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나는 사람들 》
이등병의 임무 중에 '뻐꾸기'라는게 있다.
물론 부대마다 그 명칭은 다르겠지만,
예를 들어 병장 중의 누군가가
" 어이~ 뻐꾸기~!!" 하고 부르면
" 이벼엉~! 알! 랑! " 하고 잽싸게 뛰어가서
" 뻐꾹~♪ 뻐꾹~♪ 김OO 병장님~♪ 이십 오 일 남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짝짝짝짝짝!"
뭐 이런 식으로 간단한 율동을 섞어서
말년들의 남은 날짜를 알려주는
일종의 알람시계 기능같은...-_-;
솔직히 글로 쓰니까 이렇게 쉽게 말하지
이짓을 한다는게 참 보통 일이 아니다.
엄청난 수치스러움과 함께
자신의 남은 날짜와 비교체험을 시켜줌으로써
끝도 없는 좌절을 불러오는
일명 '죽음의 뻐꾸기'...-_-
내가 막내였을때 우리 내무반에 말년이라곤
양병장 하나밖에 없었고
또한 일찍 막내가 들어왔던지라
나는 간신히 뻐꾸기 시절을 지나칠 수가 있었지만
1~2주 정도나마 뻐꾸기를 담당했던
같은 소대의 두명의 동기놈들은 참으로 불쌍했었다. -_-
- 자이병의 증언
" ...죽고싶었습니다. 참으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더군요.
이 나이에, 그것도 남자 앞에서 그런 짓을 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정말 혀라도 깨물고싶은 심정이더군요..."
- 박이병의 증언
" ...수치심과 함께 묘한 쾌감이 느껴지더군요.
뻐꾸기 율동을 하면서 다짐했습니다. 기필코 10배로 갚아주리라구요..
그래서 저는 말년때 10명으로 구성된 저만의 '뻐꾸기 친위대' 를 조직했습니다.
10마리의 뻐꾸기가 들려주는 화음은 참으로 환상이더군요..."
이 둘은 양병장의 직속 뻐꾸기로서-_-
약 3주 정도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뺀질이가 막내로 들어오던 날
화장실에 짱박혀 남몰래 울었다고 전해진다. -_-
그러나 녀석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뺀질이가 들어오던 날부터
양병장은 그 누구에게도 뻐꾸기 임무를 맡기지 않았다.
아마도 이제 남은 날짜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뻐꾸기의 필요성을 못느낀 걸수도 있고
날짜를 세면 셀수록
시간이 졸라 안간다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양병장의 성격으로 봐선 아마도 후자일거라 짐작하는 바다. -_-
동기놈들이 뻐꾸기노래를 안부른지 좀 시간이 지났다고 느낀 어느날,
저녁점호가 끝나고 고참들의 침구류를 깔고 있는데
양병장이 나를 불러냈다.
보통 저녁점호가 끝나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간단히 담배를 한대씩 피고 들어온다.
물론,
짬밥이 높은 경우에 한해서다.
이등병 때는 그런 것을 꿈도 꾸지 못했지만
나의 경우엔 양병장이 거의 매번 데리고 나가주었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다.
졸라 편하게 군생활해서 미안하다-_-
그날도 역시 담배나 같이 한대 피자고 그러는줄 알고 나가봤더니
아니나다를까 담배를 권하며 같이 막사뒤 돌계단에 앉았다.
" 랑아."
" 이병! 알! 랑!"
"...후우...몇일 남았냐?"
" 무슨...말씀이신지..."
" 군생활 몇일이나 남았냐고?"
이등병때 고참들이 이런 질문을 하면 조심해야된다.
갈구기 위한 꼬투리를 잡으려고 물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예 한 700일 정도 남은거 같습니다." 라고 아무 생각없이 대답하면...
" 오호...이등병 새끼가 그런거 세고 있을 시간도 있고 군생활 참 편한가보다?"
뭐 이런 식으로 끝도 없는 갈굼이 시작된다. -_-
그러나 나와 양병장의 경우엔
양병장이 시도때도없이 물어봤었기 때문에
별로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별로 할말도 없으면서 괜시리 남은 날짜를 물어보곤 했었다.
" 예..702일 남았습니다.."
" 그러냐..."
" ......"
" 난... 이제 이틀 남았는데~ 웅헤헤헤헹~"
...
이새끼 그냥 자랑하고 싶어서 맨날 물어봤구나-_-;
" 랑아...이 형 군생활 이제 이틀밖에 안남았다 흑흑."
" 감축드립니다-_- "
" 훗, 비록 힘든 군생활이었긴 하지만 그래도 꽤나 정든 곳인데...
떠나려니 웬지 아쉽군..."
......
넌 조또 안힘들었잖아 씨발;
" 랑아..."
" 이벼엉~! 알..."
" 됐어 짜샤. 관등성명 대지마. 난 이제 민간인이야.
이제는 날 형이라고 부르렴."
" ...예..."
그리고 양병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담배연기만 삼켜대고 있었다.
"...랑아..."
"...예..."
" 캬하하하핫. 부럽지? 부럽지? 졸라 부럽지? 응? 응? 카카캇"
" 아닙니다...-_-; "
" 부럽잖아 씨발-_- 부러우면 부럽다고 솔직히 말해. 응? 응? 부럽지? 우헤헤헤"
뭐 이런 녀석이...-_-;
" 하핫. 부러워할거 없어 임마. 군생활이란거 별거 아니다. 금방이야."
"...예.."
" 훗, 넌 아직 실감 못하겠지만... 정말이야... 너도 금방...이런 날이 올거야."
"......"
" 내가 이등병때 막 전입해왔을때...우리 분대장이 라병장이란 녀석이었는데...
그녀석이 그러더구나..."
" 예...뭐라고..."
" 군생활 금방이라고...너도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거라고..."
"......"
" 랑아. 군생활은 말야. 기다림의 연속이야. 너는 지금 백일휴가만 기다리겠지?
휴가 갔다오면 일병진급만 기다릴거야. 또 진급하고 나면 휴가 기다리고...
외박날짜 기다리고...면회 기다리고...편지 기다리고...
그렇게 하루하루 기다리면서 살다보면 하루 지나고, 일주일 지나고, 한달 지나면서
너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날이 성큼 다가서는거야."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직은 몸으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슨 말인지는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 랑아...참아라. 꾹 참고 또 참으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면
너도 어느샌가 막내놈 불러다가 이런 얘기 해줄날이 올거야.
금방이다, 정말... 금방이다."
정말...
금방이다.
나는 벌써 한참 전에 제대를 해서
지금은 이렇게 군대얘기를 추억으로 삼아
글도 쓰고 있다.
2년 2개월,
길게만 느껴지던 그 시간들은...
금방이다.
" 이런...나의 코믹이미지에 맞지 않게 너무 멋진 소릴 해버렸다.-_- "
" 아마도 양병장님을 글에서 빼려니 글쓰는 새끼도 아쉬운가봅니다.
이놈은 이제 과연 어떤 캐릭터로 웃길지...-_- "
" 훗, 내일은 뭐한대냐? 교장보수작업인가? "
" 예..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곧 후반기 예비군교육 준비때문에
교장보수를 한다던데 말입니다."
" 그래... 내일이...마지막 작업이구나..."
우리는 다시 내무반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에 빠져 있었고
나도 조용히 모포속으로 들어갔다.
양병장은 무엇이 그렇게도 아쉬운지,
잠든 소대원들의 얼굴들을
하나하나 쳐다보며
그렇게 내가 잠들때까지도 계속
내무반을 서성였다.
아침이 밝았다.
점호가 끝나자마자 모두들 작업도구를 챙기기에 정신이 없었고
양병장은...
여전히 침상 구석에서 처자고 있었다. -_-;
인원체크를 하고 작업도구를 챙겨
우리 소대의 담당교장인
수색정찰/매복 교장으로 이동하려는데
활동복 반바지에 런닝 하나만 달랑 걸친 양병장이
쭐래쭐래 따라왔다.
고릴라 : 뭐 뭡니까? 왜 따라오는겁니까? 계속 자던 잠이나 자십쇼-_-
양병장 : 응 니네 놀려줄려고 가는거야. 좆뱅이 쳐. 캬캬캬
고릴라 : 젠장..-_-;
교장에 도착하고 작업이 시작되었다.
군대에서의 작업이란 온통 곡괭이질에 삽질뿐이다;;
한참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잔소리를 늘어놓던 양병장이 조용히 말했다.
"...내게 절대곡괭이를 줘..."
-_-
절 대 곡 괭 이.
지금으로부터 약 10여년전..
군에 구타와 폭행이 난무하던 그 시절에
정의를 실현하고자 나타난 이OO 행정보급관.
그는 자그마치 일주일간이나 소금물에 담궜다 말리기를 반복한
나무몽둥이 하나로 부대 내의 폭력을 근절하고
평화로운 부대, 행복한 내무반을 실현해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임무를 완수하고
어느 부대의 주임원사로 발령받아 떠나던날...
그에게 숙청당한 한 악질상병이
그의 나무몽둥이를 곡괭이자루로 만들어 썼다하니
이를 절대곡괭이라 부른다.
그냥 우리 부대에 전해지던 전설이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_-
어쨌거나 절대곡괭이의 명성에 걸맞게
몇번이나 곡괭이가 부러지고 새로 구입하기를 반복하는 동안
이 절대곡괭이만큼은 한번도 부러진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절대삽, 절대망치, 절대톱 등의 아이템이 있으나...
문맥상 불필요한 얘기이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_-
그나저나 양병장이 도대체 왜 절대곡괭이를...?
" 절대곡괭이는 왜 말입니까? 우리 작업해야되니 다른거 갖고 노십쇼. "
" 이런 샹-_- 나도 작업할려고 그러는거야;;"
" 미친...-_-; 말년이 작업은 무슨 작업입니까?!! 그냥 구석에서 개미들이랑 노십쇼.
내일이면 나갈 사람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려구 그러십니까..."
" 그래... 그렇지만 이것도 이제 마지막인걸...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고 싶어서 그런다..."
" 훗, 평생 곡괭이질 한번 안하고 살것 같습니까? 나가서도 할 수 있습니다.
양병장님은 어차피 평생 노가다할지도 모르잖습니까 낄낄-_- "
" 그게 아니라 이자식아...-_-; "
" 그게 아니라...
너희들이랑 같이 땀흘리는게 마지막이잖냐..."
일순간 모두들 조용해졌다.
같이 땀흘리는게 마지막이다...
오랫동안 함께 생활한 사람이 아님에도
웬지 모를 아쉬움과 서운함이 밀려들었다.
고릴라병장이 갖고있던 절대곡괭이를
말없이 양병장에게 넘겼다.
" 훗, 녀석들...곡괭이질도 하나 제대로 못하다니...
에휴...이놈의 소대 나 없으면 어찌 돌아갈지..."
" 양병장님 때문에 제대로 안돌아간 겁니다. -_- "
" 으음...-_-; 어쨌거나 잘 봐라. 내가 곡괭이질은 이런거다 하는걸 보여주마.
내 마지막 곡괭이질이 될거야."
양병장은 조용히 곡괭이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리고...
말없이 곡괭이로 땅을 파들어갔다.
한줌...한줌...
산속에는 곡괭이질하는 소리만 힘차게 울려퍼졌다...
" 땡강!!"
-_-
...부러졌다.
절대곡괭이가...-_-;
고릴라 : 크헉...저 절대곡괭이가...
양병장 : -_-;
고릴라 : 크아아악!!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절대곡괭이를 부러뜨리다니!!
이거 행보관님이 제일 아끼는건데!! 크흑...우린 죽었어...
양병장 : 미안-_-
소대원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고릴라 병장만이 싸늘하게 쪼개진-_-
절대곡괭이의 시신을 부여잡고
눈물을 떨굴 뿐이었다. -_-
" 이건... 고릴라가 저지른 짓이야. 내가 그런게 아냐 씨발;;"
" 무슨 소리하는 겁니까? 양병장 당신이 그랬잖아!!"
" 고릴라...이 맞고참의 마지막 부탁이다. 나를 위해 니가 모든걸 뒤집어써라.
나 내일 집에 못갈지도 몰라 흑흑..."
" -_-; "
그때 별안간 산속을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
" 닥쳐 이 개색기야!!!"
" 크헉...해 행보관님!! "
" 다봤다 이새끼야. 넌 오늘 내손에 뒤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실로 눈깜짝할 사이에...
양병장은 숲속으로 번개같이 사라졌다.
흡사 원숭이의 몸놀림을 보는듯 했다. -_-
그날 오후 내내 산에서는
" 서라!!" 와
" 잘못했어요!!" 의 메아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양병장은...
그날 밤에도 내무반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10시가 넘도록 양병장은
내무반에서 무언가를 붙들고 끙끙대고 있었다. -_-
" 하아...드디어 다 했다."
양병장은 반성문 10장을 쓰고 나가라는
행정보급관의 엄명을 받고
다음날 11시가 다 되어서야 간신히 휴가출발을 할 수 있었다.
" 랑아...마지막으로 형이 부탁이 있다."
" 예...무슨 일입니까?"
" 이 반성문 좀 행보관님 책상 위에 올려놓고 와라.
이 형은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하여 더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가 없다.
마침 행보관은 작업순찰중이니 조용히 올려만 놓고 오면 된다. 그럼..."
양병장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정든 부대를 떠나갔다.
이놈이 과연 반성문을 제대로 쓰긴 했을까?
궁금한 마음에 녀석이 쓴 반성문을 펼쳐보았다.
To. (행) 보관이 형
보관이 형,
절대곡괭이 일은 미안하게 됐수.
내가 일부러 그런건 아니고 나름대로 마지막작업이라 열심히 한다는게
그만 그렇게 되버렸네요.
어차피 그놈이 수명이 다 되어 죽을 팔자였어요.
이번 기회에 곡괭이 하나 새로 장만합시다.
작업도구 같은거에 좀 돈아끼고 그러지 말아요.
다 부대를 위한건데...
애들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하는거보면 안타까워 눈물이 납디다.
이제 그만 지난 일은 잊고
형 나중에 만나서 한잔 해야지?
그나저나 보관이 형은 언제 제대하우?
제대하면 연락해요. 내 거하게 한잔 쏠테니...
아무튼 안녕히 계시고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나겠지... 잘 사쇼.
- 이제는 민간인 양병장 올림
-_-
겨우 이거 쓰는데 몇시간씩이나 걸린거냐..
그나저나 이새끼 그냥 말년휴가 나가는거라 또 복귀해야할텐데...;;
진심으로 제대하기 싫었구나...-_-;
By. All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