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국 생활 24년차인 역사 소설 작가 겸 중국에서 작은 사업을 하는 한국 사람입니다.
최근 두 달 동안 한 달 반동안 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동안 겪었던 일 시리즈로 연재해서 올릴까 합니다.
저는 중국 북경에 거주하고 있고 사업장은 중국 동남쪽 복건성(대만과 바로 마주 보고 있음)에 있어 한 달은 북경, 한달은
복건성을 오가면서 살고 있습니다.
1. 복건성 도착
3월2일 북경에서 비행기로 복건성(푸지엔)으로 이동합니다.
원래 2월말에 오려고 했으나 해외부재자 투표 때문에 북경의 중국 대사관에서 재외국민투표 하고 오느라 일정을 늦췄었죠.
국내선 약 2시간 30분 정도 거리인데 도착하자마자 주민 위원회에 신고하니까 3일 내에 핵산 검사를 받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지정된 장소로 가서 검사를 받습니다.
부지런히 일 보면서 왔다갔다 하는데 상해에 살고 있는 알고 지낸지 22년이 넘은 S형한테서 연락이 옵니다.
마침 이직하여 시간이 나는데 머리도 식힐 겸 제가 있는 복건성 구경도 할 겸 놀러 오겠답니다.
늦장가 간 S형은 8월에 애아빠가 되는데 애 낳기 전에 시간도 되니 이왕이면 3월9일 대선 방송 같이 지켜보면서 우리끼리 조촐하게 축하 파티 하자고 그렇게 날을 잡았는데..ㅠㅠ
그 날 일은 정말 다시는 생각하기 싫습니다.
이국 땅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이 이거 밖에 안되나는 실망감과 앞으로의 걱정등등 때문에 S형이랑 둘이서 한 이틀은
우울증이 온거처럼 그렇게 술로 살았네요..울면서 말이죠.
스트레스에 술만 느니 둘이서 낚시대 들고 대만이 마주보이는 바닷가에서 낚시도 가고 저수지로 다니면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보내고 있었는데 3월18일..복건성 제가 있던 도시에서 최초 8명의 감염자가 발생 했습니다.
강을 하나로 두고 쉽게 말하면 강북 지역에서 발생 했는데 서서히 도시의 공기가 변하기 시작하더군요.
원래 코로나 발생 이후에 확진자 1명도 없고 더운 동네라 마스크도 안 쓰고 다녔는데 하루 아침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늘어나더니 엊그제까지 북적거리던 시내 중심가가 문을 닫기 시작합니다.
여기를 떠나려면 48시간 내의 핵산검사 결과가 필요한데 그많던 상설 검사장들이 갑자기 안보이더니 이제 아파트 별로 막아놓고 전주민 대상 핵산 검사를 실시한다고 검사를 받을 수가 없더군요.
중국에서 북경의 코로나 관리가 제일 엄격합니다. 제가 있던 곳에서 14일 이내에 확진자가 나오면 북경 진입이 불가능하고 북경으로 향하는 모든 교통편은 다 자동으로 끊어집니다.
저야 핵산 검사를 받더라도 어차피 북경으로 진입을 못하니 임신한 형수가 걱정인 일단 S형이라도 빨리 상해로 보내고자 시내 곳곳 대여섯 군데 핵산 검사 장소를 찾았지만 모든 인력이 다 인구 800만 도시의 전원 핵산 검사에 동원되어 도저히 검사를 받을 수가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우연찮게 어느 지역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걸 보고 같이 줄을 서서 S형은 음성 증명을 받았고 3월18일 무사히 상해로 떠났고 제가 있던 도시는 3월19일에 전면 봉쇄에 들어갔습니다.
S형은 상해로 돌아가자마자 상해가 봉쇄되어 지금까지 한 달 반 가까이 갇혀있습니다.
그나마 만삭인 형수 옆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인데 엊그제 임산부 정기 검진 때문에 어렵게 허가를 얻어서 외부 병원에 다녀왔는데 정말 도시가 텅텅 비었다고 하네요.
3월19일..갑자기 제가 거주하고 있던 아파트에서 외출을 하지 말라고 하더니 3월22일, 한 집에서 한 명만 장보기가 가능하다고 하길래 그때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서둘러 대형 마트로 가서 계란, 쌀, 라면, 야채, 과일, 고기등등을 샀고 그때만 해도 일부 지역만 봉쇄 중이라 마트에 사재기등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3월 23일부터 갑자기 봉쇄령이 내려지더니 이제 자기 집에서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합니다.
제가 숙소로 잡고 있던 아파트가 12층인데 밖을 보니 방역복을 입은 사람만 보이고 아파트 밖에 사람 하나 안 보이더군요.
그때가 제일 피크였는데 인구 800만 도시에 매일 30~40명씩 나오니 도시를 봉쇄하는 특단의 조치가 취해진겁니다.
거래하던 공장은 다 서버렸고 만들어 놓은 물건을 빨리 실어내서 배에 실어야 하는데 사실상 모든 산업이 흐름이 멈춰 버린겁니다.
저같이 무역업을 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생산중 1로트, 선적중 1로트,생산 준비 1로트, 완제품 통관대기 1로트가 끊임없이 반복 되어야 하는데 갑자기 모든게 끊겨 버린겁니다.
물건을 공급해야하는 저와 공장은 물론 판매 시기가 있는 바이어들에게도 천재지변에 가까운 재앙이었지만 어떤 방법을 강구해도 도저히 해결이 안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인구 800만 도시의 모든 기능이 갑자기 서버렸고 우편물에 묻어 온다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인지 외지나 외국에서 오는 모든 택배도 반입 금지가 되었습니다.
한국인이 코로나 이전에 200여명, 코로나 이후에 100명 안팎이 살던 도시인데 말 그대로 큰 위기가 닥친거죠.
바이어와 샘플을 주고 받고 부지런히 만들어 내야 하는데 모든게 다 멈춰 버린겁니다.
2편에서는 이 사태 발생 이후에 아파트 단지내에서의 단톡방 개설과 제가 복용해야 하는 약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한국 정부와 현지 정부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까지 풀어 보고자 합니다.
2월23일 대사관에서 재외국민 투표 하던 날..
기억하고 싶지 않던 3월9일
망망대해 맞은 편 대만을 보면서 농어 낚시
돌아다니다가 극적으로 찾은 검사소
남쪽이라 한국보다 더울거 같은데
타국에서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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