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식 2.0 TGX 은색 티뷰론
널 처음 만난건 몇달 전 여름이었지..
난 손에 기름 묻히기 좋아하고 차와 바이크를 좋아하던 철없던 19살이었어
널 처음 보았을 때, 그의 옆에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
너의 날카로운 눈빛이며 잘빠진 라인, 웅장한 머플러 소리에 나는
널 꼭 내것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
너의 전주인과 친분이 있던 나는 한 동네에 살았기에 자주는 아니라도 가끔씩 만났었지
언젠가 그와 같이 소래포구를 가던 그 날 난 너를 데려가고 싶다고 그에게 말했어
그와 너가 함께했던 시간을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흔쾌히 승낙했어
난 그때 너에게 속삭였지 넌 이제 내꺼라고 내가 다른 어떤 티뷰론보다 예뻐해 주겠다고
그와 있을때보다 아끼고 사랑해 주겠다고
기계와는 정이 들 수는 없다고 생각하던 그는 날 보며 픽 웃었지
한달 뒤, 그는 나에게 명의이전을 해주러 안양시청으로 와서 내게 키를 넘겨주며 좀 씁슬한
눈치였지. 너와 함께한 시간이 꽤나 길었으니 아쉽기도 했었던 것 같았어
아직 면허가 없던 난 어머니에게 면허를 따고 탈테니 명의이전만 해달라고 졸랐어
그래서 여름햇살이 쨍쨍 내리쬐던 그 날 오후 난 너를 집 앞으로 데려왔었지
그리고 난 널 목욕시켜주며 앞으로 함께할 행복한 나날들을 생각하며 미소지었지
널 데려오고 나서 내 마음은 바뀌었어 면허따위 나중에 따자고 설마 무슨일이 생기겠냐고
생각했었지.. 그게 앞으로 너와 내게 얼마나 큰 화를 부를지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어
우린 많은 곳을 놀러 다녔어 오이도, 소래포구나 제부도같은 바다에 많이 갔었지
열아홉 학생의 신분인 나는 기름값과 소모품값을 감당하기 조금 버거워서 가끔 네게 투정도 부렸어
아반떼는 2만원 넣으면 온동네를 다 돌아다니는데 2.0이랍시고 왜그렇게 많이 먹는거야
기름통에 구멍이라도 났나..
그리고 같은동네에 자세나는 티뷰론들을 보며 돈이 없어서 더 예쁘게 꾸며주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어
하지만 넌 내눈에는 지금 그대로의 모습도 예쁘고 사랑스러웠어 넌 내 전부라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었으니까
삶이 고달프고 힘든 날이면 난 너와 화랑유원지에 가서 슬픈 음악을 들으며
달빛이 비치는 호수를 바라볼 땐 엿같은 세상도 잠시나마 잊어버릴수 있었어
어느 날 너에게 게이지를 달아주려고 동네에 튜닝샾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구경하고 있는데
미캐닉이 나를 잠깐 불렀어 그리고 혀를 차며 내게 말해주었어
"이 차 하우스 차예요.. 얼마주고 데려왔어요? 아직 어려서 잘 모르나보네.. 타다가 잘못하면
죽을수도 있어요 하루빨리 헐값에 팔아버려요.."
난 뒤통수를 무언가로 얻어맞은듯 머리가 어지러웠고 그리고 너에게 조금씩 정이 떨어졌어..
그는 나를 속이고 널 데려가게 했던 거였지.. 난 너의 멋진 모습만 보았지 그 뒤에 어두웠었던
모습이 있을줄은.. 니가 그렇게 큰 상처가 있을줄은 생각지도 못했었어
널 애지중지하고 아껴주었던 그만큼 나도 너와 그에게 크게 실망했어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며칠 지나자 난 그런것 따윈 잊어버렸어 그리고 생각했어
어차피 널 데려왔으니 더이상 니 심장이 뛰지 않을때까지 팔지 않고 데리고 있어야겠다고
난 언젠가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기계는 거짓말을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
널 데려온 첫날 아는 형님 공업사에 이것저것 손보러 갔을 때 핸들이 왜 이렇게 무겁냐고
얼라인먼트로 될게 아닌것 같다고 그 사람은 말했었지 난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
그러던 어느 날 난 학교에 가려고 널 데리고 나와 주유소로 가려던 참에 왼쪽 앞 타이어에 바람이 없는걸 보고
바람도 넣고 기름도 넣어주려고 룰루랄라 오디오를 켜며 주차장을 나와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데
그런데 그 날따라 조금 기분이 이상했어..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랄까.. 그런 기분이 엄습해왔어 그 생각도 잠시 파란 아반떼가 뒤에 누구라도
쫓아오는 듯 머플러가 빠질 듯 굉음을내며 오다가 같은 신호에 섰을 때 승부욕은 들끓었지
바로 쉬프트다운 하고 나도 엑셀레이터가 부러져라 밟아댔어 니 비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아반떼를 제끼고 유턴을 해서 충전소에 가는데
바람이 없는 앞타이어 탓이었는지 넌 빠른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
그때 마침 핸들이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돌아가네.. 난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는 빙글빙글 돌며
앞에 신호대기하던 차에 그대로 꽃아버렸어 난 그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마음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쳤어
뺑소니를.. 다른 사람 이야기일줄만 알았던 뺑소니를 치고서 난 그때서야 정신이
들었지.. 차가 내 손에 들어오자 어리고 철없던 마음에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던 나는 그제서야
망가지고 부서진 너를 보며 닭똥같은 눈물만 뚝뚝 흘렸어.. 죄짓고는 발뻗고 잘수 없단 생각이 들어서 일단
경찰서로 가서 자수를 했어.. 며칠 뒤 공업사에서 쓸쓸히 먼지를 맞고있는 널 찾아가 핸들을 안고 세상이
다 떠나갈듯 소리지르며 서럽게 울었어
하우스차를 넘겨준 그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결국은 다 내 잘못이니까.. 후회해도 없던 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니까..차라리 내가 크게 다쳐서 병원 신세라도 졌으면 조금이나마 잊을수 있을 것 같았어 하지만 난 가해
자의 입장..뺑소니를 친 천벌을 받아도 싼 놈이 되었으니까.. 그럴 복에 겨운 처지도 되지 못했어
주위 사람들은 내게 이번 일도 큰 일이고 하루빨리 용품 떼서 한푼이라도 건지고 빨리 폐차하라고 말했지
하지만 여태까지 준 정은? 내가 쏟아부은 사랑은.. 난 기계 아닌 사람에게 기대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
어떤 사람들은 한심한 자식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하며 갖은 비난만 해댔어 난 앞으로 다시는 차를 타지 않겠다는
아프고 슬픈 다짐을 했어 그리고 다시는 기계따위에 정 주지 않겠다고 말야..
그리고 난 생각했어 어린 나이에 괜한 욕심을 부렸나.. 난 단지 차가 좋아서.. 비록 어린 나이지만
이것저것 만지고 예뻐해주고 꾸미는 것이 나의 삶에 유일한 행복이고 낙이었으니까
앞으로 내게 남은 합의,폐차..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법적으로 남아있는 많은 숙제들은
내 가슴에 지울수 없는 상처를 남겼어.. 길을 걷다가 티뷰론이 지나가면 눈물이 핑 돌고 그 날 밤은 악몽을 꾸
며 잠을 설치고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고..
하루하루 고통스런 나날들을 살며 난 지나가버린 행복했던 날들을 회상하는 일로 하루를 보냈어
지하주차장에서 아픈 모습으로 쓸쓸히 서 있는 너를 볼때면 가슴이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지는 것 같아
사람이 심장은 뛰고 있는데 팔다리가 잘렸다고 죽을수는 없는거잖아 그건 너무 잔인하지 않아?
이제는 자나 깨나 하루가 걱정과 한숨뿐이고.. 너는 내 전부였는데 내 삶의
희망이었었는데.. 힘들 땐 함께 달려줄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었는데.. 네게 더 잘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에도 길에서 너와 닯은 모습의 티뷰론만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것 같아..
차에 타려고 경보기 리모컨을 누르면 뾱뾱 거리며 반겨주던 네 모습이 떠올라서 아직도 난 가슴이 저려..
난 그렇게 너를 떠나보내던 날 견인차에 매달려 멀어져가는 너의 뒷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아쉽고 서운한 마음에 옆에 씁쓸한 표정으로 서 계신 어머니 손을 잡고서 닭똥같은 눈물만 흘리며 서럽게 울었어
내 머릿속에서 너라는 기억을 애써 지우려 노력해봐도 그게 잘 안되네..
겨울만 오면 도지는 거짓말같은 마음의 병이 나을 때 쯤이면 너라는 존재를 내 가슴속에서 모두 잊어 버릴수 있을까..
이상 철없는 달빛의라이더의 씁쓸한 기억으로 남은 티뷰론 시승기였습니다
혼잣말 처럼 쓴 글이니 반말로 쓴 점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처럼 차를 좋아하지만 조금 어린 친구들..순간의 철없는 생각으로 상처받는 일 생기지 않도록
모두 안전운전, 기본에 충실하시고 아끼는 애마 오래오래 잘 타세요
차주의 사랑이 느껴지는 감동적인 글입니다.
카센터 갈때면 우리 붕붕이 아야해서 병원간다고 말하곤했는데...
저도 10여년된차인데 엄청 오래타고싶어요...
관리를 좀 잘해놔서 간혹 차 잘모르는분이 타고선 새차냐고 묻기도합니다 ㅋㅋㅋ
이제는 차가 애완동물이자 친구가 된거같아요
언제부턴가 맘 심란하면 지하주차장가서 혼자 음악듣고오는 버릇이 생겼는데...
친구도되고 애완동물도 되고 저의 안식처가 되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