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사형집행과 미국의 잔혹한 '학살극'에 대해
예상했던 일이다. 하지만 참담하다. 솔직히 말해보자. 148명을 죽인 자와 수만명을 죽인 자가 있다. 148명을 죽인 자는 그 죄값으로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수만명을 죽인 자는 여전히 '세계 지도자'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게 정당한 결과인가.
30일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사형이 집행됐다. 그는 1982년 이라크 두자일 마을에서 시아파 주민 148명의 학살 주도 혐의가 인정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나는 그가 그런 만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한다. 실제로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그를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의 죄를 사형이란 방법으로 다스린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인가.
지난해 스위스 국제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전투와 폭력사태로 숨진 이라크인은 약 3만9천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민간단체인 '이라크보디카운트(IBC)가 지난해 추정한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 수는 2만2천787-2만5천814명이다. 2004년 10월 영국 의학 주간지 '랜싯'은 미국 침공 이후 이라크 전체 민간인 사망자 수를 10만명 이상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이라크 민간인 사상자수는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수를 추정하기 어렵지만, 엄청난 민간인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148명이 아닌 수만여명의 무고한 민간인을 희생시킨 그 범죄행위는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지난해 12월 '이라크파병비상국민행동 정책사업단'이 펴낸 '이라크 파병연장 반대의 논리'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익히 알려진 얘기지만 다시한번 부분적으로 발췌해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과 영국이 내세운 이라크 침공의 명분은 대량살상무기 보유설과 알카에다 연계설이다. 하지만 2003년 3월 유엔사찰단 안보리보고서(한스 블릭스 보고서)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 생산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스위덴 외교관 출신의 한스 블릭스는 이 보고서 때문에 미국과 영국 등과 마찰을 빚었고, 그는 사임 후에 미국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정보 조작을 강력히 비판하기도 했다.
이뿐이 아니다. 1년 뒤인 2004년 3월 유엔감시·검증·사찰위원회(UNMOVIC) 보고서에서도 "이라크에 10년동안 WMD(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 이라크 WMD 의혹에 관한 독립적인 조사를 진행해 온 이라크 서베이그룹(ISG)의 찰스 듀얼퍼 단장은 그해 10월 "이라크는 미국의 침공 당시인 지난해 3월 WMD를 갖지 않은 상태였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듀얼보고서'를 완성해 미 의회에 보고했다. 그해 7월 이라크 관련 정보 실패의 원인을 조사해 온 영국의 버틀러위원회는 이라크 침공 명분인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영국의 정보는 '심각한 결함을 가진 것'이라는 결론의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알카에다 연계설 역시 '허위'임을 입증하는 조사결과들도 발표됐다. 미국 9.11 진상조사위원회는 2004년 7월 발표한 최종 보고서를 통해 "이라크와 알카에다의 협력관계, 9.11테러의 이라크 연관 가능성에 대한 백악관의 주장은 이유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당시 10인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렸다. 비슷한 시기 작성된 미상원 정보위원회 1차 보고서 역시 민주·공화 양당 18명 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이라크 전쟁은 잘못된 정보로 시작됐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고 알카에다와의 연계설도 근거가 없다는 내용이다.
미국은 '대테러전쟁'을 천명했지만, 그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 학살뿐만 아니라 인권유린을 자행했다. 2004년 4월28일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요커와 CBS 방송은 미군이 장악하고 있는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벌어진 포로 학대에 관한 보고서와 사진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은 천으로 포로를 뒤집어씌운 채 상자 위에 올라서 있게 하고는 떨어지면 감전사시키겠다고 위협했다. 또 포로들을 발가벗긴 뒤 인간 피라미드를 쌓게하거나 성 행위 장면을 연출하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여성 병사들이 손가락으로 남성 포로의 성기를 가리키는 등의 사진도 공개됐다. 사실 이건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이것이 미국이 그토록 주장해왔던 '자유'와 '평화'의 모습인가. 그간 제출된 여러 보고서의 핵심을 요약하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잔인한 학살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살인자를 체포한답시고 총들고 길거리로 나서섰다가 무차별로 총을 난사하면서 살인자의 악행보다 더 참혹한 짓을 저지른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미 대통령은 후세인 전 대통령에 대한 사형집행 직후 성명을 발표해 "공정한 재판"이었다고 강변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후세인 전 대통령은 이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를 단죄하겠다고 나섰다가 더 큰 악행을 저지른 부시 대통령은 누가 심판해야 할 것인가. 아직도 미군이 겨눈 총구 앞에서 떨고 있는 이라크 민중의 고통을 누가 어루만져줄 것인가. 누가 이 추악한 침략전쟁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철군'을 말하지 못하는 세계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 국회가 낯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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