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일휴가 - 3 》
모니터 위에 올려놓은 전투모에는 일병 약장이 박혀 있었으나
차림새로 보아선 평범한 군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일병 계급장을 단걸로 봐선 예비군도 아니고...
도대체 뭐하는 녀석일까?
이리저리 녀석의 차림새를 힐끔힐끔 살피고 있는데
뭔가 낌새가 이상했던 모양인지
내쪽으로 갑자기 고개를 확 돌렸다.
' 헉...아 샹...들켰나?'
애써 모른체하고 존나 열심히 게임하는 척 했다.
아니나다를까...
내쪽을 살피는 듯 하던 짝퉁군바리-_-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앉아있는 자리 바로 옆까지 다가온 녀석은
또 한번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듯 했고
나는 끝까지 못본척하고 졸라 현란하게 마우스를 움직이며
멋진 저글링 컨트롤을 보여주...
...려 했으나...
- 유 아 엘리미네이티드 -
- 넌 이미 뒤졌어 새꺄 -
-_-
낭패였다;;
이미 게임화면은 넌 뒤졌으니 어서 나가라는 메세지를 띄워줬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그냥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 저..."
갑자기 녀석이 내 어깨를 툭 쳤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애써 담담한 척하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녀석을 쳐다보았다.
" 저기... 너...랑이 아냐?"
" 아...네... 맞는데...어라? 너...용준이냐?"
" 와핫핫 이자식아 이게 얼마만이냐?!! 뭐야? 휴가 나온거야?"
알고보니 이 짝퉁군바리-_-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용준이라는 녀석이었다.
솔직히 욘사마와는 조또 안닮았지만
맨날 지입으로 지가 배용준이라고 떠들던 녀석이라
그냥 녀석의 가명을 용준이라고 해두겠다.
배용준님께는 어떠한 원한도 없음을 밝혀둔다. -_-
" 어 나 백일휴가 나왔는데...깜짝 놀랬잖아 새꺄!! 도대체 이 복장은 뭐냐?
그리고...너 나보다 먼저 군대가지 않았었냐?"
" 응? 어...아하하...나 상근이잖어 헐헐...
예비군훈련 소집통지서 돌리다가 잠깐 땡땡이치는거야."
" 사 상근?;;"
" 으응...;;"
-_-
믿을 수가 없었다.
집채만한 녀석의 체격으로 보아선
해병대나 특전사라 해도 믿어질 터인데...
게다가 녀석은 내가 입대하기 불과 몇달 전에
군대 간답시고 있는 놈 없는 놈 죄다 불러모아서는
술을 뒤지도록 처먹고 이등병의 편지 부르면서
졸라 울었단 말이다 씨바-_-;
" 너 이 씨박; 작년 겨울쯤에 군대간다고 질질 짜더니 상근이었냐?!!"
" 그 그땐 나름대로 슬펐어 십색갸!!;;"
이런 썩을놈이...-_-;
어차피 다섯시 칼퇴근 할 놈이 뭐가 슬프다고;;
그것도 군부대로 출퇴근하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5분 거리밖에 안되는 동사무소로 출퇴근하는 놈이...;
아 여기서 본 필자가 상근예비역들을 무시하는게 아님을 밝혀둔다.
난 단지 다들 당당하게 가는 군대를
눈물콧물 다 짜고 가기 싫다고 징징거리면서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들어간 녀석이
알고보니 동사무소에서 출퇴근하는 상근예비역이었던 것에
배신감을 느낀 것 뿐이다.
그러고보면 하늘은 참 불공평한거 같다.
이놈처럼 튼실한 체격조건을 갖추고 넘치는건 힘밖에 없는 녀석은
동사무소 상근으로 군복무를 하게 해주시고
나같이 깡도 없고 허약해 빠진 놈은
산골짝에 처박힌 부대에서 2년 넘게 생활하게 하시다니...-_-
" 그나저나 휴가나왔으면 술한잔 해야지? 니가 젤 늦게 갔으니 만날 애들도 없을텐데...
나 통지서 다 돌리면 한잔 하러 가자."
" 응-_- "
그래도 사실 이놈이 상근이었다는 건 행운이었다.
4박 5일 동안 알콜은 냄새도 못맡아보고 컴터만 붙잡고 있을 뻔 했는데...
그나마 이놈이라도 있어 같이 술이라도 마실 수 있지 않은가..
용준이 녀석이 통지서를 다 돌리고
집에 들러 전화점호를 받고 나온 후에야
우리는 모처럼만에 술자리를 같이 할 수 있었다.
비록 한놈은 동사무소 상근예비역이고
또 한놈은 겨우 백일 지난 이등병이었지만
그래도 군바리라고 안주거리는 온통 군대 얘기 뿐이었다.
여자분들은 군대 얘길 싫어한다지만
군대를 갔다온 남자들 입장에서
군대 얘기만큼 신나는 일은 없다.
뭐 거의 절반 이상이 구라로 이루어진 얘기고
개나소나 간첩은 한번씩 다 만나봤다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사나이들 모두가 공감하는 그곳,
그곳이 바로 군대가 아니겠는가?
군대 갔다온게 자랑이냐고?
자랑이다-_-
억울하면 당신도 갔다와서 자랑해라-_-
뭐 암튼;;
둘째날은 그렇게 용준이 녀석과 같이 술을 마시고
새벽에야 집에 들어갔다.
이제 잠이 들고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휴가는 이미 절반이 지나간 상태일 것이다.
이제 고작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이토록 불안하고 복귀가 걱정되는 것은 어떤 이유인지...
그날 밤은 그렇게
벌써부터 복귀에 대한 걱정을 하다 잠이 들었다.
휴가 3일차.
이날은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눈을 떴다.
참으로 오랜만에 늦잠을 자보았다.
물론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고
술도 꽤 많이 마셨기 때문에
입대 전의 내 생활에 비해선
정말 엄청나게 일찍 일어난 것이다.
옛날 같으면 해떨어질 때쯤 일어났다. -_-
그렇지만 역시나 규칙적인 생활로 인해 몸이 부지런해졌는지...
음...그건 아니고...
솔직히 시간 아까워서 졸라 무리해서 일찍 일어났다. -_-
790일 군생활 중에 고작 5일 쉬라고 보내준건데...
잠만 처자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일분 일초라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신속하게 세면을 하고 옷을 챙겨입었다.
그러나...
모든 준비를 마치고나니 막상 할일이 없었다. -_-;
용준이놈은 5시 넘어야 퇴근을 하고
다른 친구놈들은 다들 군대가 있는 상태고,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바닷가에 놀러가야 되는건데...
그냥 집에서 욕조에 찬물 받아놓고 놀아야겠다 젠장-_-;
그래서 그날은 하루종일 좁아터진 욕조에서
물장구치고 놀았다.
끝.
-_-
이렇게 끝나면 내가 너무 비참해 보이니
다른 얘기를 하도록 하자. -_-;
욕조에서 한참 물장구를 치고 노는데;;
난데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 알랄랄랄랄랑~ 알랄랄랄랄랑~"
' 에이 씨 한참 재밌는데-_- 도대체 누구야?'
투덜거리면서 대충 물기를 닦고는
발가벗은-_-채로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카카캇~ 뭐하냐?"
목소리나 말투로 보아하니 진수녀석이었다.
" 뭐하긴...그냥 욕조에 물받아놓고 물장구치고 있어."
...라고 내가 순순히 말할거 같은가?
얼마나 쪽팔리는데...-_-
" 어. 오늘 친구들 만나서 바닷가나 갈려구 카카캇 "
" 어 그러냐? 근데 이자식 너 왜 반말이냐?"
" 뭐래는거야 이새끼가...그럼 존댓말하리?"
" 아 아니 이새끼?!! 야 이 새끼야! 나 분대장이야 임마!"
" 훗, 지랄하네 미친새끼...뻥까지마 새꺄! 그럼 난 중대장이다! "
잠시 수화기 저편에서 침묵이 흘렀다.
훗, 진수 이자식...니까짓게 감히 고릴라인척 하다니...-_-
" 이 이봐 랑아..;; 나야 나 니네 분대장...병장 고릴라야 임마."
" 크헉!! 추 충성!! "
이런 닝기미 씨봙 좃됐다-_-;
부대에 있을때는 몰랐는데...
전화로 들으니 고릴라와 진수의 목소리가 흡사했다.
게다가 전화를 하면 첫마디가
" 카카캇~뭐하냐?" 인것까지...;;
" 아 아니 저...그게;; 치 친구인줄 알고..."
" 오호...그러십니까 중대장님?"
" 아 아니...중대장님이라니 무슨...;;"
"내가 분대장이면 넌 중대장이라며 새꺄-_- "
-_-;
" 오호홋~ 안그래도 휴가 3일차로 슬슬 복귀가 걱정될텐데...
이제 더욱 더 복귀하기 싫겠구나."
" 아 아닙니다-_-; "
" 그냥 휴가 잘보내고 있나 싶어 전화해봤다. 마침 오늘 일직하사 근무라...
이자식 분대장한테 안부전화 한번 안하냐? 뭐 어쨌거나 남은 휴가 잘 보내고...
뭐 오늘 일에 대해선 아무 소리 안할테니까 걱정말고 복귀하도록 해라. 카카캇"
고릴라 병장과는 전화로 인한 안좋은 기억이 많다.
22편 딸딸이 사건-_-부터 해서 오늘 사건까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릴라는 생긴거나 말하는 거에 비해
속이 깊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무서운 척 하고 인상도 더러웠지만-_-
그래도 항상 후임병들을 잘 챙겨주고
이렇게 백일휴가 나간 분대원에게 전화도 해주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약속대로 고릴라는 내가 복귀한 후에도
전화에 대해선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냥 중대 전체에 소문만 내놨을 뿐이다.
나쁜놈-_-
고릴라와의 통화를 끝내고
다시 욕조로 들어가-_- 앉아 있으려니
문득 머리 속을 스치는게 있었다.
전화...
내가 왜 생각을 못했지?
부대에 있을때엔 그렇게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틈만 나면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_-
수신자부담 전화로 전화를 걸어대던 나였건만...
휴가를 나오고는 한번도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보지 않았었다.
욕조에서 기어나와 대충 몸을 말린 후에
옷을 입고 전화기 앞에 가서 앉았다.
으음...
그냥 전화 한통 하는건데 왜 이렇게 떨리냐? -_-;
일단은 입대 전에 적어두었던
아는 사람들의 주소록을 들고 와서
차례차례 페이지를 넘기며
전화를 걸 상대를 물색했다.
무 물론 여자이름부터...*-_-*
" 으음...지현이, 태희, 가인이, 근영이, 수정이, 혜교, 한별이...
누구한테 먼저 하지? *-_-* "
-_-
뭐 뭐냐? (-_-)+ ← 이런 눈초리들은..
당신은 못믿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여자애들 이름이다.
물론 연예인은 아니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저런 이름을 가진 애들이 있다.
뭐야?!!
내가 뻥이라도 친다는거냐?!! -_-
뻥이다 씨봙;
그냥 내 희망사항이니 군소리말고 읽어주세요..;;
" 그래...젤 이뿐 우리 지현이한테 먼저...헤헤..."
" 뚜루루루루~뚜루루루루~"
음..;;
어찌된 일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더니...
초절정 미인이라 오후 두시까지 자빠져 자나보다. -_-
" 에이~ 그럼 가인이한테...헤헤..."
" 뚜루루루루~뚜루루루루~"
역시나 받지 않는다. -_-
그 다음 근영이, 수정이, 혜교, 한별이 등등에게
전화를 차례로 걸어보았으나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들이 어제 단체로 같이
술이라도 퍼먹었나? -_-;
어쩔수 없이 내가 아는 마지막 여자후배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 뚜루루루루~ 딸칵~ 여보세요? "
오옷 웬일로...-_ㅠ
" 아...저...태희냐? "
" 네...누구신지..."
" 하핫~ 나야 랑이 오빠!!"
크흑...감격했다.
그래도 마지막에 한명은 받아주는구나...
" 어멋?!! 랑이 오빠!! 웬일이야? 휴가나온거에요?"
" 그럼. 백일휴가 나왔지^^ "
" 꺄악~! 웬일이야? 이게 얼마만이야 오빠? 보고 싶었어요~!!"
니가 최고다 태희야.
사랑하는 우리 태희 *-_-*
" 음하핫 그래? 지금 방학이지? 집에 있는거야?"
" 네...방학이라 여기저기 학원 다니고 있어요. 앗!! 지금 학원 갈 시간이네!!
오빠 제가 나중에 전화할께요. 담에 봐요!! 딸칵~뚜 뚜 뚜"
-_-
이 이게 뭐냐?;;
음...그래도 전화한다고 했으니...
받아준것만 해도 어디야*-_-*
뭐 다들 예상하시겠지만
그후로 다신 전화따윈 걸려오지 않았다. -_-
그렇게 태희-_-와 전화통화를 끝내고
다른 남자놈들과 여자동기들에게도 전화를 해보았으나
전화를 받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확실히 방학은 대학생들을 폐인으로 만든다.
특별히 성실한 학생이 아니고서야
중고딩처럼 학원을 다니거나 보충수업을 하는것도 아니고...-_-;
그래도 몇명이나마 통화를 할수 있었다는 것에 안심하고
또다시 컴퓨터질이나 하는 수밖에 없었다.
휴가기간 내내 게임만 하다 복귀하는 놈들도 많다고 하더니
지금 내가 딱 그꼴이다;;
전화통화를 못한 몇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을 금할 길 없어
카페에다 안부글이나 남기려고 인터넷 접속을 시도했다.
- ㄱ대학교 영문학과 카페 -
먼저 학과 카페에 들어가보니 진수녀석이 올려놓은 글이 보였다.
제목 - 얘들아~!! 랑이 백일휴가 나왔다!! [12] (진수)
...
이녀석...
역시 넌 좋은 친구야 짜식아...-_ㅜ
솔직히 생각도 못했는데 진수녀석이 먼저
내가 휴가나왔다는 사실을 카페에다 남겨놓았다.
게다가 꼬리말도 12개씩이나 달려있다니...
역시 학교다닐때 후배들 밥사주고 이뻐해봤자 다 소용없다.
동기가 최고다. ㅠㅠ
나는 진수녀석의 배려에 내심 감동하며
과연 어떤 꼬리말이 달려있을까 궁금해
글제목을 클릭해보았다.
제목 - 얘들아~!! 랑이 백일휴가 나왔다!! [12] (진수)
내용 - 053 - 3*2 - 2*63 으로 전화 오면 받지마라
꼬리말
- 뭐야 그놈 벌써 나왔어? (우성)
- 아 존내 잠수타야겠다 (원빈)
- 진수야 좋은 정보 고맙다. (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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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이런 개색기;;
니가 그럼 그렇지 썅-_-;
진수놈을 믿은 내가 바보였다.
이새끼가 절대 나의 휴가를 축하해줄 놈이 아닌데;;
뭔가 글이라도 남기고 나가려다
12개의 꼬리말에 더욱 상처를 받고
학과 카페를 빠져나왔다.
젠장...동아리 카페나 가야지...-_-
- ㄱ대학교 문학동아리 카페 -
제목 - 얘들아~!! 랑이 백일휴가 나왔다!! [10] (진수)
뭐야 이자식-_-;
- ㄱ대학교 영문학과 동기모임 -
제목 - 얘들아~!! 랑이 백일휴가 나왔다!! [8] (진수)
- ㄱ대학교 자취생 연합 -
제목 - 여러분~!! 개폐인 알랑이가 백일휴가 나왔습니다!! [18] (진수)
......
진수 씨발새끼..-_ㅜ
-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