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미니를 로버 미니만큼 좋아할 수는 없었다. 흔치 않은 디자인, 예쁜 모습이라는 매력은 더해졌으나 작아서 좋았던 느낌이 사라졌다. 게다가 무엇보다 국산 중형차를 굴리는 정도면 충분히 욕심낼만한 로버 미니였으나 BMW 미니가 되면서 그 정도의 경제력으로는 조금 버거워졌다. 요는 차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는 거. 가슴만 태우다가 보내버린 첫사랑처럼 로버 미니도 살까말까 가슴만 설레다 결국은 놓치고 말았다. 로버 미니는 그렇게 첫사랑처럼 내 마음에 남아 있다.
BMW 미니 쿠퍼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컨버터블이다. 단풍색으로 단장한 깜찍한 차다.
▲디자인
이전 시승기에서 미니가 미디엄이 됐다는 얘기를 했다. 미니의 가장 큰 특징이 작다는 건데, 작은 차를 어른 넷이 타도 충분할 정도의 크기로 만들었다. 이름만 미니로 남았고 사이즈는 커졌다. ‘어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중년 여인을 만나는 기분이 이럴까. 이름과 체격이 부조화는 볼 때마다 어딘지 모를 당혹감을 안겨준다.
BMW 미니는 여전히 예쁘다. 보닛을 열면 헤드 램프가 보닛에 붙은 채 따라 올라간다. 선글래스를 머리에 걸친 것처럼 헤드램프가 보닛에 매달린 모습이 이채롭다.
엔진룸에는 4기통 엔진이 가로로 얌전하게 놓여 있다.
인테리어는 수많은 원들의 집합이다. 그 안에 몇 개의 원이 자리잡고 있는 지 숨은 그림 찾듯 세어보다 말았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원이다. 실내에 앉으면 온통 동그라미 천지라 때로 환상스럽고, 때로 유아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붕에 세워진 안테나는 더듬이고, 사이드미러는 쫑긋 세운 귀다. 곤충처럼, 토끼처럼 귀엽게 구석구석을 만들었다. 누가 봐도 예쁘다는 데 동의할 만한 디자인이다. 로버 미니를 참으로 성공적으로 재해석했다. 어느 구석을 봐도, 어떤 부분으로 좁혀 봐도 예쁘다. 디자인 감각이 사방에서 살아 숨쉰다.
지붕은 버튼을 누르면 스르르 뒤로 밀려나간다. 마치 캔버스톱처럼 지붕 가운데가 열린다. 전자동 슬라이딩 루프는 원터치 버튼 또는 리모컨키로 15초만에 열린다. 40㎝를 열고 120㎞/h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 열린 지붕 위로 파란 가을하늘이 반긴다. 지붕은 편하게 여닫을 수 있는 구조다.
▲성능
작다고 여릴 것으로 짐작하면 오산이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면 단단한 느낌이 바로 전해 온다. 엔진소리도 얌전하지 않다. 적당히 거칠다. 1.6ℓ 115마력 엔진은 얌전하게 세팅하는 게 정석이다. 어차피 소형차에 올라갈, 크지 않은 엔진이니 조용히 얌전하게 살살 다니기 좋게 세팅하는 게 맞다. 미니는 이런 정석에서 살짝 벗어났다. 작고, 힘이 그리 세지 않은 엔진이지만 체감상으로는 꽤 고성능을 뽑아낼 것같은 느낌을 준다.
가속 페달을 살짝살짝 희롱하며 길 위에 차를 올렸다. 저속이지만 굵은 토크감이 살아 있다. 왼발이 자리를 못잡고 어중간하게 있다. 왼발이 있어야 할 공간이 좁아서다. 왼발이 어중간하면 오른쪽으로 굽은 코너에서 불안해진다. 지지대가 불안하기 때문. 똑같은 거동을 보여도 왼발이 제대로 지지해주느냐에 따라 운전자가 느끼는 감각은 달라진다. 운전자가 안정감을 느끼면 차의 거동도 안전해진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
운전대는 굵은 감이 있다. 손에 잡히는 느낌은 좋은 편. 굵게 잡히는 느낌을 특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파워 스티어링이지만 스티어링 휠을 돌리기에 다른 차보다는 조금 더 힘이 들어간다. 광폭타이어 탓도 있을 게다.
차는 섬세하지 않다. 조금 거칠다. 예쁜 아가씨가 터프한 면이 있는 것처럼 얌전하게 생긴 차가 독특한 색깔이 있다. 조용한 편도 아니다. 속도를 높이면 바람소리가 꽤 들린다. 그래도 용서할 수 있는 건 미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컨버터블 아닌가. 지붕을 열고 달리는 맛이란.
도심 한가운데에서는 지붕을 잘 닫는 게 낫다. 쏟아지는 뭇사람들의 시선이야 즐길만 하지만 차 안으로 밀려드는 먼지와 오염된 공기는 그닥 반갑지 않은 존재들이다. 오픈 드라이빙은 한적한 교외가 제격이다. 지붕을 열어도 운전석이 푹 파묻히는 자세여서 차창을 올리면 바람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다. 뒷바람이 치지만 시비걸 일은 아니다.
예쁜 차에는 많은 걸 바라면 안된다. 공간효율성, 기능성 등을 어느 정도 희생해야 예쁜 모습이 나온다. 넓은 공간과 쓰기 편한 다양한 기능을 즐기려면 디자인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미니 컨버터블은 그래도 4인승이다. 작고 예쁜 차지만 효율성도 좋은 편이다. 무단변속기(CVT)를 장착해서 최고시속 182㎞에 달하는 성능을 보인다. 물론 100㎞/h까지 가속시간 11.2초면 고성능이랄 수는 없다.
▲경제성
이 차를 타려면 3,85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작은 차지만 값은 싸지 않다. 미니를 들여올 때 BMW가 고민했던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미니'라고 하면 작은 차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과연 얼마를 받아야 소비자들이 수긍하겠느냐는 것. 미니 라인업에서 가장 착한 가격은 미니 쿠퍼로 3,390만원이다. 가장 비싼 놈은 JCW 미니 쿠퍼S로 4,495만원. 조금 높게 가격을 잡았다 싶지만 시장에서 잘 팔리는 걸 보면 그 만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이겠다. 연비는 11.4km/ℓ.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
2006-11-12 1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