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귀 》
4박 5일간의 짧은 휴가는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_-
무 물론 100일 휴가 나왔다고 글쓴 날짜가
12월 15일이니 한달 정도 됐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단지 내가 졸라 바빠서 그런거다.
실제로 백일 휴가는 졸라 빨리 지나간단 말이다-_-
글이 업로드된 날짜 따윈 무시하고
그냥 눈깜짝할 사이에 휴가복귀가 다가왔다고만 알고 있자.
사실 전편에서 휴가 3일차까지만 그려놓았기에
증발한 4일차에 대해 의아해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정말 죄송하다-_-;
주인공 녀석이 너무 오래 쉬어서
군기가 쏙 빠진 것 같아
일찍 복귀시켜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 씨바;
사실 4일차에도 별로 한게 없어서 그냥 복귀시키는거다.
겜방간걸로 백일휴가를 4편씩이나 우려먹기엔
필자의 양심이 차마 허락지 않았다-_-
시간은 참 빠르게도 지나갔다.
내가 언제 휴가를 나왔었나 싶을 정도로
휴가는 금세 지나버렸고
복귀를 해야하는 휴가 5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눈을 떠보니 이미 오전 8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복귀시간이 오후 7시까지이니
아직 10시간 이상이 남아있긴 하지만
집에서 부대까지의 거리를 계산해봤을때
그리 넉넉하지만은 않았다.
최소한 12시에는 집을 나서야
간신히 시간 안에 부대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우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그러고보니 휴가를 나오면 제일 먼저
공중목욕탕을 가려고 마음먹었었는데
휴가기간 동안 한번도 가지 않았다. -_-
절대 내가 드러워서 그런게 아니라
시간이 아까워서 그런거였다;
진짜다.
원래 나 잘 씻는다.
믿어라 쫌-_-
고작 4박 5일간 휴가를 받아 나온 군인에게
1분 1초가 아까운 마당에
한가하게 목욕탕에 앉아 때밀고 있을 시간이 있었겠는가?
됐다.
그냥 내가 드러워서 그런거라고 치자.
애써 변명하는게 더 처량해보인다. -_-
어쨌거나 샤워를 하고 나와서
잘 개어져있는 군용 속옷을 입고...
군용 양말을 신고...
전투복을 몸에 걸쳤다.
이제 다시 군인으로 돌아가는건가?
복귀를 하고 나면 또 당분간은
친구들을 만나지도...
술을 마시지도...
부모님과 대화를 할수도 없을텐데...
전투복을 다 입고 나서
군번줄을 목에 걸고
휴가증을 잘 챙겨 주머니에 넣은 다음
식탁에 가서 앉았다.
전투복에서는 향긋한 피존 냄새가 났다.
부대에서 빨래를 할땐 나지 않았는데...
군인들이 입는 옷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만큼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어머니의 냄새가 났다.
부모님은 일찍부터 직장으로 나가시고
식탁 위에는 갖가지 반찬으로
푸짐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혼자서 조용히 수저를 들고 밥을 한술한술 떠먹었다.
서러웠다.
혼자서 밥을 먹는다는게...
군복을 입고 집에서 밥을 먹는게
이토록 서러울 줄이야...
밥 한그릇을 깨끗이 비운 후에
하지도 않던 설거지까지 말끔히 끝마치고는
한동안 멍하니 방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제 또 떠나는구나.
입대하기 전날보다
백일휴가 복귀 전의 심정이 이토록 더
참담하고 서글플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역시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입대하는 것과
이제 돌아가면 또 다시 어떤 생활이 펼쳐질지를
알고 있다는 것의 차이인가 보다.
한참 동안을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또 곳곳마다 눈길이 머물면
한동안 멍하니 있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또 한번 떠날 채비를 했다.
이번에 복귀하면
또 한번 100일이 지난 후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배의 시간이 지난 뒤,
한 6개월 뒤쯤에야 휴가를 나오게 될 것이다.
물론 그때는 9박 10일로 휴가기간도 길어질 테지만...
모든 준비를 끝마친 후,
이등병 약장이 박혀있는 전투모까지 눌러 쓴 후에
부대로 전화를 했다.
휴가복귀 확인전화를 하는 것이다.
휴가 중에도 두어번 정도 부대로 확인전화를 하긴 했지만
처음으로 전화번호를 누르는 손끝이 떨려왔다.
이게 마지막일테지...
" 통신보안, O중대 상병 윤재학입니다. "
수화기 저편에서 익숙한 행정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충성! 3소대 이병 알랑입니다! 이제 집에서 출발하려고 합니다!"
헛된 기대인 것은 알지만
그래도 혹시나 휴가날짜가
하루 더 남아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대를 품었다.
내가 착각했을지도 몰라.
휴가가 이렇게 빨리 지나갈리가 없는데...
" 어...랑이냐? 그래 오늘 복귀지? 늦지 않게 조심해서 들어와라."
아주 희미한 기대마저도 무너뜨리는 행정병의 목소리...
오늘 내가 복귀하는 것이 맞구나...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가 전투화를 신었다.
전투화끈을 다시 풀고 묶기를 반복한 후에야
집을 완전히 나설 수가 있었다.
그만큼 아쉬웠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이렇게 느긋하게 전투화를 신는 것도 마지막일테지...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가면서
군용 디스가 아닌 사제 디스플러스 담배를 한대 꺼내 물었다.
사제 담배를 피는 것도,
이렇게 길을 걸으면서 피는 것도,
이것 또한 이게 마지막이다.
버스에 올라 역으로 가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광경들을
끊임없이 쳐다보았다.
사회에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바깥 세상의 풍경들을
머리 속에다 하나하나 새겨두고 싶었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시간은 12시 30분 정도.
제일 빠른 기차를 타면 4~5시 정도에는
도착할 수가 있을 것이다.
" 수원역가는 기차 제일 빠른 걸로 하나 주세요."
" 네. 12시 54분 무궁화호 있구요, 입석밖에 없네요."
" 예. 그거라도주세...뭐 뭐라구요?!!"
" 서울 방향으로 가는건 다 매진이고, 5시 15분 기차만 좌석이 있네요."
-_-;
씨발 거기까지 3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서서 가야된단 말이냐;;
안그래도 복귀하면 졸라 힘들텐데...
그렇다고 5시 기차를 타게 되면
복귀 시간을 훨씬 넘겨서야 도착하게 된다.
탈영처리가 된단 말이다-_-;
하는 수 없이 입석표를 끊어놓고
매점에서 스포츠신문 한 부를 샀다.
열차 출입문 계단에 앉기 위해서다-_-
죽어도 서서 가지는 못하겠더라;
그나마 나는 집이 대구라 다행이었다.
부산, 경남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내 동기들도 역시
예매따윈 하지 않았을 텐데...
이놈들은 5시간 넘게 서서 가야하지 않는가 음핫핫
열차가 출발하고...
나는 미리 열차 왼쪽 출입문 쪽에 자리를 잡아놓고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내가 2년간의 수원 유학생활을 통해 터득한 것은
경부선 상행선의 경우
열차 출입문은 거의 오른쪽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왼쪽자리를 잡아놓고 앉아있으면
정차역에서 내리는 사람들 때문에
일일이 자리를 비켜줘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_-
실생활을 통해 간접적으로 얻은 지혜라고나 할까? 후훗
열차가 출발함에 따라
낯익은 풍경들이 하나 둘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나씩 떠나가다보면
어느 샌가 눈앞에 부대가 펼쳐지겠지.
졸라 암울하다 씨봙;
당분간은 계속 서서 가기로 했다.
출입문에 달린 자그마한 창문밖으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풍경들을 담아두고 싶었고...
일단 돈주고 샀으니 스포츠신문은 다 보고 깔고 앉아야만 했다. -_-;
열차 출발 10여분 만에
스포츠신문 연예면과 만화란을 독파하고
그대로 바로 깔고 앉았다.
솔직히 다른건 별로 관심없었다.
어차피 군바린데 야구를 누가 우승하든 뭔 상관이야 샹-_-
그저 연예면에서 이쁜 여자연예인 얼굴이나 한번 더 쳐다보는게 최고다.
그렇게 출입구 계단에 앉아 가면서...
지나온 날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던 고등학교 시절이며
졸라 미친듯이 놀던 대학 시절이며;
입대하기 전날의 그 아쉬운 마음들과
정말 쏜살같이 지나간 훈련병 생활...
그리고 휴가를 나오기 전까지
너무도 힘들었던 자대 생활들과
백일휴가를 나와서 거의 혼자 놀던 기억...이 이런 씨바;
뒤로 갈수록 점점 암울해졌다.
게다가 나는 이제 그 암울한 생활로
다시 복귀해야하지 않은가..-_-;
그렇게 지난 일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참 잘 흘러갔다.
" 이번 역은 OO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OO역에서 내리실 손님, 안녕히 가십시오."
벌써 역 하나를 지나왔단 말인가?
복귀가 얼마 남지 않아 그런지
시간은 더욱 더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 같다.
앞으로 세 시간 동안은 이 기차 안에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시간은 더욱 아까워지고
마음 속은 불안해졌다.
' 에휴...생각하면 뭐하나...그냥 푹 잘쉬고 들어가는 거라 생각하자.'
아쉬운 마음에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를 한모금 빨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기차는 정차하고 있었다.
" 덜컹!"
-_-
뭐 뭐야 이건?
별안간 내 앞의 문이 덜컹하고 열렸다.
당황해서 뒤를 돌아보니
수십개의 눈동자가 문앞에 떡하니 앉아있는 나를 야리고 있었다. -_-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편 출입구 쪽으로 빠졌다.
뭐지? 분명히 이번 역은 오른쪽으로 내리는게 맞을텐데? -_-;
다음 역도, 또 그 다음 역도 계속해서
왼쪽 문만 줄기차게 열어댔다.
씨발 내가 군대간 겨우 100일 사이에 문을 다 바꿔놓은거냐?-_-
도저히 민망해서 계속 앉아있을 수가 없어
그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반대편 출입구 계단에 가서 앉았다. -_-
진짜 도저히 서서가지는 못하겠더라;
복귀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힘들단 말이다!
" 이번 내리실 역은 OO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OO역에서 내리실..."
-_-;
뭐하자는거야?;;
이놈의 기차가 나를 농락하고 있는게 틀림없었다.
아니면 내가 뭔가를 잘못 알고 있었단 말인가?;;
매번 역에 기차가 설때마다 이쪽저쪽 왔다갔다하기를 반복하다보니
기차는 어느덧 수원역에 도착했다.
이제 이곳에서 전철을 타고 부대 소재지까지 간 후에
또 한번 버스를 타고 부대 앞에서 내려
산 위로 걸어올라가면 된다.
이것저것 많이 해야 할거 같지만
실제로 저 일을 다 하는데는
한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이제 한시간 안에 나는 부대로 다시 들어간단 말이다.-_-
부대 앞에 도착해보니 시간은 오후 6시.
일단 근처에 설치된 공중전화박스에서
부모님과, 몇몇 친구들에게
안부전화를 하고는
이내 돌아서서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올라갔다.
산길을 올라가 위병소를 통과하기까지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으니
나름대로 이등병답게 일찍 복귀한 셈이다.
몇 발자국을 걸어올라가다 우뚝 멈춰 서버리고 말았다.
아쉬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 자리에서 뒤돌아 다시 한번 바깥세상을 눈에 담고는
다시 돌아 올라갔다.
그리고 또 몇걸음을 옮기다
다시 뒤돌아섰다.
무엇이 이토록 아쉬운 것일까...
영원히 못볼 세상도 아닐 텐데...
잠시 길바닥에 주저앉아 담배를 한대 꺼내 물고는
계속해서 산 아래의 풍경들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참으로 아쉽고도 우울한 기분,
백일휴가를 나갔다 온 경험이 있는 예비역이 아니라면
누구도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몇 차례나 올라가다 뒤돌아서고,
올라가다 뒤돌아서기를 반복하면서
거의 한갑에 가까운 담배를 다 태운 후에야
비로소 위병소 안으로 들어설 수가 있었다.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를
한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도착한 것이다.
위병소에서 근무를 서고 있던 고참들의
반기는 얼굴을 마주하자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뭐야? 여긴 도대체 어디야?
난 여기 뭐하러 온거야?
행정반에 들어가 당직사관에게 복귀신고를 하고나니
조금씩 복귀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 재미있게 잘 놀다 왔나?"
" 예 그렇습니다!"
" 후회없이 놀다 왔나?"
" 예...후 후회없이...놀다...왔습니다!"
" 좋아. 앞으로 다시 군생활 열심히 잘할 수 있겠지?"
" 예!"
당직사관이 싱글벙글 미소를 띠고
몇 차례의 질문이 끝나자
이내 무서운 얼굴로 명령을 했다.
" 뒤로 돌앗!"
" 군가 준비!"
" 군가는 팔도사나이,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행정반 문을 열어제치고 뒤로 돌아서서
바깥세상을 향해 군가를 우렁차게 부르기 시작하자
정신이 번쩍 들어온다.
난...
또 다시 군인이다.
짧은 휴가는 끝났다.
이제 다시 이 나라를 지키는 육군 이등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이어지는 군가는... 진짜 사나이! 군가시작! 하나, 둘, 셋, 넷!"
"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일도 많다만!!"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부대에
홀로 부르는 군가소리가 울려퍼지며
그렇게...
그렇게 휴가는 끝났다.
By. All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