 있다. 신체 균형감각은 물론 자신감과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속도다.
"10월 두번째 출전한 로드레이스챔피언십 7차전을 통해 코너워크에 자신감을 되찾았어요. 첫번째 출전에서 의욕이 앞서 미끄러지고 말았는데, 연습할 때마다 그 지점에만 오면 저 자신도 모르게 쭈삣거리는 거예요. 입상한 것보다 두려움에서 해방된 것이 더 기뻐요."
그는 7월 로드레이스챔피언십 3차전이 처녀 출전이었다. 비 때문에 노면이 젖었지만 시속 180㎞로 코너워크를 구사했다. 넘어졌다. 그의 과감함은 화젯거리가 됐다.
그러잖아도 여성라이더로서는 최초로 슈퍼바이크(배기량 1,000㏄ 이상 바이크)를 타고 출전해 이목을 끌고 있던 터였다.
그가 전문 레이서의 길로 접어든 것은 올 5월. 이전까지는 마니아에 불과했다. 짱라이더스팀과 만나며 힘과 스피드, 담력에 인생을 내건 레이서에 빠져들었다. 레이서로 나선 뒤 그는 두번 사고를 당했다. 그때마다 바이크가 상당히 손상됐지만 부상은 입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바이크 관계자들의 분석은 다르다. 몸의 유연성 덕분이란다.
사실 그는 만능 스포츠우먼이다. 특히 수상스키·스노보드는 프로급이다. 이들 운동은 힘보다 세기를 요해 몸의 유연성을 길러준다. 스턴트우먼 활동도 도움이 됐다. 그는 요즘 드라마 <그녀는 짱>에서 강성연 대역으로 듀카티를 모는 보스의 딸로 나왔다. 한·중 합작 드라마 <북경 내 사랑>에서는 베이비복스의 김이지 대역으로 고수와 함께 모터사이클 할리 데이비슨을 탔고, 영화 <똥개>를 통해서는 엄지원 대역으로 스쿠터를 타고 골목길에서 정우성을 뒤쫓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담한 속내와 달리 얼굴은 곱다. 그래서 그를 처음 보는 이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바이크〓폭주족'이라는 편견을 지닌 이들은 혼란스러워한다. 수려한 용모에 늘씬한 몸매(176㎝·52㎏)를 지닌 저 사람이 정말 바이크 전문 레이서인가 하고 말이다. 실제로 그는 20대 초반에 모델로 활동했었다.
적성에도 안 맞고 생각보다 일이 어려워 1년가량 활동하다 모델생활을 접었단다.
"열일곱살 때 우연히 친구의 탠덤 뒷자리에 타게 됐는데 곧바로 스피드의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스무살부터는 바이크에 거의 미쳐 살았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장만한 바이크를 망치로 다 부숴놓을 만큼 아버지가 반대하셨죠."
그는 식구들의 만류에 개의치 않았다. 부천에서 서울로 올라와 돈을 벌며 혼자 살면서 라이딩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라이딩을 배우기 위해 자존심도 팽개쳤다. 막가파로 나갔다. 20대 라이더들에게 바이크는 자산과 다름없다. 그러니 자기 바이크를 타 보라고 쉽게 내줄 리 만무하다. 그는 딱 한번만 타 보자고 라이더들에게 떼를 썼다. 무엇이든 배울 시기를 놓치면 절대 배울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그의 신조가 발동한 결과다.
이제는 식구들의 걱정도 많이 잦아들었다. 바이크를 자기 생명보다 더 아끼는 그의 모습에서 스스로 사고예방에 힘쓰리라는 믿음이 생겨서다. 그는 YZF(야마하)-R1 2대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 바이크 생산업체 야마하가 후원해줬다. 여성레이서라는 특징 말고는 아직 애송이에 불과하지만 가능성을 보고 스폰서십에 나선 듯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의 가슴엔 용광로가 끓는다. 정상을 향한 열정과 "야, 남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라는 탄성을 듣고 싶은 바람이 용광로를 태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