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구질하는 소녀.
똥짱군을 이용해 받에 인분을 뿌리는 농부.
이런 모습은 경기도 지방이 아닌 남쪽 지방에서나 볼수 있었든 모습이다.
사진작가의 찝자를 타고 있는 농부.
연합군 환영 현수막 걸린 건물 앞을 여유롭게 유유히 지나가는 마차 행렬.
광복후의 서울은 현재와 달리 일본 처럼 차량은 왼쪽 통행이었다.
작가는 이사진의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구분하지
못했으나 내가 보는 사진속의 인물은 여자가 틀림없어 보인다.
널뛰는 소녀들.
이 노신사가 목에 걸치고 있는 털목도리는 개털 목도리가 틀림없다.
일제는 만주지방에 주둔한 왜병들의 겨울철 옷을 만들기
위해 묶여 있지 않고 돌아다니는 길개를 잡을수 있는
권한을 많은 사람들에게 주었다. 이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개를 잡아 고기는 먹거나
팔고 가죽은 일본정부에 바쳤다. 개털이나
가죽으로 만든 겨울 목도리는 육이오 전쟁중에도 주로
만주지방에서 내려온 동포들이 많이들 사용했다.
한국 언론 사진 가지들.
신탁통치 반대 격문.
무엇을 위한 행사인지는 알수 없으나 성조기를
든것으로 보아 미군환영 행사장 처럼 보인다.
행사장을 경비 하는 미군.
남대문과 전차.
서울의 홍등가. 영문으로 미군의 출입을 금지하는
팻말이 붇어있고 뒷쪽에 미군 헌병도 보인다.
작고한 배우 김승호의 영화 마부를 생각나게 하는 조랑말이 끄는 마차와 마부.
어릴때 기억에 남는것 중의 하나가 인력거다.
서울 어디에서나 볼수 있었든 인력거,
어머님과 함께 타기도 했든 이인력거는 육이오
전쟁 수복후 서울로 돌아오자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러 어린나에게 굼금중을 불러 일으겼었다.
보이 스카웃.
서울 시내 모습.
이들의 모습으로 보아서 이들은 일본으로 돌아가는 일본인 가족 처럼 보인다.
과일을 팔고 있는 아낙들.
경복??경회루 지붕에 난 잡초를 보면 눈물이 날정도로 애처롭다.
일제는 조선인들만 고통을 준게 아니고 문화재까자 돌보지 않아
지붕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무슨 이유로 시가 행진을 하는지 알수가 없다.
지붕으로 보아 일본인들이 두고간 부동산인 적산 가옥에 살고 있는 사람들 처럼 보인다.
창덕궁 비원...
음식을 먹고 있는 두여인.
모자
새로 조직한 국방 경비대.
철도 전복 사고 현장.
화재가 발생한 서울의 한 건물.
일본군대가 남긴 파라슛을 점검해보는 사진작가.
시가행진을 구경하는 시민들.
동대문 근처로 추정되는 건물과 전차.
시내 전차.
물깃는 모습.
각반을찬 패잔 일본군 가장과 등짐을 진 그의 자식.
일본군의 무장해재를 하면서 미군이 접수한 군수품중 일본군의 99식 소총은 회수해서 한국국방 경비대가 사용했으나, 그외 군수품의 행방은 어떤 기록에서도 찾아 볼수가 없다. 그 궁금증을 풀수있는 사진이 바로 김포비행장에 줄줄이 서있는 일본군 전투기다.
연합군이 Code Name Sonia로 불렀든 이전투기들은 Mitubishi K1-51 Type99 기종이다. 20여대로 보이는 이전투기들은 건국후 들여온 10대의 연습기 창랑호 보다 백배나 전투력을 갖춘 기종이다.
이전투기들 다 어디갔지?. 진주한 미군은 일본 열도와 한국내에 남은 일본군의 모든 전투기나 탱크와 각종무기는모조리 잘라내거나 아니면 불도저로 갈아뭉개 고철로 만들어 한대도 남기지 않았다. 이차대전후 나치 독일이 남긴 무기도 같은 운명에 처해졌다. 살아남은 장비는 미군이 연구용으로 선택된 몇개의 무기는 예외였다.
동대문 밖으로 보이는 사진.
BLUE NET.PLACE
미군이 접수한 마약. 아편으로 알려진 이마약은 일본이 한국인을 이용하기 위해 아편을 사용했다는 증거물로알려졌다. 아편까지 이용해 한국인을 착취한 이들에게 동일본 대지진때 의연금을 걷고 낸 한국인들, 그렇게 36년을 격고도 도와주면 독도문제 들고 나오지 않을것 처럼 믿엇든 한국인들 참 너무 순진하다. 좋은 일본 사람은 죽은 일본넘외에 없다는게 나의 믿음이다. 그당시 이런글 읽으면 아마 나를 보고 모진 사람이라고 댓글이 줄줄이 달렸을 지도 모른다. 일본에 또다시 대지진나면 정부에서 조금 도와주고 민간 차원의 모금이나 도움은 절대 없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사진사들과 가깝게 지낸 작가와 한국 사진사들.
일본군의 각번을 차고 도끼질하는 이남성은 아마 일본군에 징집 되였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뭇짐진 노인.
남산에 세워진 신사 앞에서 있는미군과 미군의 찝차 삼척에 있는 한 탄관.
모습에서 조선이 해방 되였다는 사실을 읽을수 있고,
소녀가 신고있는 게다짝과 신사의 생생한 모습에서
일본이 남긴 잔재가 무엇인지를 읽을 수가 있다.
사진의 신사가 있든 대지는 현재 도서관과 공연장으로
변했다. 원래 남산에는 두개의 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이사진에 보이는 남산위 신사와 현동국대
근처에 또다른 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두에 높은 산은 아차산 같아 보여 지고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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