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육활동과 작업 》
내가 자대배치를 받은 곳은
예비군훈련을 주로 담당하는 향토사단의
한 독립중대였다.
한여름에 자대배치를 받았으므로
공방기라고 하여 마침 예비군교육이 없었고
특별한 훈련도 없었기에
하루일과가 오직 작업과 체육활동의 연속이었다.
작업은 주로
때가 여름이었던지라
풀이 무럭무럭-_- 자라나는 관계로
제초작업과 예비군훈련교장정비가 주를 이루었고
체대 출신인 중대장이 축구를 아주 좋아하는지라
항상 규정에 정해진 일과시간보다
한시간 가량 작업을 일찍 마친 다음
체육활동을 하곤 했다.
여기서 잠깐.
예비역 독자들 중에 좀 의아해하시는 분이 있으실 것이다.
중대장이면 대위 찌끄래기 좁밥-_-인데
왜 중대장 따위가 육군규정을 어기고
지 좃대로 체육활동을 하냐고?
앞에서 말했다시피 독립중대였다.
중대장이 왕이다 -_-
2002년 6월.
그렇다.
한일월드컵이 한참일 때였다.
하필이면 그때 군대에 가 있던 뭐같은 인생이었다. -_-
보통 군대에서 체육활동을 하게되면
축구가 제일 인원이 많기는 하지만
족구를 하려는 사람도 꽤 많고
농구도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때가 때인지라
족구, 농구 등은 비인기종목으로 전락하고
개나소나 다 축구를 하려 했다.
그런데 이 뭐같은 부대는
중대장이 체대 출신인지라
군대축구 주제에 규정을 엄격히 따졌다.
축구는 한팀에 11명씩 무조건 22명만 뛰어야된다는거다 씨바-_-
중대원 거의 60명 정도.
거기에 축구붐이라 간부들도 다 축구하겠다고 깝치니
휴가자나 근무자를 제외하고서라도
한 30명은 볼보이해야된다. -_-
선수 22명에 볼보이 30명.
심판은 선수들 중에 짬밥 높은놈. -_-
갓 들어온 신병들은 당연히 구석에서 볼보이나 하고
병장이나 말년들은 당연히 힘드니까 안한다.
결국 거의 상병급부터 일병급 정도가 축구를 하고
나머지는 걍 구경이나 하는 셈.
한쪽 구석으로 가서 볼보이를 하고 있는데
말년 양병장이 슬금슬금 일어나더니
연병장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중대장 : 어이~ 양병장! 너 이새끼 어디 가냐?!!
양병장 : 아~ 와하하 날이 참 좋습니다. 더워서 도저히 못앉아있겠습니다.
중대장 : 이새끼 말년이라고 또 어디로 샐라그러지?!!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넌 영창이야!
양병장 : 에이씨...-_-
양병장놈 어디 짱박히러 가다가 딱 걸렸다. -_-
다시 슬그머니 자리로 돌아와
땅에 기어다니는 개미새끼들과
대화를 나누던-_- 양병장은
갑자기 뭔가 좋은 생각이 난듯 씨익 웃었다.
양병장 : 카카카 좋은 생각이다 개미야!! 오늘도 신세졌구나. 고맙다!
...
미친새끼...-_-
녀석은 한참 축구를 하고 있는 중대장에게 달려가며 소리쳤다.
양병장 : 중대장님! 중대장님!
중대장 : 뭐야 임마! 말시키지마!
양병장 : 신병애들이 농구가 하고 싶답니다!
-_-
내가 언제?
중대장 : 그래? 알았다. 그럼 니가 인솔해서 애들 농구시켜라!
양병장 : 예 알겠습니다!! 낄낄낄...
지휘관은 막내말에 껌뻑 죽는다.
물론 이미지 관리를 위한 연기다. -_-
이등병 땐 천사로 보이고 아버지같던 존재인 중대장이
일병만 되도 나의 적이 되어버린다. -_-
암튼 그리하여 양병장과 우리 동기 10명은
그다지 관심도 없던 농구를 하러가야만 했다.
우리 중대 구조상
막사에서 연병장까지는 꽤 많이 떨어져있었다.
연병장은 위병소 바로 옆에 있고
막사는 부대의 제일 꼭대기 쯤에 있었는데
고참들 말로는 1㎞ 정도 된다고 하는데
그건 좀 오바인거 같고
실제로는 한 700~800미터 정도 되는 거리였던거 같다.
다시 말해 막사로 올라오면
웬만해선 다른 간부들의 눈을 피해
아무 짓거리나 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_-;
막사에 도착하자 양병장이
농구공 하나를 꺼내 던져주며 말했다.
" 니네 딱 10명이니깐 5:5로 해라. 난 내무반에서 잘테니까 시간 맞춰서 내려와."
-_-
역시 이놈은 걍 처잘라고 우리를 팔아먹은 거였다.
어쨌거나 이제 갓 자대배치받은 신병들이
우리들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게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신병들은 모든 일에 제약을 받고
절대로 혼자서 행동할 수가 없다.
혹시나 탈영을 하거나
다른 사고가 날수도 있기에
반드시 상병급 이상 고참의 인솔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우리 동기 10명은
일병을 달때까지 서로 얘기할 기회도 별로 없었는데
쓰레기말년 양병장 덕분에 우리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_-
농구장은 제일 꼭대기인 막사 뒤편의
산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평지가 나오고
테니스장처럼 울타리를 쳐놓은 곳이 있는데
그곳에 농구골대 두 개가 있었다.
다른 병력들은 다 축구를 하기 위해
연병장에 내려가 있는데다
농구장이 산 속에 위치한 까닭에
우리는 안심하고 담소를 나누며
오랜만에 웃어볼 수 있었다.
동기1 : 야야~ 씨바 양병장 저새끼 존나 양아치네. 뭐 저런 새끼가 다 있냐?
동기2 : 냅둬. 덕분에 우리끼리 자유시간 얻었잖아.
동기3 : 그나저나 우리 내무반에 정상병 새끼 죵니 짜증나. 언제 한번 까버릴까?
동기4 : 야야~ 니가 참아. 그런 좁밥새끼 건드려서 뭐하냐?
동기5 : 아~씨바 밖에서는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것들이...
담소를...-_-;
말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잔뜩 얼어있는 듯이 보이는 이등병들도
지들끼리 냅두면 저렇게 뒷땅을 깐다.
우리 부대에선 '이등병의 날 행사'라고 해서
매주 수요일 저녁에 이등병들만의 시간을 주는 날이 있었는데
그때 필자도 귀가 좀 많이 간지러웠었다. -_-;
조심하자 이등병.
무서운 녀석들 -_-
어쨌거나 그렇게 담소를 좀 나누다가
이내 편을 나누어 농구경기를 시작하려 했다.
농구골대는 꽤나 쌔삥에다
품질도 괜찮아 보였다.
문제는... 경기장이었다.
역시 산속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풀이 자라있고
바닥에는 돌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을 치우는 수밖에 없었다.
풀은 워낙에 많아서 뽑기가 뭐한 관계로
그냥 돌만 대충 치워놓고 게임을 시작했다.
경기시작 10분 후...
우리 10명의 신병들은 모두 멍하니 바닥에 앉아있었다.
바닥에 깔린 돌과 풀 때문에 도저히 경기를 할 수가 없었다.
공만 튀기면 불규칙바운드로 이러저리 도망가버리는 바람에
10분 내내 공만 쫓아다녔다.
씨바 무슨 럭비하는줄 알았다. -_-
덕분에 우리는 농구경기는 포기한 채
처음으로 우리들끼리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고참들 뒤땅까면서...-_-;
그날저녁 점호시간.
당직사관 : 그래 오늘 하루도 다들 수고했고...내일은 작업할거도 없다.
당직사관 : 중대장님 말씀으로는 아마 내일 하루종일 체육활동 할 거 같다...이상.
당직사관의 말에 장병들은 모두들 환호했다.
평일에 하루종일 체육활동만 한다는게 흔한 일이 아니거든.
막 점호를 마치고 나가려던 당직사관이
난데없이 우리 신병들에게 질문을 했다.
당직사관 : 아참...그리고 신병들 뭐 불편한거 없나?
신병들 : 어..없습니다!!
당직사관 : 없긴 뭐가 없냐 새키들...힘든거 다 알아. 이등병때 힘든게 없다는게 말이 되냐?
신병들 : 아닙니다!!
당직사관 : 중대장님 지시사항이니까 불편한거 있으면 하나씩 얘기해라. 웬만한거 다 들어주실거다.
신병들 : ......
마땅히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갓 들어온 신병이니 불편한게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데다
있다고 해도 고참들 앞에서 어떻게 말하냐? -_-;
눈치 보이잖아.
당직사관 : 빨리 말해봐. 이거 파악해야 점호 끝난다.
신병들 : ......
눈치도 없는새키.-_-
너같으면 중대장이 옆에 있는데
대대장이 불편한거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냐?
그때 바로 옆에 서 있던 오일병이 나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오일병 : 빨리 아무거나 말해 이씨박새키야...고참들 점호 끝나기만 기다리는거 안보이냐?
알랑 : -_-;
그렇지만 할말이 없는걸 어쩌냐?
이리저리 고민하다 마침 딱 생각난게 있었다.
알랑 : 이병!! 알!!랑!!
당직사관 : 오~ 그래 말해봐.
알랑 : 저...농구장에 풀이랑 돌이 많아서 농구를 제대로 못합니다!!
순간
수십개의 심상치 않은 눈빛이 느껴졌다.
내 동기들을 제외한 나머지 고참들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나를 잡아먹을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당직사관 : 흠...그래? 알았다. 내일 아침에 중대장님께 말씀드려보지...이상!!
점호가 끝나고...
나는 이래저래 끌려다니며 고참들에게 욕을 먹어야했다.
고참1 : 야 이 개념없는 새키야!! 이등병 새키가 농구가 어쩌고 어째? 이런 미친새끼!
고참2 : 나도 2년 가까이 아무말 안하고 그냥 거기서 농구했는데 어이가 없구만.
고참3 : 암튼 요즘 애들 싸가지가 없어서 큰일이야.
고참4 : 에이 썅...오일병 이새끼 애들 교육 똑바로 안시켜? 앙?!!
아무거나 얘기하라며 씨박놈들아...-_-
그날 왜들 그렇게 오바하며 날 갈구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나름대로 고참들한테 피해안가게 농구장 얘기로 둘러댄거였는데...
다음날 아침.
일과시작과 동시에 작업이 시작됐다.
작업내용은 농구장 제초작업과 돌 제거 작업. -_-
하루종일 체육활동은 물건너갔다.
어느(?) 개념없는 이등병 새키 하나 때문에
전 중대원이 작업에 투입됐다.
고참1 : 뭐야 씨바!! 오늘 체육활동 한다면서 도대체 왜 이거 하는거야?!!
고참2 : 이런 제길!! 군생활 2년만에 농구장 제초작업은 첨 해보네.
고참3 : 씨바 이거 분명히 어떤 개념없는 새키가 소원소리 긁어서 그럴거야!!
그나마 1내무반 녀석들은
왜 체육활동 대신에 작업을 하게 됐는지
그 내막을 몰라서 다행이었다. -_-;
반나절 동안 작업을 마치고
오후엔 예정대로 체육활동을 했다.
그나마 오후에 체육활동을 하게 되어
다들 작업에 대한 불만을 잊어버리게 되서 다행인 듯 싶었다.
또다시 점호시간.
당직사관이 신병들에게 애로사항을 또 한번 물어본다.
이제 대답안할거다 샹놈아 -_-
너땜에 뒤질뻔 했다.
그러나...
어디를 가나 눈치없는 녀석이 한놈씩 있게 마련이다.
나의 동기 자이병이 그랬다.
" 저...돌이랑 풀이랑 다 치워도 산이라 그런지 땅이 울퉁불퉁해서 농구하기가 힘듭니다."
-_-
다음날.
중대 전병력이 투입됐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막사에서 연병장까지 거의 700미터.
농구장에서는 1㎞ 정도.
군대란 곳이 이렇게 무식한 곳일줄은 몰랐다.
오직 사람의 힘으로 그걸 연병장으로 옮기라니...-_-
농구골대가 그렇게 무거울 줄 몰랐다.
골대 하나당 30명 가까이 달라붙었음에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알이 빠지는줄 알았다.
말년들 빠지고 병장들 힘안주고...
반나절이 걸려서야 겨우 연병장에 갖다놓을 수 있었다.
역시 군대에선 안되는 일이 없다.
단지 힘이 많이 들 뿐이다. -_-;
그날 오후에 자이병은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욕을 먹었고
덕분에 내 이름까지 거론돼
나도 덩달아 불려다녔다.
그날 많은 교훈을 얻었다.
농구골대는 참 무겁더라. -_-
신병이라면 부대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저런 실수가 많은 법이다.
나나 자이병이나 절대로 어리버리해서 그런게 아니라-_-;
단지 신병이라 군대의 실태를 잘 몰랐을 뿐이다.
어찌됐건 그날 욕을 많이 먹었고
자대배치 이후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날이 아니었나싶다.
누구나 신병때는 많은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이런 일로 그들을 욕하고 갈군다면
신병들은 위축이 되고 계속해서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작은 실수 정도는 눈감아주고
욕설은 최대한 자제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다.
군대에선 아무 의미 없는 욕 한마디가
안그래도 힘든 이등병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시간은 훌쩍 흘러서
자대배치를 받은지 3주가 지났을때쯤 신병이 들어왔다.
나와 내 동기들은 말군번이라
그녀석들은 바로 후임이였던 것이다.
어차피 후임이 들어와도 같은 이등병이니
고생하는건 변함이 없겠지만
그래도 막내를 벗어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그대들은 알려나?
역시나 3일 정도가 지난 후 저녁점호시간.
당직사관이 묻는다.
당직사관 : 신병들 뭐 불편한거 없나?
신병들 : 없습니다!!
당직사관 : 하하...괜찮으니까 말해봐. 웬만한건 다 들어줄거다.
또한번 오일병의 압박이 이어지고...
" 저...연병장에 농구골대가 있어서 축구할때 많이 불편합니다. 농구는 다른 곳에서 했으면..."
-_-
...이 쉬발럼이...
농구골대는 산에서 연병장으로 내리는 것보다
연병장에서 다시 산으로 갖다놓는게 훨씬 힘들더라.
By. All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