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변혁세력은 노무현정권은 정체성을 독바로 인식해야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해 말 노동악법이 어떻게 통과되었는가를 보라. 노무현이 갑자기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그 특유의 측은한 표정으로 하야가능성을 언급할 때 우리 국민에게는 자연스레 동정여론이 생긴다. 문제는 그 동정여론을 등에 업고 노정권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결탁시켜 노동악법을 날치기통과를 전격 추진했다는 것이다.
노동악법보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의 통과가 더 크고 더 어려운 과제라는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하야가능성으로는 안되고 개헌제안정도는 되어야 한다. 농민, 노동 운동세력을 비롯 진보세력은 격렬하게 반대하겠지만 국회통과는 언제나 그렇듯이 여야야합으로 손쉽게 해결된다. 우리정치사에서 너무나 많이 보았던 익숙한 장면이 아닌가. 문제는 대선을 앞두고 여당이 분열되기 직전이고 제1야당도 대선전 충분히 분열될 수 있는 국면(한나라당 박관용전국회의장 8일 신년워크숍 발언)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진보세력과 기층민중의 사활적인 저항은 미국이든 친미정권이든 친미보수여야당이든 모두 커다란 부담이 아닐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한국진보연대’라는 진보세력의 거대조직 준비위가 1월에 출범하는 형국이 아닌가.
그래서 등장한 개헌카드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노동악법처럼 날치기통과시켜도 국민여론을 호도하며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는 최상의 카드가 된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노무현정권은 결코 ‘바보’가 아니고 절대 ‘진보’도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개인에게 과연 정견이 있는가는 의문이지만 한개 정치세력의 수장으로서 정권을 운영하는 수반으로서 전혀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것이다. 앞서 밝혔듯이 현단계 한국에서 보수정권은 미국의 지배전략과 이해관계를 벗어날 수 없다. ‘친미’는 원해서도 하지만 원하지 않아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한국의 정치현실이다. 미국은 언제나 한국에 대한 경제적 이해는 일단 관철하고 보았으며 그 후과를 진압하는데서 ‘반북이벤트’와 ‘여론공작’의 방법만 취사선택했을 뿐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노무현정권은 어리숙한듯 하면서도 역대정권중 가장 간악한 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