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사고 시즌2 _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 화재(Triangle Shirtwaist Factory fire)는 1911년 3월 25일 뉴욕 맨해튼에서 발생한 화재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재해로, 9·11 테러 전까지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다. 146명이 사망하였다.
1911년 3월 25일 뉴욕 최대의 섬유공장이었던 트라이앵글 블라우스 사에서 불길이 솟았다. 건물의 8층에서 10층까지를 쓰고 있는 공장이었다. 화재 발발 시간은 오후 4시 40분이었다. 그리고 토요일이었다. 토요일에도 일을 했나 하는 질문은 그곳에서 일하던 키도 채 자라지 않은 10대 초반부터 20대 중반까지의 여성들, 주로 이민자 출신 여성들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다. 그래도 5시면 일이 끝났기에 여성 노동자들의 손에는 흥겨움이 묻어났고 잠시 뒤 다가올 짧지만 달콤한 주말 생각에 휘파람이 나오고 있었다. 불은 작업 중 8층의 천조각더미에서 났다. 담배 꽁초로 인한 것인지 전기합선에 의한 것인지 원인은 불명이지만 어쨌건 불길은 곧 사람 키만큼 솟아 올랐다.
불을 보고 가장 빠르게 반응한 것은 회사의 공동 경영자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불을 보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장을 빠져나가 목숨을 건졌다. 8층 사람들은 불을 보고 대피했고 10층에 인터폰으로 화재를 알렸으나 9층의 노동자들은 불길과 연기가 날름거리도록 화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화재 발생조차 뒤늦게 알았거니와 노동자들은 불만큼이나 끔찍한 공포에 맞닥뜨린다. 출입구가 잠겨 있었던 것이다. 소방차의 소방 호스는 6층 이상 물을 뿜을 수 없었고 출구가 없는 불구덩이의 지옥도가 트라이앵글 공장에 펼쳐졌다.
필사적으로 비상계단에 오른 사람들은 낡아빠진 비상계단이 체중을 못 이겨 붕괴되면서 몰살당했다. 화물 엘리베이터도 써 봤으나 우리도 익히 안전상식으로 알고 있는 바 화재 시 엘리베이터는 사용하면 안 되는 도구다. 곧 엘리베이터는 못쓰게 됐고 희망이 사라진 사람들은 창문으로 몸을 던졌고 몸이 부서지는 것이 두려운 이들은 불길 속에서 속절없이 타 죽거나 질식해 죽어갔다. 사망자 146명 (위키디피아 자료)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산업재해였다.
1911년 3월 25일 화재 현장에서 뉴욕 시민들은 꽃잎처럼 떨어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을 잃어야 했다. 그 가운데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창문에 두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불길도 두려웠지만 바닥도 쳐다보기 싫은 소녀들은 눈을 감고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지만 누구나 짐작할 기도를 시작했다.
“살려 주소서. 살려 주소서. 하지만 데려 가시려거든 고통 없이 데려가소서.“
트라이앵글 추모제(출처: 위키백과)
2003년 뉴욕시는 트라이앵글 공장 건물을 역사적 건조물로 지정하였다. 뉴욕시의 유적지보존위원회 위원장 티어니는 “국가적 의식고취에 영향을 끼치게 된 사건 발생지점을 역사적 건조물로 지정하는 것은 과거의 희생자들은 물론, 노동법과 화재안전 규정, 그리고 건물안전 규칙의 개혁을 실현시킨 과거사의 의미를 길이 일깨워 주는 감동적인 기념비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2008년에는 200여 개의 단체들이 모여 “트라이앵글 화재를 기억하라”는 조직을 결성했으며, 2011년에는 화재 100주년을 추념하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세월호 그만좀 떠들라고 하니...
우리나라는 아직도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절실한 나라였다는 민낯을 인정하기 싫은거죠..
영면하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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