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캐나다 밴쿠버의 중심가인 '롭슨스트리트'. 고급레스토랑과 쇼핑가가 밀집한 도로 위를 캐딜락의 대형 SUV(다목적스포츠차량) '에스컬레이드'가 달리고 있었다. 집채만한 대형 픽업트럭 포드 'F-150'과 쉐보레 '실버라도'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중소형세단이 대부분인 서울 도심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큰 차'들이 거리를 지배하는 이곳에서 BMW는 대형 SAV(스포츠액티비티차량) 'X5'의 글로벌 출시행사를 열었다.
북미 자동차시장에 '큰 차'의 시대가 돌아왔다. 전통적으로 미국과 캐나다 자동차시장이 활황세를 탈 때 픽업트럭과 SUV의 판매가 늘어났다. 북미대륙이 금융위기에 시달리던 2008년 이들 차종의 판매가 급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불황을 딛고 북미 자동차시장이 4년 연속 성장세를 거듭한 결과 '큰 차'는 북미 도로의 주인자리를 다시 꿰찼다.
17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올들어 8월까지 북미 SUV 판매량은 334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14.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자동차 판매 증가폭의 2배에 가까운 수치다. 전반적으로 덩치가 큰 SUV 가운데 전장이 5m 넘는 초대형 SUV의 판매는 전년 대비 16% 늘어난 18만8500대였다. 픽업트럭의 판매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올해 1~8월 북미 픽업트럭 판매는 전년 대비 16.1% 늘어난 145만2000대를 기록했다.
물론 북미 자동차시장이 초호황기를 구가한 2001~2007년 '큰 차' 판매량에는 못미친 결과다. 초대형 SUV는 2001년 한해만 91만대 이상 팔렸으며 픽업트럭은 2005~2007년 매년 평균 250만대 판매됐다.
하지만 최근 북미 자동차시장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수년 안에 SUV와 픽업트럭 판매량은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블룸버그통신이 13명의 자동차 전문 애널리스트를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올해 미국 자동차 판매는 1560만대를 기록한 뒤 내년 1610만대로 뛰어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1615만대 판매된 2007년 수준을 회복하는 셈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전자산업팀장은 "픽업트럭과 SUV는 북미 자동차시장이 활황세에 접어들 경우 판매 증가폭이 다른 차종보다 월등히 컸다"며 "경기변동에 민감한 픽업트럭과 SUV는 북미 자동차시장의 선행지표"라고 말했다.
'큰 차' 판매가 회복세를 보이자 2007년 이후 중단된 대형 SUV와 픽업트럭의 신차출시도 줄을 잇고 있다. 올해 쉐보레는 올 '뉴 실버라도'를 선보였으며 GMC와 닷지는 '2014년형 시에라'와 '램 3500'을 공개했다. 모두 대형급에 속하는 픽업트럭이다. 대형 SUV 신모델도 줄줄이 출시된다. 쉐보레는 '타호'와 '서버번'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을, GMC와 캐딜락은 각각 '유콘'과 '에스컬레이드'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올해 말 출시할 예정이다.
2008년 이후 불황을 겪으며 과거 '기름먹는 하마'로 통한 이들 '큰 차'는 연료효율성을 겸비한 '똑똑한 차'로 거듭나는 중이다.
내년 출시 예정인 포드의 신형 'F-150'에는 6기통 3.5리터 엔진이 탑재된다. 기존 'F-150'의 8기통 5.0리터 엔진과 비교해 군살이 쏙 빠졌다. 엔진크기뿐 아니라 엔진 자체의 무게도 줄였다. 엔진부품인 캠커버와 덕트, 호스, 엔진커버 등을 모두 플라스틱으로 제작해 무게를 감소했다. 픽업트럭으로서는 드물게 엔진 스톱&스타트 기능도 적용됐다.
최근 북미시장을 겨냥해 출시된 BMW 'X5 50i'는 4.4리터급 고배기량 엔진을 장착했지만 연비는 기존 모델 대비 16% 개선됐다. 가솔린 직분사 장치와 가변 밸브 타이밍 기술을 조합한 결과다. 옌스 게르로프 BMW그룹 상품총괄은 "북미 SUV시장은 계속 성장중이고 앞으로도 위축되는 일 없이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정준 기자
출처-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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