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자와 소비자 관점으로 본 정치
총선이 끝났습니다. 속이 후련하군요. 이번 선거결과에 낙담하거나 실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는 걸 몰랐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기만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2007년 대선 결과와 비교해서 보면 그나마 다행인 수준이라고 보는 것이 냉정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는 이번 결과를 놓고 본질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 정치의 본질적인 구조문제를 분석해야 앞으로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과제를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공급자와 소비자 관점으로 본 정치
관점을 바꾸어서 보면 좋겠습니다. 소비자와 공급자의 관점입니다. 직업정치인들과 현 정치구조를 공급자라고 본다면 유권자는 소비자가 될 겁니다.
본격적으로 정치 이야기를 하기 전에 기업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Prosumer라는 용어가 오래전부터 사용되었죠. 아시다시피 ‘생산자(Producer) +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입니다. 제품을 개발할 때 소비자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만 가장 본질적인 것은 소비자가 생산에 관여한다는 것이고, 생산자 역시 소비자의 개입을 허용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생산자인 기업들은 왜 소비자들의 개입을 허용하느냐? 그래야 제품 경쟁력이 올라가고, 소비자가 선호하는 트랜드를 제품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래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반 재화시장에서는 경쟁이 작동하기 때문에 생산자인 기업으로서는 소비자를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인터넷을 볼까요? UCC(User Creative Contents)가 유행을 넘어서 대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웹2.0을 말하지요? 웹2.0은 사후적 개념입니다. 인터넷 버블이 꺼지면서 살아남은 기업들을 분석해본 결과 유저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그 유저들이 생산한 컨텐츠가 공유되는 개방적인 구조를 가진 인터넷 기업들이 살아남았다고 하여 웹2.0이라 명명한 것에 불과합니다.
생산자가 일방적으로 제품을 내다파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생산에 개입하는 것입니다.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기획하기도 하고, 직접 생산하기도 하고, 그리고 직접 소비도 합니다. 소비자들 스스로 기획하고 생산한 제품이니까 잘 팔리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정치로 돌아옵니다.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을 돌아볼까요? 어떤 힘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고, 열린우리당을 과반수 정당을 만들었습니까? 저는 소비자들이 제품을 직접 생산할 수 있다는 즐거움에 있다고 봅니다. 정치 영역에서의 프로슈머가 탄생한 것입니다.
정치 소비자가 생산에 개입하는 구조가 있었습니다.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은 최초로 일반 국민들이 참여하는 국민경선을 도입했습니다. 그 열기가 대단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이전까지 정치영역에서 유권자(소비자)들은 스스로 제품(후보자) 생산(공천)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통로가 열린 것이죠.
거기에다가 대선 과정에서는 문성근이 이끄는 국민참여운동본부가 있었고, 유시민의 개혁당이 소비자들의 개입욕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정치에 있어서도 소비자가 직접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게 바로 문성근의 국참본부와 유시민의 개혁당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대선에서 노무현이라는 제품이 시장에서 이겼습니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정당민주주의를 도입했습니다. 비록 전면적인 경선이 아닌 부분적이었지만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볼 때 대단히 혁명적인 제도였습니다. 각 지역구 후보를 경선을 통해 선발하는 것입니다. 당원과 일반국민의 비율을 적절히 혼합했었지요.
탄핵이라는 사건도 있었지만, 열린우리당이 도입한 경선은 소비자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2002년과 2004년 민주당에서 시작된 정치의 프로슈머 도입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도 빛을 발휘했습니다.
그런데 제품생산에 소비자가 개입하는 이 제도들은 열린우리당의 해체와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죠? 공천심사위원회가 후보자를 결정했습니다. 포퓰리즘을 하자는 것이지요? 검증기준이 있었지만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인가요? 2002년 이전으로 돌아간겁니다.
핵심은 이거죠. 소비자(유권자)가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이나 통로가 모조리 사라졌다는 것, 여기서 비극은 시작되는 겁니다. 정치영역에 관한 한 이제 소비자는 그냥 생산자가 내놓는 제품을 어거지로 사야하는 처지가 된겁니다.
기권한 사람들 욕하지 마세요.
구조가 바뀌었죠? 소비자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투표에는 참여하라고? 왜 참여해야죠? 제품으로 치면 투표행위는 구매행위입니다. 사고 싶은 제품이 없는데도 억지로 구매하라고요? 왜 그래야 하죠?
투표행위를 과거처럼 무슨 신성한 의무인냥, 투표를 하지 않으면 정치를 논할 자격이 없다는 식의 엄숙함은 이제 지겹지 않나요?
비유를 들어봅시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등장하기 이전의 정치는 변화가 없는 정치였습니다. 소비자들이 불만을 갖건 말건 살 수 있는 제품이라고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거대 기업 제품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한나라당한테 밀려서 2등밖에 못하던 민주당은 소비자를 끌어들여서 노무현이라는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그러자 소비자들이 그동안 쓰던 제품 내다버리고 신제품 노무현을 산겁니다.
노무현이라는 제품으로 시장에서 1등으로 등극한 민주당은 갈림길에 섭니다. 끝없는 혁신으로 변화를 추구할 것이냐? 이제 1등했으니 된거 아니냐?는 노선으로 말입니다.
결국 현실에 안주하기 싫은 소수의 사람들이 벤처기업을 창업합니다. 그게 열린우리당입니다. 생산구조는 당연히 프로슈머로 가는 것이죠. 믿을 건 소비자 밖에 없다, 오직 소비자만 믿고 가겠다는 벤처정신의 산물이 열린우리당이죠.
그리고 탄핵이라는 플러스 알파를 통해 과반수가 됩니다. 벤처기업이 졸지에 대기업들을 물리치고 1등이 된겁니다. 항상 1등이 문제인겁니다. 끊임없는 혁신이냐? 현실이냐?의 선택을 강요받는 자리가 1등인거죠?
그런데 어떻게 됐죠? 벤처기업 창업주역들(천신정)이 나중에는 생산라인에 끌어들였던 소비자들을 귀찮아합니다. 결국 이러쿵 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놓는 소비자를 내치게 됩니다. 이른바 기간당원제 폐지입니다. 정당민주주의를 내다버린거죠.
어쨌든 현재의 정치구조는 소비자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기껏해야 국가로부터 하사받은 투표권 한 장입니다. 투표했다고 박물관 가는 티켓 한 장을 주더군요. 참 감사하기도 해라. “아이고 착한 놈, 말 잘 듣는 모범생, 투표했으니 박물관 공짜로 가거라” 기분 좋기도 하겠습니다.
다른 얘기로 갈까요?
이번 총선 투표율이 46%인가요? 지난해 대선 투표율이 63%였으니 엄청 낮아진 수치죠. 특히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은 아마 대단할 겁니다. 40% 될까말까 하겠죠?
그렇다면 20대와 30대가 정치의식이 낮아서 그런 것일까요? 40대에 비해서 한심한 정치의식을 가졌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습니까?
20대와 30대가 보기에 한국 정치 너무 구리지 않나요? 너무 고리타분하지 않나요? 벌써 21세기 된게 언제인데 제품은 80년대 제품 그대로입니다. 사고싶은 마음이 들겠어요? 울며겨자먹기로 사야한다고? 투표는 국민의 신성한 의무라고? 언제까지 이런 고리타분한 엄숙함, 의무감 따위로 호소할 생각인지 두고 볼 참입니다만, 저는 20대와 30대를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투표율 저하와 동시에 선거 관련 UCC도 엄청 줄었다고 합니다. 당연한 것이죠. 소비자들은 입 꾹 다물고 투표하는 날 도장이나 찍으라는 선거법이 눈 부라리고 있는데 누가 UCC를 제작합니까? UCC 제작 자체가 정치소비자들이 생산에 관여하는 행위인데, 이걸 몽땅 금지해놓고는 투표에 참여하는 당신이 아름답다는 개구라를 풀면서 원더걸스로 꼬셔본들 쉽게 넘어갈 소비자들이 아니라 이거죠.
오히려 그들이 정치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도록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현 정치구조와 우리를 포함한 기성세대를 탓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매욕구가 드는 제품을 개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임종석이니 하는 386들 보세요. 저도 386이지만 언제까지 그 80년대에 생산된 제품을 팔아먹을 겁니까? 386도 진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386의 잠재력을 갈아먹었던 놈들이 퇴출된 게 기쁩니다. 업그레이드 한 신제품 386을 시장에 내어놓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선거보이콧 수준에 이른 20대와 30대, 그리고 이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정치에 대해 냉소와 체념으로 돌아선 많은 소비자들을 시장으로 끌어내는 가장 빠른 길은 소비자가 제품생산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선결과제는 무엇일까요?
정치라는 제품군 자체에 대한 비토 내지 거부, 체념을 되돌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번 총선 투표율을 여의도로 상징되는 현실정치에 대한 전면적인 비토로 본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이 나와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게 바로 시민주권운동입니다.
기존 제품군 : 여의도의 여러 정당
새로운 제품군 : 생활 속의 정치를 표방하는 시민주권운동
제가 제품‘군’이라고 표현한 것은 시민주권운동이라는 상위 개념에 포함시킬 수 있는 하위개념의 운동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대운하 반대와 같은 환경운동, 의보민영화 반대와 같은 각종 사회운동, 대안언론 육성 등의 언론개혁운동, 새로운 정당건설을 준비하는 정당개혁운동 등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군’이라고 표현한 것이구요.
여기서 소비자는 단순히 유권자를 의미하지 않고 정책소비자로 규정하는 게 타당할 겁니다. 투표행위 자체로 모든 게 끝나지 않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느 정당이 과반수가 된다 하여 국가의 명운이 좌우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투표행위 하나로 모든 게 결판나는 단판승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결국 누가 대통령이 되든, 어느 정당이 과반수가 되든, 그 정치인들이 생산하는 정책을 소비하는 시민들이 현명하고 똑똑한 소비자로 처신하면 되는 겁니다. 불매운동에서부터 제품의 하자를 고발하고 고치게끔 하면 되는 겁니다. 이게 시민주권운동이라고 봅니다.
일반적인 재화나 서비스 영역 뿐만 아니라, 언론과 정치영역 등 모든 영역에서 현명하고 똑똑한 소비자가 있다면 불량상품이 시장을 지배하기는 힘들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정치만 놓고 본다면, 결국 우리 스스로 기존제품군과 맞상대할 수 있는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도 당연히 시민주권운동의 목표 중 하나가 되겠죠. 동시에 기존제품군 가운데 소비자들의 개입을 허용하는 제품이 있다면 고쳐 쓸 수 있는 것도 당연하구요.
하여간 투표 자체를 놓고 너무 심각하게, 모든게 결단난듯이 평가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긴 호흡으로 보고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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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라는 제품으로 시장에서 1등으로 등극한 민주당은 갈림길에 섭니다. 끝없는 혁신으로 변화를 추구할 것이냐? 이제 1등했으니 된거 아니냐?는 노선으로 말입니다.
결국 현실에 안주하기 싫은 소수의 사람들이 벤처기업을 창업합니다. 그게 열린우리당입니다. 생산구조는 당연히 프로슈머로 가는 것이죠. 믿을 건 소비자 밖에 없다, 오직 소비자만 믿고 가겠다는 벤처정신의 산물이 열린우리당이죠.
그리고 탄핵이라는 플러스 알파를 통해 과반수가 됩니다. 벤처기업이 졸지에 대기업들을 물리치고 1등이 된겁니다. 항상 1등이 문제인겁니다. 끊임없는 혁신이냐? 현실이냐?의 선택을 강요받는 자리가 1등인거죠?
그런데 어떻게 됐죠? 벤처기업 창업주역들(천신정)이 나중에는 생산라인에 끌어들였던 소비자들을 귀찮아합니다. 결국 이러쿵 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놓는 소비자를 내치게 됩니다. 이른바 기간당원제 폐지입니다. 정당민주주의를 내다버린거죠.
까지의 내용이..
열린우리당이 민심을 잃어버린 계기가 된거같구요..
그후에는 너도나도 노무현까기에 편승하기에 바빴죠..^^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여당에서 조차도 노무현을 까댔으니...
아무튼 이데아님의 말씀데로..앞으로 제기를 저역시 적극 지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