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종가 “현충사 왜나무 ‘금송’ 치워달라” 13일 문화재청에 진정 ~.
이 장군 종가와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진정을 과거에도 제기했으나 반려됐고, 이날 다시 접수 예정 ~. 광복절 72주년, 내년 이순신 장군 순국 및 임진왜란 종결 47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더 이상 금송을 방치해둘 순 없다’ ~.
1970.12월, 청와대의 금송을 박정희 대통령은 사당 앞 오른편에 직접 헌수 ~.
문화재청은 2011년 “해당 금송은 1970년대의 시대성과 박 전 대통령의 기념식수 헌수목이라는 역사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
‘이순신 종가’ 종부 최순선 씨 “금송은 그 자리에 어울리지도 않고 역사성에도 맞지 않는다”며 반박 ~.
> 문화재청은 조경. 금송 뿐만 아니라 영정도 교체해야 ~~.
'호국의 성지' 현충사에는 '부끄러운 비밀' 한 가지가 숨겨져 있다. 현충사의 조경에서부터 본전의 이순신장군 영정 등이 친일 잔재로 둘러싸여 있어 ~.
비전문가가 역사적 고증 없이 '작업'
현충사는 1706년에 충청도 유생들이 숙종 임금께 사당 건립을 상소해 최초로 세워졌다. 그 후 현충사는 우리의 국난만큼이나 숱한 수난을 겪었다.
1865년에는 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을 내리면서 서원을 겸하고 있던 현충사의 문을 일시 닫아야만 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20년간 영정조차 내걸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다가 1932년 국민 성금을 모아 현충사를 보수하고 다시 영정을 모시게 되었다. 지금의 모습이 갖춰진 것은 1966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현충사의 경역을 확대하고, 성역화 작업을 하면서부터다. 그 후 해마다 4월28일 충무공 탄신일에는 정부 주관으로 제를 올리고 있다.
국내 전통 조경의 최고 권위자이자 문화재관리국장을 역임했던 정재훈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조경학과 석좌교수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주최한 '2008년 사적지 조경 학술대회' 발표 논문을 통해 "(1966년 현충사 성역화) 당시는 한국 전통 조경을 연구한 사람도 없고, 설계하고 시공하는 사람도 없는 시기여서 상당히 일본 조경 양식으로 만들어지고 일본 정원에 서는 석등까지 배치되었다"라고 서술 ~.
특히 현충사의 연못은 일본식 조경의 축소판이다. 현충사 경내 우측에 자리 잡고 있는 연못은 1972년 성역화 작업에 따라 인공으로 조성되었다. 우리의 전통 연못은 보통 정방형으로 만들고 그 안에 정자를 세운다. 그런데 현충사의 연못은 긴 타원형이다. 크게는 위 연못과 아래 연못으로 나뉘어 있고, 연못 사이를 가로질러 아치형 돌다리가 놓여 있다. 가운데에는 인공 섬을 만들었다. 전형적인 일본 양식이다. 정원 중심부에 연못을 파서 연못 안에 섬을 만들고 다리를 놓아 섬과 연못 주위를 돌아다니며 감상하는 '회유임천식' 양식은 대표적인 일본의 조경 기법이다.
호안(호수의 기슭)도 일본 양식을 그대로 사용했다. 일본의 전통 방식은 수면과 차이가 없이 돌을 눕히고 세워나가서 호안에 물이 넘쳐흐르는 인상을 준다. 일명 '들여쌓기식'이다. 현재도 일본 조경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11세기에 쓰인 일본의 정원 지침서 < 작정기 > 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다. 현충사 연못의 호안도 수면과 차이가 거의 없이 돌을 눕히고 세워나간 전형적인 '들여쌓기식'이다.
반면 우리의 전통 양식은 '바른 층 쌓기'이다. 돌의 면 높이를 같게 해 가로 줄눈이 일직선이 되도록 쌓는 방법이다. 돌의 생김새에 따라 면 높이를 맞추어서 쌓기도 한다. 호안 일부를 전통식으로 바꾸면서 지금은 국적마저 상실한 모습이다.
현충사에는 또 일본식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현충사 본전 앞에 있는 '금송'이다. 금송은 원산지가 일본으로 일본 천황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주로 신궁 같은 곳에 심어져 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 조경담당 비서관이던 오휘영 한양대 도시대학원 명예교수가 2000년 < 환경과 조경 > 에 게재한 '우리나라 근대 조경 대동기의 숨은 이야기(4)'에서 그 내막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현충사 본전 앞의 대통령 기념 수목인 금송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하기로 하자. 현충사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셨던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 동측 창 앞에 오래전부터 심어져 있던 수형이 매우 훌륭한 금송을 헌수하겠다는 뜻을 밝히셨고, 지시에 따라 뿌리돌림을 한 후 현충사 본전 앞에 식재하게 되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박대통령은 경북 안동 도산서원 앞과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맞서 장렬하게 산화한 칠백의총의 위패가 안치된 충남 금산의 종용사 앞에도 청와대 금송을 옮겨다 기념 식수했다. 청와대의 금송은 일제 강점기 일본군 장교가 최초로 심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다른 나무로 대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으나 '박정희 대통령 기념 식수'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묵살되고 말았다. 조경 전문가들은 청와대 조경도 조선 총독이 조성한 '일본식'이라고 말한다.
금송 이외에도 현충사에는 일본산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다.소나무 전문가들은 현충사 경내 곳곳에 심어져 있는 반송도 원산지가 일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이전에 조성된 전통 정원에는 반송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현충사 본전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도 문제이다. 지금의 영정은 1973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여러 개였던 충무공의 영정을 하나로 통일해서 그린 '국가 표준 영정'이다.
충무공의 영정을 그린 사람은 월전 장우성 화백이다. 장화백은 1941년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 푸른 전복 > 으로 총독상을 받았다. 그는 또 일제가 군국주의와 황국 신민화를 고취시키기 위해 연 전시회에 '일제를 찬양 고무하는 작품'을 출품하는 등 친일 행적을 했다. 1943년 6월16일자 매일신문은 장화백이 조선미술전람회 시상식에서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총후 국민예술 건설에 심혼을 경주 매진할 것을 굳게 맹세했다'라고 보도하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groups/430477177302137/permalink/495354174147770/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