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만에 진상규명될 양민학살 사건들>
[연합뉴스] 2004-09-01 05:02
함평.문경 10여곳 사건 조사대상에 포함될듯 (서울=연합뉴스) 황대일기자 = 국방부가 6.25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발생한 양민 학살 사건과 관련된 의혹 해소를 위해 조만간 `군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시키 기로 결정함에 따라 군에 의해 저질러진 `오욕의 역사'가 백일하에 드러날 지 주목 된다.
군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광범위하게 이뤄진 좌익세력 이나 북한 인민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은 충분히 규명된 만큼 이번 조사 대상에 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남한에서 토착 공산세력이나 인민군에 의해 살해된 양민은 12만8천936명이고 피 랍자는 8만2천595명이라는 게 정전협정 체결 당시 공보처 통계국의 공식 집계다.
그러나 한국군 또는 미군과 관련된 참상은 반세기가 넘도록 거의 규명되지 않고 있다. 1999년 이후 특별법이 제정돼 수년에 걸쳐 조사활동이 이뤄진 거창 양민학살 사건과 제주 4.3사건, 노근리사건 등 일부 경우만 베일을 벗었을 뿐이다.
대형참사가 장기간 은폐될 수 있었던 것은 진상규명을 목적으로 미군과 한국군 의 과오를 자칫 들춰냈다 `빨갱이' 동조 세력으로 몰릴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워 낙 팽배했기 때문이었다.
군은 비록 임무나 작전 수행 과정에서 발생했을 지라도 무고한 민간인이 무더기 로 희생된 것은 군역사상 치욕이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이번 기회에 그간 금기시 됐던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실을 결자해지 차원에서 철저히 밝힌다는 각오를 하고 있 다.
다만 집단학살의 경우 유족이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고 설사 생존자가 있더라도 노령으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는지 불투명한 데다 관련 기록조차 거 의 보존돼 있지 않아 진상규명 노력에 적지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군의 조사 대상에는 6.25전쟁 발발 2년 전에 전남 함평군 일대에서 발생한 양민 학살사건이 우선적으로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대한민주청년동맹과 서북청년단, 조선민족청년단 등 우익단체들로부 터 박해를 받아온 좌익들이 1948년 2월7일 경찰과 우익단체들을 습격한 데 대해 군 과 경찰의 대대적인 소탕작전이 진행되면서 빚어진 대규모 유혈참상이다.
군경은 추적을 피해 지리산 등지로 은신한 좌익계 유격대를 소탕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양민들을 죽이고 집과 재산을 파괴했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다.
국민보도연맹 조직원 학살사건도 조사 대상으로 꼽힌다. 보도연맹은 광복 후 이 승만 정권이 "개전의 여지가 있는 좌익세력에 전향의 기회를 주겠다"는 명분으로 결 성한 단체로 6.25전쟁 발발 직후 조직원들이 무더기로 처형됐다.
개전 직후 경기도 이천에서 보도연맹원 100여명이 총살되고 연맹원 출신으로 대 전교도서에서 복역 중이던 약 3천명이 처형된 것을 비롯해 아군의 후퇴 직전에 각 마을별로 보도연맹 가입자들이 집단 학살된 것이다.
후방의 교란세력을 사전에 제거한다는 이유로 진행된 이러한 학살사건으로 최소 20만명이 숨진 것으로 유족들과 관련단체가 추정하고 있다 보도연맹원은 좌익 활동가 뿐 아니라 공산당원으로 몰려 불이익을 받을 여지가 있는 사람들이 대거 포함됐고 심지어 지방행정구역당 할당제로 자신의 의사와 무관 하게 가입된 경우도 많아 상당수가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게 유족측의 주장이다.
6.25전쟁 직전 무장공비들에 의한 집단학살극으로 은폐됐다 10년전 언론의 추적 으로 일부 진상이 드러난 경북 문경시 양민학살 사건도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될 가 능성이 크다.
생존자 등에 따르면 국군 2개 소대 병력이 1949년 12월24일 경북 문경시 산북면 석달마을에 들이닥쳐 주민 100여명을 모아놓고 공산주의자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수류탄을 터트리고 소총과 카빈총을 발사해 86명이 현장에서 숨졌고 이 사건은 이후 무장공비에 의한 학살극으로 위장됐다.
그러나 군인들이 마을에서 환영받지 못한데 분노해 `빨갱이 마을'로 지목해 집 집마다 불을 지르고 도주하는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했으며 공비의 의한 소행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날조된 것이라는 게 유족들의 증언이다.
전북 익산역의 미군 전투기 폭격으로 역무원과 승객 등 54명이 현장에서 즉사하 고 300여명이 부상한 사건과 154명의 희생자를 낸 경남 창녕군 초막골 및 사천군 곤 명면의 미군 오폭과 총격 사건도 조사대상 리스트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진상규명 요구가 끊이지 않았던 경남 거제군, 함양군, 동래군, 울산읍, 충무시, 구포읍, 마산시, 대구시 파동, 상원동, 가창, 전북 순창군 일대의 민간인 학살사건 도 이번에 의혹이 해소될 수 있을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