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씨는 투표일 이틀 전까지 지방유세를 모두 마쳤다. 서울에서 마지막 열두 군데의 유세를 남겨놓고 지방에서 상경길에 오르게 되었다. 5월 24일 아침 첫 비행기로 서울에 오기 위해 나는 김대중씨와 함께 목포비행장으로 갔다. 하늘은 비가 내릴 듯 잔뜩 찌뿌려 있었다. 목포공항 당국자들은 기상 악화로 비행기가 이륙할 수 없으니, 레이더 장치가 잘 되어 있는 광주로 가면 비행기가 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항공편으로 상경할 예정으로 있었기 때문에 타고 다니던 자가용 승용차는 모두 서울로 먼저 올려 보냈었다. 우리는 렌트카를 빌려 타고 광주비행장으로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차량의 순서는 맨 선두의 1호차에는 김대중씨, 2호차에는 나를 비롯한 경호원이 탑승했고 3호차에는 주치의로 수행하고 있던 김대중씨의 둘째 처남 이경호씨가 타고 일렬로 달리고 있었다. 차창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차량 행렬이 청계를 지나 무안에는 채 미치지 못한 지점에 이르렀을 때였다. 뒤쫓아 온 택시 한 대가 내가 타고 있는 경호차 뒤에서 라이트를 켰다 껐다하면서 급한 듯 추월하겠다는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이 도로는 총 2차선으로, 추월선이 없는 편도이기 때문에 앞에서 마주 달려오는 차량이 없을 때라야 앞차를 추월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때 내가 탄 차의 운전사가「어떻게 할까요?」라고 나에게 물었다. 택시가 내 차를 추월할 수 있게 비켜 줄 것인가를 운전사가 물은 것이다. 그 택시는 몹시 급한 용무가 있어 보였기 때문에 나는 운전사에게 택시를 우리 차 앞으로 보내주라고 일렀다. 추월할 때 보니 택시에는 앞좌석에 여자 2명, 뒷좌석에는 남자 2명과 여자 1명이 타고 있었다. 택시는 내가 탄 2호차를 추월하여 1호차와 2호차 사이에 끼어 달리게 되었다. 한참 달리던 택시는 또 김대중씨가 타고 있는 1호차를 추월하려고 비상라이트를 켰다 껐다하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1호차를 추월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차선에서 마주 달려오는 차가 없어야 한다. 택시는 마주 달려오는 차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 볼 생각으로 두 세 번 가량 1호차 왼편으로 따라 붙어 전방을 살피는 것이었다. 택시는 내가 탄 차 바로 앞에서 1호차 추월을 시도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 광경을 잘 살펴 볼 수 있었다. 택시는 전방에서 마주 오는 차가 없거나 멀리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마침내 1호차를 추월하기로 마음먹은 듯 속력을 높이며 왼편으로 비켜 나갈 자세를 취하는 순간이었다.
막상 추월을 단행하려고 왼편으로 핸들을 돌리다가 전방에서 14톤 짜리 대형트럭이 마주 달려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트럭편에서도 추월하려는 택시를 보고 당황했다.
1호차의 운전수도 트럭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 속력을 높이며 핸들을 트럭의 진행방향과 반대방향으로 꺾었다. 맹렬한 속력으로 달려오던 트럭은 결국 1호차와 엇비키기는 했으나 1호차의 뒷꽁무니 약 5분의 1 정도를 스치면서 추월하려는 택시와는 정면충돌하게된 것이다. 택시에 타고 있던 승객 3명은 사망, 3명은 부상을 당했다.
트럭을 스친 1호차는 오른쪽 길로 튕겨 비틀거렸다. 내가 2호차에서 뛰어내려 앞으로 달려가 보니 1호차는 1미터 아래 논두렁에 약 15도 가량 기울어진 채 처박혀 있었다. 김대중씨는 기울어진 차안에서 쓰러진 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힘껏 차체를 밀어 조금 바로 서게 한 뒤에 문을 열려고 했으나 잘 열려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어 차창의 유리를 깨뜨리고 김대중씨를 차밖으로 구조해 냈다. 이때 김대중씨는 다리를 다쳤다. 그리고 나는 다른 경호원을 시켜 트럭운전사를 붙잡아 놓으라고 일러 두었다.
나는 김대중씨를 부축하고 인근1백 50미터 가량 떨어진 민가로 가서 응급치료를 받도록 했다. 그 집은 공교롭게도 경호원 이동신씨의 인척되는 집이었다. 내가 다시 사고 지점으로 되돌아와 보니 내가 이른 대로 경호원들은 트럭운전사를 붙잡아 놓고 있었는데, 약 30분 후에 도착한 경찰이 그를 연행해 갔다. 그때 들은 바로는 사고 택시는 신혼여행자들이 타고 있었다고 했다. 이것이 내가 체험한「자동차 사고를 빙자한 암살음모사건」의 전모이다. 김대중씨가 대중 연설을 할 때마다 자신은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왔다고 주장하는 사건 중의 하나가 이 사고이다.
김대중씨는 사고 후 「기묘하게도 트럭운전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지적하면서 「정부가 자동차 사고를 빙자해서 나를 살해하려고 한 충돌 사건」이라고 주장,「이 사고는 누가 보아도 고의적인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운전사는 경호원들이 붙잡고 있다가 분명히 경찰에 인계되었다. 사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본 내 경험과 상식으로 그 사건은 어느 누구에 의해 저질러진「고의적」인 것이 아니며, 비가 오는 날 일어난 우발적 교통사고에 지나지 않았다.
(함윤식,『동교동 24시』서울: 우성출판사, 1987, P118~121)
박대통령이 음모를 꾸며 고의로 교통사고 냈다고 하는 건 샛빨간 거짓말입니다.
참 개새끼죠.
1980년이면 저 태어나기 1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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