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나라, 튀르키예
한국 사람이 ‘코리아’보다 ‘대한민국’이란 호칭을 더 좋아하듯 터키도 ‘투르크’라는 호칭을 더 선호한다. 그래서 국호도 튀르키예로 바꿨다.
그 튀르키예가 바로 고구려와 손을 잡았던 돌궐로, 수나라와 당나라를 공포로 몰았던 우리의 혈맹이었다.
거기다 연개소문이 돌궐의 공주와 결혼했다는 동화 같은 얘기까지 들린다. 6·25전쟁 때는 터키에서 1만 5천 명이 참전해 3천 명이 넘는 군인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했다.
놀라운 것은 그들 대부분 자원병이었으며 오늘날까지 생존자가 남아 있다. 이들은 우리와 같이 우랄알타이어를 사용해 유사한 말이 많으며 유럽인임에도 불구하고 몽고반점을 가지고 있다. 음식, 문화, 다혈질 성격, 열정적으로 노는 것까지 닮은 점이 많다.
2002년 월드컵 3·4위전 때다. 자국에서 보지 못한 대형 터키국기가 한국의 관중석에서 펼쳐지는 순간, TV를 지켜보던 7천 4백만 터키인들이 기립해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그 무렵 한국에 대한 사랑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한국인들에게 밥값과 숙박비를 받지 않아 배낭여행을 다녔던 대학생들은 공짜로 여행을 다녔다라는 뒷얘기도 들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100여 명의 터키인이 사비를 털어 독일까지 날아가 붉은 악마 유니폼을 입고 한국을 응원했다고 한다.
급기야 튀르키예가 한국산 탱크까지 수입하면서 고구려 때의 군사적 동맹을 다시 이어나갔고 스마트폰 매출 1위는 삼성전자,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보스포러스 제3대교는 현대건설이 맡아 경제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드라마는 물론 K-POP까지 터키 젊은이들이 따라 부를 정도로 이스탄불은 한류의 중심지가 되었다. 엄청난 아미 숫자가 그것을 말해준다.
아주 오래 전 콘야의 메블라나 박물관에서 중년의 터키 남자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혹시 터키가 한국 전에 참전한 것을 아십니까?”
“그럼요. 우리가 얼마나 터키인에게 감사하는데요.”
삼촌이 참전용사라고 하면서 함박 미소를 지으며 내게 악수를 청했고 난 힘찬 악수에다 포옹까지 더해 진한 형제애를 확인했다.
세월호 참사 때도 진도로 달려가 실종자 가족들에게 케밥을 만들어준 이들도 튀르키예인이 아닌가.
아마 투르크인은 한국인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DNA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지금 그 튀르키예에 규모 7.8 대지진이 일어나 아수라장이 되었다.
가슴 졸이며 TV 화면을 보고 있는데 엄청난 재앙에 눈물이 난다.
남 일 같지 않다. 이젠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고 도울 차례다
어떻게 해야할 지 나도 고민해보겠다.
우선 기도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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