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 인천 상륙작전 55주년을 나흘 남겨둔 11일 휴일 오후 인천 자유공원 일대에서 ‘맥아더 동상’ 철거를 놓고 보수단체와 강경 급진단체가 각각 대규모 집회를 갖고 충돌했다.
이날 자유공원 주변에선 급진진영 5000여명이 맥아더 장군이 한국전 당시 시민을 학살한 전범이라며 맥아더 동상 철거를 요구한 반면 보수진영 1500여명은 미국 주도의 유엔군이 한반도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했다며 맞섰다.
특히 이날 보수단체 회원들이 급진단체의 자유공원 진입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양쪽 진영 간에 크고 작은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이날 오후 1시 황해도민회, HID(북파특수임무수행자보국단), 자유민주비상국민회의, 해군전우회 등 보수단체 소속 회원들은 자유공원에서 500여m 떨어진 인성여고 운동장에서 집회를 열고 ‘한미혈맹 강화 및 맥아더 동상 사수 결의’를 다졌다.
황해도민회 유청영 회장(맥아더 장군 동상 보존 시민연대 회장)은 데일리안과 만나 “이 나라는 전쟁의 고통을 모르는 좌익 세력이 들끊고 있다”면서 “맥아더 동상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민주주의와 가정, 자손과 인격을 지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유 회장은 이어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면 이 자유공원에 김일성 동상을 세우는 것 또한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만일 친북, 반미, 좌익세력에 의해 맥아더 동상이 꺽인다면 이는 6.25 전쟁때 우리 민족을 도와준 미국과 유엔에 망신살을 뻗치는 일이고 향후 외교적으로도 큰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 회장은 최근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박성환 밴드의 ‘맥아더 욕설 가요 발표’와 관련, “나이도 어린 것이 전쟁의 고통과 참상을 알겠느냐”면서 “이 곡에 대해서는 금지가처분소송을, 박성환 밴드에 대해선 허위사실유포 등으로 관계당국에 곧 고발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보수단체 회원들은 이 집회에서 “한미혈맹 배은망덕, 친북좌익 반역자”라는 구호을 외치며 김일성 동상이 그려진 현수막과 김일성 모형인형 등을 태우며 ‘김일성 동상 7만8000개 화형식’도 가졌다.
이들은 오후 2시경 사전집회를 마치고 “진보단체 집회는 권한 없는 대리인에 의해 신고된 불법집회”라며 진보단체들의 자유공원 행사장 진입을 저지, 큰 소동이 빚어졌다.
보수는 김일성 동상 화형식…진보는 박성환 노래 공연
이들은 인성여고에서 곧바로 자유공원으로 이동하려고 했으나 교문앞길에서 경찰이 저지하자 산발적으로 조를 나눠 홍예문 거리로 이동, 승합차 2대로 길목을 완전히 차단한 채 “동상 철거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는 등 강경 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대치했다.
한편 한국대학생총연합, 전국민중연대, 통일연대 등을 비롯한 80여개 단체에서 모인 급진단체 회원들은 오후 2시에 인천 숭의종합운동장에 집결해 자유공원까지 한시간 동안 가두행진을 이어갔다.
이들은 가두행진 동안 선전용 차량 스피커를 이용, 박성환 밴드의 ‘맥아더는 살인자’ 노래를 계속 틀어댔고, “맥아더 동상 철거해 통일 이루자” “미군강점 60년 청산하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맥아더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으로 이동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진보단체 회원들이 홍예문 길목을 통과하자 “빨갱이 물러가라” “좌익분자 때려잡자” “맥아더 동상 무너지면 김일성 동상도 못 막는다”는 구호와 함께 계란, 돌멩이 등을 던졌고 곳곳에서는 양쪽 진영 회원들 간에 크고 작은 몸싸움도 벌어졌다.
이같은 보수·급진단체간의 충돌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는 듯 했으나 경찰이 행사장에 보수진영의 출입을 저지하고 급진단체들의 행사장 이동을 허가, 양쪽을 '분리'시키면서 고비를 넘겼다.
급진단체 회원들은 이날 당초 예정된 행사시간을 1시간 넘긴 오후 4시부터 자유공원 행사장에 집결, ‘미군강점 60년 청산, 주한미군 철수 국민대회’를 진행했다.
민중연대 정광훈 상임대표는 대회사를 통해 “지난 8일은 맥아더 사령관을 필두로 주한미군이 이 땅에 점령군으로 발을 디딘지 60주년을 맞이한 날”이라며 “남의 나라 군대가 무려 60년이나 우리 땅을 강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치욕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어 이 행사를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통일연대도 선언문을 통해 “한반도 전쟁계획을 현실화 시키려는 미국과 우리 겨레의 자주통일의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면서 “미군 강점 60년을 반드시 청산하고 올해를 주한미군 철수 원년으로 만들자”고 결의했다.
또 박성환 밴드는 ‘맥아더는 살인자’라는 곡을 공연하기도 했고, 경찰의 제지로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한 보수단체 회원들은 행사 내내 호루라기를 불어 항의를 하기도 했다.
양쪽진영, 계란 돌멩이 투척 등 몸싸움 벌어져
맥아더 동상 철거 촉구집회가 열린 자유공원 주변에서는 보수단체와 급진단체 회원들이 멱살을 잡고 싸우는 장면이 곳곳에서 목격되기도 했고, 보수쪽에선 인공기를 진보쪽에선 성조기를 각각 불태우기도 했다.
급진단체 회원들은 집회를 마친 뒤 맥아더 동상을 둘러싸는 ‘인간띠 잇기’행사를 가지려 했으나 경찰이 시설 보호 명목으로 접근을 막자 2m 길이의 대나무 장봉을 휘두르며 경찰과 격렬히 대치했다.
경찰은 맥아더 동상 주위에 경찰버스로 바리케이트를 쳤고, 그 앞뒤를 경찰병력으로 가로막아 이들의 접근을 막았고, 몸싸움 과정에서 양측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찰은 경찰버스 78대와 38개중대 4000여명의 병력을 동원, 자유공원 일대와 인성여고 및 숭의운동장 일대를 봉쇄하는 한편 소방차, 구급차 등을 대기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특히 자유공원 일대는 하루 종일 교통과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됐고, 주변 상가들도 문을 닫는 등 몸살을 앓았다.
이와 관련, 해군전우회 등 보수단체들은 인천상륙작전 55주년인 오는 15일 또 한 번의 대규모 집회를 자유공원에서 열 예정이어서 맥아더 동상 철거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보수-급진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