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무환 일병 군번 9287057
檀紀 4331년의 나이 일흔 두 살
그는 스물 세 살때 국방경비대에 들어가 복무했으며 인민군에게 의용군으로 끌려 갔다가 빠져 나온 뒤 檀紀 4286년 1월 5일 국군에 스스로 들어가 6.25때 싸웠으며 같은 해 7월 20일 금화싸움에서 인민군에게 붙잡혔다.
檀紀 4256년부터 4318년까지 서른 두 해 동안 아오지,온성 따위의 탄광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6.25가 끝난 뒤 장무환은 숨진 것으로 되어 국립묘지에 묻힌 것으로 됨.
檀紀 4331년 8월 10일 북조선에서 빠져나옴.
檀紀 4331년 9월 30일, 대한민국 정부의 도움 없이 '祖國'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북조선을 빠져나와 서울방송 취재진과 만난 장무환은 제3국에 있는 대한민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대사관에 전화를 하는 그의 손은 전화를 마칠 때까지 크게 떨고 있었다
제 3국에 있는 대한민국 대사관과 통화한 이야기
대사관:말씀하세요.
장무환:난,국군 포로 장무환인데...
대사관:네,그런데요.
장무환:장무환인데..거기서 좀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대사관:여보세요,무슨 일로 전화 하셨죠?
장무환:한국 대사관 아닙니까?
대사관:맞는데요.
장무환:맞는데..다른 게 아니라..내가 00에 지금 와 있는데
좀 도와 줄 수 없는가,이래서 묻습니다.
대사관:(한숨을 내 쉬며) 없죠.
장무환:북한 사람인데 ...내가...
대사관:아,없어요.(전화를 끊는다.)
장무환:국군포론데....
기관총을 쏘는 국군,그는 촬영기쪽을 바라보는듯 하다가 바로 무엇인가에 맞고 뒤로 쓰러진다.두 번째 그림에서 그보다 먼저 쓰러진 병사가 보인다.세번째 그림에서 기관총을 놓치며 몸이 뒤로 넘어갔다.그 사이에도 총탄은 땅에 박히며 흙먼지를 일으킨다.네 그림의 오른 쪽 아래로 1/3쯤 되는 곳에 총부리가 보인다.이 총을 가진 사람은 그때까지도 살아 있었던 듯.네번째 그림에서는 기관총을 쏘던 병사의 온몸이 뒤로 넘어가자 그 곁에 쓰러진 병사의 얼굴까지도 보인다.
- 장무환의 이야기-
거기 있는대로 모조리 총 다 쏘고 수류탄 다 뿌리고 그러다보니 시체가 쫙 널렸는데 재간이 없더구만.이제 난 죽었다고 하고 그랬는데 쌩 하니 양쪽에서 수류탄이 터지니까 정신이
없지 뭐. ...............강원도 금화싸움 때
6.25가 끝난 뒤 이야기.
54년도라 그랬던가.그게 들리더란말야.판문점에서 포로 교환하는데 뭐...
작년에 거기서 포로교화 한 것도 그러니까 인민군대 있던 사람이 제대되어 와서 우리한테 그런 말 하더란말야.
포로교환하는데 국방군 사람들,인민군 애들 있는 판문점에서 옷도 다 벗어 내던지고
그랬다고 말야.
그랬더니 야,그랬는가 포로교환 했긴 했구만
그러구 말았지.우리야 계속 일하니까 포로교환인지 뭔지 알게 뭐야
그래서도 행여나 포로교환 하는가,계속 기다렸단말야
기다리는데 포로교환은 끝났다 하는데 뭐.
백?두,백?두란 사람이 있었어
백?두..그 이름은 알고 있었지,그 사람도 죽었어.
그 사람도 말하면 정말....
그 사람 죽은 지,작년에 죽었던가.아직 첫제사 안지냈을 거야.
?렬이는 금년에 죽었고.다 먹지 못해서,나이 많으니까 아무리 산에 가서 일해도
농사를 좀 지어도 그냥 아,가족이 있다보니까.먹다보니 뭐 배급은 안 주지
다 허약해서,몸이 약해서 사망했는데
두만강 건너 올 때 그랬지요.
내 이제는 북한에 가도 이제는 안 된다.쟤들한테 걸리면 안 되지
죽지 뭐,그래서 큰 맘 먹었지.하여튼 난 고향에 가 죽는다....고향에...
싸움을 마치기로 한 인민군과 국군,UN군은 서로 포로들을 돌려보내기로 했다.이때 인민군은 국군포로 8,333 사람만 돌려보냈고 국군과 UN군 쪽에서는 인민군 포로 75,823 사람을 돌려보냈다.그러나 戰史家들은 북쪽에서 돌려보내지 않는 국군포로는 어림잡아 50,000 사람쯤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장무환씨가 알고 있는 국군포로
박?공(70,경북 영일),이?인(70,경남 마산),우?룡(69,충청도)
왕?동(69,지리산 부근),김?권(69,전라도),권?화(69,?)
리?회(70,?),황?로(75,?),오?기(69,?),이?만(69,?), 심?훈(68,?)
권?식(73,대구),박?근(69,충청),최?기(70,경상),정?식(70,경북)
이?길(70,경기도),최?환(74,대구),신?석(70,서울),유?근(71,?)
허?록(72,강원도),이?오(70,경북 청도),김?규(68,경상도)
이렇게 목숨을 걸고 북조선을 빠져나와 조국의 대사관에 도움을
바랬지만 그는 조국의 대사관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그는 그 뒤로 민간단체와 서울방송의 취재진 그리고 고향에 있는 가족들의 도움을 받는다.
장영욱 ( 아들)-장무환이 싸움터로 떠날 때 영욱은 여덟 살.
미국 사람들은 유골도 파헤쳐 가려고 돈을 그만치 투자하는데
지금 사람들이 살아가지고 제3국에 떠돈다는데 그것도 칠십 두 살
먹은 노인이 3국에 떠돈다는데 어떻게 손 하나,정부에서는 까딱 안 하고 이럴 수 있냐고...
장영욱이 그의 아버지를 모셔오려고 여러 기관에 전화를 수백통 했지만 많은 담당자들은 뒷짐을 지고 물러나 앉았다고 한다.
그리고 밤낮으로 뛰어 다녀서 그가 겨우 받아낸 것은
'북한인접촉허가서'.
국군에 스스로 들어가기 전의 모습은 앳되어 보인다.그 뒤로 인민군들과 싸우다 그들에게 잡힌 뒤 마흔 다섯 해를 힘든 일에 시달려야 했다.그리고 산을 두 개 넘고 두만강을 건너 '조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 내던져진 일흔 둘의 모습.가족들과 그 밖의 몇 몇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마흔 다섯 해를 지내면서 아내도 많이 늙었다.지아비가 북녘에서 막일에 시달릴때 아내는 남쪽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느라 온갖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죽었다는 지아비의 연금으로 힘겹게 살아야 했던 아내는 지아비가 살아있다는 말에 기쁨도 놀라움도 아닌,뭐라 말할 수 없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물었다.북녘에 새로 맞이한 아내가 있는지,그리고 다시 낳은 아이들이 있는지....그러나 남편은 새로 맞이한 아내와 낳은 아이는 없다고 속였다.그리고 얼마 뒤 아들(영욱)이 전화로 다시 그것을 물었을 때 북쪽에도 자식이 있다고 털어 놓는다.
그는 많은 어려움을 겪어가며 다른 곳으로 옮겼다.그때까지 그를 숨겨주었던 사람은 가족들에게 비싼 '몸값'을 달라고 을렀고 그래서 많은 돈을 준 뒤에야 그는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檀紀 4331년 9월 30일.몇 차례의 고비를 넘기며 그는 가족, 민간단체 그리고 서울방송의 취재진들의 도움으로 겨우 '祖國'으로 돌아왔다.
지금 북쪽에는 아직도 우리의 국군포로들이 어렵게 살아가고 있고 그들이 낳은 아들과 딸들도 그들 못지 않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간다고 한다.짐승보다 더 못한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는 이들의 앞날은 어둡기만하다.붙잡히면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바로 두만강 건너에 두고 온 딸과 아내가 있기에 그 곳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
그의 아버지도 국군포로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지난 4331년 양력 10월 11일 서울방송에서 내 보낸 - 그것이 알고 싶다.-
국군포로 장무환. - 50익간의 북한 탈출기- 를 간추린 것입니다.화면은 조금씩 손을 다시 보기도 했지만 방송한 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했습니다.
요즘 몇 몇 돈 많은 사람들의 아들들과 높은 자리에 있는 몇 몇 사람들의 아들들이 큰 돈을 줘 가며 病에 걸린 것으로 꾸며 군대에서 빠져나와 사람들이 떠들썩하다.한 두 차례 있었던 일도 아니고 알게 모르게 꾸준히 저질러 온 짓 같다.조국 대한민국은 이들을 떳떳하게 꾸짖을 수 없을 것이다.어쩌다가 싸움이 나서 이들이 적에게 붙잡혀 온갖 어려움을 겪더라도 본체만체할 것이 '뻔'한 일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이런 조국에 그 값진 젊음을 바치라고 그 누가 앞장서서 외칠 것인가.그 따위로 국군포로들을 내팽개치려면 차라리 傭兵[용병]을 써라.'조국'의 이름으로 젊은이들을 죽음의 싸움터에 몰아 넣고는 싸움이 끝난 뒤에 본체만체하거나 살아남은 가족들에게 연금 몇 푼 쥐어 주는 것으로 입을 씻을 생각이라면 말이다.
USA가 왜 힘이 세고 돈이 많은 나라인지 생각해 보라.적에게 붙잡힌 포로들을 데려오려고
그 포로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킬 마음가짐이 되어 있다.비로 그것이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겉치레가 될지라도.USA의 국민들에게는 그것이 큰 자부심이 되고 자랑거리가 되며 그곳의 국민이라는 것에 큰 힘을 얻는다.그들은 그 자부심이 넘쳐 때에 따라서는 오만방자하기까지 하다.그런 그들과 남의 나라 눈치만 보기에 바쁜 국민들과 견주어 보라.
누가 더 일을 잘 하고 자신감을 가질지.
국민들에게 이런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은 바로 국민의 심부름꾼이자 나라의 얼굴인 政府[정부]다.정부가 국민들을 챙겨주지 않고 포로들을 찾아내오지 않으며 남의 나라에 휘청거리면 어느 국민이 그 정부를 믿고 따를 것인가.
J.F Kennedy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묻지말고 국민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그는 총에 맞아 죽었다.대포에 안 맞아 죽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국민들이 잘 살면 없어도 되는 것이 國家다.국민들이 제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보다 더 잘살게 하려고 이루어진 것이 국가다.그러면 국가라는 것이 먼저 국민들을 잘 살게 해 주어야 한다.그 國家라는 것을 꾸려나가려고 국민들에게 힘겨운 짐을 지운다면 주인과 손님이 바뀐 것이다.지금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너무 힘겨운 짐을 떠 안고 있다.
당파싸움에 얼이 빠진 몇 몇 국회의원들...
썩어빠진 몇 몇 공무원들...
돈에만 눈이 먼 몇 몇 의사들...
제 주머니만 생각하는 몇 몇 事,企業家[사,기업가]들...
피땀 흘려 농사 짓고 고기 잡고 일하는 사람들은 빚에 쪼들리고
공놀이 잘하고 얼굴 반반하고 인기를 좀 끄는 몇 몇 사람들은 떼돈을 벌고도 세금을 떼먹기도 하는 나라.빨리 바로 잡지 못하면 내려 앉는다.
야구공 ,GOLF 공 잘 가지고 노는 사람보다 감자 한 알,달걀 한 알을 가꾸어낸 사람들이 더 대접받는 곳이야말로 참된 '복지국가'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