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사, 정부에 노사문제 해결하라 던진 것
최근 광주형 일자리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와 여야는 물론 노동계도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애초에 현실 가능성이 적었던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제조사로선 정부에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던진 것이나 다름 없어서다. 이에 관련 논란을 짚어봤다.
▲현대차는 왜 투자에 합의했나
현대차가 개발, 생산할 SUV는 경형이다. 그러나 경형 SUV는 수익성이 높지 않다. 한 마디로 만들어 팔아도 남는 게 별로 없다. 실제 쉐보레 스파크, 기아차 모닝 및 레이 등의 경소형차는 가격 민감도가 높아 대량 판매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만드는 것 자체가 손해일 수 있다.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 팔아도 남는 게 없다면 굳이 만들 이유가 없다. 최근 미국 GM이 중소형 세단 생산을 중단하고, 쉐보레 스파크 생산을 멈추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경형 SUV 생산에 있어 원가 최소화 방안을 찾았다. 당연히 부품 원가도 줄이지만 기본적으로 국내 완성차 공장의 높은 인건비를 주시했다. 게다가 기아차도 모닝의 수익성 확보를 위해 동희오토가 위탁 생산한다는 점을 참고했다. 개발을 마쳐도 생산에서 비용을 줄이지 못하면 만들지 않는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고민이었다.
광주시는 이런 현대차의 고민을 파고 들었다. 그리고 직접 공장을 만들어 현대차가 원하는 차종을 저렴하게 생산해줄테니 경형 SUV의 생산지로 광주를 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공장 건설을 위해 정부 지원을 요청했고, 산업은행을 통해 대출도 해달라고 했다. 한 마디로 지방정부가 직접 공장 지어 완성차를 만들어주는 위탁 생산 사업이다. 이를 통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여겼기 때문이다.
제안을 받은 현대차는 흥미를 보였다. 가뜩이나 경형 SUV 생산원가 절감을 고민하던 중 광주시가 저렴하게 만들겠다는 제안을 하자 어떻게 비용을 줄일 수 있을까를 물었다. 광주시는 인건비를 절반으로 낮추되 지방정부가 주거, 복지 등을 늘려 해결하겠다고 답변했다. 경형 SUV의 주력 시장 가운데 한 곳이 내수 시장임을 감안할 때 현대차로서도 국내 생산이 유리한 측면이 적지 않았던 만큼 일단 투자 의향은 내보였다.
▲삐걱대는 이유는
현대차가 광주시의 제안을 초반 긍정적으로 검토했던 배경은 안정적으로 저렴하게 생산된 제품을 공급받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주당 44시간 근무와 임단협 5년 유예 조건을 내걸었다. 한 마디로 광주시가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현대차의 생각과 달리 광주시는 노동계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줄였고, 임단협 5년 유예 조항도 뺐다.
그 결과 현대차로선 굳이 광주시에 위탁 생산을 맡길 이유가 사라졌다. 해마다 생산 비용이 오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수익성 낮은 경형 SUV라는 점을 감안할 때 국내 생산 자체를 다시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어차피 수익이 낮다면 내수 판매 물량만 일부 국내 공장에 배정하고, 나머지는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 생산으로 가져가는 게 유리한 상황이 됐다.
게다가 현대차는 노조의 반발도 정부가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이미 오를대로 오른 인건비를 회사 스스로 줄일 수 없는 만큼 정부가 구조적인 해결 방안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정부도 이 문제에 관해선 별 다른 해결 방안이 없는 게 사실이다. 나아가 여당 또한 노동계 표가 많이 걸려 있어 선뜻 나서기 쉽지 않다.
▲위탁 생산 원하는 자치단체도 가담
본질 자체가 현대차 경형 SUV의 위탁 생산이라는 점에서 전라북도 또한 군산을 앞세워 위탁 생산 경쟁에 가담했다. 그리고 광주는 정부 돈으로 새로 공장을 지어야 하지만 군산은 이미 폐쇄된 한국지엠 공장이 있으니 차라리 같은 정부 돈이라면 시설을 인수하는 게 보다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어차피 같은 국내 위탁 생산 공장이라는 점에서 충분이 나올 수 있는 얘기이고, 최근 국회에서 생산지역에 대한 공모제가 추진된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생산을 위탁할 제조사는 저렴한 생산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정치권은 표에 관심을 두고 있어 접점 찾기가 쉽지 않다. 군산공장을 위탁 생산으로 가져가도 현대차가 생산을 배정하지 않으면, 또는 한국지엠이 공장을 비싸게 매각한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런 이유로 현재 벌어지는 광주형 일자리 논란은 제조사의 생산지 배정이 일자리 문제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더불어 한국 내 완성차의 추가 생산이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도 보여주고 있다.
▲한국지엠과 광주형 일자리
올해 초 가까스로 수습된 한국지엠 문제도 결국은 생산 배정을 두고 벌어진 갈등이었다. GM 본사는 한국 공장이 파업 등을 자제하고 군산공장을 폐쇄함과 동시에 생산성을 높이면 추가 생산 물량을 배정한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노조와 산업은행은 조건을 수락하며 일단락됐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 분리 움직임이 이어지자 노조는 다시 반발하는 중이며, GM 또한 상황을 예의 주시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미 향후 생산 물량을 배정했음에도 또 다시 갈등이 불거진다면 앞날은 예측할 수 없다. 미국 GM이 선제적으로 캐나다, 브라질, 한국 등에 있는 글로벌 사업장의 구조조정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GM이 현대차와 다른 점은 본사가 미국이라는 점이다. 현대차가 경형 SUV의 생산지로 그나마 국내를 고려했던 것은 현대차가 한국 기업이고, 한국에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GM은 미국 기업이어서 한국 내 일자리에 관심이 없다. 그저 싸게 잘 만들어 공급해주면 계속 생산을 맡기고, 아니면 그만이다. 이를 두고 한국 내에서 비판 여론이 있지만 미국 내에선 미국 기업이라면 미국인을 위해 생산을 미국으로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현대차에 적용하면 미국 현지 생산을 한국으로 돌리라고 요구하는 국내 목소리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현대차도 기업이어서 수익성 높은 생산을 해야 미래가 지속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업은 오로지 수익을 위해 생산 지역을 배정할 뿐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 가능성은?
현대차 입장에선 어떻게든 저렴한 생산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한다. 그러나 자치단체와 정치권이 만든 공장의 위탁 생산은 선거에 따라 주도권이 바뀌면 얼마든지 비용이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특정 지역의 일자리를 위해 전체 국민 세금을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저렴한 생산 체제가 유지되면 경형 SUV 뿐 아니라 향후 추가 개발되는 차종도 생산을 배정할 수 있다. 이 경우 현대차 기존 공장의 일감은 줄어든다. 잔업이나 특근이 사라져 손에 쥐는 소득도 떨어진다. 현대차 노조가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하는 직접적인 이유다.
그래서 현대차는 문제 해결자로 정부를 지목했다. 사내 노조의 반발을 정부가 무마할 수 없다면 무리하게 광주형 일자리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 어디까지나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모든 본질은 바로 '저렴한 생산 비용'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시도는 해볼 만하다. 단순히 자치단체의 위탁 생산이 아니라 국내 자동차 산업의 고비용 구조를 깨자는 움직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고비용 구조는 언젠가 국내 완성차 생산의 몰락을 가져올 뇌관이 아닐 수 없어서다. 그리고 기회는 모든 지역에 열려 있어야 한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출처-오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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