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특유의 오너 경영은 이제 글로벌 트렌드가 되고 있다."
자동차 디자인의 세계적 거장으로 기아자동차에서 6년 이상 근무한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총괄 부사장(사진)은 21일 경주 현대호텔에서 매일경제 기자와 만나 "오너 경영은 자동차는 물론 제조업 전 분야에서 힘을 발휘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디자인 거장답게 이날 정장과 안경테까지 검은색으로 통일하고 한국경영학회 통합학술대회 주제 강연자로 참석하기 위해 경주에 온 그는 "오너 경영의 효율성은 한국 기업은 물론 폭스바겐, BMW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좋은 성적표가 증명해주고 있다"며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등에서 제기되는 오너 경영에 대한 비판을 강력하게 반박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최근 국내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가 논의되고 있는 것에 대해 어깨를 들썩이며 "도대체 오너 경영의 문제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한 후 "비전을 가진 경영자들이 여러 가지 제품을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이 오너 경영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높은 점수를 줬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무엇이든 빠르게 배우고 발전하는 게 한국 기업의 최고 경쟁력"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지난 2006년 기아차에 영입되자마자 `직선의 단순화`를 기본 개념으로 호랑이 얼굴을 형상화한 디자인을 기아차 모든 차종에 도입했다. 2006년과 2007년 적자에 허덕이던 기아차는 2008년 이후 급상승세를 타 지난해 매출 43조원에 영업이익 3조5000억원을 달성했다.
[기획취재팀 = 손현덕 부국장 / 문일호 기자 / 고승연 기자 / 용환진 기자 / 황미리 연구원 / 사진 = 박상선 기자]
■ 한국 디자인의 힘…자동차산업 짧은 역사에도 빠른 성장
`車 디자인 거장`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부사장
아우디TT·뉴비틀·골프…손대는 車마다 대박
"위기 속에서 빛나는 게 바로 브랜드다. 불황을 타지 않는 좋은 브랜드는 바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브랜드로,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열정이 필요하다."
21일 한국경영학회 통합학술대회 주제 강연자로 나선 피터 슈라이어 기아자동차 디자인총괄 부사장은 위기 극복의 노하우를 이같이 표현했다. 그는 미리 설치돼 있던 대형 캔버스에 자신이 디자인한 기아차 K9을 거침없이 그려 나가며 열정적인 강연을 이어갔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돈만 버는 비즈니스는 제대로 된 비즈니스가 아니다"면서 "기아차도 마찬가지다. 우린 혼과 열정을 다해 일하며 자동차 산업이 소비자에게 특별한 행복을 준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가 기아차와 한국 자동차 산업에 행복을 가져다 준 것은 `디자인 혁명`이다. 진화는 점진적이었다. 그는 "한 단계씩 진화하면 큰 변화가 온다"며 "내가 기아차의 디자인을 점차 변화시키면서 사람들은 `기아차는 바로 이거다`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됐다. 그것이 브랜드의 힘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가 디자인한 로체 이노베이션, 포르테, K5 등 K시리즈는 호랑이 앞 모습을 형상화한 `패밀리 룩`으로 통일성을 유지하며 점진적인 발전을 이뤘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독일차 아우디(1994~2002년)와 폭스바겐(2002~2006년)의 디자인 총괄을 거친 경험을 바탕으로 이 같은 기아차의 모습을 완성한 것이다. 2006년 당시 기아차 사장이었던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슈라이어 부사장을 영입하기 위해 유럽으로 떠나 삼고초려 끝에 그를 데려왔다.
그를 영입한 시점에 기아차 내부에선 갑론을박이 터져 나왔다. 하루아침에 외국인에게 한 기업의 디자인을 맡긴다는 점에서 내부 반대가 터져 나왔지만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디자인 경쟁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평소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기아차 유럽디자인센터에서 일하는데 국내에 오는 건 1년에 30차례가 안 된다. 그런 그가 자신의 디자인 개념과 위기 극복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경주를 찾아온 것이다. 바쁜 스케줄도 즐기는 그의 비결은 바로 일에 대한 사랑이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자동차 산업은 그저 자동차 부품들을 조립해서 하나의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산업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특별하다. 자동차 산업은 사랑이다. 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정말로 특별한 경험이다. 생각해 보라. 자동차를 운전할 때만큼 모든 세포가 살아 있고 모든 감각들이 예민해진 적이 있는지 말이다"고 말했다.
그가 이날 강조한 것은 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었다. 그는 "열정과 꿈을 좇으면 위기는 그를 쫓지 못한다"며 "페르디난트 포르셰는 그 유명한 비틀을 처음으로 디자인한 사람이다. 그에게도 열정만이 가득했고 재미있는 디자인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그에게 성공한 차를 만든 비결을 묻지만 그에겐 단순히 좋은 차를 만들겠다는 열정이 있었을 뿐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자동차 산업에 대해서도 탁월한 식견을 전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유럽에 비해 한국의 자동차 역사는 짧다. 그러나 현재 전 세계가 한국 자동차 산업의 빠른 성장에 주목하고 있다"며 "이런 시점에 한국에는 비전 있는 경영자가 필요하다. 국내 자동차 산업에서 이런 역할을 맡은 게 현대ㆍ기아차"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현대ㆍ기아차는 숨 막힐 정도의 성공을 전 세계에서 이뤄냈고 한국 국민에게 더 나은 경제로 보답하기도 했다"며 "이런 것은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오너 경영 때문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시 디자인으로 돌아갔다. 그에게 세련된 디자인은 무엇일까. 슈라이어 부사장은 "순수함과 우아함을 갖춰야 한다"며 "나는 직선의 단순함을 추구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하지 않았는가. 심플함이 세련됨의 절정이라고"라고 답했다.
그에게 자랑스러운 창작물은 뉴비틀이나 아우디 TT, 골프와 같은 글로벌 스타들이 아니었다. 바로 기아차 K9이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K9에 숨겨진 중요한 비밀이 있다. K9의 엔진은 앞바퀴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데 앞 보닛이 길게 늘어나 있고 차의 지붕은 뒤로 눕혀 있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적절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자동차 디자인은 마치 건축물과도 같다. K9은 아름다운 건축물처럼 절제된 미를 자랑한다"며 "이러한 기아차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 피터 슈라이어는…
1990년대 말,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모든 성인이 갖고 싶어 하는 꿈의 차가 있었다. 바로 아우디 TT.
당시 각종 매체들은 아우디 TT를 `근래 가장 영향력 있는 자동차 디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고 영화나 드라마를 비롯해 스타들의 애마로 숱하게 등장했다. 이 차의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이후 아우디의 세단 A6, A3의 디자인을 맡아 승승장구하던 그는 폭스바겐으로 자리를 옮겨 그 유명한 뉴비틀, 골프 등을 잇달아 탄생시킨다.
2006년 1200억원이 넘는 적자에 허덕이던 기아차가 그를 그냥 놔둘 리 없었다. 정의선 당시 기아차 사장이 그를 영입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진다. 슈라이어는 `자신의 디자인에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기아차에 탑승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딱 보면 기아차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나의 일"이라며 기아차의 핵심 디자인에 집중했다.
호랑이를 컨셉트로 한 `호랑이 코 그릴`로 기아차의 앞모습을 장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기아차 모하비, 벤가, 로체 이노베이션, 포르테, 쏘렌토 R, K7, 모닝과 최근 K9에 이르기까지 슈라이어 부사장은 기아차에 자신의 `혼`을 담았다.
그는 최근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할로카(halo-car)`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6년에 출시될 예정인 기아차 GT는 슈라이어 색깔의 스포츠카로 나올 예정이다.
한편 슈라이어 부사장은 독일 뮌헨 응용과학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런던예술대학 수송디자인학과 석사를 졸업한 뒤 2007년 왕립예술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획취재팀 = 손현덕 부국장 / 문일호 기자 / 고승연 기자 / 용환진 기자 / 황미리 연구원 / 사진 = 박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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