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5.20 총선부터 3.15 부정선거까지 부정선거의 연속이었다고 봅니다.
1952년 전쟁중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간접선거로 대통령이 될 수 없음을 직감한 이승만은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꾸기 위해서 "부산파동"을 일으켜 국회를 공포정치로 기립표결로 발췌개헌안을 표결 시킨 점.
1954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규정한 개헌인 사사오입 개헌.
1960년 3.15 부정선거를 비판하고, 부정선거에 항의하다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기주열에 대한 대대적인 시위가 마산에서 일어나자, 그 배후에 공산당이 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부정선거는 일말도 사과가 없었던 점.
1949년 8월 22일 ‘반민족행위자 특별조사위원회 폐지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점.
친일파의 정치요직에 대거 등용시킨 점.
육이오전쟁 당시 국민에게 안심하라는 방송을 하면서 본인은 피난을 간점.
1950년 6월 28일 한강 인도교를 폭파한 사건.
이로 인하여 한강을 건너지 못한 100만 시민의 처절한 고통을 느끼게 한 점
경향신문의 폐간 및 언론 탄압
불법 개인과외 교습자 를 신고할 경우 법에 근거하여 월 수강료의 50%
최대 500만원의 신고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개인 과외교습자의 교육청 신고 여부확인
개인과외 교습자는 주소지 관할 교육청에 교습자의 인적사항 교습과목 교습장소 수랑료등을 반드시 신고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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