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라 죄송합니다.ㅋ
역사교육 전공자라서 그냥 오늘 공부한게 머리에 남아서요...
저는 조선의 3대 븅딱 왕으로
1. 연산군
2. 선조
3. 인조
이 세인간을 뽑는데...
역사엔 만약이란 없지만!!!!
인조때 소현세자의 죽음이 나비효과처럼 번져서 19세기 선진문물 수용의 늦음 으로 인해 일어난 근현대사의 원인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조 이새키가 소현세자 안죽였으면 아마 일본보다 개항이 빠르고 메이지유신보다 빠른 근대화를 이루어냈을거라 믿어요.
인조에겐 큰아들 소현세자와 둘째 봉림대군이 있었죠.
병자호란때 항복하며 삼전도 굴욕이후 인조가 수치심과 자존감 상실 엄청난 피해의식에 의해 머리가 햇까닥 하기 시적함과 동시에
소현 봉림 둘이 청에 포로로 끌려갑니다.
첨에 소현은 핍박도 많이 받고 무시도 받고 뭐...아웃오브 안중이었는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똑똑함을 인정받고 청황제의 신임을 받기 시작합니다. 황제랑 엄청 친해지면서 포로이지만 포로가 아닌 굉장한 친한관계를 쌓게 되죠.
그러면서 행동이 자유가 생긴 소현은 아담샬 과같은 서양인물도 만나고 서양 서적들도 읽고 무엇보다 서양의 발전한 물건들을 접하게 되면서
세상이 넓다.. 우리는 너무 갇혀있고 서영의 문물을 수용해서 우리것으로 만들어 발전 쌉가능하다..란 생각을 가지게 되죠. 생각이 트이게 되는겁니다. 내가 왕되면 다 이뤄내리라 하며
그래서 열심히 배우던 중
조선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청황제와 친했던 소현은 청황제가 하사한 엄청 많은 선물들을 싣고 입항을 하게 됩니다.
근데 여기서 인조의 정신적문제를 말해야되는데
인조는 약간 삼전도굴욕이후 싸이코가 되어있었습니다. 당시 왕으로서 머리땅에 세번쳐박으며 황제만세 삼창 했기에 자존심 겁나꺾여서 피해의식 많고 청이라면 부들부들하고 누가 저기 자존심건들면 개빡쳐하는 성격이 되었죠.
그런데 포로로 끌려간 아들녀석이 오는데 자기 예상과 다른 겁니다.
이 아비는 그때의 굴욕에 트라우마 생겨서 부들부들 이를 가는데 아들놈은 포로로 끌려가놓곤 자기보다 편하게 산거 같으니까 개빡치고 삐진겁니다. 아니꼽기 시작한겁니다.
그래서 사실 소현이 탄 배가 들어온다고 해서 어가를 이끌고 마중나갔는데 가다가 산언덕에서 맞은편에서오는 소현의 차림과 며느리 강빈의 멀끔하고 질좋은 옷차림.. 기나긴 선물행렬 들을 보고
이새끼 개편하게 살다왔네 난 ㅈㄴ 트라우마땜에 지금도 잠못자는데 이런겁니다...
여튼 소현 세자는 돌아와서 세자로서 인조에게 갖은 개혁과 자신의 생각을 막 주장하며 신이나서 부국책을 날립니다.
근데 인조는 소현이 뭘하든 아니꼬왔기 때문에 계속 싸웠죠.
이러한 소현세자가 급사한것에 대해 실록에서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1. 소현이 갑자기 학질(몸살)에 걸렸는데 일어나지 못했다.
2. 어의 이형익이 세자에게 침을 놓았으나 일어나지 못했고 죽었다.
3. 인조는 세자의 장례를 단 일주일만에 끝내고 모든걸 정상화 시켰다.. 즉 적어도 세자가 죽으면 1년은 상복을 입는게 원칙인데 장례를 서둘러사 묻어버린것.
이에 대해 일부 역사서 에서는 추정하기를
1. 소현과 인조가 둘이 독대를 하면 항상 큰소리가 오고갔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둘이 서로 독대를 하는데 인조의 화난 목소리와 물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인조가 소현에게 벼루를 던졌고 그것애 맞은 소현은 일어나지 못했다. 는 겁니다.
2. 실록에서 처럼 학질(몸살)에 걸렸는데 어의 이형익이 침을 놓았다고 하는 부분도 문제인게
몸살의 경우 상식적으로는 침보다는 약재 처방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몸살인데 침을 놓을일은 크게 없을겁니다.
근데 어의가 침을 놓았다는 것은 아마 소현이 외상을 크게 입었고 당시 외상치료를 위해 침을 놓은 것으로 보이는 겁니다.
한의학이 외상 치료에는 약하기에 침놓는게 최선이었겠죠.
3. 그리고 더 큰 의문점이. 어의 이형익이 처벌을 받지 랂은 점입니다.
사실 어의는 세자나 세손.. 중전... 왕.. 이 병으로 죽으면 어떤형태로든 형식적으로 처벌을 받습니다.
즉 왕이 노환으로 죽어도.. 그걸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걸 모든 대신들도 알아도... 어의는 자신의 소명을 다 못했기에 가벼운 벌이든 중벌이든 받는게 원칙입니다.
그런데 의문점이 바로 소현을 치료한 어의 이형익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점입니다... 기록이 없습니다... 아니 아버지인 인조가 살아있고 아들이 죽었는데 어의가 처벌을 안받는건 상식상 말이 안되는 부분인거죠.
4. 그리고 일주일만에 장례를 끝낸것.
이부분은 과거 유명드라마 추노에서 오지호랑 이종혁이랑 갈등빚는 장면으로도 나온건데
인조가 장례를 일주일만에 후다닥 끝냅니다..
아무래도 소현의 시신을 누구에게도 보일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의심됩니다... 시신을 보는 자는 누구나 그게 몸살로 죽은게 아니라 맞아서 뇌출혈같은걸로 죽은게 눈에 띄기 때문이겠죠...
당시 세자 시신은 모드누대신들이 볼순 없었갰지만 3정승이하 당상관 정도까지는 장례과정에서 볼수 있었을거라 생각되니까요.. 그걸 빨리 막기 위해서... 장례를 일찍 치러 버린거라 주장하는 의견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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