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내려가서 아버지 글하고
이런저런 사연올릴때
위로해 주시고 글 읽어주시고 마음속으로
힘을주신 모든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아직도 집에가면 아버지가 제 손을 꼭 잡아주실것
같은데..
이 세상에 안계시다는게 실감이 나질
않네요.
아침9시에 집에 전활거니 받으시지 않더군요.
거실에서 안방으로 들어가신건 알았는데
막내아들 전화도 받을 기력이 없으셨던 거죠.
어머니 핸드폰으로 전화하니깐 아버지
아침에 미음 드셨는데 많이 안좋으시다고ㅠㅠ
제가 전날이라도 아니 아침에 좀만 빨리 일어나서
준비할껄 너무 후회가 됩니다.
신발을 막 신는데 둘째형한테 전화가 왔어요.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둘째형이 당진 주 거래처에 출장가셨다가
잠깐 집에 들리셔서 아버지 면도도 해드리고
마당에서 이것저것 일하시고
어머니는 화장실에서 아버지 손수건을
손빨래하시는 동안 아버지께서는 그만..
마지막 가시는길까지 자식들 힘들지 않게
하시려고 그러신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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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ㅡ 누나 ㅡ누나 ㅡ형 ㅡ형(두살때 하늘나라로),
누나 ㅡ 나...
5번째 형님이 살아계셨다면 막내누나랑 저는
어쩜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께서 마흔에 낳으신 막내아들.
저도 두살때 위에 형님처럼 똑같이 아팠을때
아버지께서는 저를 등에 업고 십리길을
달려가셨죠.
저는
초등학교 5학년때 섯다,짓구땡,고스톱을
시작해서 불효를 저질렀고.
시골이였지만 중학교때는 그럭저럭 공부해서
괜찮은 성적으로 공주로 진학해서
기쁘게 해드렸고.
고등학교때 너무 놀아서
보기좋게 대학에 떨어져서 실망시켜 드렸고.
고향에서 네명이 추천받아서 지원했는데
저 혼자만 삼성자동차에 합격했고
주행검사파트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게되어
아버지 주름살을 펴드렸고.
르노 삼성으로 넘어가기전에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로 옮겼지만
불과 1년다니고 그만둬서 다시 실망을
안겨드렸네요..
하지만 정신차리고
화물차로 택시로 운전대를
잡고 열심히 사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로 화답을 해주셨죠.
아버지!!
아버지 흙으로, 자연으로 돌아가시는날,
자정부터 굵은비가 쏟아지더니
봉분을 쌓고 마지막 절을 올릴때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더군요.
성당에 장례미사보러 오셨던 분들이
"금 비"라고 하시더군요.
장지까지 따라오시고 저녁에
식사대접 해드린 동네 아저씨들.
저녁에 촉촉해진 땅에 콩심으러 가셨습니다.
당진 지역에 6월에 그날 하루만 비가왔나봐요.
아버지 아프시기 전에 당진 어딘가에
새로 식당오픈하면서 초가지붕 얹는다고
손재주 좋으신 어르신들이랑 도란도란
얘기 나누시며 일하시는 모습이 선합니다.
비닐갑바.노끈에 밀려.
삼태기.멍석.새끼꼴일이 없었지만
몇십년만에 손발을 척척 맞추시던
모습...
그 모습 마음속에 간직하고
성실히 살겠습니다!!
늘 저에게 해주시던 말이
귓가에 맴도네요.
"택시 잘돼니?"
"돈 욕심 내지말고 너무 밤늦게까지
일하지 말고.."
"건강이 최고여!!"
둘래안에 가족이라 생각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달아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중간에 고개숙여 인사드립니다.
저는 화성 동탄에서 개인택시를 하고
있습니다.
오후에 손님 모시고 서산에 왔다가
합덕집에 들렀네요.
어머니께서 도시보다 시골이 좋으시다고
계속 집에서 사신다고 하네요.
아버지께서 당진 송악이 고향이신데
농사짓고 여러일을 하시려고
합덕에 정착하신지도 60년이 되셨네요.
예당평야.한가운데 서들강문!!
구슬프게 비가오네요.
빗길 안전운전 하시고
행복한 금요일밤 되시길~~~~
좋은곳에서 편히계실껍니다...^^
아무쪼록....
부디 좋은 곳에서 지켜 보고 계실껍니다.
힘 내기 어려우시겠죠?...
그래도 기운내셔야 아버님께서 좋아하실꺼 같습니다...
기운 내십쇼...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친께서 인상이 참 인자해 보이십니다.
모든분들 위로와 격려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어머니께 더 효도하겠습니다.
여러분들 가정에도
행복만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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