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대표냐, 性나라 대표냐”
강재섭 대표, 성파문 사과 불구 여성단체·다른 정당들 발끈
2007년 새밑 한국 정치판의 자화상이다. 집권 여당은 스스로 무능을 반성한다며 새출발을 위한 해체작업을 벌이면서까지도 주도권 장악을 위한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반면 사상 유례없는 정당 지지도를 구가하고 있는 한나라당에선 도덕적 수치심을 망각한 추태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급기야 당 대표가 성적 발언의 파문에 휩싸이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했다.
강재섭 대표 문제발언의 전말은 이렇다. 1월 4일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오찬을 겸한 신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황우려 사무총장이 연재소설 ‘강안남자’을 문제삼아 청와대가 구독중단을 했던 문화일보를 위한 한나라당의 노력을 내세웠다. 황 총장은 “내가 문화일보를 위해 싸웠다는 것을 알아주세요”라며 언론과의 우호적 관계를 자랑했다. 이 말을 받은 강 대표가 문화일보 기자를 찾으며 “(강안남자에 등장하는 주인공) 조철봉이는 요즘 왜 (섹스를) 안 해. 예전에는 하루에 3번도 하고 그러더니…”라고 조크를 했다. 이어 “내가 말이야 오늘은 할까, 내일은 할까 (신문을) 봐도 그래도 절대 안 하더라. 한 번은 해줘야지”라며 “철봉이가 기가 완전히 죽었다. 너무 안 해. 철봉이가 낙지가 됐다”고 덧붙였다.
윤리위 솜방망이 징계도 한몫
강 대표는문제의 발언이 있던 이튿날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는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여성단체와 다른 정당들은 공세를 계속하고 있다. 강 대표의 대표직 사퇴는 물론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열린우리당 서영교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강 대표는 ‘성나라당’ 대표로 손색이 없다”고 비난했고 박용진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아무리 관대하게 보려 해도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왔다”고 의원직 사퇴를 주장했다. 인명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도 “강 대표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단지 강 대표가 조크의 소재로 성문제를 다뤘다는 데 국한되는 게 아니다. 그동안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잊을 만하면 사고를 쳤다. 지난해 최연희 의원의 동아일보 여기자 성추행 이후 이재웅 의원의 여성재소자에 대한 성적 비하 발언 파문 → 박계동 의원의 여종업원 성접촉 동영상 파문 → 충남 당진 당원협의회 정석례 운영위원장의 여성취객 성폭행 미수사건 → 강재섭 대표의 성발언 파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강 대표의 성적 농담으로 한나라당의 성희롱 발언과 성추행 범죄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노골적인 ‘제식구’ 감싸기와 허울뿐인 윤리위의 ‘솜방망이 징계’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비난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됐다.
한나라당이 문제의 인사들에 대해 처벌다운 처벌을 한 것은 정석례씨가 유일하다. 정씨는 지난 12월 15일 서울 강남 로데오거리의 한 건물 앞에서 술에 취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한 여인의 옷을 벗기고 성폭행을 시도하려했던 것으로 수사에서 밝혀졌다. 한나라당은 사건 발생 3일 만인 12월 18일 성폭행 미수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정씨를 제명키로 결정했다.
이재웅 의원도 성비하 발언으로 누리꾼의 집중적인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이 의원은 12월 1일 김형오 원내대표 등 당직자들과 함께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으로 마련한 삼계탕 시식 자리에서 보호감호법 폐지와 관련, 자신의 의견을 밝히면서 참으로 입에 담을 수 없이 천박한 ‘성적 농담‘을 흘린 게 인터넷 신문에 보도된 때문이다. 이 의원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나라당은 당 차원에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민노당 정호진 부대변인은 “이 의원의 저열한 발언을 제지도 비판도 하지 않은 한나라당 지도부 또한 제2의 가해자”라고 비판했다.
심지어 국회 상임위에서도 상식 밖의 얘기가 나왔다. 김충환 의원은 6월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성 정책을 세울 때 미시적인 단속 규제를 하는 방식은 성폭행, 성병의 만연, 성매매 해외진출 같은 부작용으로 나타난다”면서 “이런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별로 성 향유의 양이 있으니 한국인의 성생활 공급의 양을 적절하게 평가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치 성매매와 정상적 성생활을 혼돈한 것과 같은 발언이었다.
인명진 위원장 “정치적 책임져야”
서울 강남의 한 룸카페에서 여종업원의 가슴을 만지는 박계동 의원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흘러다녀 파문이 일었다. 지난해 5월 3일 오전 한 여성단체의 인터넷 누리집 게시판엔 박 의원이 술집으로 보이는 곳에서 종업원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옷 안으로 손을 넣어 몸을 만지는 듯한 내용의 51초짜리 동영상이 올랐다. 박 의원은 “여성이 등을 돌리고 동영상을 찍어 마치 내가 가슴을 만진 것처럼 악의적으로 만든 것”이라면서 “3월에 촬영한 것을 지방선거를 앞두고 퍼뜨린 것은 분명히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당윤리위에 박 의원을 회부해서 토론한 결과, 박 의원이 공인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성적 행동을 했다는 부분은 사실로 확인했다. 박 의원에 대한 징계는 ‘경고’였다. 윤리위가 내릴 수 있는 징계는 모두 4단계로, 당원 제명이 가장 수위가 높으며 그 다음은 ▲탈당 권유 ▲1개월 이상~1년 이하 당원권 정지 ▲경고 등의 순이다. 경고는 당사자에게 통보만 하면 되는 것으로,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 이 같은 한나라당의 ‘불감’ 징계는 사생활 침해를 문제 삼으면서 이미 예고됐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은 지난해 2월 최연희 의원의 동아일보 여기자 성추문 파문이 일어난 뒤 벌어진 것들이다. 한나라당이 잊을 만하면 잘못된 성의식과 남성주의 성문화에 젖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을 만들어내면서 “한나라당은 ‘성나라당’”(열린우리당 서영교 부대변인), “한나라당은 기본이 안 된 당”(열린우리당 유은혜 부대변인)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시중에서도 성(性)은 가장 흔한 조크의 소재가 된다. 그런 농담을 비난의 단서로 꼬집는 것도 어쩌면 지나친 언론의 상업주의일 수 있다. 그러나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성교육’을 시키겠다며 수선을 피웠던 한나라당의 진정한 반성과 각성이 부족했음이 다시 드러난 것이다.
김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