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비군 조교 》
대다수의 후방부대가 그러하듯
내가 있던 부대 또한
예비군 훈련의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
중대 주둔지 자체가 예비군 훈련장이었고
중대원 전체가 모두 예비군 조교의 임무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의 예비군부대는 대대급 규모로 이루어지고
4개 정도의 중대가 같은 주둔지 안에 위치하면서
예비군 훈련을 통제하게 된다.
그러나 필자의 부대는 독립중대였던지라
소속된 대대와는 따로 떨어져서
다른 예비군 자원들로 독자적인 예비군훈련을 실시했다.
대대급 규모에서 주어지는 임무를
일개 중대에서 독립적으로 수행하자니
그에 따른 어려움이 많았다.
처음 자대배치를 받았을 당시에는
공방기라고 하여 무더운 날씨 탓에
예비군 훈련이 없던 기간이었다.
그렇게 공방기가 시작되면
9월이 되기까지는 현역훈련 및 부대정비를 하게 되고
내가 자대배치를 받고 간 시기에도
교장정비로 인해 한참 작업에 열중할 때였다.
따라서 나와 10명의 동기들은
막연히 이 부대가 예비군훈련부대란 것만 알고 있을뿐
구체적으로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지는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이등병으로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_-
대기기간이 막 지나고 경계근무에 투입되기 시작한
그 다음주에 마침 예비군 교육일정이 있었다.
공방기가 시작되긴 했으나
이번 교육은 전반기 예비군훈련을 불참하거나
조퇴를 한 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보충훈련으로
전반기의 마지막 예비군훈련이라 할 수 있었다.
보통 자대전입후 처음 예비군훈련을 하는
신병들의 경우에는
특별히 조교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참관이라고 하여 조교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어떤 식으로 조교임무를 수행하는지를
지켜보게 된다.
그러나 내가 있던 부대는 예비군대대가 아닌
일개 독립중대로서
조교임무를 수행하는 인원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한 중대에 신병 10명이 한꺼번에 배치된 걸로 봐도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그런 탓에 나를 포함한 10명의 신병들은
첫번째 예비군 훈련부터 참관없이
바로 조교하이바를 써야만 하는 불행을 안게 되었다. -_-
조교투입 전날은 마침 일요일이어서
오전은 종교활동으로,
오후엔 체육활동으로 하루를 보내고
저녁을 먹기 전에 잠시 내무반 정리를 하고 있으려니
맞고참인 오일병이 와서 얘기했다.
오일병 : 니네 신병들 내일부터 바로 조교 들어가더라?
신병들 : 네 넵!!
오일병 : 흐음 보자.. 자이병은 이상병님이랑 검문소 조교, 은석이는 나랑 안보교육, 랑이는...
알랑 : (난 뭐지? 두근두근+_+ )
오일병 : 랑이는 양병장님이랑 윤상병님이랑 같이 수색매복조교구나 불쌍한 새끼 -_-
알랑 : -_-;
양병장은 암것도 안하는 말년
윤상병은 중대 최고의 짱박히기 귀재
난 이제 갓 들어온 신병.
환상의 조합이구나 -_-
그러나 오일병이 불쌍한 새끼라고 한 이유가
같은 팀의 조합에 있지 않다는 것은
다음날 조교투입을 하고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점호가 끝나고
잽싸게 고참들의 침구류를 깔아주고 있는데
아랫막사의 윤상병이 찾아왔다.
윤상병 : 야 여기 알랑이가 누구냐?
알랑 : 이벼엉~!! 알! 랑!
윤상병 : 너 내일 나랑 같이 수색매복 들어가더라?
알랑 : 예 그렇습니다!
그러자 윤상병은 활동복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나에게 툭 던져 줬다.
[조교 시나리오 - 수색정찰 / 매복]
영어단어장 크기만한 작은 책자였는데
그 두께는 장난이 아니었다.
대충 펼쳐보니 내가 맡을 임무와
과목에 대한 설명이 쓰여진것 같았다.
윤상병 : 외워라
그렇게 한마디만 툭 내뱉고는 윤상병은 사라졌다.
-_-
어라? 잠깐
지금부터 취침시간인데...
씨박놈 어디 짱박혀 있다가 이제야 주는거냐...-_-;
일단 취침소등을 하게되면
고참들이야 티비도 보고 책도 보고 하지만
이등병인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다른 동기 두 놈은 같은 팀이 소대 고참이라
체육활동이 끝난 직후부터 계속 교육을 받았지만
나는 한놈은 말년이고
한놈은 점호 끝나고 책자 하나만 달랑 던져주고 간다.
뭐 어쩔수 있나?
까라면 까야지 뭐 -_-
일단 취침소등을 하기 전에 최대한 한글자라도 더 보려고
조교 시나리오를 빠르게 읽어나갔다.
그때 마침 담배를 피러 나가던 양병장이
그 모습을 목격하였다.
양병장 : 어라? 랑이 너도 수색매복 조교냐?
알랑 : 넵!
양병장 : 그럼 나랑 같은 팀이네? 교육은 받았냐?
알랑 : 한 10초 전에 이 조교시나리오 받았습니다-_- (윤상병 씨박놈 좃대바라 킥킥-_-)
양병장 : 뭐야?! 지금 잘 시간인데 그걸 어떻게 다 본단 말야?!!
알랑 : ......(그러게 말입니다. 후훗. 도와주십쇼 선배님)
(참고로 양병장은 나랑 같은 대학 선배였음-_-)
양병장 : 윤상병 이새끼 낼모레 지도 병장이라고 쏙 빠졌구만. 걱정마라 랑아. 내가 알아서 해주마.
오옷 역시 선배님이라 다르시군요 -_ㅜ
양병장 : 내가 밑에놈들 다 카바 쳐줄테니까 내 옆자리 와서 외워
-_-;
양병장은 후레쉬까지 빌려주면서 나를 격려해주었다.
그날밤 존나게 아주 존나게 외우다 1시쯤 되서 잠들었다.
내가 머리가 조금만 더 나빴어도 밤샐뻔 했다.
다행히 머리 하나는 기똥차게 좋아서...
뭐 맘대로들 생각해 -_-
다음날 아침.
점호가 끝나자마자 밥을 먹고
조교 복장을 갖추어서 조교사열을 했다.
비록 예비군 조교지만
조교 하이바를 쓰는 그 기분,
캬~ 그건 써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왼쪽 팔뚝엔 조교 완장,
대갈통엔 조교라고 쓰여진 하이바,
알탄띠에 은빛 호루라기,
그리고 어깨를 휘감는 호루라기 체인.
아아 죵나게 멋있어 ㅜ_ㅜ)b
뭐 민간인들이나 예비군들이 보기엔
그냥 다 똑같은 군바리지만-_-
이등병들에게 있어서 조교의 모습은
사회에서 꿈꿔오던 가장 이상적인 군인상이 아니던가! -_-
조교사열을 마치고 연병장 사열대 앞에 정렬해있으려니
예비군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비록 군복을 입긴 했지만
군대에서 처음으로 민간인을 본다는 것이
감격으로 다가왔다.
입소완료 시간이 다가오고...
통제관이 명령을 내렸다.
통제관 : 이제 슬슬 예비군들 집합시켜라.
조교들 : 넵!
자...
이제부터 조교 알랑의 임무가 시작된다.
.
.
.
.
.
- 알랑의 상상
알랑 : 선배님들 담배 소등하시고 연병장에 집합하시겠습니다!
예비군1 : 에이 벌써 시작이야? 하기 싫은데...
예비군2 : 하라면 해야지 별 수 있나? 지금 이순간부터는 우리도 군인인걸...
예비군3 : 그보다 저 조교녀석 목소리가 박력이 장난이 아닌데?
예비군4 : 그러게 말야. 게다가 이등병이라 졸라 깐깐할거 같은데...
예비군5 : 이거 오늘 훈련 편하게 받으려면 담배라도 한갑 찔러줘야 되는거 아냐?
훗 -_-
- 실제상황
알랑 : 선배님들 담배 소등하시고 연병장에 집합하시겠습니다!
예비군1 : 집합못한다 썩 꺼져라
예비군2 : 이런 개념없는 이등병노무새키가 어디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예비군3 : 얌마 이등병 P.X가서 담배나 한갑 사와라.
알랑 : 지 집합 좀...
예비군4 : 아 그놈참 귀찮게 구네. 너도 예비군 되바 이놈아!
예비군5 : 담배 피던거 마저 피고 갈테니까 좀 기다려 짜샤!
이게 아닌데...-_-;
곧 어슬렁어슬렁 집합을 하긴 했지만
대열이나 질서가 말이 아니었다.
윤상병 : 얌마 예비군들 좀 똑바로 세워봐. 이래서 인원파악이나 하것냐?
그래.
좀전에는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야말로 조교 알랑의 박력을 확실히 보여줄때다.-_-
- 알랑의 상상
알랑 : 선배님들 본 조교 바라보시고 5열 종대로 서시겠습니다!
예비군 : 착착착착착 ← 줄서는 소리
알랑 : 거기 빈자리는 뒤에서부터 끌어맞춰 주십시오! 좌우로 정렬!
예비군 : 좌우로 정렬!
알랑 : 앞뒤간격 똑바로 맞추십니다! 줄 똑바로 서주십시오!
예비군1 : 하 녀석 참. 생긴것만큼 까다롭구만.
예비군2 : 그러게 말야. 예비군들한테는 대충 해도 될텐데...
예비군3 : 역시 담배 한갑 찔러줬어야 하는건가?
헤헤 -_-
- 실제상황
알랑 : 선배님들 본 조교 바라보시고 5열 종대로 서시겠습니다!
예비군 : 들쭉날쭉 엉성 -_-;
알랑 : 선배님들 줄을 똑바로 서주셔야 입소식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제발 줄 좀...-_ㅜ
예비군1 : 시끄러 씨박놈아!
예비군2 : 여보세요? 어 나야~ 지금 예비군 훈련받으러 왔어. (전화통화중)
예비군3 : 뻐끔뻐끔~(담배피는중)
예비군4 : ......(귀에 이어폰 꽂고 음악듣는중, 아무것도 안들리는듯-_-;)
이게 뭐야? -_-;
강적이었다.
전혀 내가 생각해온 조교의 모습이 아니었다.
예비군 조교는 그냥 좁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예비군 : 조교야 나 목마르다. 물 한컵만 갖다줘.
예비군 : 얌마 조교~ 내 가방좀 저기 개인물품 보관함에다 갖다넣고 와라.
좁밥이었다. -_-
여기저기서 개인행동을 하는 예비군들을
타이르고 달래서 간신히 입소식을 마쳤다.
입소식이 끝나면 각 학급별로
그날의 교육일정에 따라
각 교장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 이동과정에서 각 교장의 조교들이
인솔을 해서 이동을 하는데
보통 중간짬밥의 조교가 학급깃발을 들고
제일 선두에 서서 가게 되고
제일 짬밥낮은 녀석이 중간에서 같이 따라가면서
대열을 이탈하거나 개인행동을 하는-_- 예비군들을 통제,
그 팀의 왕고는 제일 뒤에 서서 뒤로 빠지는 예비군들과 함께
느긋하게 교장으로 가는 것이다.
입소식이 끝나고 각각의 교장으로 이동을 시작하는데
내가 담당하는 과목이 첫시간에 들어있는 학급만
움직이지를 않았다.
교관은 교육준비를 위해 미리 교장으로 떠났고...
윤상병과 양병장이 사라졌다. -_-
내가 막내인 관계로 예비군들이 마실 물을 떠가기 때문에
깃발을 들 수가 없었다.
윤상병이 깃발들고 선두에 서고
양병장이 뒤를 받쳐주고
나는 물통들고 중간에서 가야되는데...
두놈 다 사라지고 나 혼자 남았다. -_-
안그래도 첫 조교 임무라 긴장하고 있는 판국에
이런 시련이 떨어질 줄이야...-_-;
혼자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도
빨리 가자고 재촉하지 않는 예비군들이 더 신기했다.
그래...당신네들은 교육시간 줄어들고 좋겠지.-_-
어쩔 수가 없었다.
어쨌든 훈련은 해야할거 아닌가?
나는 한손에는 말통을 한손에는 깃발을 잡고
입에는 호루라기를 문 채
선두에 섰다.
알랑 : 선배님들 교장으로 이동하시겠습니다. 본 조교를 따라 이동해주십시오.
간신히 혼자 인솔을 해서 교장으로 이동하다보니
문득 생각난게 있었다.
고참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 부대가 비록 후방부대이긴 하지만
예비군들에게는 거의 특전사 수준이었다.
예비군훈련이 빡세봐야 얼마나 빡세겠냐만은-_-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부대가 산중턱에 위치한 관계로
각 교장이 여기저기 산 속에 짱박혀 있던 것이었다.
교장이동이라는 건
곧 이 산을 내려가 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
실제로 교장을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만 2~30분이고
느긋한 예비군들의 걸음으로 봤을 때
그 시간은 플러스 알파였다.
교장이동 후에는 조빠지게 산을 탔으니
잠시 쉬는시간.
교육시작하기 전에 잠시 교관의 잡담.
실제 교육시간 20분 미만. -_-;
교장이동만으로도 교육효과는 방대했다.
실제로 교관들 중에는
거의 1년 내내 제대로 된 교육 한번 하지 않고
꿋꿋이 월급받는 엉터리 교관도 몇명 있었다.
교장이 산꼭대기에 있어서
이동하고 나면 교육시간이 끝나 있었거든. -_-
내가 조교를 맡은 수색매복 교장이 바로 그러했다.
이 지역 예비군들이 가장 훈련받기 싫고
제발 이곳만큼은 안걸렸으면 한다는
예비군들의 특수부대가
바로 우리 부대였다. 와핫핫.
뭐 그다지 자랑스럽진 않다. -_-;
어쨌거나 사정이 이러하니
수색매복 교장으로 이동하다보면
예비군들이 지쳐떨어지는건 불을 보듯 뻔한 일.
훗, 이제야 조교의 권위를 세울 때가 온 것인가?
나는 히죽히죽 쪼개며 예비군들을 인솔해
수색매복 교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알랑의 상상
알랑 : 삐익 삑! 삐익 삑! 삑삑삑삑 삐익 삑! (호루라기 소리)
예비군1 : 헥...헥...헥...조교님 아직도 멀었습니까? 헤엑...헥...
알랑 : 이제 절반 정도 왔을 뿐입니다. 이 정도에 지치시면 어쩝니까 선배님 -_-
예비군2 : 헥...헥...제대한지 오래되다보니 체력이 많이 약해진듯 합니다...헥...헥...
예비군3 : 헥...헥...그나저나 조교님은 숨이 가쁘지도 않으신 모양입니다. 헥...헥...
알랑 : 하하. 저야 뭐 매일 하는 일이니까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예비군4 : 아아 존경스럽습니다. 역시 현역군인들은 다르군요. 헥...헥...
알랑 : 훗, 과찬이십니다. 선배님들도 역시 이런 때가 있으시지 않으셨습니까 음핫핫
예비군5 : 역시 조교님같은 군인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기에 이 땅이 평화로운 것이 아닐까요?
예비군들 : 조교님 만세~!!
알랑오빠부대 : 꺅~ 역시 알랑오빠 짱~!! (← 이건 좀 오바인가?-_-;)
낄낄낄-_-
- 실제상황
알랑 : 헤엑 헥 헥 헥 헤엑 (←숨도 제대로 못쉼-_-)
예비군1 : 조교 이 씨방새야 빨리 좀 가. 죵니 느려터졌네
예비군2 : 젊은 놈이 체력이 그렇게 약해서 어따 써먹어!
예비군3 : 늦게 왔다고 교관이 쉬는시간 안주면 니가 책임질거야 새꺄!
시끄러 젠장 -_-;
역시 한손에는 깃발을
한손에는 물이 가득 찬 말통을 들고 산을 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_-
깃발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말통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무게가 한 100㎏은 되는 것 같았다.
-_-
너무 심했나?
그래 그럼 한 90㎏정도로 할까? -_-
그냥 그렇다고 해줘.
어쨌든 졸라 무거웠단 소리야. -_-;
어쨌거나 이렇게 무거운 걸 들고
선두에 서서 산꼭대기로 올라가려니
하늘이 노래지고 숨도 제대로 쉬지를 못하겠더라. -_-
어제 오일병이 불쌍한 새끼라고 한것은
이런 이유였겠지. -_-;
그렇게 조빠지게 가다보니
시간이 꽤 지나서야 겨우 교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간신히 교장에 도착해서
겨우 한숨을 돌리려니
빈 강의장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는 교관이 보이고...
나무그늘 밑에서 하이바를 베고 누워 처자고 있는
윤상병과 양병장이 눈에 들어왔다. -_-
-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