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박정희 대통령의 공적에 대해서 절반의 긍정을 하는 사람으로서, 굳이 이 게시판의 시끄러운 논쟁에 끼어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만, 자동차 매니아인 저로서는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또 있더군요.
(1960년 장면 내각의 무능한 경제 정책을 지켜보던 미국은 그 해에 한국사를 연구하여 한국과 일본은 기술 자원은 하늘과 땅 차이임을 발견하였다. 그때까지 미국은 한국 한 나라에 유럽 전체에 마샬 플랜으로 지원한 것보다 더 많은 지원을 했었는데, 한국인은 국산품을 생산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일본에서 수입해다 쓰고 있었다. 즉, 미국이 원조해 주면 해 줄수록 한국 경제는 일본에 종속되어 가고 있었기에 미국의 무상 원조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으므로 중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산업혁명이 일어났으니 바로 그 날이 5.16 혁명일이었다. 그날까지 한국에는 단 하나의 수출 기업도 없었으며, 한국 기업은 으례히 수입상들 뿐이었다. 그런데, 5.16 혁명이 일어난 바로 그 날 수입상 업주들이 국산품 생산 공장을 짓기로 국가에 서약하였다. 한국의 GNP 90%를 차지하던 미국 원조가 중단되면 한국은 망한다는 위기의식이 군부로 일어나 산업혁명을 단행케 하였으며, 삼성을 비롯한 수입상 업주들이 5.16군사혁며의 본질은 산업혁명임을 재빨리 알아채고 국산품 생산 공장을 짓기로 서약하였다.)
...라고 하셨는데요.
먼저 장면 내각에 얽힌 전후 사정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60년 3월 15일 집권 '자유당'의 부정선거로 인해, '경남 마산'을 시발로 전국적으로 확산된 국민들의 자발적인 의거에 의해 '4.19 혁명'이 일어나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였고, 1인독재.장기집권과 같은 '대통령중심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여야 된다는 시대적 사조로 인해, 6.15일 '영국식 의원내각제'를 모방한 개정헌법이 과도국회에서 압도적 지지로 통과되었고, 6월 23일 제정된 새 선거법에 의해, 대통령(윤보선)은 의례적인 국가원수로 하고, 정치적 실권은 국무총리(장면)가 책임진다는 내용의 의원내각제가 도입, 8월 12일 민주당의 '장면 내각'이 출범하였습니다.
'미국'통인 장면박사는 국민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정책을 기조로 하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오랫동안 독재에 익숙해져 있던 당시의 우리 국민들에게 갑작스런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은 시기상조였습니다.
기존의 기득권을 사수하고자 하는 자유당과 그들이 등에 업고 있던 정치깡패들도 문제였거니와, 새로 집권한 민주당내에서도 신.구파가 서로 한자리씩 차지하고자 밥그릇 싸움을 하느라 정국이 안정화 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장면 내각의 무능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혼란한 정국에 대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온건적으로 대처하여 정국을 수습할 만한 실효적인 공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입니다.
'장면 내각'이 출범한지 불과 9개월.
이러한 혼란한 정국에 의해 명분을 얻은 당시 '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과 그와 뜻을 같이하는 부하들은 61년 5월 16일 새벽. 결국 행동을 개시하게 되지요.
이것이 '혁명'이건 '쿠데타'건, 저는 보편.순화된 용어인 '5.16 군사정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겠으며, 그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는 사양하겠습니다.
'1960년 장면 내각의 무능한 경제 정책'이라 하셨습니다만, 이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 것이, 제2공화국 장면 내각은 1960년 8월 12일 출범하였고, 장면 내각의 경제 정책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1962년부터 1966년으로 계획되었던 것으로서, 1961년 5월 16일. 집권한지 불과 9개월만에 '군사정변'이 일어나, 미처 실행해보지도 못한 것이므로 평가 자체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2공의 5개년 계획은 농업 위주여서 어쩌네, 3공의 수정안은 공업위주여서 어쩌네 하는 스토리는 제가 구체적으로 알지도 못하거니와 평가할 능력도 없습니다.
어쨌거나 '제3공화국'에 들어서서 이의 수정안이 실천되었으므로,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공임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장면박사는 가지고 있지 못했던 실효적인 파워 또한 박정희 소장은 가지고 있었으니, 어쩌면 당시 상황에서는 필연적인 사건일 수도 있겠다 생각합니다.
이어 미국과 일본에 대한 말이 나왔는데...
당시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2차 대전 패전 후 볼품없는 전쟁의 폐허였습니다만, 4년 10개월 후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직후, 미군의 군수창고 역활을 맏게 되어 소위 '한국전쟁 특수'를 맞았고 전후 유래없는 거대한 경제적 호황을 맞게 됩니다.
우리 현대사의 최대의 비극이 일본 현대사에서는 기사회생의 최대의 호재로 작용했고 오늘날 경제대국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야 일본의 운이니 뭐라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른 산업이야 제가 잘 모릅니다만, 자동차 산업의 경우 일본은 한국전쟁 때 미군에 납품할 트럭을 만들던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군용차를 수리하던 정비소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최대의 메이커로 등극한 '도요다'는 본래 방직기계를 만들던 회사로서, 도산할 위기에 처해 있다가 한국전쟁 발발 직후, 미군에 납품할 트럭을 수주받아 기사회생했던 회사입니다.
(한국인은 국산품을 생산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일본에서 수입해다 쓰고 있었다.)고 했는데, 다른 공산품이야 제가 모르겠습니다만, 1955년 한국과 일본에서는 거의 동 시기에 각각 최초의 국산 승용차가 나옵니다.
바로 일본의 '도요다 크라운'과 한국의 '국제차량공업사 시발'입니다.
이것은 매우 긴 이야기가 됩니다만, 당시 일본에서도 '일본이 국산승용차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도요다' 또한 미국 '포드'로 부터 자기네 차를 만들어 보라는 제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일본 최초의 국산 승용차 '크라운'이 나오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일본의 '크라운'에 비하면 제품력이 미흡하나 한국에서도 동 시기에 '시발'이 나오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광복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에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는 등, 범 국민적으로 큰 기대와 관심을 받았습니다.
'시발'에 대해서는 오늘날 그나마 알려져 있는 사실마저 상당히 왜곡되어져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시발'은 미군이 버린 '짚'을 재생한 것이라는 근거없는 풍문입니다.
'시발'의 외관이 '짚'과 유사하며 설계에 참고한 것은 사실이나, 가장 핵심부분인 엔진과 차체를 모두 자체 생산하였고, 당시로서는 국산화할 수 없었던 '카뷰레터'와 하체의 '미션''디퍼렌셜 기어'만 사다가 조립하였다는 당사자들의 증언입니다.
일본은 '도요다 크라운' 이후, '닛산'이 영국의 '오스틴'을 도입하여 '블루버드'를 조립생산하는 등, 여러 업체가 승용차 시장에 뛰어들어 각축전을 벌이게 되고, 2차 대전 때 '제로 전투기'를 만들었던 기술자들이 많았던 터라 단기간에 상당한 성과를 올리게 됩니다.
한국은 '하동환 자동차''신진 자동차'와 같이 버스나 트럭을 수리.개조하던 정비소들은 몇군데 있었지만, 승용차 제조사는 '시발 자동차'가 유일하였고, 이에 차가 없어서 못팔 정도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으나, 낙후된 시설과 기술인력의 부족으로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이에 '시발 자동차'의 창업주 '최무성 옹'께서는 시설과 기술인원의 확충을 위해, 정부의 허락을 얻어 당시 상당한 성과를 쌓은 일본의 '도요다' '닛산' '마쓰다' '이스즈' 등의 여러 메이커들과 접촉하게 됩니다.
이때 '이스즈'와 제휴하게 되었고 재정지원을 맡은 '미쓰이'로부터 3천5백만달러의 시설.현물.현금의 차관까지 약속받아 오게 됩니다.
당시 '최무성' 옹은 그러한 업무를 처리하느라 거의 일본에 머물러 계시다가 귀국을 하셨는데, 와서 보니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습니다.
정부의 허가를 얻어 사업계획을 진행했고 3천5백만달러의 차관까지 얻어 왔는데, 귀국해서 서류를 제출하자 승인을 해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최무성 옹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차를 개발했었고, 매탄올 차량을 개발 중이었으며, 기술자립의지가 가장 높은 회사였으므로, 당연히 자동차 사업에 관한한 정부로부터 최우선적 지원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계셨는데, 미처 로비활동을 못한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결국 최무성 옹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었던 장기영씨 댁을 무려 4개월동안 새벽마다 찾아다니며 차관승인을 사정했는데, 이에 차관승인에 대한 커미션을 내라는 요구를 받았고, 지금 가진 현금이 없으니 수표를 쓰겠다고 했으나 현금이 아니면 안된다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습니다.
그리고 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정안이 시행되었는데, 난데없는 '자동차공업 보호법'이 병행되었고, '새나라 자동차'라는 듣도 보도 못한 신규 업체에게 소형승용차를, 중대형차는 '시발 자동차'가, 디젤엔진은 '한국기계'가 생산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의 배경에는 3공화국 초기의 '4대 의혹 사건'중 하나인 '새나라 자동차 사건'이 있습니다.
1961년 12월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한일회담 차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야스다 상사'의 사장인 재일교포 '박노정'씨를 만났고, 박노정은 전무인 '안석규'를 한국에 파견하였으며, 한국에 들어온 안석규는 '중앙정보부 차장보 석정선'의 지원을 받아 '새나라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고, 정부에서는 관광용 자동차 명목으로 '닛산 블루버드 P310' 4백대를 수입하기로 결정 수입가의 두배가격으로 판매하였으며. 새나라 자동차는 자동차의 수입과 판매대행을 독점, 석정선은 '인천시장'에게 압력을 넣어 회사의 부지와 자재구입 등에 편의를 제공, 일본에서 면세로 들여온 1천642대의 '블루버드' 즉 '새나라'의 반제품이 조립판매. 그 수익이 민주공화당의 정치자금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사건이 불거지자 석정선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쓰고 업무상 횡령, 협박과 증뢰죄로 구속되는 것으로 무마된 사건입니다.
'시발'은 '자동차 공업 보호법'에 따라 일본수입.조립차인 '새나라'에 소형차 사업권을 빼았긴 채, 중대형차 사업을 새로 추진해야 했는데, 차관승인은 절대로 해주지를 않았고,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없어지자 완전히 사세가 기울게 됩니다.
'새나라' 또한 비리가 세상에 발각되어 여론의 지탄을 받아 창업 1년만에 폐업하게 되었고, 부산의 '신진자동차'가 이를 인수하게 됩니다.
'시발'은 63년말부터 대형버스의 조립공장으로 전락하였고 '시발'에 장착하던 엔진을 '신진자동차'에 납품하며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다가 1964년 창업 10년만에 결국 회사의 간판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차 '시발'은 일본 최초의 국산 승용차 '도요다 크라운'과 동시대에, 매우 건강하게 태어났으나 불안정한 국내 정치상황의 변화로 인해 희생양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후 한국 자동차 산업은 1994년 '시발' 이후 첫 완전 기술자립 모델인 '현대 엑센트'가 나오기까지 무려 32년 동안이나 외국기술에 의존하게 되었고, 일본은 80년대에 미국시장에서 값싸고 질좋은 중.소형차라는 이미지로 큰 성공을 거둔 결과, 1989년 고급차브랜드인 '렉서스'와 '인피니티'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만,
만약 장면박사가 온건적인 자세를 바꿔 혼란한 정국을 수습할만한 막강한 공권력을 발휘하였다면, 또는 제3공화국이 '시발자동차'가 얻어온 차관을 승인해 주었다면, 또는 '시발자동차'가 새로 출범한 3공화국에 신속하게 로비를 잘 펼쳤더라면, 우리 자동차 산업사가 어떻게 쓰여졌을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3공화국이 없었으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보리고개를 면치 못했다는 주장 또한 결국은 가정일 뿐입니다.
역사적 사실은 '4.19 혁명' 이후 국민들의 각별한 기대속에 출범한 '제2공화국'이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지 못하여 '5.16 군사정변'의 명분이 되었고 출범 9개월만에 몰락하였으며, '제3공화국'이 출범하여 18년 동안 일련의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 최초의 국산차 '시발'은 정치상황의 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하지 못해 몰락하였고, 훗날 '현대자동차'와 같은 후발주자들이 이를 조금씩 만회하여 오늘날의 성과를 일구어 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적에 대해 완전 부정하지도 완전 긍정하지도 않습니다.
찬양 일색인 글도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이고 비판 일색인 글도 가치가 전혀 없다 생각합니다.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을 내용만이 가치가 있습니다.
비판하자고 치면 전두환이 으뜸일진데 이는 가만히 두고 왜 박통일까?라는 의문과 함께 다양한 추측이 떠오릅니다만... 너무 장문이 되었고, 밤도 깊었으니 여기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Good Night! and Good Luck!
박통정권이 뇌물받아서 처먹느라고 오히려 우리나라의 자동차 기술울 32년이나 뒤로 미루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10점 추천합니다.
세계10위의 (혹자들은 2위하더군요)최빈국이 였습니다.
그런 나라에서 32년의 기술 후퇴는 좀 말이 않되네요.
우리 자동차역사가 이제...
40여년도 않되었는데....
그나마 기술독립은 불과 몇년이고....
다시
시발자동차는...
재료는 드럼통 그리고 625때 버려진 미제 군용지프의 엔진과 구동장치로 만들어 졌지요...
현재 필리핀에도 지프니 라는 유사형태의 자동차가 있습니다만..
딱 까놓고 얘기하면...
그것을 자동차 공업이라 부르기엔 90%부족합니다.
따라서 본문의
시발을 "건강하게 태어난"이란 표현도
또한...
2차대전을
자신들의 전투기와 항모로 싸웠던 일본과ㅑ 비교하는것 자체가 오류란 생각이군요.
남자가 되서..
나에게 몇번 면박당했다고...
쫏아댕기면서 남의 부모 얘기나 하는
참 한심하지않소???스스로??
아
기술력 차이가 없어서
우리 포철이 일본의 제철에서 기술을 받아오고...
아 일본이 기술이 없어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처음 만들었군요..ㅎㅎ
당신의 주장을 관철하기위해..
매사를 왜곡하는 머리부터 바로잡으시길....
그리고 부탁인데 말섞지 말자고요...
2번째 부탁이요....
나역시 당신의 헛소리에 많이 자제하고 글을 않달고 넘어가니깐...ㅎㅎ
날이 덥긴 더운가보오...
말미에 하나더...
2차대전 일본이 독일에게 기술받아 전투기니....배니 만들었단
그 누구도 아는 얘기를 할꺼면 집어치우길...
ㅎㅎㅎㅎㅎ
1960년대 일본과 우리가 기술차이가 없었다는 얘긴 첨 들어 보오...ㅎㅎㅎ
기술력은 일본이 조금은 발전했을수 있으나 기술이란 언제나 따라잡히게 되어있소.그런데 박통이하 똘마니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로 기술력을 발전시킬 시발점을 죽였다는데 잇소.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카피국가란 오명을 쓰고 있는것은 모르시오??
부모얘기 하지마시오.그얘기를 끄넬수록 강한 긍정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니.........
일본은 1800년대 중반부터 개항이 이루어지면서
급속히 산업화 하기시작합니다...
잘아시다시피 2차 세계대전을 벌이면서 중공업기술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죠..
(예를들면 잠수함이나 전투기 항공모함 세계최대의 야마토전함등등)
자동차로 말하면 1960년대 일본은 이미 마이카시대 진입시기 였습니다...
제 생각에 기술력의 차이는 종이 비행기와 F-22정도의 기술력 차이였다고 봅니다..
조금 과장한다면..
토요다는 2~30년대 이미 미국 포드나 GM의 차들을 생산했습니다.
그후 전쟁을 거치며 군수용트럭을 대량생산했고 패전이후 쓰러져가다...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엄청난 발전을 했습니다.
우리의 시발이 나올때 일본은 수십만의 양산체제가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일본, 미국의 기술을 가져올 수 밖에 없었죠.
문제는 그 과정이고,,,,
우리나라는 독특하게 자동차양산공장도 없는 시점에
고속도로가 개통된 유일한 나라입니다. 대단한 선견지명이죠...
이왕만들꺼 6차선으로 뚫어버리지..
어째 미완의 고속도로란 명칭을 30년째 유지해오고 있는지...
결국 그 때문에 만들어진 이후부터 아직까지 보수공사가 진행중이지만...결국 경부고속도로가 아닌 고속화광역국도란 표현이 맞고, 아직 건설중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하긴 누구는 경부운하 6개월 운운하던데...아직 빡똥향수에 단단히 중독이 된듯...ㅋㅋ
일본을 높이 평가하는것이 아니라...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거요...
참 편리한 머릴 가지고 계시는구랴...
일본이 미국 본토에 자동차를 수출한 시기와 수출 규모를 함 찾아보고...
아무리 철천지 원수라도....
역사적 팩트를 요상하게...
당신의 말을 빌려서...
"일본이나 우리나 거의 그당시 기술력은 차이가 없었다고 생각되네요"
라는
초딩틱한 얘긴, 좀 접어 잡수시길 바라겠소이다...
인도도 자국의 차를 가지고있지요...
대기 오염이 하도 심하여 요즘은 천연가스차인지 LPG인지는 모르겠으나
연료도 바꿨고..
당신구누 ...당신은..
마치 현재 인도와 우리가 자동차 기술의 차이가 없다는식의 이야길 하고있는거유..
모르면 걍 말이라도 말던지...
항상 생각하는데...
세상에 비판적인것이 항상 들어보이진 않는다오...
자신이 사는 세상을 긍정해 보길 바라오...
그리고 말걸어 놓고 대꾸를 하는건 무슨 경우인지...
참 편한 뇌구조를 가지셨소...허나 부럽진 않군요..
참 편한 뇌구조요....
내가 밑에 올린 글을 읽어보쇼..
노사모와 열린당 창단 맴버가...
선을 긋기 위해.....청와대에 독설을 하고....
난 그것이 잘못이라 하였소...
그럼 내가 청와대가 이뻐서 그런줄 아시겠구랴...ㅎㅎㅎ
예혀 말 맙시다...
이미 당신 수준은 알고있으니...
그리고 또 다시 당신의 헛소리...
" 박통이하 똘마니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로 기술력을 발전시킬 시발점을 죽였다는데 잇소."
군사적 예를 들면 자주국방이 시작된시기요...
밀/게 가서 그 소리 똑같이 해보슈 어떤소리가 난무하는지...안습이요...
기술력을 아주 과장해서 말을 했다고 강아지마낭 쫄랑쫄랑 쫏아와서 뎃글을 올리시는 뽄세가 저를 울리시는 구랴......나홀로 우익님 아무리 일본이 기술력이 더좋았어도 그잘난 우익이라면 우리 대한민국이 더는 아니더라도 비슷했다고 하는게 진정한 우익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아닌감요????한수접고 들어가는 것은 모양세가 영 좋아보이지 않구만이라...자칭 극우라고 하시는 분이 대한민국을 이렇게 까시면 섭하지라...
말빼고 말돌리고 같은 말만 빙글빙글...ㅎㅎ
편하게 쭈~~~~~~~~~~~욱 사세요..ㅎㅎ
작전권이양 누가 하지말제요?
돈이 얼만데... 나라돈이라고 마구써도 되는건가>?
그리고 대중이 아자씨 밑에 천용택씨....
그 사람이 뭐라 했는줄 아시는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이민가겠다"던 양반이....
그리고 국방장관으로써 그쪽의 전문가인 그 냥반이 왜 반대 했겠어요?
으이고..말을 말아야지...
시기상조란 말 몰라요?
그럼 전세 사는넘이 벤츠....굴릴수야 있지...
하지만 그것으로 재테크 하면...
돈을 \더 모아서 그때 편하게 살 수 있는거 아닌감?
ㅎㅎㅎ
국방부 발표만도 무려 650조라오 이냥반아....
우리나라 한예 예산을 ...
3~4번을 다 부어야 실현가능하다고....
그리고 자주자주 하시던 냥반들이...
북핵 실험하니 쪼로록 달려가?
그래서 가짜라는거야...
아니 그럼 그런 쌩쑈나 말던지....않그래요?ㅎㅎ
그리고 2009년에 가져가라니 왜 못가져오는데...ㅎㅎㅎ
이보슈 당신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말이 없어....
참!!!!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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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우익님 아무리 일본이 기술력이 더좋았어도 그잘난 우익이라면 우리 대한민국이 더는 아니더라도 비슷했다고 하는게 진정한 우익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아닌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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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현실이 그러한데...
아무리 나라사랑이라도 거짓말로 남을 현혹해서는 않되지...
당신이 말한 그 방법은 ...
당신누구 ...당신이 쓰는 방법이지...
그것이 보편적이
남을 설득하는 방법이 아니랍니다. ㅎㅎㅎ
나보고 구라를 치라고 아주 대놓고 하시넹^^
총한자루에 자주국방이란 당신의 생각이고....
현ㄴ실ㅇ은 아주 많이 다르답니다.
탈냉전시대인 지금도 세계여러나라는 서ㅏ로서로
군사동맹을 맺고있고...
또 그러한 방법이...
자기의 지출을 줄이면서..
안보를 하는 현병한 방법이고...
왜??
당신누구님도 차 가지고있으니...
집에다 렉카차랑 정비소랑 다~~~~~~~~~~~가지고 계시지..
뭐러 남의 힘을 빌린답니까?
북한이 무서운것은
바로 당신누구 당신같이 썩어빠지고 모순된 생각으로 나라를 이끄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지..
가장 무서운것은 보이지 않는 내부의 적이지
뻔히 보이는 북한이 아닐껄요?
웃음?
왜 머쩍어서 그런가요? 왜 웃으실까?
당신은 여기서만 도
당신 생각의 오류가 툭툭 드러났는데...
아님 허파에 바람들었나?ㅎㅎ
반대해서 축소했다..ㅋㅋㅋ
국가의 전복도 모르는 냥반이...
나보고 국가를 전복한다고 하고...
ㅎㅎㅎ
아~~~방추사?
칼을 잡은 모양으로 고의 유무를 판단한다는...
그 조국(鳥國)의 판사양반 나으리 같은...ㅎㅎ
내가 당신을 멀리하려하니...
내가 뭐 캥기는게 있어서인줄 착각하나본데...
미안하지만 그건 당신 생각이고...
나에게...
욕 않하고 욕들은 것은 당신이 첨이라오....
정말 갖짜나서 상대하기 싫었는데...
계속해봐....ㅎㅎ
또 방추사 등장 허것구먼...ㅠㅠ
전작권 이양된다고 해서 동맹이 파기될거라 생각하는 단순한 뇌구조에 박수를 보냅니다....나두 짜증나거든요 님의 무뇌적인 생각에 대하여 .. 나이 많이 먹으셧으면 뇌좀 업그레이드점 하세요.
박통의 똥얘기는...
무안가서 한번 해보시길....현지 사정에 맞춰 주인공을 마꾸어서..
뭐라고들 할지 심히 궁굼하오...ㅎㅎㅎㅎㅎ
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