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FR 고급 세단으로 현대 브랜드 가치를 상승 시켜야 하는 책임을 지고 태어난 차. 차의 이름처럼 국산 FR, 그리고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현대 고급차의 ‘신기원’이 될 수 있을까. 제네시스는 현대의 첫 FR이기에 이번 시승에서 후륜구동계의 완성도를 중점적으로 느끼고자 했다. 그리고 현대가 개발중인 FR 스포츠카 코드명 BK가 제네시스와 동일한 플랫폼을 사용하기 때문에 BK의 포텐셜에 대한 부분도 체크했다.
FR 프로포션
차를 처음 본 인상은 ‘기존 국산차와 다르다’ 였다. 일단 FR 구성에 기인한 프로포션의 차이가 그 이유다. BMW 같이 앞 오버행이 극단적으로 짧진 않지만 국산 FF세단과 비교하면 분명 짧다. 거기에 차와 비례가 맞는 적당한 휠 하우스 크기까지 풍채와 실루엣은 수입 경쟁 모델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다.
성의 있게 만든 흔적
차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짜임새 있게 차 거의 전체 하부를 덮는 언더커버와 알루미늄 후드, 트렁크에 탑재된 배터리 등 구석구석 신경 써서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쇽업쇼바 마운트 등도 잘 만들어 졌다. 8기통의 탑재를 고려해서인지 엔진룸의 공간은 넉넉하다. 커버를 벗기고 살펴본 엔진은 상당히 낮게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커버를 씌운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엔진룸이라 그런지 커버를 벗기고 보면 늘어선 배선 등이 어지럽다.
쾌적한 크루징 성능
일단 고속도로 크루징은 쾌적하다. 시승차는 3.3리터였지만 파워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크지 않다. 엔진 소음, 풍절음, 타이어 소음 모두 잘 억제되어 있다. 하지만 시속 200km 부근에 올라가면 불안하다. 차 앞뒤 전체가 위로 뜨는 듯한 기분이다. 특히 차 후미는 위로 떠서 좌우로 흔들린다. 공기저항계수는 0.27이라는 낮은 수치를 달성했지만 적당한 다운 포스를 얻어내는 에어로 다이나믹 성능은 취약하다. 시속 200km를 무난히 돌파해 낸다는 것은 단지 엔진 성능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시속 200km급 섀시, 서스펜션, 에어로 다이나믹, 타이어 성능 등을 패키지로 갖추어야 한다. 에어 서스펜션이 달린 모델의 경우 고속 주행 시 차의 높이를 낮춰준다. 그렇다 해도 일단 에어로 다이나믹 성능이 우선 되야 할 것이다.
현대차의 특성은 고스란히 간직
제네시스는 분명 한계를 깨기 위해 만들어진 뭔가 다른 현대차지만 요즘 현대차에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느낌들은 여전하다.
첫째로 부족한 서스펜션 강성이다. 일단 제네시스 차체 강성 자체는 나무랄 데 없고 과거 현대차처럼 잡소리나 뒤틀리는 느낌이 없다. 하지만 무게 있고 강성 좋은 차체에 비해 서스펜션의 강성과 용량이 부족하다. ** 댐퍼와 스프링이 단단하고 무르고가 아니라 서스펜션을 구성하고 있는 각종 암류의 강성이나 부싱의 강성을 얘기하는 것이다. 제네시스의 경우 심폐능력 좋고 골격 큰 육상 선수가 얇은 발목에 하이힐까지 신었다고 생각하면 맞다.
빨리 달릴 수 있는 파워는 있을지 몰라도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불안함이 있다. 거기에 H급 타이어까지 생각하면 현대의 인색함이 더욱 아쉬워진다. 더 큰 문제는 시승차가 최저 사양 엔진인 3.3리터라는 것이다. 똑 같은 하체에 4.6리터 엔진이 올라가고 제로백 6초대, 최고속도 시속 250km 달성 예정인데, 그 경우 이 같은 아쉬움은 더 커질 것이다. 차가 믿음직스럽다는 느낌, 안정적인 주행성능이라는 느낌 등 주행품질은 차체 강성 및 서스펜션 강성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주행상황에 일반 운전자라도 이러한 느낌의 차이는 분명 느낄 수 있다.
둘째로 조작 느낌 또한 지적하고 싶다. 제네시스의 엑셀레이터 반응은 상당히 느리다. 페달을 밟으면 약간의 텀을 두고 rpm이 오른다. 덕분에 진중한 몸놀림으로 출발이 가능하고 편한 크루징을 할 수 있지만 이는 에쿠스에나 어울리는 세팅이다. 다이나믹 세단을 지향했다면 좀더 리스폰스가 빠르게 세팅을 바꿔도 좋을 것이다. 거기에 스티어링 느낌도 불만이다. 이 역시 요즘 현대차들의 공통된 문제인데 노면과의 단절이 너무 심하다. 제네시스는 전기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을 세계최초개발 적용했다고 한다.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을 쓰는 다른 현대차 보다는 고급스런 감각이지만 피드백 면에선 비슷한 느낌이다.
**스티어링휠로 전해지는 정보가 적으면 타이어의 소리나 차의 움직임으로 타이어나 차의 한계를 판단해야 한다. 운전은 ‘예측’해서 해야 하는 것인데 ‘반응’해서 하는 운전이 돼버린다. 고급차라 해도 이 정도의 단절감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준 높게 정보를 걸러 스티어링휠로 전달해야 한다. 게다가 빠르게 돌아나가는 상황에서도 무게감 없이 좌우로 쉽게 움직여 버리는 스티어링휠 특성 또한 위험하다. 차는 분명 더 돌 수 없는 상황인데 스티어링휠은 쉽게 돌아가기 때문에 운전자에게 착각을 일으키기 쉽다. 전륜구동이 아닌 후륜구동차이기 때문에 이런 착각이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널럴한 스티어링 기어비 또한 불만. 고속에서는 안정적일지 모르겠지만 시내주행에서는 스티어링휠을 상당히 많이 돌려야 한다.
브레이크 역시 용량의 부족
브레이크는 전형적인 고급차의 느낌이다. 답력은 단단하지 않고, 브레이크는 부드럽게 작동한다. 다만 브레이크 역시 그 용량이 문제다. 풀브레이킹시 락이 되고 또 ABS가 개입하게 되는 시점이 기대하는 타이밍 보다 한박자 빠르다. 딱 잘라 제동력이 안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차의 무게나 사이즈에 비해 브레이크 용량이 작다는 느낌이 든다.
시승차인 3.3모델은 앞쪽에 외경 320mm 브레이크 디스크에 1피스톤 캘리퍼를 장착했다. 북미에 수출되는 8기통 4.6리터 모델의 경우 디스크외경은 330mm고 4피스톤 캘리퍼다. 뒷브레이크 시스템은 모든 제네시스 모델이 314mm에 1피스톤 캘리퍼로 동일하다. 고출력 후륜구동차의 경우 VDC의 잦은 개입으로 인한 뒷브레이크 사용이 많다. 만약 뒷브레이크가 작다면 패드의 빠른 소모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전륜구동이 아닌 후륜구동이기 때문에 뒷브레이크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이다.
청개구리 승차감
길에서 요철을 넘는 몸놀림은 독일차와 비슷하다. 국내 소비자들은 푹신푹신한 승차감을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무게감있게 퉁퉁거리는 독일차 느낌은 믿음직스럽다며 반긴다. 제네시스의 승차감은 분명 이제까지의 국산 고급차 보다는 단단하다. 하지만 국산차에서 느껴지는 이런 승차감을 제네시스 고객층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승차감이 단단하긴 하지만 서스펜션에 비해 차체가 무겁고 크다는 느낌이다. 또한 댐퍼가 요철을 만나 수축 된 상태에서 다시 신장되는 속도가 느리다. 따라서 차가 요철을 넘어 아래로 떨어지면서 바퀴가 먼저 내려가 버텨주는 것이 아니라 차체 전체가 아래로 떨어진다. 이때 피가 아래로 몰리는 느낌이라 특히 뒷좌석 탑승 시 노면 상태가 안 좋은 길을 지나면 머리가 아파온다. 요즘엔 점진적인 레이트의 스프링과 댐퍼를 통해 작은 충격은 부드럽게 받아 들이고 코너링 상황에서 쏠릴 때는 확실히 잡아주는 서스펜션이 많다. 현대도 제네시스 전모델에 진폭 감응형 댐퍼를 개발, 장착해 추세에 따르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다. 독일차 감각으로 작은 요철에 대해서는 퉁퉁거리지만 코너링 상황에서 쏠릴 때는 자기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느낌이다.
제네시스의 앞 스테빌라이저 두께는 쏘나타와 동일하고 뒤만 2mm 더 두껍다. 수많은 요소가 복합된 서스펜션에서 단지 스테빌라이저 두께만 갖고 얘기하는 것이 기자의 무지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승차감을 크게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롤을 버티는 능력을 가지려면 제네시스의 스테빌라이저 두께는 분명 더 두꺼워져야 한다.
제네시스는 FR이다
스포츠 주행은 제네시스에 어울리는 시승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가 공공연히 제네시스의 스포츠성을 강조하고, 또 BK와 동일한 플랫폼이기 때문에 굴곡진 도로로 갔다. 요즘 세계적인 차 만들기 추세는 몰개성이다. 다들 비슷비슷한 좋은 차를 만들어낸다. FF이든 FR이든 사륜구동이든 모두 일반적 주행에서나 스포츠 주행에서나 구동방식의 차이를 많이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제네시스는 조금만 몰아붙이면 FR임을 솔직히 드러낸다. 앞 머리는 생각보다 예민하게 코너를 향해 파고 들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리어로 움직임이 좋고 부지런하다. FR임을 솔직히 드러낸다는 얘기는 뒤가 잘 나온다는 얘기다. 이는 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재미있는 차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비록 차의 여러 요소들이 빠른 주행을 방해하지만 현대에서 만든 FR 차가 FR 순수 거동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은 재미있다.
현대의 마지막 후륜구동 승용차는 83년 첫 선을 보인 현대 스텔라다. 때문에 현대의 이번 후륜구동 플랫폼 개발은 사실 거의 백지상태에서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차를 개발하고 또 세팅하는 인력 또한 세대교체 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후륜구동은 생소했을 것이다. 그 덕분에 우연히(?) 이렇게 후륜구동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차가 등장했다고 생각한다.
제네시스는 스포츠세단인가
그렇다면 제네시스는 뒤가 잘나오는 역동적인 스포츠 세단인가. 아쉽게도 그건 아니다. 차 자체는 뒤가 날뛰는 재미있는 설계지만 조작감은 대형 세단이다. 스티어링휠은 더 민감해야 하고 노면의 정보를 더 전달해야 한다. 쓰로틀 또한 엑셀레이터 조작에 더 빠르게 반응하도록 해야 한다. 서스펜션과 브레이크의 용량을 키워 운전자에게 안정감을 전해야 한다. 스프링과 댐퍼는 롤에 대한 저항성을 키워 코너에서 단단하게 버텨줘야 하고 스테빌라이저 두께도 키워 차의 한계를 높여야 한다.
제네시스가 고급차에 충실하려해도 지금의 세팅은 바람직 하지 않다. 고급차로 빠르게 달릴 일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차의 잠재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일상적 주행품질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철저히 고급차라는 전제가 있다면 지금의 페달, 스티어링 느낌은 괜찮다. 허나 여기에 일관성 있는 패키지가 되려면 좀더 안정적인 거동을 보여야 한다. 더 넓은 림폭의 휠을 장착하고 뒤쪽 타이어 사이즈를 앞보다 크게 했으면 좋겠다. 무지한 소비자에게서 편마모에 대한 항의가 있을지라도 뒤쪽에 마이너스 캠버를 좀 줘야 한다. 이렇게 해서 뒤가 잘 움직이는 특성을 죽이고 안정감을 높여야 한다. 거기에 VDC의 개입도 지금보다 훨씬 앞당겨 적극적으로 잡아야 한다.
다이내믹과 럭셔리의 위험한 공존
많은 사람들이 차를 평가하는데 있어 하나의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차는 각자의 용도와 대상 고객이 있기 때문에 얼마나 거기에 충실하게 만들어 졌느냐가 차를 평가하는 방법이 되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관성 있는 패키지다. 고급차라고 하면 차의 개발 컨셉트부터 마케팅, 디자인, 차에 앉았을 때 느낌부터 주행 성능, 애프터 서비스까지 모두 고급차다워야 한다. 여기에 세계적인 명차로 불리는 차들은 플러스 알파로 럭셔리에 다이내믹까지 두 마리 토끼를 거의 다 잡은 차들이다. 예를 들어 독일 고급차의 명성은 고급차 임에도 스포티한 주행도 무리 없이 잘 받아내는 탁월한 기본기로 쌓아졌다. 제네시스의 광고 카피 문구는 ‘다이내믹과 럭셔리의 완벽한 공존’이다. 그러나 제네시스는 차 전체의 설계와 요소, 조작감이 일관성 있게 양쪽을 잘 타협해내지 못했다. 기본 설계는 다이내믹하고 그 조작감은 럭셔리한 불완전하고 위험한 공존이다.
희망적인 것은 이처럼 아쉬운 부분들이 하드웨어 보다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발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고 했다. 현대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에도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제네시스의 미래
제네시스가 북미 시장을 공략할 포인트는 뻔하다. 8기통에 다양한 장비를 만재한 차를 일본, 독일 6기통 기본 사양 모델의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 최첨단 장비나 실내에서 느껴지는 품질 등은 고급스럽고 가격대비 높은 가치를 지녔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서스펜션, 브레이크의 용량 등 수치상이나 일반적인 상황에서 크게 눈에 띄지 않는 부분은 철저히 돈을 아꼈다. 현대가 한 단계 올라서고 그 가치를 인정 받으려면 눈에 띄는 화려함 보다는 내실이나 기본기를 다시 한번 다져야 하지 않나 싶다. 왜냐면 눈에 보이는 부분은 중국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BK의 포텐셜
마지막으로 이번에 느낀 점은 의외로 BK가 꽤 재미있는 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FR을 처음 만든 만큼 현대는 의도치 않게 가공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후륜구동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차를 만들었다. 몸집이 크고 무거워도 뒤가 잘 나온다면 그 나름대로의 재미를 즐기며 탈 수 있다. 브레이크의 용량이나 파워는 튜닝으로 커버가 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길과 단절된 스티어링계. 둔한 스티어링 기어비에 타이어 상태를 손에서 느낄 수 없게 만들어 진다면 재미없는 차가 될 것이다. BK의 출시는 90년대 중반 티뷰론 출시 때처럼 국내 튜닝 시장을 한번 들었다 놓는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스티어링 부분만 즉답적 반응에 정보를 거르지 않도록 만든다면 BK 또한 기대해 볼만한 차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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