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하늘나라는 어떤가요? 정말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3주 전, 아버지가 뇌경색이 재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9시간 동안 고속도로에서 헤매고 아버지를 만났을 때, 다행히 의사소통이 원활했기 때문에 당연히 좋아 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하루, 이틀이 지나고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하루하루가 고비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4일 만에 의식을 잃어버리고, 그렇게 중환자실로 옮겨지실 때 너무 불안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요. 의사로부터 점점 좋아지지 않다는 말을 들을 때, 정말 ‘죽겠다’는 말 밖에 안 나오더군요. 그 날 제 차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4일 동안 차안에서 흘린 눈물은 눈물샘을 마르게 만들었습니다.
의사로부터 ‘기적은 기대할 수 없을 정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누나, 저는 그 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11월 5일 아침에 어머니와 함께 축 쳐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려 이러다가 서울에서 돌아가시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 고향인 영광으로 빨리 모셔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다행이도 아버지 서울 친구 분들과 영광후배분께서 많은 도움을 주셔서 영광종합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담당의사는 ‘응급차 이송도중 돌아가실 확률이 매우 높다’는 이야기만 저에게 해주더군요. 서울에서 영광. 아버지를 응급차로 모시면서 ‘제발 영광까지 도착하는 목숨만큼은 살려 달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정말 하늘이 도왔는지 영광에 무사히 도착하니, 병원 중환자실 앞에 아버지 친구 분 수십 명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아버지 친구 분들과 마을 어르신들이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를 보기 위해 기다리는 것을 보면서 정말 아버지가 덕을 많이 쌓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영광종합병원 담당의사와 면담을 하면서 ‘아직은 포기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기적’이라는 것이 제발 우리가족에게도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과 실낱같은 희망이 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영광에 오니 서울에 있을 때보다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라는 말을 친척, 아버지 친구 분들로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자꾸 회복이 되나 싶었습니다.
11월 15일 아침 면회 때 아버지를 보니 부쩍 좋아진 모습에 제 마음도 홀가분해졌습니다. 그래서 안심하고 잠깐 딸을 보기 위해 안산에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저를 찾다니요.
바로 영광으로 내려갔습니다. 중환자실 간호사가 약물치료가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병원 근처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일요일인데도 담담의사도 긴급하게 나와서 저에게 ‘길어야 하루’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 날 제 손에 핸드폰을 꼭 쥐면서 ‘제발 전화가 안 오길’ 만을 기다렸습니다. 오전 6시 55분이었나요? 전화가 울려 바로 중환자실로 뛰어갔습니다.
아버지의 심박 수가 0이었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건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시 심박 수가 60을 가리키고 다시 0으로 돌아가 버린 순간. 정말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가 6시 58분이었습니다.
분명 전날, 혈색도 좋아지고, ‘백혈구 수치도 떨어져 혈액검사도 해보자’라는 말도 들었었는데…….정말 믿기 싫었습니다.
아버지. 저는 정말 아버지와 함께 살아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독립했고, 그러다 대학생활, 결혼까지 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듣는 게 너무 그리웠습니다.
아버지! 저는 잘난 아들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특별히 모나지 않게 자라려 노력했습니다. 매일매일 통화하면서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효도였습니다. 그마저도 9월 달부터 이직준비 한답시고, 매일 하던 통화를 일주일에 한두 번 했던 게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대출을 갚으면 꼭 아버지께 ‘제네시스’ 한 대 사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제까지 자식과 부모 뒷바라지하는데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내버렸기 때문에 늘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 딴에는 시골에서 좋은 차 한번 제대로 못 타시는 것 같아 열심히 노력해 대접한번 해드리고 싶은 게 소박한 목표였습니다.
이제는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됐습니다. 장례를 치루면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살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눈물도 흐르지도 않더군요. 부르면 꼭 대답할 것만 같았습니다.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진을 보면서 딸 100일 때, 손녀를 안아보면서 웃는 사진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리더군요.
아버지가 정말 보고 싶은데, 이제는 볼 수 없다는 현실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아버지’라고 불러도 아버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믿기지가 않습니다.
아버지에게 저는 늘 든든한 존재였습니다.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에 늘 당당할 수 있었고, 자신감도 넘쳤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그늘을 정말 위대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상주로서 조문객을 맞이하는 동안 ‘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평소 자네 자랑을 많이 하셨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한켠이 먹먹했습니다.
저는 장남이자 자식으로서 어머니를 보살펴야 합니다. 저도 너무 슬프지만, 34년을 함께 보낸 어머니의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
몇 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일푼으로 현재까지 일궈낸 아버지는 늘 저에게 ‘돈이 정말 중요하다’라는 말을 할 때마다 저는 인생기준은 ‘돈’이 될 순 없다며 반항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는 어머니와 제 가정을 모두 책임져야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왜 그랬는지 절실히 와 닿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나이 59세. 너무 젊습니다. 아버지와 단 한번 여행을 가보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스럽고 죄송합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버지와 오른 동네근처 산에서 아버지는 저에게 이러셨습니다. ‘네가 고등학교 진학하면 앞으로 너와 같이 지낼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구나’ 아직도 그 말이 잊히지 않아 늘 아버지를 모실기회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정말 그러고 싶었는데 시간이 야속합니다.
지금도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면 아버지가 전화를 받을 것 같습니다. 1분이 채 안 되는 통화에서 ‘그래 별일 없다 너는?’이라는 말이 사무치게 그립고 귓속을 맵돕니다.
아버지! 늘 아버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버지는 늘 ‘거대한 벽’ 같습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면서 뛰어넘을 수 없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그래서 존경합니다. 저는 늘 아버지를 보면서 제 딸에게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자꾸 품습니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잃어가는 도중에도 제 손을 붙잡고 ‘괜찮다고 가라’며 손으로 표현하셨을 때가 너무 생각납니다. 그냥 아프실 때는 ‘아프다’라고 표현해주셨어도 되는데 끝까지 내색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후회스럽습니다. 평소 건강을 제가 챙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아버지 정말 고맙습니다. 영광으로 모시던 날 정말 아버지가 돌아가실까봐 너무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런데 2주 가까이 아버지는 버터 주셨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나마 이별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눈물샘이 말라버린줄 알았지만, 아직도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아버지께 약속드리겠습니다. 어머니 앞에서는 아버지가 그리워도 눈물을 절대 훔치지 않겠습니다. 저보다는 어머니가 훨씬 가슴이 아플 테니까요.
아버지! 너무 보고 싶습니다. 그냥 보고 싶다는 말밖에 안 나옵니다. 제가 다시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아버지의 자식이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제 아버지였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화장터에서 저보다 나이 많은 상주를 볼 때 마다 너무 부러웠습니다. 아버지와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부디 하늘나라에서 제 글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그리움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아버지께 전달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버지! 보고 싶고, 너무 보고 싶습니다. 정말 보고 싶다는 말 밖에 안 나옵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제발 다음 생애에서도 아버지와 인연이 계속되길 바래봅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아버님 좋은 곳에서
이 편지 읽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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