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을 탄압하고 일제에 부역한 혐의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친일 인사 9명이 현재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사실이 삼일절을 앞둔 26일 추가로 확인됐다.
서울 동작동 현충원 제1유공자 묘역에는 국가유공자 백낙준이 묻혀있다. 백낙준은 일본의 황민화 정책에 앞장섰던 대표적 친일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일본의 대동아전쟁을 찬양하는 강연에 나서기도 했던 인물이다.
대사급인 황종률은 같은 묘역에 안장돼있다. 황종률은 32년 만주국 정부 관리 양성 기관인 만주대동학원 3기생으로 75년 일본 수상이 된 기시와 손잡고 한일간 인맥을 형성한 대표적인 친일인사다.
길을 따라 가장 멀찌감치 동떨어진 제2장군묘역에는 이응준의 묘가 있다. 이응준은 일본 육군사관학교생으로 징병제가 공포되자 "기다리던 징병제 실시의 날이 왔다"며 조선인 청년들의 참전을 선동한 인물이다.
애국지사 묘역 177묘비의 주인공은 친일 승려 이종욱이다. 이종욱은 창씨개명을 하고 전국 사찰에서 일본군의 무운장구를 비는 기원제를 독려하는가 하면 2차 대전 말기에 전쟁물자 조달을 위해 사찰의 범종과 쇠붙이 등을 거둬들이는 등 친일 행각을 펼쳤다.
제3장군 묘역에 묻힌 정일권의 경우는 일본육사 55기로 만주군 헌병 대위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러나 정치와 군사 부분의 공로를 인정받아 태극무공훈장을 받고 지난 94년 에 역시 국립현충원 장군묘에 안장됐다.
이 밖에도 동작동 묘역에는 엄민영(제1유공자묘역 3묘비), 최창식(애국지사 묘역 194묘비), 조진만(제2유공자 3묘비), 이종찬(제3장군 묘역 4묘비)의 묘가 조성돼 있다. 이들 9명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예정인 친일인사들이다.
대전 국립 현충원에도 대표적 친일 군인인 김창룡과 김응순의 묘가 있다. 특히 김창룡은 일제시대 일본 관동군 헌병으로 항일 독립투사를 학살한 전력 등 때문에 그 동안 각계로부터 줄기차게 묘지 이장 요구를 받아온 인물이다.
친일인사들이 이렇게 양지바른 국립묘지를 꿰차고 있는 것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그들 나름의 공적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입장이다.
보훈처 선양정책과 관계자는 "혐의만으로 국립묘지 안장에 불이익을 줄 수는 없는 것이고 권한있는 기관이나 기구에서 객관적인 자료에 의해서 서훈이 치탈될 경우에는 이장 조치는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이중잣대다.
보훈처는 과거 일제에 의해 옥고까지 치른 조동호, 김시현, 장재성 등 독립투사들에 대해 한 때의 좌익 운동 경력을 들어 독립유공자 선정시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은 특히 많은 무명의 독립열사들에게도 좌절감을 안기고 있다. 독립군들의 후손들은 대부분 궁핍하고 못 배운 탓에 선친들의 행적을 입증하지 못해 독립 유공자의 지위를 얻지 못하고있다.
신간회 영천지회 부지회장으로 활동하다 중국 상해에서 군자금 조달을 했던 이광백 열사의 며느리 박영자(80,성남 분당)씨는 "독립 운동가를 감옥에 처 넣은 친일파는 국립묘지에 묻히고 감옥살이를 한 독립 열사의 묘지는 쓸쓸히 방치돼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개탄했다.
마지막 임정요인 백강 조경환 선생은 93년 별세하면서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가 묻혀 있는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로부터 15년.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 지났건만 국립현충원에는 뒤틀린 과거사의 어두운 잔영이 아직도 걷히지 않고 있다.
CBS사회부 강인영 기자 Kangin@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