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의 종결부가 잘려서 잘린부분을 별도 게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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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수는 우리들만 믿고, 이것이 뭔 고생이냐 말이여. 이것은 내일까지 해결할테니께, 완전히 궁정동사건이 나온 것이여, 엄청나게, 이런 것만 해도, 우리는 여기서 하나보다. 작업이라고 하는 것이, 형님 가지고 오라면 가지고 오기는 하는데 이 파리같은 거 자르면 뭐하요, 그럼 어찌했으면 쓰것냐 하길래 한 번만 봐주쇼. 문창수는 내 학교 직속선배요, 박종홍이는 군수라고 해봐야 좆도 아닌 것인디 그런 파리목숨보다 못한 것을 짤라봐야, 그런 것이 공무원이라고, 한 번만 봐쥬쇼. 그럼 어떻게 할래, 찢어불고 없는 걸로 합시다. 그러자 대번에 아, 이자식 배짱좋다 그래 좋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서 찢어불데. 그래서 나는 그 찢어진 걸 담았지. 나는 그 근거를 보여줘야 되니까. 한가지 청이 더 있다. 뭔데, 정시채 부지사 좀 봐주쇼, 그래 알았다. 나중에 보자, 나는 형님만 믿고 가께, 그래 너는 가라. 글고는 시청으로 와서 박종홍이 그것들은 벌벌떨고 있제. 시청으로 와서, 군수, 너 이 씨발놈 이랬거든. 야 이새끼야 내가 비록 직급은 낮다고 해도 군수, 그렇게 생활하믄 안돼. 책임감은 있어야 할 거아니냐, 이 새끼야. 그이튿날 새벽 4시경엔가 우리집에 전화가 왔어. "야, 나야." "아니 형님 뭔 일이십니까?" "야, 너 빨리와." 새벽 4시에 사무실로 오라는 거야. 4시에 가니까 야, 정시채 데려가. 아이고 형님 정말 고맙소, 하고 내가 정시채를 끌고 나온거야. 그래서 정시채 관사로 모시고 갔지.
(주 : 이무길님의 노력으로 이처럼 조작간첩이 될뻔한 시장 부지사 등이 구출됨.)
정시채 관사가 농성동에 있었는데 지금 한전 앞에 관사가 있었다고, 정시채를 모셔다 두고 나는 다시 시장 관사로 갔지. 아니 새벽에 뭔 일이냐? 정시채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이요. 아따 큰일했다. 어쩔 것이요. 그리고 나도 목욕 좀 하고 출근을 했단 말이요. 근데 정시채한테 연락이 왔어요. 그 수사관들하고 저녁을 하고 싶다고, 그래서 보안대로 갔지. 누구 누구하냐 하길래 정시채하고 문창수하고 형님하고 나하고 넷이만 만나자. 전번에 갔던 데로 갈까요 하니까, 아니야, 니네집? 에서 하자고 해서 결론은 우리 집에서 하게 된 거지. 그러자 우리 집에서는 명색이 높은 사람이 오는데 요리사를 불러다가 집에서 음식 만들고, 시바스 리갈은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오늘 저녁에 술을 먹게되면 각오를 해라, 그러드란말여. 하여튼 각오를 하쇼.
나하고 넷이 술을 갖다놓고 정시채하고 문창수는 우리 집에 가있고, 나는 보안대로 가서 그 형을 데리고 온거고, 근디 니기 집에 가는데 광주시내 제과점이 어디가 제일 크냐?는 거예요. 나는 생각도 안했는데 자기가 먼저 그러드라고, 그래서 우체국 앞에 중앙제과점이라고 지금도 있는가 모르겄네, 거기좀 들러가자. 과자랑 케익이랑 큰놈을 사드만. 글고 우리집을 갔어. 아. 제수씨, 나 제수씨 처음 보요. 나 무길이 이 친구 말이야 대한민국에 이런 공무원이 없어. 나 제수씨 보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이야. 그놈이 내 놓은 것이, 정시채가 앉고. 그날저녁에 또 술을 안 먹어불데. 술을 안먹으니까 식사만 하는 것이제. 형님 술한잔 합시다, 했더니 아야야, 우리가 이럴 때는 술먹지 말자. 그러면 형님 알아서 하쇼, 문창수 잡아놓고 당신 말야, 그렇게 하면 안되지.
나, 이무길이 이 친구 말이야 참말로 내놓드만. 정신 차리라고. 명색이 줘야 되지, 이 자식 더런 자식, 이러드라고. 임마 내 그런거 바라고 했으면 내가 이것 바라고 당신 내놓은 건 줄 알아. 무길이 이 인간 하나 때문에 당신 산 거야. 더런 자식이네, 그 따위로 생각했어. 당장에 꺼지라고, 밥만 먹고 당장 꺼져, 무길아 니네 집에서 자자. 해서 다 가고 우리 집에서 잔 거야. 정시채가 손이 부끄럽지. 하여튼 형님도 대단한 사람이요, 그래서 나하고 같이 잔 거지. 그날 저녁에 자기 전에 수사만 하고 산 사람이라 대단했어요. 군수고 시장이고 말 한마디면 가는 세상이라 박철웅이는 얼마나 고생을 시켜부렀는지, 하여튼 그래 가지고 문창수하고 정시채가 나만 보면-정시채는 내 대학 선배인데- 그래가지고 5.18이 평정이 된거지요.
(주 : 이처럼 이무길님의 호방한 성격덕에 보안부대 박과 친분이 생김.)
이후 후일담
69년도에 근정훈장을 받고 80년도에 근정포장을 받았는데, 인자 5.18항쟁이 평가되자 서로 간에 공이 있다고 하는구만. 웃기구만, 세상사는 것이. 지기들이 공이 제일이라 하는 놈들이 5.18때는 다 도망가고 그런 놈들이 지들이 제일 공이 많다 하여튼 세상이 그런갑다.
전 : 그래서 언제까지 근무하셨습니까?
이 : 내가 93년까지 했어요. 서기관하고. 그리고 그만 두고 장형태씨가 해양도시가스 회장으로 계시는데 거기에서 나 좀 도와주라 해 가지고 인자 해양도시가스에 가서 4년 동안 기획실장을 하다가 회사가 복잡하더라구요, 노조 때문에 골치 아파서. 노조위원장을 잡아다가 평정시켜버리고, 그리고는 나도 어느덧 60이 다 되가다 보니 남의 밑에 있을 수도 없고 내 사업 찾아야죠. 그래서 지하 2층에 7층짜리 빌딩을 하나지었어요. 지어서 싸우나를 크게 하나 하고있죠.
전 : 완공됐습니까? 이 : 완공됐죠. 첨단지구. 전 : 첨단지구 어디에 있습니까? 이 : 첨단지구에 가면 크게 있어요. 첨단에는 큰 건물이 몇 개 안된께 금방 알아요. 내 아들놈을 위해서 큰놈도 한체대 국가대표를 했기 때문에 그놈한테 줘 불라고 그놈하나 지어놓고 막상 오픈은 했는데 맡겨놓고 보니까 관리가 엉망이어서 인원을 최소를 시켜줘야겠어요. 호남대학교가 1층, 2층을 사회교육원을 만들려고 한갑습디다.
그때는 아주 목불인견이었습니다. 5.18때(전 : 그때는 신원파악도 어려웠고,) 너무 오래돼서 며칠씩 되니까 일련번호를 붙여서 특징, 옷색깔, 신발 같은 거 특징만 적어서 번호만 적어서 입관만 하고 확인된 사람들은 확인만 시키고. 그 일까지 끝내놨죠. 그러니까 5.18이라고 하면 장형태씨, 구용상씨, 문창수, 이무길이는 뺄 수 없어요. 그후로 5.18이 평정이 되니까 5.18부상자회니 뭐니 해서 걸어와가지고는 자기들이 큰 소리를 하고 있는데 막상 자기들이 큰 소리치는 놈들이 나만 나타나면 들어가버려요. ...... 막상 보상받을 놈들은 말을 안해.(전 : 말씀을 들어보니 고생이 많으셨네요)
이 : 누가 이런거 아나. 내가 직접 체험했고, 당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죠. 나쁜 놈들은 없어요. 지금 장회장님은 지금도 항상 죄 많은 인간이다 그때 당시 그 희생을 못 막은 것이 한스럽다 할 정도로 항상 그래요.
전 : 지금 장 회장님은 아직 해양도시가스회장?
이 : 예, 지금도 해양도시가스회장님이시고, 나이가 일흔두살이예요. 꼭 운동을 하면 나를 불러요. 어떻게 보면 네 분은 그 기간동안 피로 얽혀진 그런 관계가 됐구만요. 그러니까 5.18때 아무것도 안했던 인간들이 뭐 지기들이 최고니하면 나는 속으로 지가 뭐라고 말이여. (채록 정리 : 전용호)
(주 : 대략 공감이 감.
당시를 살았던 광주시민들 전체가 피해자이며, 유공자가 아닌 내 아버님도 당시의 참혹한 현장들을 생생히 목격하신 분인데, 선정된 유공자들 중 일부의 유세에는 눈쌀을 찌푸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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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히 읽어보세요 오늘 몇번이나 다시 올리네요
무죄로 결론 난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피해자들이 "고문과 협박을 일삼은 불법 수사의 책임을 지라"며 소송을 내 이기자 돈을 받기 위해 강제 경매에 부친 겁니다.
법원은 당시 수사를 이끌었던 전두환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과 이학봉 수사단장, 그리고 국가가 연대해 10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피해자들은 누구든 한 명을 지정해 돈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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