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우리의 성령이다!?
2006년 9월 2일, 이날을 기억하라. 이날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재향군인회가 중심이 된 5만 여명의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역 광장에 모여 전시 작전권 이양 반대 및 사학법 재개정 촉구 시위를 벌였다. 저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저들의 간절한 기도와 애국심으로 인해 이제 이 땅은 오래도록 성령이 충만하고 미국의 보살핌이 가득할 것이다. 저들에게 성령은 다름 아니라 미국이다. 저들에게 미국은 우리의 신이고 구세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미국에 순종하고 미국에 기도하고 찬송해야 한다. 미국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반역이고 불충이고 매국이고 신성모독이다. 어느 사이 저들에게는 미국은 신의 위치에 올라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것을 강요하고 있다.
김성은 전 국방부 장관은 행사장에서 “우리의 은인인 미국을 나가라고 하는 배은망덕한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 이대로 두면 우리나라가 망한다.”고 통탄했다니 저 애국심과 미국에 대한 저 맹목적인 믿음이 눈물겹다. 거기에다 박근혜, 이명박, 강재섭, 전여옥, 김용갑, 송영선 등 수없이 보아온 한나라당의 수구 반동세력이 다 모였다. 가히 이 나라를 대표할 만한 반동의 무리들이 의연히 떨쳐 일어나 ‘도탄’(?)에 빠진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눈물겨운 기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이 나라를 망하게 하고 이 나라를 욕되게 하는 자들은 바로 저 시대를 농락하고 국민을 굴종의 늪으로 몰아넣는 무리들이다.
이 시대 우리의 가장 큰 불행은 자칭 보수주의자라는 사람들에게서 민족의 정신이 죽어버렸다는 점이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의 사대주의와 일본의 식민지배와 또 해방이후의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저들과 저들의 추종 세력에게서 민족자존의 정신은 사라졌다. 그러기에 지금 저들은 정신이 실종된 물질적 풍요와 권력야망 속에서 굴종의 삶을 답습하고 어떤 변화에도 단말마적 비명을 지르며 격렬하게 저항한다. 그런 저들에게는 우리 군의 작전권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는 그 지극한, 논쟁의 가치조차 없는 상식조차 ‘안보’라는 미명하에, ‘현실’이라는 허울 속에, ‘국익’이라는 포장 속에 논쟁의 대상이 되고, 더 나아가 격렬한 투쟁의 대상이 된다. 그게 우리의 비극적 현실이다. 그 앞에는 논리도 통하지 않고 오로지 맹목적인 믿음만 있을 뿐이다.
어디 그 뿐인가? 김홍래 향군 부회장은 미국에까지 달려가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제발 미국이 이 땅의 전시 작전권을 계속 갖고 있어달라고, 전시작전권 반환 의사를 철회해달라고 사정하고 다녔다. 미국이 돌려주겠다는데도 받지 않겠다는 저 지극한 겸양의 미덕에 미국이 얼마나 흐뭇해했으며, 또 돌아서서 이 민족을 얼마나 조소하고 경멸했겠는가? 모든 것을 떠나 적어도 그가 진정한 군인이라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또한 그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국가적 사안을 마음대로 미국인들에게 구걸하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언제 그가 국가로부터 그런 권한을 위임받은 적이 있었나? 대관절 그가 무엇이기에 외국에 가서 이 민족을 그토록 욕되게 하고 이 민족의 자존심을 그토록 무참하게 짓밟는가? 걸핏하면 이순신을, 강감찬을, 을지문덕을 들먹거리는 저들이 말이다.
저들이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이라면, 민족의 자존과 독립이라는 대의에 헌신해야 하며, 누구보다 먼저 작전권 환수를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보수의 너울을 쓴 저들 수구반동 세력들은 자신들의 추악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민족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저들은 치욕스러운 사대의 늪에 빠져 민족을 배반하고 민족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우리가, 세계 5위를 오가는 군사대국인 우리가 우리 군의 작전권 하나 제대로 행사할 능력이 없다면, 그런 나라가 무슨 나라인가? 1년 국방비가 북한의 1년 GNP를 능가하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북한의 위협에 떨어야 한다는 것이 무슨 코미디인가? 언제까지나 그런 무지몽매한 소리로 국민을 기만하고 국민에게 굴종의 삶을 강요하려 하는가? 그 알량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언제까지 국민을 배반하려는가? 예속의 삶이라면 일제 36년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한번 생각해보라. 저들 수구세력의 우려와는 달리 미국이 이 땅에 굳건하게 주둔하면서 작전권을 우리에게 넘겨주겠다는 지금이야 말로 우리 군이 완전한 자주국방을 이룩할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아닌가? 저들 수구세력이 저토록 흠모해 마지않는 미국이 우리의 옆에 지키고 있으면서 우리를 튼튼하게 지켜주겠다는 데 뭐가 그리 두려운가? 이 때 작전권을 환수해 열심히 노력하고 차근차근 준비를 한다면 훗날 미국이 떠나도 우리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우리의 안보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그런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미국에 의지하지 못해 안달인가?
저들 수구세력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이 땅의 안보가 아니다. 이 땅의 안보를 빌미로 저들은 미국을 등에 업고 지탱해온 기득권의 붕괴를 두려워하고 있다. 저들은 미국이 우리에게 작전권을 넘겨주는 것이 언젠가는 이 땅에서 떠나기 위한 사전준비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저들은 미국과 자신들의 기득권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들에게는 미군의 철수는 바로 기득권의 몰락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저들은 이 땅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어떤 변화에도 사생결단을 하고 반대한다.
저들에게는 박정희와 전두환의 시대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사회이다. 저들에게는 그 사회야 말로 ‘자유 민주주의’ 사회이며, 그 사회에서 한 걸음이라도 벗어난 사회는 비정상적이며 가공할 공포가 지배하는 불온한 사회이다. 저들이 지금 쉬고 있는 자유라는 공기는 저들에게는 질식할 듯한 ‘공포’이다. 그러기에 저들은 지금 그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마지막 투쟁을 전개하고, 안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위협하고 협박하고 있다. 그러나 저들의 단말마적인 주장 뒤에는 식민지와 독재의 음습한 망령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우리의 자유를 위해,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해 저들의 위협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