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찾은 박정희 “전봇대도 시멘트로”
그때 박 의장하고 만나면 여러 가지 나눈 얘기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만.
“자주 만났어요. 어려운 게 있으면 빨리 해결해서 경제를 살려야 되니까. 근데 그때 벌써 고속도로 만드는 문제 하고 농어촌 개량(새마을운동) 해나가야 된다는 문제까지 나옵 디다. 김용태 경제고문하고 막걸리 마셔가면서 계획을 얘 기하시는데 언제 그렇게 많은 연구를 했는지 놀랐어요. 내 가 문경에 시멘트 공장을 하고 있을 적인데 문경 쪽으로 출 장을 오셨다가 거기는 호텔이 없으니까 공장에서 같이 주 무시겠다면서 밤새워 얘기를 해요. 그러면서 앞으로 전봇 대도 전부 시멘트로 만들어서 세워야겠다고 그래요. 나무 한 그루 키우기도 힘들고 그것도 전부 수입하다시피 하니 까 시멘트로 못 만들 이유가 없잖으냐고. 나는 시멘트 공장 을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그런 말씀까지 하더니 정말 그렇게 바꿔나갔거든요? 참 대단했어요.”
63년에 벌써 고속도로 얘기가 나왔었다는 것은 새로운 사 실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64년 12월 박 대통령 이 서독의 뤼프케 대통령 초청으로 서독을 공식 방문했을 때 독일의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을 보고 경부고속도로 구상을 했던 것으로 돼 있지 않습니까.
“그게 상업차관 1억5000만 마르크 도입 문제인데 그것도 내가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건 고속도로 건설 자금이 아 니에요. 박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첫 인력 수출이라고 했던 광부하고 간호사들이 서독에 많이 진출해 있으니까 그 사 람들을 격려한다고 가서 간호사들을 보시면서 같이 울고, 육영수 여사도 울고 그랬는데, 그때 1억5000만 마르크는 1 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필요한 차관이었어요. 물론 아 우토반을 보고 고속도로 건설을 결심했다는 말도 틀리지 는 않겠지만 이미 문경에 오셨을 때 그런 구상을 하고 계셨 던 거예요.” 박 의장은 억지로라도 고속도로를 해야겠는데 돈이 없으 니까 아스콘보다 시멘트를 덮어서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물량이었다. 당시 문경시멘트가 20만t, 동양시멘트 가 5만t을 생산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다 해야 25만t밖에 안 되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어떻게 시멘트로 고속도로 를 덮느냐”고 대답했다.
시멘트 물량이 된다면 밀어붙일 분위기였습니까.
“안 되는 걸 가지고 낙담하는 거지. 결국 나중에 아스콘으 로 덮어서 했잖아요. 그것도 정상적으로 하면 아스팔트 두 께가 13㎝ 이상 돼야 하는데 7㎝가 줄었어요. 기초가 약한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게, 돈을 더 들일 수 가 없는 걸 알면서도 형편이 좋아지면 더 넓히기로 하고 수 리도 하자면서 빨리 하는 게 낫다고 한 겁니다. 고치는 값 이 더 들어간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때는 도리 가 없었단 말이야. 그것도 잘한 거예요. 난 그렇게 생각해 요.”
“두께 7㎝ 줄여서라도 고속도로 깐다”
박 의장하고 에피소드가 많으셨군요.
“한 번은 누구라고 할 건 없지만 박 의장한테 마침 출장을 나오셨으니 온천에서 피로도 좀 푸시고 유명한 한의사가 있으니 보약이라도 지어 드시러 가자고 했어요. 그러니까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그이가 민망해 할까봐 ‘나는 한 번 도 그런 거 먹어보지 않아서 뱃속에서 받아들이지를 않는 다고. 나 대신 드시고 열심히 공장 좀 만들라고’. 그러니 뭐 얼굴이 붉어져서 말을 못하지요. 그러면서 그러시두만. ‘내 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라는 이런 자리에 앉아 있는 게 공짜가 아니라는 걸 정말 갈수록 뼈저리게 느낀다고. 나 한테 보약은 밤낮없이 일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거라고’. 참 무서운 양반이었어요.”
구로공단을 설립하고 나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오지 않았겠습니까.
“그건 대부분이 다 아는 거니까 얘기할 것도 없는 거지. 서 울역이나 인천부두에 거지가 다 없어졌어요. 지금 이렇게 잘 산다고 떵떵거리는데 지하도는 말할 것도 없지만 공항 에도 거지가 있더구먼. 그땐 두 손이 멀쩡한데 놀고 있으면 욕먹었어요. 국민이 욕을 했다고. 집집마다 트랜지스터 라 디오 한 대씩은 다 장만했고….”<계속>
//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산업화중인 만주 산업화에 유일하게 성공했던 일본
그리고 최강대국 미국 포병학교 유학까지 이리 둘러 본 당시 한국인 몇이나 있으려나
또 각 사회 최고 엘리트들과 부대끼며
그러니 안목이란게 생길수밖에
박정희 대통령이 고속도로와 제철소의 집념은 대통령전 최고회의 의장 시절부터
이런게 일베지
아..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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