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참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반세기전, 즉 조국의 광복직후 만들어졌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가 미국과 이승만의 훼방으로 해체되었던 지난 역사가 떠올라 씁쓸해진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사람들에게 미국이 강요한 친일은 초장부터 눈물이 날 만큼 강도높았다. 이는 1945년 9월 8일 미군이 진주하면서 배포한 포고령 1호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미 태평양 방면 총사령부 포고 1호’(일명 조선인민에게 고함)에서는 “조선 및 인민에 대한 군정” 및 “점령”을 선언하면서 “정부, 공공단체 및 기타의 명예직원과 고용인, 또는 공익사업, 공중위생을 포함한 전 공공사업 기관에 종사하는 유급 또는 무급 직원과 고용인 그리고 기타 제반 중요한 사업에 종사하는 자는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종래의 정상기능과 업무를 수행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다시 말해 정권기관의 권한을 유지시키고 그 종사자들에 대해서도 계속 종사할 수 있도록 보장한 것이다. 당시의 정권기관이라면 일본총독부를 말한다. 일본총독부는 조선강점의 총본산이며 그 종사자들의 상당수는 친일민족반역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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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된 마당에 남한에서는 친일민족반역자들이 여전히 정권기관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상황이 계속된 것이다. 바로 강점미군의 포고령 덕분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1947년 7월 2일 김규식을 의장으로 하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간상배에 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는데 ‘친일파문제는 조선인 자신의 문제’라고 해오던 미군정청이 입장을 바꿔 이를 인준하지 않고 폐기시켰다. (당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제정한 법률은 미군정장관의 승인을 받아야만 효력을 갖게 되어 있었다)
친일민족반역자들을 군정청의 행정관료, 경찰, 군대에 포진시킨 미군정에게는 친일파들에 대한 숙청은 바로 자신들에 대한 숙청이었기 때문에 조선민족의 민족사적 과제인 친일파청산을 무산시킨 것이다.
<자료: 미군정의 대구지역 친일파육성 사례> 대구에 진주한 미군은 일제강점기 판사로 근무했던 김의균, 이호정, 한규용을 각각 도지사, 고등법원장, 검사장에 임명했으며, 역시 친일판사였던 함승호와 오완수를 대구지방법원장과 검사장에 각각 임명했다. 경북경찰청장에는 도회 의원을 지낸 조근영을 임명했으며, 대구경찰서장에는 친일경찰로 민족운동을 탄압한 박을수를 임명했다. 이러한 미군정의 태도에 대해 대구시민들의 분노는 대단했다. 이러한 친일관료들에 대한 미군정의 육성정책은 전국적으로 정치, 군대, 법조, 교육을 가리지 않고 진행되었다.
이승만정권의 ‘반민특위 해체’사건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건이다.
이승만은 반민법과 반민특위가 의결되자 “이런 문제로 민심을 이산시킬 때가 아니다”면서 반민법 폐지를 역설했고, 일제 고등계 형사 출신 노덕술의 석방을 종용하는 한편, 국무회의에서 반민법 반송을 꾀하고 정부측 조사위원으로 친일파인 유진오를 임명하고, 반민특위 위원장을 협박, 매수하려고 하기도 했다. 경찰 역시 테러분자인 백민태를 통해 반민특위 요원의 암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이승만의 반민특위 해산에 적극적인 기여를 한 것도 미국이다.
“6.6 반민특위 습격사건과 남로단 국회프락치사건”이 반민특위 해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반민특위 습격사건은 “주미대사 장면으로부터 반민특위가 양주삼 목사를 친일행위로 구속한데 대해 미국 감리교 측의 웰치 씨로부터 항의가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자 이승만 대통령이 즉석에서 김효석 내무장관에게 특경대 해체지시를 내려 일어난 사건”이라고 한다.
결국 해방직후, 그리고 이승만 정권시기에 우리민족은 민족사적 과제인 친일청산을 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때부터 친일파는 미군정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친미파로 감투를 바꿔 쓰고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전 영역에서 일제강점시대보다 더욱 큰 권력을 쥐게 되었다.
1945년 10월5일 미 군정 장관이 자신의 고문관에 친일민족반역자 김성수를 임명한 이래 대한민국은 대통령 1명, 총리 2명, 장관 21명, 시장 및 도지사 10명, 합참의장 6명, 육군참모총장 7명, 공군참모총장 4명, 검찰총장 4명, 대법원장 3명, 대법관 8명, 검판사 201명을 친일파로 세우는 진기록을 내고 말았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문헌 참조)
일본의 식민지배가 ‘축복’이었다는 한승조, 일제의 식민통치를 합법으로 주장하는 김완섭은 대표적인 현존 친일파이다. 그러나 이들보다 무서운 친일파들은 사방에 깔려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보수우익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친일적 본질이 가려진 것은 이름을 친일파에서 친미파로 바꿔 달고 일본이 독도망언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일본대사관으로 달려가 누구보다도 큰 목소리로 ‘반일’을 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 못한다. 친일파명단이 공개될 때마다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주장하며 적극 반대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군관 출신 대통령 다카키 마사오가 위대한 대통령이기를 소망하는 보수우익정치인들, 관료들, 자본가들은 자신을 어떻게 포장하더라도 친일파의 후예들일 뿐이며, 오늘날은 친미파일 뿐이다.
조선민족의 일본잔재청산 투쟁을 무산시키고, 친일파를 친미파로 육성한 미국은 지난 반세기동안 자신의 의도대로 효과적으로 남한을 통제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균열이 나고 있다. 남한의 전역에서는 친일과거청산이 불붙기 시작했고, 그동안 불온시 되어온 반미투쟁도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반미, 반일투쟁이 불붙기 시작한 남한을 바라보는 미국의 심정, 그 꿍꿍이가 궁금하다.
뉴스 615 http://www.news615.com 한국민권연구소 박제민 객원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