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 응 》
휴가복귀신고를 마치고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 내무반으로 돌아갔다.
오늘부터 또 군바리다 젠장-_-
조용히 문을 열고 내무반으로 들어서니
낯익은 얼굴들이 모두들 환호하며
나의 복귀를 반겨주었다.
" 어디 갔다왔어 십색갸! "
" 혼자 나가서 놀다오니 좋냐 새꺄!"
" 오늘부터 또 뺑이치는거야 짜샤! "
징그러운 녀석들-_-;
잠시나마 다른 세상에 나갔다왔음에도
이곳은 하나도 변한게 없다.
말끔하게 각이 잡혀있는 내무반이며,
사방에서 쏟아지는 욕설들이며,
매쾌한 땀냄새와 온통 국방색 일색인 인테리어...
구석에 앉아서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고 있는 뺀질이 녀석이나
티비앞에 드러누워 있는 병장들,
그리고 빤스만 입은채 침상을 뒹굴고 있는 양병장까지...
-_-
으잉? 양병장?
저 저녀석이 왜...-_-;
" 오우~ 랑이 복귀했냐? 세상은 여전히 살만한 곳이지? 토니와 미키도 언제나 안녕하단다. 켈켈켈"
여전히 알아먹을 수 없는 소리들...-_-
" 토 토니와 미키는 누굽니까?; "
" 이새끼! 내 친구 토니와 미키를 모른단 말야?! 얘들아 인사해! "
양병장이 가리키는 쪽을 보자
개미 두 마리가 불쌍하게도
빈 물병 안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이놈은 여전히 개미들과 대화를 하는구나-_-;
" 저...그런데 지난번에 제대하시지 않았습니까? 어찌 지금 이시간에 부대에..."
" 그건 말년휴가잖아 짜샤! 오늘 복귀했어 임마. 그리고 이 형은 내일 곧바로 전역이란다 카카캇"
씨봙 졸라 부럽다;
" 그나저나 넌 여전히 쏙 빠졌구나. 내일 전역하는 형보다도 늦게 복귀하다니 말야."
시계를 보니 막 7시가 지나고 있었다.
원래 복귀시간이 8시까지니
이등병이고 백일휴가인 점을 감안해도 꽤나 일찍 들어온 건데...
" 아...주 주의하겠습니다. 언제 복귀하셨습니까? "
" 이 형은 일찌감치 한 2시쯤에 들어왔다."
" 커헉! 어쩐 일로 그리 일찍...-_-; "
" 밖에 나가니 할일이 없더라. 그리고 어차피 내일 전역인데 좀 일찍 들어와줘야지.
마지막 휴가까지 늦게 복귀해서 민폐를 끼칠 수는 없잖아."
국방부의 입장에선 니가 일찍 복귀하는게 더 민폐다. -_-;
양병장은 잠시 나를 붙잡고 쓸데없는 소리만을 지껄이더니
이내 토니와 미키-_-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양병장이 나가자 이내 고릴라가 나를 불렀다.
" 랑아 일루 와봐라."
" 예! "
" 응? 예? 오호 이자식 봐라...관등성명 안나오지? "
헉...
깜박 잊고 있었다.
휴가 나갔을땐 엄마가 불러도 나도 모르게
" 이병~! 알! 랑! " 하고 소리쳤는데..-_-;
복귀하고 나니 또 그냥 예라고 대답해버렸다.
" 이...이병! 알! 랑! "
" 이자식 휴가갔다오더니 적응안되냐? 앙?"
" 죄 죄송합니다."
" 뭐? 죄송? 이자식 군대에서 죄송이란 말 쓰게 돼있어? 앙? "
아참 그렇지..-_-;
" 주의하겠습니다;"
" 이놈 참 적응못하네. 오늘 빡세게 한딱가리 하고 적응하게 해줄까? "
" 아 아닙니다! 주의하겠습니다! "
말로는 갈구면서도 싱글벙글거리는 폼이
굳이 한딱가리 할거 같지는 않다.
그냥 갈굴 놈 없어서 심심했던거 같다-_-;
그나저나 고작 4박 5일 나갔다왔을 뿐인데도
정말 적응하기 힘들다.
그것도 눈깜짝할 새 지나가버렸는데...
마치 이제 막 자대배치를 받은 양
온통 불안하고 어색하다.
" 하긴 이자식...휴가중에 전화했더니 지가 중대장이라면서 나한테 막 반말하더니...후훗"
헉...씨발롬...그건 없었던 일로 하기로 해놓고...;;
" 원래 밖에 있으면 자기가 최고 아닙니까 낄낄낄."
윤상병도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이미 소문 다 내놨나보다-_-;
" 후후훗, 랑아~"
" 이병! 알! 랑! "
실실 쪼개면서 나를 부르는 폼이 심상치가 않다.
설마 그걸로 갈구려고 그러는건 아니겠지?
그건 다 끝난 일이잖아 젠장;
" 똘똘이 목욕은 시켜줬냐? "
-_-
똘똘이 목욕?
그게 뭐지? -_-a
아~ 밖에 나가서 목욕탕 갔다왔냐고 물어보는건가 보다.
하긴 휴가나가면 목욕탕 가서 때밀고 들어오라고
신신당부를 했었지...
물론 난 휴가기간 동안 목욕탕 따윈 가지 않았지만-_-
갔다왔다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안했다고 하면 또 이래저래 시달릴게 뻔하니...
지들이 뭐 알겠어?
" 예...하고 왔습니다. "
" 오오오오옷~! 사실이야? 진짜야? "
" 예...지 진짭니다."
" 크아아아앗~ 얘들아!! 다들 이리 모여봐!! "
소대원들이 순식간에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씨발 내가 목욕했다는게 그리 대단한 일인가?-_-;
막내 뺀질이부터 왕고 고릴라까지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는 꼴이 참...;;
소대원들이 다 모이자
고릴라가 조용히 물었다.
" 누...누구랑? "
" 자 잘못 들었습니다?;;"
누구랑이라니...
누구랑 목욕탕 가든 뭔 상관이야...
그게 그리도 눈을 초롱초롱 빛낼 일이란 말이냐-_-;
" 아 저...혼자서..."
" ...-_- "
순간 열댓명의 소대원들이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목욕탕 혼자 가면 안되나?
설마 등은 안밀었다고 시비걸려고?-_-
"...딸딸이 쳤구나..."
" 컥! 무 무슨 말씀을...;; "
" 혼자서 똘똘이 목욕시키는게 딸딸이밖에 더 있어 새꺄?!! "
" 뭐야 이새끼 괜히 기대했잖아!!"
" 오일병 이새끼 딸딸이 사건 이후로 애들이 맨날 딸딸이만 쳐 샹!"
오일병 : -_-; (씨발 내가 뭘...)
난 정말 순진했었나보다.
그때까지도 똘똘이 목욕이
남녀간의 합체행위를 말하는 건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_-;
" 아 아니 전...목욕탕 갔다왔냐고 물어보시는 줄 알고..;;"
" 우리가 그딴게 왜 궁금해!! 이자식 휴가갔다오더니 이런 간단한 대화도 적응안되냐? 앙? "
씨발 그건 휴가 안나갔어도 적응 못하는거잖아...-_-;
군대에선 사회에서 쓰지 않는 언어를 많이 쓴다.
언제 한번 짬을 내서 군대용어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다.
특히나 군입대를 앞두신 분들은 주의깊게 봐주시길 바란다-_-
복귀를 하고 한동안 고릴라 병장에게
휴가기간에 있었던 일이며
누구누구를 만났었는지 자세히 얘기한 후에야
세면을 하고 점호준비를 할 수 있었다.
휴가나가기 전까지도 늘상 해오던 일이었지만
다시 복귀해서 걸레를 잡고 침상을 닦으려니
참 힘들더라-_-;
이래저래 점호준비를 끝마치고
점호시간이 되었다.
당직사관은 깐깐하기로 소문난 2소대장...
뭐든지 원리원칙대로 하기 때문에
모두들 재수없어하는 소대장이었다. -_-
2소대장 : 하나, 둘, 셋, 넷...뭐야? 왜 한명이 없어?!
고릴라 : 아...양병장 내일 전역이라고 간부숙소에서 다른 소대장님들이랑 술마시고 있습니다.
2소대장 : 음...그러냐? 양병장이 내일 전역하는구나...너희들도 섭섭하겠다.
일동 : 아닙니다!!
2소대장 : 어 그...그래-_-;
점호를 끝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가 복무한 부대에서는 휴가복귀자는
말번 경계근무, 즉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경계근무를 서는 전통이 있었다.
같이 복귀한 동기가 많아서
나와 자이병만 말번근무를 들어가고
다른 동기들은 이전 타임,
즉 2시부터 4시까지의 근무를 들어가게 됐다.
물론 명목상으로는 외부에 나갔다 온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시간대의 근무를 서게 함으로써
빨리 군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운다는 명목이었으나
사실 알고보면
'너는 실컷 놀다 왔으니 오늘 좀 고생해봐라' 이거였다. -_-
잠자리에 들어서도 쉽게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바깥 세상의 풍경들과
부모님, 친구들의 얼굴들...
너무나도 아쉬운게 많고
너무나도 짧았던 그런 시간들이었다.
한참 동안을 그렇게 바깥의 모습들을 떠올리다가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 기상! 기상! "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은데 벌써 기상시간인가?
난 결코 휴가나가서 빠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
잽싸게 일어나서 전투복을 입었다.
" 전병력은 빤스 바람으로 막사 앞으로 집합! "
이씨봙 다 입었는데...-_-;
시계를 보니 이제 막 새벽 2시를 지나고 있었다.
에이...또 무슨 일이야?
여기저기서 궁시렁대는 소리가 들려오고
전병력은 국방색 팬티만 입은 채
막사 앞으로 집합했다.
때는 여름이라 춥지는 않았으나
부대가 산속에 있어서
여기저기서 달려드는 모기들이 장난이 아니었다.
" 아 씨발 또 뭐 땜에 그러는거야? "
" 야 1소대 니네 혹시 티비 보다 걸렸냐? "
" 우리 티비 안봤어 새꺄! 우리도 자다가 튀어나온거야."
" 2소대장 저 싸이코 저거 또 뭐땜에 그래? "
도무지 영문을 알수가 없어
다들 궁시렁거리고 있으려니
당직사관이 나오고 모두 조용해졌다.
" 본 당직사관이 주둔지 순찰 중에...야외세면장 뒤편에서 이것을 발견했다."
2소대장이 들어보이는 것을 보니
무언가가 들어있는것 같은 까만 비닐봉지였다.
" 이게 뭔지 아는 사람은 지금 즉시 앞으로 튀어나와라."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만 둘러볼뿐
누구도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 없냐? 흠...그럼 지금 근무나간 이등병 중에 있나보군.. 이건 족발 특대다.-_- "
-_-
족발 특대...
" 휴가복귀시에는 분명히 취식물을 영내로 반입할 수 없게 되어 있는건 알고 있지? "
" 예! "
" 오늘 휴가복귀자 중에 누군가가 내 눈을 피해 야외세면장 뒤에 짱박아 뒀다가
밤에 몰래 먹을 생각이었나본데... 오늘 휴가복귀자가 이등병들이더군...
그러나 소대장은 이등병들이 스스로 사왔다고 생각지 않아. 분명히 고참들 중에
사오라고 시킨 놈이 있겠지? 그런 지시를 한 적 있는 녀석들 앞으로 튀어나와! "
그러자 1소대 쪽에서 누군가가 멈칫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김병장이었다.
" 김병장 니가 이등병한테 족발 사오라고 시켰냐? "
" 아 아닙니다. 그냥 장난식으로 족발 한번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걸 듣고는 자기가 사온거 같습니다. 직접적으로 시킨 적은 없습니다."
원래 부대 안에는 취식물,
즉 먹을 것을 사들고 들어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물론 먹을 것 뿐만 아니라 사제물품은 대부분
가지고 들어가면 안되는데
부대에서 꼭 필요한 물품에 대해서는 허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물품은 복귀시에 반드시
당직사관에게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군대라는 곳이
꼭 그렇게 원칙대로만 돌아가는 곳은 아니어서
휴가자나 외박자가 있을 때
고참들은 여러가지 필요한 것들을 사오라고
부탁을 하기도 하는데
먹을 것도 그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백일휴가자들, 그러니까 이등병들에게는
암묵적으로 그런 부탁이 절대 금지되어 있다.
어리버리한 이등병들은 그런걸 사오다가
많이 들통이 나기 때문이다. -_-
그래도 족같은 고참들은 이등병에게까지
그런걸 시키기도 한다.
김병장도 족발이 너무 먹고싶어 그런걸 시켰었나보다.
" 직접적으로 시키지는 않았어도 니가 뭔가 압박을 줬기 때문에
이등병 녀석이 사온거 아냐?!! 이거 사온 녀석은 어디 있어?!!"
" 지금 위병소 근무 서고 있습니다! "
" 본 소대장은 이런 일이 발생한 사태에 대해서 족발을 사온 이등병보다는
이런 일이 발생하도록 제대로 교육을 시키지 않고 또한 사오라고 지시를 한
고참 녀석들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_- (에이 썅) '
" 중대장님께 보고하고 징계를 할수도 있으나 소대장이 특별히 내 선에서 끝내고
없었던 일로 넘어가줄테니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자. 알겠나?!! "
" 예 알겠습니다!! (살았다 씨바-_- ) "
" 대신에 잘못한 만큼의 대가는 치러야겠지. 지금부터 잠시 동안 단체로 얼차려를 받고
내무실로 복귀해서 계속 취침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차후에 족발을 사온 이등병이나
혹은 김병장에게 추궁을 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가만 있지 않겠다. 모두 엎드려! "
" 지금부터 정확히 팔굽혀펴기를 50회 하고 들어간다.
요령을 부리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한다.
하나에 정신! 둘에 통일! 하나!! "
그렇게...
누군가가 사와서 짱박아놓은 족발로 인해...
휴가 복귀를 하자마자 새벽에 일어나서 얼차려를 받았다. -_-
정작 족발을 사온걸로 추정되는 녀석은
근무를 서는 중이고...
나는 씨바 아무 죄도 없이 얼차려 다 받고
곧바로 4시 근무에 투입해야 했다. -_-
그렇게 복귀한 당일날 얼차려를 받고
잠도 못자고는 바로 말번 근무를 서니
군생활이 순식간에 적응이 되더라 -_-
2시간 동안 경계근무를 서면서
잠시 밖에 나가서 보았던 풍경들을
하나하나 가슴 속에 새기고는
이제 다시 군인의 임무에 충실하자 다짐했다.
사회의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2시간의 근무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후번근무자와 교대를 하고 근무복귀를 하니
내무반은 온통 일조점호 준비로 분주했다.
그리고 양병장도 술에 취한 채로-_-
개구리마크가 박힌 전투복을 챙겨입는 중이었다.
" 양형, 왜 벌써 전투복을 입고 그래? 오늘 전역하는 사람이? "
" 얌마. 잠시라도 빨리 여기서 나갈려고 그런다 카카캇. 뺑이쳐라 자식들아."
" 그래 양형, 수고했어."
" 양병장님 수고하셨습니다."
" 오냐. 너희들도 한놈씩 전역하는 족족 나한테 연락하고...
군생활하면서도 계속 연락해라. 특히 랑이 너는 임마 나 절대 잊으면 안돼."
" 예."
" 그래. 형은 이제 가볼께. 계속 수고들 해라."
모두들 아쉬운 마음으로 양병장과 작별인사를 하고...
점호를 위해 막사 앞으로 한명씩 나갔다.
우리 부대의 경우 독립중대였으므로
대대장님께 전역신고를 하기 위해
아침 일찍 대대로 출발해야했다.
대대장 신고 안하면 전역증을 안주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_-
나도 근무복장을 풀어놓고 소대원들을 따라 나가려는데
밖으로 나가던 양병장이 갑자기 돌아서서 얘기했다.
" 아 맞다. 형이 너희들 줄려고 어제 족발 특대 사왔는데 모르고 야외세면장에 놔두고 깜빡했다.
이따 저녁때 사이좋게 나눠먹어라. 싸우지들 말고. 그럼 형은 이만... 안녕 잘있어. "
-_-
내무반에 있던 고릴라 병장 이하
모든 소대원들이 표정이 굳어버렸다.
저놈이 범인이었다.
양병장 당신은 끝까지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떠나는군요-_-
김병장 이 멍청한 새끼...
넌 도대체 어제 왜 자수한거냐? -_-;
By. All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